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꽃보다… 시리즈’의 명성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 출발이 좋습니다. 제가 하게 돼서 잘된 것은 아닙니다. 나영석 PD가 기획을 잘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잘 안 됐어도 영석이형 탓이고요.(웃음) 사실 예능 쪽 사람들은 누가 잘해서 잘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 같이 밤을 새우며 작업하기 때문에 모두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합류하게 된 계기는요? 프로그램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을 때 영석이형과 <응답하라 1994>와 <꽃보다 할배>의 메인 작가 우정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다시 함께 해보자고 말이죠. 저를 포함해서 KBS <1박 2일>의 멤버들과 함께할 작업이라 두 말 안 하고 합류했어요.
이미 프로그램이 대중에게 각인된 상황에서 새로운 코드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할아버지, 여배우 말고 또 다른 조합이 없을까 고민했죠. 그러다 ‘젊음·청춘·친구’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어요. 어른이 돼서도 어릴 때 친구를 만나면 그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잖아요? 시청자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스토리텔링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앞서 두 팀에게 시도하지 못한 ‘하드코어’한 정통 배낭여행 콘셉트를 꼭 시키고 싶었어요. 너무 지독한가요?(웃음)
여행 가는 날까지 출연자들은 몰랐다던데 사실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출연진 모두 출발 전까지도 어디로 가는지 몰랐어요. 윤상, 유희열, 이적씨 같은 경우는 섭외 물밑 작업만 두 달이 걸렸어요. 소속사 관계자들도 구워삶아 한통속이 되고, 연기자들과는 매일같이 술을 마시며 상황을 둘러댔죠. 라오스 팀의 연석이나 호준이, 바로는 CF나 화보 촬영쯤으로 알고 있었어요.
두 팀을 비교한다면? 페루팀의 경우 음악인의 자존심을 지키는 몇 안 되는 뮤지션들이잖아요. 음악을 위해 청춘을 불태웠죠. 소꿉친구와도 20년은 쉽지 않은데 사회에서 만나 ‘20년 지기’로 지냈다면 그만큼 서로의 음악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뜻이겠죠. 그런 모습이 여행 중에도 잘 묻어나오더군요.
마추픽추에 올라서서 눈물을 흘린 것도 아마 친구들과 함께였기 때문일 겁니다. 함께 올랐다는 기쁨, 어느새 어른이 된 것 같아 느껴지는 허탈함 등이 복합적으로 터진 거죠. 라오스 팀의 경우 걱정이 없었어요. 40℃를 넘나드는 나라에 검은 슈트를 입혀서 71만원만 달랑 줬는데도 신나서 놀더군요. 그냥 고맙고 예뻤어요.
작가가 천직이네요. 학창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보통 학생. 예능 작가라고 하면 학창 시절도 특별했을 줄 아는데 전혀요. 중학교 때까진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좀 하던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는 공부에 손을 놓았죠. 갑자기 축구에 빠져 친구들과 클럽을 만들어 마산, 창원, 진해를 돌며 내기 축구를 하러 다녔어요. 그 돈으로 술 홀짝홀짝…, 아시잖아요!(웃음) 그때의 추억으로 KBS <우리 동네 예체능>을 기획했어요.
대학교 때는요? <우리들의 천국>이란 드라마가 있어요. 드라마 속 배우들이 신문방송학과였는데 멋있어 보여서 신방과에 입학했죠. 들어가서 보니 저는 연극영화학과를 동경했던 것 같아요. ‘중2병’까지 앓던 시절이라 비 오는 날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고, 시험 볼 땐 답안지에 소설을 쓰기도 했어요. 그게 멋있는 줄 알았어요. 하하.
언제쯤 작가를 꿈꾸었나요? 말년 병장 때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제대하고 나서 일본어를 더 배우고 싶어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근데 유학생이 돈이 있나요? 학교 갈 때 빼고는 거의 집에서 TV만 봤죠. 그때 ‘휴먼 다큐’ 프로그램의 남자 출연자가 실제 예능 작가였어요.
2층집에 살면서 벤츠를 몰고 다녔는데 굉장히 멋있어 보이더군요. 아내도 유명 탤런트였고요.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이거다!’ 싶었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남자 예능 작가가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잘됐다 싶어 도전했어요. 몇 안 되는 남자 작가 지망생에다 일본어까지 구사하는 매력적인…, 뭐 그런 자신감이요.
