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였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커리어우먼이 동화책을 쓰다니. 더욱이 조현민 전무는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 LG AD에서 경력을 쌓은 세련된 도시 여성의 표본과도 같은 인물이 아니던가. 실망은 아니지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사실 여행 책 제의가 여러 번 있었는데 모두 거절했어요. 훌륭한 전문 작가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자마자 직접 쓰고 싶은 욕심이 났어요. 어른이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여행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나 좋은 점을 배우게 하고 싶어서 어렵지만 직접 만들게 됐어요.”
그녀가 기획부터 글까지 책임진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은 초등학교 5학년인 지니가 혼자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스토리를 담은 동화 시리즈다. 꿈 많은 어린이들이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조현민의 바람에서 비롯된 책으로,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넓은 세상을 접하고 다양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왔기에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조현민 전무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고 싶다는 열망으로 바쁜 일정을 쪼개가며 책을 구상하고 글을 썼다. 그런 노력 덕분에 서른 살 여기자도 소장하고 싶을 만큼 예쁘고 유익한 한 권의 동화책이 만들어졌다.
“책이 나오기 전날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떨리고 불안했어요. 그러다 책을 딱 받았을 때는 ‘아, 예쁘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요. 왠지 뿌듯하고 다른 일을 해냈을 때와는 다른 색다른 느낌? 전날 워낙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오히려 마음은 편안했어요.”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의 첫 번째 여행지는 일본 오키나와다. 그 누구보다 많은 나라를 여행해본 그녀이기에 오키나와를 첫 번째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오키나와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해요. 올해 초 오키나와로 휴가를 갔는데 느낌이 왔어요. 필이 확 꽂혔다고 할까요? 오키나와는 일본이지만 일본 같지 않은 곳이에요. 문화도 다르고 풍광은 정말 아름답죠. 아이들에게 가까운 나라 일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주저 없이 선택했어요.”
‘어디까지 가봤니?’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시리즈 등 늘 새로운 광고와 마케팅 캠페인으로 트렌디한 감각과 기획력을 증명해온 그녀답게 내용 역시 버릴 것 없이 알차고 신선하다. 지니와 친구들의 설렘 가득한 여행기에 유용한 정보가 어우러져 있으며, 이야기 중간중간 더해진 ‘리본 스토리’에는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유산, 언어, 풍습, 현지 체험 활동, 유명 관광 명소 등 학습 정보가 담겼다. 아이가 스스로 여행 준비를 해볼 수 있도록 여권사진 찍기부터 출입국까지의 전 과정이 단계별로 구성된 점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방향 잡는 데 1년 이상 걸렸어요. 아이들 눈높이에 대해 조사하는 데도 3개월 이상 노력을 쏟았고요. 초등학생 아이를 둔 지인들을 인터뷰하고, 길거리에서 초등학생들의 의견도 들었죠. 그렇게 완벽하게 준비를 하고 나니 원고는 오히려 금방 써지더군요. 딱 한 달. 하지만 초등학생 눈높이로 글을 쓴다는 게 너무 어려워서 20년 전 읽었던 동화책을 다시 읽기도 했어요. 순수하던 그때로 돌아가 제가 여행에서 배웠던 점들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지요.”
주인공 지니는 조현민 전무의 경험에서 탄생한 캐릭터다. 12살의 나이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는 것, 홀로 남겨진 공항에서 울먹거리며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모습 등 여러 부분에 자신을 녹여냈다. 아홉 살 터울의 친언니이자 대한항공 부사장인 조현아 부사장도 책을 보자마자 ‘지니랑 너 어렸을 때 모습이랑 똑같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저도 12살에 스위스 서머스쿨에 가면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했어요. 그리고 지니가 오키나와에 도착해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데, 저도 그때 부모님과 헤어지고 나서 엄청 울었거든요. 즐거웠던 경험도 비슷하죠. 매일 밤 울면서도 또래 언니 오빠들과 시간 보내는 게 즐거웠는지 집에는 안 갔거든요. 부모님의 보호 없이 무언가를 한 것이 처음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성장하는 데 많은 경험이 됐어요. 처음으로 용돈을 스스로 관리하면서 경제관념도 배웠고요. 어리지만 부모님의 시야가 아닌 나만의 시야를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어요.”
핑크색으로 도배된 책 표지는 어여쁜 캔디 상자를 연상시킬 만큼 사랑스러워 눈길을 끈다. 이 역시 조현민 전무의 손길과 취향이 담긴 결과물. 도시적인 외모와 달리 가장 좋아하는 컬러가 핑크색이란다.
“이왕 하는 거 내 취향 그대로 완전히 ‘소녀스럽게’ 꾸미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등장하는 항공사 이름도 ‘리본에어’고 비행기, 유니폼, 트렁크도 전부 핑크색이에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죠.(웃음) 제가 워낙 ‘헬로 키티’도 좋아하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해요. 드라마보다 투니버스를 좋아하고요.
