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친구가 6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다기에 수다를 늘어놓을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저까지 친구 세 명이 모였는데, 이 세 명의 아줌마에게는 각각 아이가 두 명씩 딸린 터라, 세 명이 모이기 위해서 아이 여섯 명(유치원~초등 4학년)까지, 총 아홉 명이 집합해야 했습니다.
엄마들이 맘 편히 수다를 즐길 곳을 물색하다가 결국 6년 만의 재회 장소로 잠실의 한 키즈 카페를 선택했습니다. 모두 잠실 근처에 살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고 나름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수다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주어진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아마 같은 이유로 많은 엄마들이 키즈 카페의 비용 부담을 감수하나 봅니다.
수다가 시작되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 셋은 고교시절로 순간 이동해 있었습니다. 하하 호호 웃으며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죠. 집에 갈 때쯤 되니 너무 많이 웃어서 볼 근육 경련과 가벼운 두통이 올 지경이었습니다.
아, 우리의 수다 주제는요, 토픽 천만 가지를 오가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였죠. 10대 때는 낙엽 구르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던 우리인데 어느새 망가져가는 몸매에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기억력이라고 한탄도 했지요. 전형적인 아줌마 토크지요.
물론 아줌마 토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침대 토크! 물론 남편과의 침대 토크가 아닌, 어쩌면 남편들은 알지 못하는 과거 남자와의 짜릿한 경험을 더 많이 얘기했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던’ 그 시절의 연애담과 실패담, 더 이상 겪을 리 없는 연애 초기의 ‘숙맥담’들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일전에 남편이 제게, “사람들이 예전 ‘넥스트’의 노래나 잔잔한 발라드곡을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이유가, 그 노래를 좋아하던 시절의 추억, 당시 기억들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남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던 시간이었어요.
사람들은 추억 덕분에 다시 힘낼 수 있고, 체념할 것은 체념하면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나 봅니다. 오랜 친구들 덕분에 엔도르핀이 가득해진 반나절은 앞으로 최소 5년간 제 삶의 원동력이 되고 저를 지탱해주는 지지대 중 하나가 되리라 믿습니다.
‘중2병’에 걸린 남편을 나름대로 잘 ‘키우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2병인 남편을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제 안에도 중학생 소녀가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어요. 콜라겐, 보톡스, 에스트로겐, 세로토닌 등등… 그보다 최고의 안티에이징은 바로 제 속의 중학생 소녀가 아닐까요?
글쓴이 윤원희씨는…
가수 신해철의 아내이자 지유(9세)·동원(7세)의 엄마. 재일교포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일본 지점에서 근무했다. 결혼 13년 차 슈퍼맘으로 강남 생활을 접고 현재는 경기도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두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