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신생아학교실 장윤실 교수는 작은 체구지만 신생아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왕엄마, ‘대모’라 불린다. 장 교수가 주로 머무는 곳은 신생아 집중 치료실. 인큐베이터 안에서 가쁜 숨을 쉬는 아이는 흔히 말하는 칠삭둥이로 30주도 채우지 못하고 엄마의 배 속에서 빠져나왔다.
“보통 만삭을 40주로 보는데요. 이른둥이는 임신 37주 미만에 낳은 아기들을 말해요. 아직 엄마 몸속에서 더 품어졌어야 하는 아기들이죠. 그곳에서 숨 쉴 수 있는 폐와 뇌세포, 또 각 신체들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럴 틈 없이 세상에 나와버린 아기들이에요.”
장 교수는 ‘신생아의 대모’라는 이름에 걸맞게 재작년엔 한국에서 가장 짧은 임신 기간인 21주 5일(152일) 만에 490g으로 태어난 아이를 살려냈다. 1987년과 2011년, 캐나다와 독일에서 152일 만에 태어나 생명을 잃지 않은 아이가 보고된 이후 처음이다. 아직 폐가 만들어지지 않아 숨을 쉴 수 없는 아이를 폐 계면활성제를 투여하고 고빈도 인공호흡기를 달아 숨 쉬게 했다. 그리고 망막 수술을 비롯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능을 해내기 위한 각종 약물이 투여됐고 그 아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리고 5개월 후, 아이는 건강해진 모습으로 퇴원했다.
“엄마 배 속의 태아에게 하루하루는 정말 중요해요. 태아에게 일주일은 태어난 아이들의 1년과 같죠.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장기들이 만들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해요. 이론적으로 태아는 23주 이상이 되어야 최소한의 생존 능력을 갖고 태어날 수 있어요. 그걸 ‘의학적 생존 한계’라고 하는데 그보다 열흘가량 일찍 태어난 아기를 살려낸 거죠.”
하지만 21주가 된 아이를 살려낸 것 하나로 의미 있는 사건은 아니었다. 장 교수는 이번 일은 기록적인 의학적 성과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큰 그림으로 봤을 땐 이번 일을 바탕으로 더 많은 미숙아를 살려내어 부모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고 했다.
“아이를 조산하면 부모 마음은 덜컥하고 내려앉아요. ‘우리 아이가 살 수 있을까’ ‘우리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을까’ 등 많은 생각이 가슴을 무겁게 하죠.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더 많은 부모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죠.”
미숙아 출생은 시대가 변화하면서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의 출생 통계를 보면 1993년에 전체 출생아 대비 2.6%가 미숙아였지만, 2011년에는 5.2%로 높아졌다. 퍼센티지로 봤을 땐 약 2배 늘었지만 출산율은 10년 전에 비해 떨어졌으므로 상대적으로 비율이 크게 는 것이다.
“출생한 아기의 체중이 2.5kg 이하일 땐 저체중 출생아, 1.5kg 이하면 극소 저체중 출생아, 그리고 1kg 이하의 아기를 초극소 저체중 출생아라고 해요. 1993년 당시엔 극소 저체중 출생아가 9백29명으로 집계되었지만 2011년엔 2천9백35명으로 크게 늘었어요. 저조한 출산율에 비추어보면 미숙아의 비율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죠.”
이렇게 저체중 출생아가 늘어난 까닭을 물으니 장윤실 교수는 노산을 이유로 들었다.
“미숙아가 태어나는 이유 중에는 자궁 내부의 감염 등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산모의 노령화 때문이에요. 남성과 여성 모두 학력이 높아지고 그만큼 사회 진출이 늦어지면서 결혼 연령도 높아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산 연령도 높아졌지요. 현재 한국의 미숙아 비율은 5~6% 정도지만 앞으로 미국이나 일본, 영국 같은 선진국처럼 점점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때문에 장 교수는 범국가적 차원에서 미숙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정책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 아이러니해요. 국가에서 출산율이 낮다고 산모들을 지원해주고 유치원도 공짜로 보내주고, 각종 접종비도 할인해주는데 그런 정책의 일환으로 이른둥이에 대한 투자를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프게 태어난 아이들을 더욱 도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안 그래도 출산율이 낮은 데조산하는 산모가 많아지고 기껏 아이를 낳아 봤자 살리지 못한다면 출산율이 아무리 높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왜 신생아입니까?
아이의 울음소리가 자지러진다. 큰 아이 같으면 어디가 아프냐고 물을 텐데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옛말에 “밭 멜래, 아기 볼래?”라고 물으면 대답도 않고 호미부터 들었다는 말이 있나 보다. 장 교수가 그 어려운 신생아학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한 까닭이다.
“제가 처음 신생아학을 선택했을 때도 교수님들이 모두 물으셨어요. 왜 하필 신생아학이냐고. 말도 통하지 않고 모든 신체 조직이 작고 연해서 수술 한 번 하더라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닌데 왜 하필 신생아냐고 물으시더군요.”
장 교수가 웃으니 그 모습이 아이 같다.
“아이들을 좋아하니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했어요.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죠. 하지만 신생아학을 선택한 것은 생명의 신비로움 때문이에요. 태아에서 신생아로 넘어가 한 생명이 되는 과정이 정말 놀랍잖아요.
