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연구실을 가득 채운다. 아내가 직접 그린 그림까지 더해지니 집만큼 편안한 공간이 되었다.
“이곳에서 햇볕을 받고 있노라면 마음이 참 편안해져요. 여기 볕이 참 따뜻하죠? 식물이 볕을 쬐고 싱싱하게 자라나듯 우리 몸의 조직들도 포도당을 먹고 힘을 내죠. 그렇게 우리도 성장하는 겁니다.”
아주대학교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김대중 교수는 ‘당뇨 명의’로 불린다. ‘부자병’이라고 알려진 당뇨병은 운동 부족, 육류 섭취가 증가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당뇨병 환자 수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당뇨 대국에 합류했다. 지난 2010년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실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의 10.1%인 약 3백20만 명이 당뇨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40여 년 전인 1971년에는 1.5%에 불과하던 당뇨병 유병률이 무려 7배나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눈에 띄는 증상이 없는 병의 특성상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환자까지 더하면 국민의 약 25%가 당뇨병을 앓고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람들은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이상 병원을 찾지 않는다. 몸의 신호를 감지하고 병원을 찾았을 땐 병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 당뇨병이다.
“자신이 당뇨병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그만큼 치료 시기를 늦추게 되는 셈이지요. 병을 앓고 있는 기간이 오래되면 합병증의 위험 또한 높아집니다."
우리의 주식인 밥과 즐겨 먹는 빵, 달콤한 설탕과 꿀 등 여러 식품들은 우리 몸에 들어와 소화 작용을 거치면서 포도당이 된다. 포도당은 뇌, 근육 등 여러 조직에서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즉, ‘당(糖)’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필수영양소로 부족하거나 넘치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 몸은 포도당 농도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그 습성에 오류가 발생하면 넘치는 포도당을 적재적소에 공급하지 못하게 되고, 남아도는 포도당이 소변을 통해 배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뇨(糖尿)’라고 부른다.
“사실은 인슐린의 문제예요. 인슐린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일종인데 혈액 속 포도당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을 하지요. 인슐린의 합성과 분비가 잘 이뤄지지 않거나 분비된 인슐린이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면 당뇨가 생기는 겁니다.”
당뇨병은 자체 증상보다는 합병증의 위험이 훨씬 큰 병이다.
“혈액에 과포화된 포도당은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줍니다. 혈관을 타고 돌면서 혈관 자체나 신경 등 세포조직을 파괴하지요. 그렇게 해서 생기는 합병증이 더 무서운 거예요. 예를 들어 당뇨병에 걸리면 눈이 나빠져요. 우리의 눈 안쪽 깊은 곳에 있는 ‘망막’이라는 부분에 상이 맺히면서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데요, 망막에는 미세한 혈관과 시신경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혈당 수치가 높은 피가 돌면서 세포를 파괴하고 손상을 입히면서 시력이 떨어지는 것이지요. 시력을 영영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듯 당뇨병은 우리 몸을 서서히 파괴하는 병이다. 김 교수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당뇨병이 발병한다고 했다.
“인슐린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원인으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유전적 요인입니다. 타고난 체질을 말하는 것인데, 선천적으로 췌장 기능에 이상이 있어 포도당을 활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한 연구에 의하면 가족 중에 선천적 당뇨병 환자가 있을 경우 그렇지 않은 가정에 비해 당뇨병을 앓을 확률이 3.5배 더 높다고 한다. 아주 극단적인 예로 소아당뇨가 여기에 해당되는데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아 췌장이 망가지는 병이다. 선천적으로 췌장에서 인슐린이 생성되지 않거나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인슐린을 투여하거나 췌장을 이식해야 한다.
“보통 당뇨병 환자라고 하면 비만한 사람을 떠올리는데 소아당뇨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아요. 당뇨병의 두 번째 요인은 환경적 요인이에요. 출생 당시 엄마의 자궁 환경이나 바이러스 감염, 정신적 스트레스 등이 여기에 해당되겠지요.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식습관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달콤한 것을 자주 찾는다. 하지만 그 달콤함에 중독되면 결국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는 게 김 교수의 말이다.
“당은 신체에서 에너지로 쓰이지만 섭취한 당이 에너지로 사용되지 못하면 결국 지방으로 변환돼 우리 몸에 쌓이죠. 필요 이상으로 쌓인 것이 비만이고요. 축적된 지방에서 나오는 나쁜 물질들은 인슐린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당뇨병을 치료할 때 비만이 꼭 한 번씩 언급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뇨병의 발병 위험은 비만도가 증가할수록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대한당뇨병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고도비만의 경우 10년 이내에 당뇨병이 발생할 위험이 정상 체중을 가진 경우보다 무려 80배나 높았다.
“원인을 두 가지로 분석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식습관 등도 일종의 가족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가족은 많은 시간을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식 취향이 같아지거든요. 생활 습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기 때문에 당뇨 환자가 있는 집안이라면 가족의 생활 습관을 자세히 살핀 뒤 문제점을 모두 함께 개선해야 치료 확률이 더욱 높아집니다.”
김 교수는 이 외에 술과 담배 또한 당뇨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술과 담배는 당뇨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입니다. 특히 상습적인 음주는 간 기능을 떨어뜨림으로써 혈당 조절을 잘할 수 없게 합니다. 간은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요, 첫째가 해독 작용이고 두 번째가 당 대사 조절이에요. 그러니 음주가 잦으면 알코올을 해독하느라 당 대사 조절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죠. 게다가 술은 살도 찌게 해요. 따라서 당뇨가 발생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죠. 술은 일주일에 1~2회, 한 번에 1~2잔가량 마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술꾼에게는 그야말로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양이겠지만요.(웃음)”
그럼에도 술을 마셔야 하는 ‘술꾼’들에게 팁도 전했다.
