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디서나 눈에 띈다. 그날도 그랬다. 우스꽝스러운 멜빵바지에 흡사 인디언 추장을 연상시키는 헤어 액세서리. 누구도 감히 소화해낼 수 없는 패션을 한 노홍철이 무대 위로 올라서자 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졌다.
“집에서 나오려는데 투애니원의 멤버 씨엘에게 전화가 왔어요. 오늘 밤 YG패밀리 콘서트가 열린다고 놀러 오라는 거예요. 파티 복장을 갖춰 입어야겠기에 급히 환복을 하고 왔습니다. 괜찮죠?”
다른 사람이 그런 차림이었다면 고개를 갸웃거렸겠지만, 그이기에 수긍이 갔다. 맨 처음 그가 브라운관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쟤 뭐야?’ 하며 황당해하는 반응이었다. 그를 줄곧 따라다닌 수식어도 그랬다. ‘돌+아이’ ‘간신’ ‘사기꾼’ 등 부정적인 어감의 별칭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연예인은 이런 수식어가 자기 이름 앞에 달리면 힘들어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원래 그렇죠.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 것처럼 기사가 날 때도 있고,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 때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좋았어요. 사람들이 당장은 저를 좋지 않게 인식한다 하더라도 결국 진심은 통하는 법이잖아요. 물론 시간이 걸리죠. 제 마음이 상대방에게 결국 전달됐을 때,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해요.”
그가 방송 일을 시작한 것은 올해로 10년 째다. 언젠가부터 그는 방송에서 자신을 ‘러키 가이’라 불렀다. 놀랍게도 행운의 여신이 그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어려운 게임에서 혼자 승리하는가 하면, 얄미울 정도로 벌칙도 잘 피해 갔다.
“저는 스스로를 ‘러키 가이’라고 믿어요. 제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도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러는 거야?’ 하고 생각하죠. 실제로 러키한 일이 생기면 ‘어머, 노홍철한테 사기당한 것 같아’ 하고 생각하시니까 그게 짜릿하고 재밌어요. 그렇게 ‘나는 러키해’ 하고 주문을 걸다 보니까 일도 더 잘되는 것 같아요.”
그래, 하고 싶은 걸 하자
노홍철은 학창 시절,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공부 잘하는 형과 함께 자라면서 홍철에게 거는 부모님의 기대 역시 컸지만, 그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저는 노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엄마가 이것저것 과외 공부도 시켜주시고, 친구 따라 독서실도 가봤는데 40분 이상 앉아 있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때부터 그냥 ‘에이,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하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는 대학교 때부터 노점상, 인터넷 쇼핑몰, 여행 사업 등 해보고 싶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눈에 띄는 외모 때문에 우연한 기회로 방송 일을 시작하게 됐다.
“사실 방송에 출연해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했어요. 당시 여행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잘되고 있었거든요. 그때 제 나이가 스물여섯이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한두 번 방송 일을 해보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처음엔 ‘그래, 딱 한 달만 하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한 달이 너무 빨리 지나갔고, ‘얼마 벌 때까지만 하자’ ‘1년만 채우자’ 하던 게 벌써 여기까지 온 거예요. 제가 사업을 접고 방송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해요. 그냥 방송이 너무 재밌고 하고 싶었어요.”
방송인으로 입지를 다진 후 그는 심야시간대 라디오의 DJ까지 맡았다. 클로징 멘트를 넣어보자는 PD의 제안에 노홍철이 던진 멘트는 “여러분~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뿅!”이었다. 당시로선 다소 뜬금없는 멘트였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그날 이후 청취율이 승승장구하고 청취자 참여 게시판도 성황을 이뤘다는 것.
“인터넷을 하다가 제 이름이 떴기에 ‘뭐지?’ 하고 눌러봤는데, 가수 ‘요조’씨가 한 강연회에서 제 이야기를 하신 게 나오더라고요. 노홍철의 한마디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는 멘트를 듣고 감동받으셨대요. 그걸 보고서야 저도 새삼 깨달았죠. ‘아,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중요한 거구나’를요.”