그리고 12살 소녀라면 이렇게 예쁜 책을 좋아할 것 같아서 그렇게 콘셉트를 잡았어요. 엄마가 딸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예쁘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잖아요. 디자인에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어머니도 정말 예쁘다고 칭찬해주셨어요.”
이번 책 발간에 대한 아버지 조양호 회장의 반응도 궁금했다. 조 회장의 남다른 막내딸 사랑은 재계에서도 유명하다.
“부모님의 응원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됐어요. 사실 2년 전 ‘아이들을 위한 여행책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실행은 하지 않고 부모님께 얘기만 드렸어요. 그러다 잊고 있었는데 2주 후에 회장님(아버지)이 ‘어떻게 되어가니?’라고 물어보셔서 본격적으로 준비에 돌입했죠.
그리고 전문작가를 쓸까 고민했을 때도 아버지가 ‘네가 직접 써봐라. 잘할 거다’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셨어요. 엄마는 준비하는 내내 예쁜 책 표지를 찍어서 ‘이런 건 어떠니?’라며 보내주실 만큼 열심히 응원해주셨고요. 표지의 체크무늬도 엄마 아이디어예요.”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은 초등학교 5학년 지니가 직접 배낭여행을 떠나는 스토리를 담아 자연스럽게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이 전 세계 또래 아이들과의 교류를 꿈꾸게 만들고 글로벌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단순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상상을 하고,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조현민 전무의 깊은 뜻이 담긴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 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이나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걸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어린 시절에 배우면 조금 더 폭넓은 생각과 글로벌한 감각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저도 어려서부터 책을 정말 많이 읽은 게 지금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광고는 크리에이티브한 사고가 중요한데 제가 상상력이 정말 풍부하거든요.
<해리포터> 시리즈도 영화는 정말 실망했어요. 제 상상력을 못 따라와서.(웃음)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책 자체를 많이 읽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서점에 어린이 베스트셀러를 보면 만화가 많더라고요. 만화가 나쁜 것도 아니고 내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어떤 책이든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조현민 전무의 머릿속에는 벌써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 시리즈 2편, 3편에 대한 밑그림도 그려져 있다. 2편은 행선지가 미국 윌리엄스버그로 정해졌으며 준비도 상당히 진척된 상황이다. 3편은 행선지를 두고 고민 중이기는 하지만 적십자 운동이 처음 시작된 이탈리아의 솔페리노가 유력하다. 하루빨리 답사를 다녀올 예정이란다.
“거의 완성 단계인 2편은 미국 버지니아의 윌리엄스버그로 떠나요. 18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을 그대로 보존한 지역이라 미국이지만 유럽의 고풍스러운 매력을 지닌 곳이거든요. 역사도 배울 수 있고요. 저는 어른이 돼서 갔는데, 어린이와 함께 가는 가족 여행지로 즐길 거리가 많아서 꼭 추천하고 싶었어요.
3편은 이탈리아의 솔페리노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적십자 운동이 시작된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해서요. 최대한 빨리 가보려고 계획 중이에요. 이 외에도 후보지는 10권이라도 만들 정도로 준비돼 있는데 일단 3편까지 하면서 가능성을 판단해볼 생각이에요.”
책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금은 어떻게 사용할지 궁금했다.
“일단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서점에 가서 사는 친구도 있겠지만 그럴 기회가 없는 친구들에게는 선물하고 싶어요. 준비 단계부터 여러 단체나 기관을 통해 책을 선물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지금 진행 중이에요. 만약에 책으로 돈을 벌게 되면 무조건 다음 책을 준비하는 데 쓸 생각이에요.”
늘씬한 외모에 똑 부러지는 업무 능력을 보여주던 조현민 전무. 대외적인 모습에 가려진 실제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털털하고 친근했다.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 ‘허당’으로 불려요”라며 자신의 허점을 내보이는 꾸밈없고 솔직한 모습에서는 내면의 순수함이 전해진다. 어떻게 12살의 시선으로 글을 쓸 수 있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많은 분들이 힘들지 않았느냐고 하시는데 저는 책의 주인공인 지니에게 오히려 고마워요. 바쁜 업무 와중에 책을 준비하다 보니 초심을 되찾게 되더라고요. 1분 1초가 아까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도 배웠고요. 특히 언젠가부터 비행기를 타는 게 설레지 않고 그냥 일이 돼버렸는데, 제가 지니가 되어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전의 설렘이 되살아났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선물을 얻은 것 같아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항공사의 임원이라는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도 조현민 전무가 밝게 웃을 수 있는 이유. 그녀 마음속에 있는 영원한 소녀, 지니 덕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