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 속 누드는 현대 관점에서의 육체미와 거리감이 있다. 시대에 따른 미적 기준이 다르기도 하거니와, 작품 속 여인들이 온통 성모를 비롯한 성서 속의 인물이거나 신화 속의 여인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평범한 여인조차 상징적인 존재로 미화해 그린 것이다.
이 때문의 여성의 누드도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고 그 바탕에는 중요한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여성을 ‘주체가 아니라 객체’ 즉, 선택하는 자가 아니라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처럼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사회의 모순에 정면 도전한 누드화가 바로 마네의 ‘올랭피아’다.
19세기, 합리적인 시선과 사고로 세상을 보고자 한 이 시기에도 권위주의는 여전했고 고상한 상류층 남성들의 유희였던 매춘과 데이트는 ‘코르티잔’이라는 고급 창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녀들은 당시 고위층 남성들의 잠자리만이 아니라 나들이와 파티에도 동석하곤 했는데, 그 상황을 볼 수 있는 것이 마네의 또 다른 그림인 ‘풀밭 위의 점심식사’다.
시대적으로 금기시되던 누드를 파격적으로 그린 마네의 ‘올랭피아’(맨 위)와 ‘풀밭 위의 점심식사’
잘 차려입은 두 신사가 대화를 즐기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당당히 혼자 나체로 앉아 있는 여인이 바로 코르티잔인 것. 그리고 이 여인은 마네의 다음 작품인 ‘올랭피아’에서 다시 한 번 포즈를 잡게 된다. 그녀가 바로 미술 역사상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은 스캔들의 주인공이자 아직까지도 가장 많이 패러디되는 누드화의 주인공 ‘빅토린 뫼랑’이다.
서로 다른 상황의 묘사이지만 두 그림은 관객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 같은 여인의 눈길이 느껴진다. 이것은 전통적인 누드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선으로 여성이 단순히 자신을 보여주는 존재가 아니라 당당히 바라볼 수도 있다는, 주체적인 여성을 상징하는 큰 사건이다.
그런데 마네는 왜 하필 창녀인 코르티잔을 통해서 이 중요한 사실을 표현한 것일까? 사실 마네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고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이른바 고위층의 삶을 살아온 화가였다. 그런 그가 1863년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통해 퇴폐적인 귀족 남성의 일상을 비꼬았으니 상류사회의 질타와 혹독한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작가 스스로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환경에 속해 있으니, 그의 작품은 아주 현실적인 시각으로 포착한 날카로운 사회 비판이었다. 게다가 코르티잔을 누드로 등장시키는 것도 모자라 유명한 고전인 ‘우르비노의 비너스’처럼 여체를 눕히는 파격을 행했으니 이 작품이 공개됐을 때 관객과 언론의 비난과 야유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계급사회가 만들어낸 지배-피지배 구조를 적나라하게 성의 범주에 적용해 사회의 이분법적 논리와 모순을 비판하고자 한 마네는 현대미술을 한 단계 발전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욕망을 숨긴 거짓 비너스보다 세속적인 현실을 그리고자 한 마네의 예술 정신으로 인해 ‘올랭피아’는 그 자체로 파격이자 도발의 상징이 되었다.
- 명화 TIP
그림 속 침실과 포즈는 잘 알려진 대로 고전 회화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차용한 것이지만 코르티잔 여성이 주인공이 되면서 침실 안의 상황은 다르게 설정되었다. 특히 손님이 보낸 꽃을 건네는 흑인 하녀는 인종 간의 계급과 육감적인 매력을 상징해 이 그림의 또 하나의 논란거리가 되었다. 당시는 유럽 강대국의 식민정책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기 때문. 또한 그림 속 나체의 주인공인 빅토린 뫼랑은 이후 마네의 제자가 되어 정식 화가로 등단하기도 했다.
글쓴이 이수민씨는…
현재 상명대 외래교수이며 동강국제사진제, 강원다큐멘터리사진사업, 서울사진축제 등 많은 전시와 페스티벌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예술이 우리 일상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고 믿으며, 현대 예술에 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예술평론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