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LA에 사는 한 교민에게서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 지난해 9월부터 김주하 앵커와 이혼소송을 벌이고 있는 남편 강모씨가 다른 여성과 함께 미국 LA까지 날아와 원정 출산을 했다는 것이다.
박모씨로 확인된 강모씨의 내연녀는 출산 한 달 전쯤인 2013년 12월 한국인 산모들이 많이 찾는 LA 도심 인근의 L산후조리원에 입실했고, 1월 말 산호세의 굿 사마리탄 병원에서 건강한 딸을 출산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주하의 남편 강모씨는 박씨가 산후조리원에 처음 입실할 때 함께 왔으며 며칠 미국에서 일을 본 후 다시 산후조리원으로 와 내연녀를 만난 뒤 한국으로 출국, 출산 후 다시 LA를 방문해 박씨와 갓 태어난 딸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을 목격한 LA의 한 교민은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잡지를 통해 김주하 앵커의 남편 얼굴을 봐왔기에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면서 “얼굴을 보고서도 믿기지 않아 다시 사진을 찾아보니 강모씨가 확실하더라. 너무 놀라 손이 떨리기도 했다”고 당시의 충격을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모씨가 내연녀와 미국 LA를 찾은 지난해 12월은 김주하 앵커와 이혼소송이 진행 중이던 시기로 쌍방 폭행으로 고소장을 주고받는 등 한창 시끄럽던 때였다. 하지만 내연녀 박씨는 이미 임신 9개월의 만삭의 몸. 출산일이 1월 말이었던 것으로 미뤄보아 두 사람의 내연 관계는 이혼소송이 진행되기 한참 전인 2013년 초 이전부터 이어져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목격자에 따르면 두 사람의 관계는 애틋함이 넘쳤다고 한다. 잠시 헤어질 때도 한참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모를 만큼 애정 표현이 진해 오히려 일반적인 부부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것. 강씨의 내연녀는 아담한 체구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모의 소유자로 40대 초반인 것으로 전해진다.
강씨는 이 여성의 산후조리 비용을 직접 결제하며 살뜰히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두 사람의 출산 관련 내용을 전해온 이 교민은 “강씨가 김주하 앵커와 함께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해외 봉사활동도 다니는 모습을 보며 좋게 생각했는데 이혼소송도 마무리되기 전에 다른 여자와 아이를 낳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또한 같은 여자로서 김주하 앵커가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면서 “남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명백한 불륜을 저지른 강씨 쪽에서 되레 김주하를 폭행 혐의로 고소하는 등 해선 안 될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털어놓게 됐다”고 고백했다.
내연녀 존재, 김주하도 알고 있었다!
<우먼센스> 취재 결과 내연녀 박씨의 존재는 김주하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주하의 한 측근은 “이혼소송을 제기한 지난해 9월 즈음 김주하가 남편 강씨의 여자 관계를 의심할 만한 증거를 발견했으며, 상대 여성은 1월에 딸을 출산한 박모씨와 동일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송 당시 김주하가 두 사람이 수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온 증거와 진한 애정 표현이 담긴 이메일 등을 확보해 이미 법정에 증거로 제출한 상황”이라며 “언론에 강씨의 여자 문제가 알려지지 않은 것은 방송을 통해 대중과 만나는 김주하의 이미지에 좋을 것이 없고, 아이들 교육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법정에서 박씨와의 관계에 대해 “비즈니스를 위해 몇 번 만난 사이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관계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강씨가 여자 문제를 일으킨 것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결혼 초반에는 신혼집 근처에 다른 여자에게 집을 얻어주는 등 소위 말하는 ‘두 집 살림’까지 차렸다가 김주하에게 발각된 일도 있었다는 것이 측근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번 강씨의 혼외자 출생 사실은 김주하도 전혀 몰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주하의 한 측근은 “여자가 있다고만 알고 있었을 뿐 아이를 낳았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두 사람이 별거를 시작한 게 지난해 8월인데 그보다 훨씬 이전에 임신한 것이니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김주하도 충격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김주하 앵커는 지난해 9월 23일 서울가정법원에 남편 강씨를 상대로 이혼 및 양육자 지정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이후 폭행을 이유로 강씨의 접근을 막을 것을 요청하는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 충격을 안겼다. 여대생들의 롤모델이자 성공한 여성의 대명사였던 김주하 앵커의 감추고 싶은 사생활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당시 김주하 측 한 관계자는 <우먼센스>에 “김주하는 결혼 기간 내내 폭행에 시달려왔다. 화가 나면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남편 때문에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이 컸다”면서 “김주하는 자신이 공인이라는 사실과 자신을 멘토로 여기는 팬들을 위해 참고 살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남편이 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대는 모습을 보고 결국 이혼을 결심했다.
