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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교, 꽃보다 아름다워

최근 탈세 논란에 휘말린 송혜교는 생각 외로 단단해 보였다. 또박또박 “나는 무지했다”고 말했고, 진지해 보였다. 서른셋의 그녀는 그렇게 성장 중이다.

On October 02, 2014


송혜교는 현실에 안주하는 배우가 아니다. 그녀는 작품 안에서 매일매일 변모하고 진화하길 원한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은 그런 그녀가 더 넓은 세계를 만나기 위해 선택한 노력의 일환이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말 많고 욕 잘하는 젊은 엄마로 분했다.

그래서일까? 송혜교는 데뷔 초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내공 있는 배우가 됐다. 영화 개봉 시기와 맞물려 터진 세금 탈루 의혹에도 그녀는 대중 앞에 서길 두려워하지 않았다. 피하기보다 책임감 있는 배우가 되길 원했던 그녀는 지금 막 만개했다.

배우 송혜교는 늘 아름다워요. 언제 들어도 참 기분 좋은 말이에요. 어릴 때 명랑 쾌활한 캐릭터를 많이 맡다 보니, ‘아름답다’라는 말보다 ‘예쁘다’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뒤늦게 얻은 ‘아름답다’라는 말에 충분히 감사해요.

특별히 ‘아름답다’고 느낀 여배우가 있나요? 제가 공리를 굉장히 좋아해요. 지난 6월 상하이국제영화제에 갔다가 대기실에서 만났는데, 팬의 입장이 돼서 “와, 여신이다!” 이랬어요. 영광스럽게도 저를 알고 계시더라고요. 헤어질 때 양쪽 볼에 뽀뽀를 해주셨는데, 너무 좋아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던 기억이 나요. 공리처럼 나이가 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카리스마 넘치고, 멋지게요.

<두근두근 내 인생>의 열일곱 ‘미라’(송혜교)는 가수의 꿈을 버리고 엄마가 되는 길을 선택해요. 만약 송혜교도 어릴 때 연기 대신 평범한 길을 택했다면 서른셋 인생은 어땠을까요? 원래 꿈이 연기자는 아니었어요. 우연히 나간 교복 모델 선발대회(1996)에서 상을 받고, 소속사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내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연기를 시작한 건 아닌 거죠. 어렸을 때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아마 연기를 안 했다면 액세서리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강동원과 송혜교가 캐스팅되면서 원작의 현실적인 ‘미라’와 ‘대수’가 판타지로 승격된 면이 없지 않아요.(웃음) 원작 자체가 워낙 인기가 있어선지, 캐스팅 기사가 났을 때 반대 의견도 많았어요. ‘어떻게 송혜교랑 강동원이 부모를 연기해?’ 하는 반응들이오. 사실 모두가 생각하는 모성애 강한 엄마 역이었다면 저 역시 자신이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미라’의 나이가 현재의 나와 같기도 하고, 밝고 명랑한 모습이 강해서 다가가는 데 부담은 덜했어요. 그리고 ‘미라’의 모습이 실제 우리 엄마와 너무나 닮았어요. 이 캐릭터 모델로 엄마를 생각한 건 아닌데, 촬영할수록 엄마가 생각나더라고요.

나이가 든다는 것이 여배우로서 어떨 것 같나요? 그런 순간을 생각하면 두렵나요? 아직 피부로 와 닿지 않아 그런지 그 순간이 두렵지는 않아요. 다만 그때가 되면, 배우로서 두렵다기보다는 여자로서 두려울 것 같아요. ‘여자로서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저 자리는 이제 나보다 젊은 친구들이 서는구나’ 하는 그런 묘한 감정에서 오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교복 입은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걸로 봐서, 그 시간이 빨리 올 것 같지는 않아요.(웃음) ‘미라’는 꿈이 아이돌이었으니 얼마나 멋 부리는 걸 좋아했겠어요. 그래서 교복도 모범생들과 다르게 타이트하게 줄이고 깻잎 머리를 했는데, 그렇게 하고 거울 앞에 서니 너무 민망했어요. 그리고 해맑게 웃는 신을 클로즈업으로 찍고 모니터를 봤는데, 주름이 너무 자글자글한 거예요. 주름 때문에 스태프들이 상의도 했지 뭐예요. “이거, 어떻게 하지?” 이러면서. 진짜 숨고 싶었어요.(웃음)

클로즈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때 극단적 인물 클로즈업이 큰 화제였어요. 제가 연기한 ‘오영’이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몸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거든요. 많은 동작을 보여줄 수 없었기에, 얼굴로 심리를 표현하는 수밖에 없었죠. 감독님께서 그걸 캐치하시고, 빅 클로즈업을 통해 미세한 찡그림이나 근육의 떨림이 감정적으로 잘 표현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배우 입장에서 클로즈업이 들어오면 어떤가요? 어떻게 보면, 배우를 믿기 때문에 카메라가 들어오는 것이기도 한데,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작품 안에서 예쁘게 보이겠다는 마음은 예전부터 없었어요. CF, 화보, 기자회견 등 충분히 꾸밀 수 있는 자리가 많기 때문에 작품에서까지 송혜교로 보이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은 ‘연기 잘하는 배우’로 꼽히지만, 한때는 연기력 논란도 있었잖아요. 본인에게 변화가 있었나요? 많은 분들이 뭔가 달라졌다고 하시는데, 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경험이 쌓이면서 감정이 풍부해진 건가 싶기도 하고…. 30대 들어서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건 확실히 있어요.