탯줄을 자르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에게 완전히 의존적인 존재였는데 탯줄을 끊은 뒤에는 독립적인 완벽한 한 생명인 거예요. 그 자체로 너무 놀라운데 누구 탓으로도 돌릴 수 없는 질병이나 조산 때문에 생명이 꺼져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죠. 그것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유예요.”
신생아학을 선택하던 당시를 회상하는 장 교수는 다시 한 번 상기된 얼굴로 네 번째 이유를 든다.
“네 번째는 그 어떤 과목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겁니다. 하루하루 생명의 끈을 이어가던 아이가 점점 튼튼해져서 외래 진료를 오면 그만큼 감개무량한 것도 없습니다. 특히 아이들은 순간적인 아주 작은 판단 하나로도 건강한 아이로 바뀔 수 있어요.
아파서 축 늘어진 채, 그 작은 몸에 여러 가지 튜브를 꽂고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는 아이들을 보는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에요. 하지만 이 아이들이 곧 뽀얀 얼굴로 방긋 웃어줄 것을 생각하면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욕이 샘솟아요.”
그런 의미에서 은혜는 장 교수의 마음에 가장 크게 남은 아이다. 2012년 10월, 152일 만에 태어난 은혜는 폐조차도 생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아이가 만 두 살이 되어 아장아장 걸어와 장 교수의 품에 안겼다.
“그렇게 벅찬 순간이 없어요. 수정 과정도 자연스럽게 된 것이 아니라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한 아이였거든요. 생명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아이가 엄마의 배 속에 자리 잡았고, 세상 밖으로 나왔어요. 그 작은 몸으로 숨조차 쉴 수 없던 아이가 걸어서 제 품에 안기다니요! 이만큼 보람이 큰 직업도 없어요.”
이 때문에 장 교수는 젊은 의사들을 가끔 외래 진료실로 부르기도 한다고.
“다들 궁금해해요. 아이를 다루는 일을 하는 의사들이지만 실제로 이 아이들이 커서 건강해질까,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궁금해하거든요. 그래서 그들의 손을 거친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보여주기도 해요.”
작은 아이의 몸에 끼운 튜브나 약물이 아이를 괴롭게 하진 않을까? 이 500g 남짓의 작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생명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고 말하는 장 교수다.
“남보다 조금 빨리 세상을 본 아이들이라 약하더라도 이때 집중적으로 케어해주면 그 아이들이 자라서 국가의 성장 동력이 되는 거예요. 500g도 안 되는 조그만 아이잖아요? 그래도 가족에겐 너무 소중한 아이죠. 이 아이가 커서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는 거예요. 미숙아 1천 명만 잘 살려도 국가적으로 봤을 때 조 단위의 이득이 생긴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렇게 똑 부러지는 이른둥이들의 ‘왕엄마’ 장 교수. 집에서는 어떤 엄마냐고 물으니 다시 한 번 수줍게 웃는다.
“큰딸이랑 아들이 있어요. 어떤 엄마냐고 물으면 보기 힘든 엄마라고밖에 할 수 없어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큰 건 당연해요. 남의 아기들도 그렇게 예쁜데 제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은 건 정말 미안할 따름이에요.
그럼에도 친구 같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요즘은 아이들의 고민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아이들이 이미 사춘기를 다 보낸 건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술술 꺼내주더라고요. 그래서 고맙죠.”
장 교수는 자신의 인생의 멘토로 두 사람을 꼽았다. 1989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후였다. 진료 과목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녀의 스승인 윤종구 교수의 지도 아래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했다. 이후 장 교수는 연구 논문을 통해 대한소아과학회 석천연구상, 석천학술상, 대한주산의학회 남양학술상 등 각종 상을 거머쥐며 명의의 반열에 올랐다.
“명의라는 이름을 달기에는 부족한 사람이에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많은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이죠. 특히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저를 이끌어주신 윤종구 교수님이 제 멘토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시 신생아학의 권위자였던 윤 교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전 아마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르죠. 그분의 지도가 제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한 사람의 멘토는 바로 장 교수의 남편인 정형외과 전문의 노경민 박사다. 전공의 1년 차 때 의대 동기였던 노 박사와 결혼한 장 교수는 여전히 노 박사 앞에선 사랑스러운 아내다.
“학술적 멘토가 윤종구 교수님이라면, 일 이외의 모든 부분에서 제가 존경하고 의지하는 사람은 남편이에요. 제가 길을 헤매며 혼란스러워할 때 언제나 정확한 길을 제시해주고 같은 일을 하는 의사로서 많은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아요.
병원에서는 언제나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만 들어오면 녹초가 되곤 하는데, 그래도 예쁘게 봐주는 남편과 아이들 덕분에 제가 좀 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집에 있을 수 있어요. 피곤하면 피곤한 대로,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요.
지금은 남편과 시간이 맞지 않아 함께 운동을 하거나 멀리 놀러 갈 수는 없지만 조금씩 시간을 맞춰가며 동반자로서의 삶에도 충실한 제가 되고 싶어요. 물론 신생아의 생존율을 높이고, 합병증을 줄이기 위한 연구도 놓지 않을 거예요.”
특별기획 |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 18
각종 건강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그렇지만 막상 나와 내 가족이 아프면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우먼센스>는 매달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를 릴레이로 만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