자신은 견딜 수 있지만 가정폭력이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로 남을까 걱정돼 이혼을 택했다”는 것. 하지만 남편 강씨의 변호인 측은 “9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상습 폭행을 당했다는 원고 김주하의 주장은 말이 안 된다”면서 “오히려 남편 강씨가 공개석상에서 김주하에게 수차례 뺨을 맞는 등 인격적으로 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폭행 혐의로 맞고소한 바 있다. 게다가 김주하의 시어머니는 김주하가 커터칼로 자신을 위협했다며 존속폭행죄로 며느리를 고소했다.
당시 시어머니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들 부부를 화해시키기 위해 미국에서 입국했고 잠시 별거해보라며 이삿짐을 싸던 중 집에 들어온 김주하가 ‘너 오늘 나한테 죽어볼래? 경찰 부르기 전에 나가’라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김주하는 남편 강씨와 시어머니 이씨 폭행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 을 받았다. 시어머니와는 그 어떤 신체 접촉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남편 강씨는 김주하를 폭행한 혐의가 인정돼 기소 처리됐다.
1년 전 시작된 이혼소송은 합의점을 찾지 못해 여전히 공방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6월 24일 김주하와 남편 강씨의 이혼 및 양육권 지정 소송에 대한 2차 조정 절차가 진행됐지만 양측은 양육비 등 여러 문제에서 입장 차이를 보이며 조정에 실패, 첨예한 대립을 예고했다.
한편 혼외자 출산에 대해 남편 강씨의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지만 강씨의 개인 연락처 중 하나는 착신 정지 상태였고, 다른 하나는 받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이후 강씨의 이혼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인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했지만 “소송 중인 사건과 관련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주하 남편 강씨의 내연녀가 아기를 낳은 LA 인근 종합병원(위)과 산후조리원 전경.
처음부터 속고 한 결혼, 예고된 불행
한편 김주하 앵커와 남편 강씨의 만남은 교회에서 이뤄졌다. 시어머니 이씨가 김 앵커가 다니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찾아와 아들을 소개하고 싶다며 접근했고, 김 앵커가 부담스러워하자 “그럼 전도라도 해달라”며 연락을 하는 등 주변을 맴돌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김 앵커는 MBC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를 맡으며 지적인 외모와 차분한 진행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을 때였다. 똑 부러지고 참한 이미지는 누가 보아도 최고의 신붓감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남편 강씨는 외국계 증권사의 임원으로 훤칠한 외모에 능력도 겸비해 업계에서 꽤나 인정받는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당시 강씨는 미국에 법적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고 이를 숨기고 김 앵커와 만남을 이어갔다. 강씨 측은 싱글이 아니라는 소문이 김 앵커 귀에 들어가자 서류까지 위조해가며 ‘싱글’임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교제 1년 만인 2004년 두 사람은 깜짝 결혼을 발표하며 식을 올렸다.
당시 급작스러운 결혼 발표 뒤에는 아들과 김주하의 결혼을 빨리 성사시키려는 시어머니의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김주하는 교제 당시 남편이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결혼했고, 첫째 아이를 낳은 후에야 모든 진실을 알게 돼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아이를 낳았고 남편에 대한 애정도 있었기에 마음을 추스르고 결혼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김주하 앵커는 언론을 통해 종종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공개하며 남편과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남편의 이모부인 가수 송대관 가족과의 즐거운 저녁 식사 모임도 방송을 통해 공개해 큰 화제를 모았다. 한 가정의 주부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MBC 간판 앵커로서 바쁘게 사는 김주하의 모습은 완벽한 ‘슈퍼우먼’ 그 자체였다.
2011년에는 첫아들에 이어 딸을 출산하는 기쁨을 안기도 했다. 또 둘째 출산 후 1년 8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신청하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해외 봉사활동에도 참여해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모범적인 가정의 모습을 보였다. 2012년 11월 열린 딸의 돌잔치에서도 이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완벽한 부부의 모습을 자랑했다. 10개월 뒤 진흙탕 싸움을 벌일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김주하는 이화여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1997년 MBC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받으며 승승장구했다. 2004년에는 사내 공모를 통해 기자로 전직, 보도국으로 들어가면서 앵커로서 활약했다. 특히 2007년부터는 주말 <뉴스데스크>를 단독으로 진행하며 명성을 높였다.
흐트러짐 없는 전달력과 냉철한 이미지는 뉴스의 신뢰도를 높인다는 평을 받았으며,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혼소송 이후 김주하는 진행하던 <경제뉴스> 등 방송에서 하차하며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감춘 상태다. 그녀는 현재 MBC 뉴미디어국 인터넷뉴스부 소속으로 조용히 일하고 있다. 세월의 온갖 풍파를 겪고 난 뒤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김주하. 그녀가 실의에 빠진 여성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서는 그날이 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