생각해보면 노홍철은 다른 방송인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모두가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혈안이 되었을 때도 그는 그와 어울리지 않을 법한 교양 프로그램, 시트콤 등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분야를 하나씩 섭렵해갔다. 그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교양을 시작했고, 암기력과 주의력을 기를 수 있을 것 같아 시트콤을 했다고 고백했다. 주변에서 “너 그렇게 다른 길로 새면 안 된다. 예능을 좀 더 열심히 해라”라고 말해도 그를 말릴 순 없었다. ‘하고 싶은 거라서’가 그 이유였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저에게는 항문에 끔찍한 질환이 있었어요. 조금만 무리하면 재발하기에 확실히 도려내고 가자는 생각에 병원을 찾았죠. 수술을 위해 몇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 표정이 이상한 거예요. ‘암 2기인 것 같다. 큰 병원으로 옮기자’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어요. 본능적으로 ‘좋아! 잘했어! 난 하고 싶은 거 다 해봤어! 죽어도 여한이 없어!’ 하면서 웃고 있더라고요. 제 반응을 보고 의사 선생님이 많이 놀라셨죠.
그런데 사실 저도 놀랐어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할 줄 몰랐거든요. 정밀 검사를 받아보니 부끄럽게도 그게 암 덩어리가 아니라 콜레스테롤 덩어리였어요. 하하.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고기와 초콜릿을 먹어서 생긴 거라고 하더군요. 제가 이 일화를 말씀 드리는 이유는 한 가지예요. 여러분, 하고 싶은 거 하세요! 절대 후회가 남지 않도록요.”
오늘의 노홍철을 만들어준 프로그램은 뭐니 뭐니 해도 MBC 장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꼽을 수 있다. 방송 생활 10년 중 8년을 <무도>에서 보냈으니 프로그램에 대한 노홍철의 애정도 각별할 수밖에 없다.
“저는 방송국 공채 출신이거나 어디 연습생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소속사가 없었어요. 기획사에서 러브콜이 왔지만 평범한 자유인으로 살고 싶어 거절했죠. 그때 저의 이런 마음을 안 신동엽씨가 함께 회사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때 멤버가 유재석, 김용만, 신동엽, 노홍철, 이혁재씨였어요. 다섯 명이 모여서 일을 하니 집에 가기 싫을 정도로 재밌었죠.
회사가 생기니까 회사 이사님이 방송국에 가서 제 출연료 조정을 해주시고요. 감사하긴 했지만, 저는 오히려 이사님께 부탁을 드렸어요. ‘<무한도전>은 정말 재밌어서 하는 거예요. 이 프로그램만큼은 절대, 향후에도 출연료 올려달라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하고요. 아, 물론 나중엔 제가 올렸어요.(웃음)”
8년여의 세월을 동고동락한 <무한도전> 멤버들과는 이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다. 방송에서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돌아서면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료다.
“하하는 제 베스트 프렌드고, 준하 형은 생각하시는 것보다 정말 착해요. 남들에게 베풀기도 잘하는 분이고요. 그런데 자신이 베푼 만큼 돌려받지 못했을 때 조금 삐지는 경향이 있고요. 박명수씨는…. 방송에서 보이는 캐릭터 정말 그대로예요. 100% 리얼. 뭐 저는 특이한 사람 좋아해요. 가끔 이분이 사람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요.”
방송에서 공공연히 ‘유재석을 존경한다’고 밝혀온 그는 이날 신인 시절 자신을 이끌어준 유재석과의 일화도 공개했다.
“한번은 방송 녹화를 마치고 유재석씨가 집에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 당시 유재석씨가 <엑스맨>으로 인기의 정점을 찍을 때였거든요. 자기 매니저도 다 보내고는 제 차를 본인이 직접 운전하시면서 제게는 편히 쉬라고 하시는 거예요. 사실 그때 저는 스타일리스트 정윤기씨 에이전시에서 직접 옷을 빌려 입곤 했어요.