그래서 생각만큼 잘됐나요? 아니요. 완벽한 착각이었어요.(웃음) SBS 방송작가 스쿨에 들어갔는데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끼고 글 쓰는 기술을 부지런히 배웠죠. 당시 신촌 쪽 고시원에 살았는데 일본에서 살던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없었어요. 방송 프리뷰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SBS <순간 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를 담당했죠.
그때 제가 꽤 잘했나 봐요. 행정병 출신이다 보니 워드 하나는 기기 막히게 잘 쳤거든요. 테이프를 건네주던 사람들이 대부분 PD나 작가인데 그중 한 분이 저를 좋게 보셨는지 “우리랑 같이 안 해볼래?”라고 제안해서 SBS 교양국에서 진행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특집 팀에 들어가게 됐죠.
그동안 어떤 작품을 담당했나요? 예능 작가가 꿈이었으니 SBS <야심만만>부터 시작했어요. 그 후에 <신동엽의 있다 없다>, 슈퍼 액션에서 했던 격투기 생중계, 그리고 KBS <1박 2일>에도 있었어요. 7회만에 종영한 비운의 프로그램 MBC <인간탐구쇼 아이스크림>에도 있었네요. 그래도 저는 그때 동료 작가이기도 한 아내를 만났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네요.(웃음)
부부 작가군요? 호감 정도만 가지고 있었어요. 근데 예상보다 워낙 빨리 프로그램이 폐지되다 보니 친해질 기회가 없었죠. 그러고 나서 연락이 뜸하다 갑자기 얼굴이 떠오르기에 전화를 걸었는데 “몸이 안 좋아서 일을 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연민의 정을 느꼈는지 잘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3년의 연애 끝에 한 방을 쓰는 부부가 됐네요.
아내가 사랑스러울 때가 있다면? 일을 목숨 걸고 할 때? 모르는 장르에 대한 도전정신이 강하죠. 예능 작가가 드라마 작가를 병행하는 것은 작법이나 화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데 지금 tvN 드라마 <아홉수 소년>을 집필하는 거 보면 대단해요.
또 하나는 아이돌에 빠삭한 ‘빠순이’ 아줌마라는 거죠. 예전에 백스트리트 보이즈나 엔싱크를 좋아해서 영어를 공부하다 영어영문학과를 진학한 걸 보면 진짜 대단해요. 아이돌을 전혀 모르는 제 입장에서는 좋은 소스가 되어주는 고마운 사람이기도 하고요.
일적으로 자랑스러운 거 말고 다른 얘기 좀 해주세요. 집안일 말씀하시는 건가요? 음, 요리는 글로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요리책은 잔뜩 있죠.(웃음) 사실 요리도 곧잘 해요. 근데 저나 아내나 둘 다 워낙 바빠서 3개월 전에 집에서 같이 요리해 먹은 게 마지막이네요. 그 전에는 또 3개월 전쯤이었을 테니 한 3월쯤에 먹었을까요?
수입은 누가 더 좋아요? 하하. 다행이도 제가 조금 더! 근데 워낙 둘 다 경제관념이 없어요. 최근에 모든 자금 관리를 아내에게 일임했는데 워낙 통이 큰 여자라 용돈을 두둑이 줘요. ‘센스 만점’ 아내죠.
나영석 PD와의 인연에 대해 물어볼게요. <1박 2일-시즌1>의 전신인 KBS 예능 <준비됐어요> 때 처음 만났어요. 영석이 형이나 이우정 선배, 이명한 PD님, 신효정 PD를 모두 그때 만났죠. 신기한 게 모두 시골 촌놈들이란 공통점이 있어요.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다가 우연히 “시골 외갓집에 가서 할머니 무릎에 누워 수박이나 먹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모두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폼 나는 거 말고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재밌고 보기 편안한 예능을 해보자고 한 것이 저희들 모두의 의견이었습니다.