20대에도 연기에 대한 욕심은 있었지만, 그때는 마냥 내가 부각됐으면 좋겠고, 어려운 신은 빨리 넘어갔으면 싶고, ‘일 빨리 끝내고 가서 쉬어야지’, 하는 게 컸어요. 그런데 30대에 들어서면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선배님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어요.

내 촬영 분량이 끝나도 상대 배우가 하는 걸 보고 가는 게 너무 재미있고, 끝나고 나서 내일 할 신에 대해 감독님과 토론하는 것도 너무 좋고, 또 어려운 신은 빨리 넘어가려고 했던 내가 ‘이 신을 어떻게 고쳐서 더 풍부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게 됐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바뀐 것 같아요.


<두근두근 내 인생>의 상대배우 강동원과는 어땠나요? 평소 친분이 있어 호흡을 맞추는 데 한결 수월했어요. 억지로 친해져야 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많이 편했어요. 덕분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고요.

강동원은 정말 여배우들의 기피대상인가요? 그럼요.(웃음) 얼굴이 너무 작잖아요. 웬만하면 옆에서 사진을 안 찍는 게 좋죠. 저도 많이 피해 다녔어요.

‘대수’와 ‘미라’가 처음 만나는 계곡 신을 강원도에서 찍었다고요? 물에 빠지는 신인데 엄청 추웠다고 들었어요. 꽃샘추위가 있던 3월에 촬영했어요. 계곡에 손을 잠시 담갔다가 뺐는데, 손마디가 아플 정도였어요.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해 앰뷸런스를 항시 대기해뒀어요. 그리고 큰 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두고, 컷 하면 달려가서 몸을 녹이곤 했어요. 대야 세 개가 있었는데, 하나에는 뜨거운 물을 계속 받고, 한 통엔 내가 들어가고 다른 한 통엔 동원씨가 들어가고.(웃음) 그렇게 추위를 견뎠어요.

열일곱 ‘미라’는 서른셋에 아들을 포용하는 듬직한 엄마로 바뀌죠. 열일곱의 송혜교와 서른셋의 송혜교도 많이 다른가요? 너무 많이 달라졌죠. 데뷔 전에는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사람들 앞에도 잘 서지 못하는 내성적인 아이였어요. 노는 것도 정말 친한 친구들과만 어울려 다녔고요. 그런데 데뷔를 하고 나이를 먹고, 많은 분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도 한잔하고, 연애도 하면서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했어요. 예전에는 제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의사표현도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 됐고요. 어렸을 때 성격보다 지금의 성격이 더 마음에 들어요.

‘미라’처럼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20대 때는 환상이 있었어요. 아이를 워낙 좋아해 빨리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30대가 되니까 일에 대한 욕심이 더 많이 생기더라고요. 20대에 작품을 많이 못한 것이 후회도 되고요. 그래서 요즘은 결혼 전에 작품을 많이 남겨두자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주변에 결혼하신 분들이 다들 늦게 가라고 하던데요?(웃음) 빨리 가서 좋은 거 없다고요. 결혼을 언젠가 하긴 할 텐데, 지금은 나 자신도 책임질 만한 여유와 자신이 없어요.

얼마 전엔 세금 탈루 논란이 있었어요. 피하거나 도망칠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 모든 것이 나의 무지로 시작된 일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어른들께 여쭤봤더니 다들 내가 숨거나 피하지 않고 사과할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는 게 맞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숨고도 싶었어요. 너무 무서우니까…. 그래도 부딪쳐서 사과드리고, 내 개인적인 일로 인해 작품에 지장이 안 가도록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나로 인해 이 영화에 공을 들인 많은 분들이 상처를 안 받기를 바랄 뿐이에요.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으로 드라마 <가을동화>를 꼽았던데, 지금의 송혜교가 그때의 송혜교를 만난다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나요? “힘든 일이 많을 것이다”라고요. 그땐 스무 살이었고 첫 미니시리즈 주연이었기 때문에 무서운 게 없었어요. 나에 대한 기대의 시선도 많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용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는 비록 어수룩했지만 순수했고요. 그런데 연기라는 게, 한 작품 한 작품 할수록 더 어려워져요. 경험치가 쌓이고, 진짜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면서 표현에 더 신중해지는 거죠. 그래서 스무 살의 나를 만난다면, 연기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실 여배우들의 행보를 살펴보면 어느 방향으로 나갈지 대충 가늠이 돼요. 송혜교 역시 초반에는 그랬는데, 어느 순간 예측할 수 없는 행보를 이어 나가는 느낌이에요. 어떤 길로 가야지 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 이미지와 겹치는 건 피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은연중에 ‘어릴 때 많이 맡았던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와 반대되는 작품들을 선택했던 거죠. 그런데 또 진중한 작품을 연달아 하다 보니까, <두근두근 내 인생>처럼 밝은 작품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결국 지금의 나는 하나의 이미지에 갇히기보다 다양한 작품을 하고 싶은 것 같아요. 다양한 선택을 용기 있게 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CREDIT INFO
기획
정희순
취재
정시우
사진
제이에스티나
2014년 09월호
2014년 09월호
기획
정희순
취재
정시우
사진
제이에스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