녹화를 마치면 빌린 옷을 반납하러 가야 했죠. 산타처럼 보따리를 짊어지고 언덕길을 오르곤 했는데, 재석씨가 그걸 해주시는 거예요. 상식적으로 보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저는 일도 일이지만, 무엇보다 그분의 훌륭한 인격을 정말 존경해요. 제가 유일하게 제 마음속 깊은 얘기를 꺼내놓는 분이기도 하고요.”
<무한도전>과 함께한 시간만큼 멤버들의 신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노홍철을 제외하고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는 모두 애까지 낳은 유부남이다. 공개 연애를 해본 적도 있지만 그는 현재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공식 싱글남’이다.
“제게 연애 이야기를 물어보시는 건 ‘스님에게 고해성사를 하러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네요. 대학 때 이후로 연애를 6~7번 정도 한 것 같아요. TV에서는 이성에게 들이대는 캐릭터로 나오곤 하는데, 사실 전 이성에게 굉장히 약한 스타일이에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죠.”
그는 조심스럽게 군대를 전역한 후 사귄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슈퍼엘리트모델 출신의 시원시원한 그녀는 노홍철이 그리던 이상형이었다. 그는 자기 학교보다 그녀의 학교를 더 자주 갈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대했다.
“여자친구와 배낭여행을 가려고 알아보던 차에 실수로 보따리장수들이 타는 배를 타고 중국에 가게 된 거예요. 중국의 짝퉁 시장에 갔는데 엄청 신세계더라고요. 거기서 사서 한국에 내다 팔면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여자친구와 전 관세 범위를 초과할 만큼의 물건을 샀고, 그렇게 한국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앞서 가던 여자친구가 세관 직원에게 걸려 난처한 상황이 된 거예요. 저는 순간적으로 기둥 뒤로 숨었죠. 그게 그 친구와 헤어진 결정적인 이유였어요. 지금은 결혼해서 애도 낳고 잘 산대요.”
노홍철은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독특한 가치관도 내비쳤다.
“저는 솔직한 게 사랑이라고 봐요.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요. 연애할 땐 서로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잖아요. 그런데 그것보다는 내 끝을 보여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솔직하지 못한 사랑은 언젠가는 헤어지게 돼 있어요.”
노홍철의 솔직함은 비단 연애에서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방송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연예인은 가면을 쓰고 사는 직업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그는 방송 역시 솔직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방송 일을 하다 보니까 매너리즘에 빠지더라고요. 어떤 상황에서는 나를 좀 희화화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상대방을 놀리고, 여자 게스트가 나오면 제가 과하게 들이대면서 그런 장면 하나하나를 따고 들어가는 거죠. 그렇게 공식화된 패턴대로 하고 있는 제가 싫었어요.
그래서 훨씬 일을 많이 하신 형님들께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누군가에겐 네가 하는 일이 간절한 꿈일 수 있다. 그런 얘기 어디 가서 하지 마. 괜히 오해 사니까. 일을 쉬면 너는 감각이 무뎌질 거고 자연스럽게 도태될 거야’라고 조언해주시더라고요. 귀담아 듣긴 했지만, 전 결국 주2일제를 선택했어요. 최소한의 프로그램만 남기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죠. 그랬더니 쉰 만큼 에너지가 다시 생기더라고요. 방송이 더 재밌어진 건 물론이고요.”
노홍철은 다음 주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LA로 정준하와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다. <무한도전> 촬영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받는 휴가다. 10년을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이번 하반기는 방송 일을 조금 줄이고 자신을 채우는 일에 매진할 생각이다.
“저는 제게 다가올 내일이 너무 기대돼요. 스케줄로 치면 방송인 실업자 수준이지만, 저는 제 선택에 굉장히 만족해요. 여러분도 인생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뿅!”
강연을 마치고 노홍철은 수천 명의 관객과 일일이 인증샷을 찍어줬다. 그날 함께한 기자에게도 노홍철의 긍정 에너지가 전달된 느낌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더 에너지가 넘칠 노홍철의 밝은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