그게 국민 예능 <1박 2일>의 탄생 비화군요? 그렇죠. <준비됐어요>가 워낙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해 방송국에서도 무엇을 하든지 신경을 안 쓰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우리 마음대로 방송에 해보고 싶던 시도를 다 해본 거예요. 정말 재밌었죠. 그렇게 6개월쯤 지났을 때 3%대로 시작한 시청률이 20%를 넘어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패션 트렌드’ 하고 비슷해요. 만약 3년 전에 했거나 3년 뒤에 했으면 <준비됐어요>보다 더 안 좋게 끝났을 수도 있었죠. 시청자들이 야외 촬영과 리얼 버라이어티에 익숙해질 때쯤 이 프로그램을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여행 프로그램을 오래했으니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도 많겠는데요? 사람들이 “제주도는 작아서 이틀이면 다 돌아”라고 말하는 게 잘 이해가 안 돼요. 제주도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고 여행을 갈 때마다 모습이 바뀌어요. 의식주도 내륙 지역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질 만큼 독특하죠. 국내 여행을 한다면 제주도를 추천하고 싶어요. 해외여행은 얼마 전 답사차 다녀온 칠레가 좋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죽기 전에 가봐야 할 베스트 3’의 하나로 알려진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경치, 산꼭대기에서 볼 수 있는 만년설, 그런 자연을 배경으로 지은 그림 같은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들이 어우러진 동화 같은 곳이죠.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나요? 스마트폰, 연필, 노트는 항상 들고 다닙니다. 제가 어릴 때 많이 돌아다닌 편도 아니었고 똑똑한 놈도 아니라서 이 일을 하면서부터는 시간을 쪼개 이것저것 많이 보러 다니려고 노력해요. 신문과 잡지도 일부러 구독합니다. 성정이 게을러서 스스로에게 울타리를 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거든요.
우리 집 문 앞으로 배달되면 귀찮다고 안 볼 수가 없더라고요. 일본 애니메이션도 많이 보고 전 세계에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거의 다 보는 편이고요. 그렇게 십여 년 살았더니 이제야 조금씩 꺼내 쓸 수 있는 저만의 ‘아이디어 공간’이 만들어졌네요.
작업할 때 징크스는 없나요? 컴퓨터 앞에 앉으면 될 것도 안 되는 편이라 노트에 연필을 이용해 직접 필기해요. 아날로그적 감성이죠. 주변을 깨끗하게 해야 아이디어가 잘 떠올라서 청소를 자주 하는 편입니다. 결벽증까지는 아니지만 ‘쩜오’ 결벽증 정도는 되겠네요. 24시간 커피숍 흡연실에서 작업할 때 아이디어가 잘 떠올라요. 커피숍에 놀러온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혼자만 일하는 느낌이 드니 왠지 특별하게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자리를 잡으면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일하는 편이죠.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바쁘게 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여유로운 것도 좋지만 너무 편안한 삶만 좇는 것 같습니다. 제가 스무 살 때 여유 넘치게 살다가 인생을 참 많이도 돌아왔거든요. 그 나이대마다 해볼 수 있는 것들은 꼭 하라고 하고 싶어요. 나이 마흔에 여행 다니며 게스트하우스의 도미토리룸에서 자면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은 스무 살 때보다 배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 때가 있는 법이죠.
작가로서 꿈이 있다면? 환갑이 돼도 후배들에 비해 감각이 뒤떨어지지 않고 ‘좋은 예능’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청자들이 보고 나서 무언가 가슴에 남는 그런 거요. ‘공익성’이라고들 하잖아요. <1박 2일>을 하고 나니 지방 경제가 살아나고 <우리 동네 예체능>이 주목받으니 상대적으로 비인기 종목 선수와 ‘생활체육’이란 키워드가 대중의 머리에 각인됐죠. 메시지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지금부터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꾸준히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네요.
<꽃보다 청춘-라오스 편> 스포일러를 부탁합니다. 스포일러는 조금 힘들고요.(웃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마지막 회까지 페루 편처럼 우는 모습이 나온다거나, 인물 간의 갈등이 드러나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세 명 다 순수하고 또 워낙 즐겁게 놀다만 와서요. 아마 지켜보는 내내 ‘청춘’이 떠오를 겁니다.
왠지 저 멤버 중에 한 명이 나인 것 같은 느낌? 해외여행을 안 가봤을 때는 나도 호준이처럼 모든 것이 신기했고, 몇 번 나가다 보면 연석이처럼 제법 폼을 잡으며 얘기하기도 했고, 바로처럼 막내일 때는 형들에게 까불기도 했고. 그동안 내가 살면서 거쳐온 여정과 비교해서 본다면 두 배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