“술은 영양소는 없지만 열량은 있는 음식이에요. 식사 대신 술자리를 한다면 안주는 꼭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주가 대부분 고열량의 음식이니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죠. 해결책은 있습니다. 식사는 평소와 같이 하고 술을 마실 때는 채소나 김, 견과류 등 몸에 좋고 칼로리는 낮은 안주를 섭취하면 됩니다.”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30년에 이르면 약 6백만 명의 국민이 당뇨병을 앓게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최근 우리나라엔 과거에 발병했던 당뇨병과는 다른 형식의 당뇨병 환자가 눈에 띄게 됐다.
“과거 우리나라엔 날씬한 당뇨병 환자가 뚱뚱한 당뇨병 환자보다 많았어요. 하지만 식습관과 생활 습관이 서구화하면서 비만형 당뇨병 환자가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인슐린 분비량이 서양인에 비해 적어서 당뇨병에 걸릴 수 있는 환경에 노출되면 피하기 어렵죠. 나이 들면 몸의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췌장의 힘이 약해져 인슐린 분비량이 적어져요. 보통 당뇨병은 40세 이후 나타나 ‘성인병’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인데 요즘은 청소년들도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구화된 식습관과 생활 습관이 청소년의 비만을 야기해 청소년 당뇨병 환자도 늘게 된 것이지요.”
김 교수는 ‘고전적인 치료가 가장 좋은 치료’라며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식습관과 신체 활동을 건강한 방식으로 바꿔 비만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 해답이죠. 흔한 말로 ‘적절한 운동과 식이요법’이라고 할까요? 당뇨에 좋은 음식도 추천해달라고 하는데 사실 당뇨에 좋은 음식이란 건 없어요. 굳이 말하자면 셀러리 같은 갖은 채소와 섬유소를 많이 함유한 식품, 물 정도입니다. 또 반대로 무조건 나쁜 음식도 없어요. 당뇨병 환자에게 나쁜 것은 과식과 편식이니 일정한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만을 예방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운동도 당뇨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 중 하나다. 근육은 당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조직으로 근육을 단련하면 혈당 조절력이 향상된다. 운동을 하면 근육으로 가는 혈액의 양이 늘고 각 세포가 인슐린에 더 잘 반응하게 된다.
“운동을 하면 근육량은 증가하는 반면 내장비만과 피하지방이 감소합니다.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인슐린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 혈당 조절에도 유리하게 되는 것이죠. 또 각 장기의 혈액순환을 좋게 해 혈관을 비롯한 모든 장기를 활성화하고 체력과 면역력도 함께 향상됩니다. 심리적으로도 자신감을 갖게 돼 우울증 등도 극복할 수 있죠. ‘적절한 운동과 식이요법’이라는 빤한 말이 건강을 지키기 위한 정답이에요.”
당뇨병은 한번 발병하면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병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증상을 완화해야 한다.
“당뇨병에는 완치라는 말이 없어요. 혈당을 낮추고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당뇨병을 지닌 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지요. 인슐린을 직접 맞는 것이 가장 널리 알려진 치료법인데, 신경과 혈관이 적게 분포되어 있고 관절에서 멀리 떨어진 복부나 허벅지, 팔 등 피하지방이 충분한 부위에 맞아야 인슐린의 흡수율과 안전성이 높습니다.”
현재 의학계에서는 당뇨병을 정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췌장이 아닌 다른 장기에서도 인슐린이 분비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도 당뇨병의 다양한 치료법을 연구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 교수의 연구실 한편엔 세계지도와 함께 여러 나라에서 수집한 자석들이 붙어 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건물이나 그림 등인데, 여행을 가서 직접 사온 것이다.
“아이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주어야 하는데 성격상 그러질 못해요. 대신 틈만 나면 가족과 함께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갔어요. 세계지도를 벽에 붙여놓고 ‘다음엔 이곳으로 여행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집니다. 여행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다면 좋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아빠, 부족한 남편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연구실엔 가족의 사랑이 흘러넘친다.
“교수 연구실 내부를 아내가 직접 꾸며주었어요. 연구실에서만은 각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집처럼 편안하게 있고 싶었거든요. 당뇨의 큰 적 중 하나가 스트레스잖아요. 당뇨 명의가 스트레스 때문에 당뇨가 생겼다고 하면 얼마나 아이러니하겠어요.(웃음)”
- 이대로 두면 당뇨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생활 습관 체크>
□ 식사를 잘 거른다.
□ 아침 식사 시간이 오전 9시 이후다.
□ 밥을 물이나 국에 말아 빨리 먹는다.
□ 채소를 잘 먹지 않는다.
□ 군것질을 자주 한다.
□ 단 음식을 좋아한다.
□ 외식을 자주 하고, 외식을 할 때는 평소보다 많이 먹는다.
□ 짜게 먹는다.
□ 기름진 음식을 좋아한다.
□ 주 4잔 이상 술을 마신다.
□ 담배를 피우고 있다.
□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주로 소파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다.
□ 저녁 식사 후 주로 TV를 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 정기검진을 잘 받지 않는다.
□ 밤 12시 이후 잠을 잔다.
□ 총 수면 시간이 5시간 이하이다.
특별기획 |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 15
각종 건강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 그렇지만 막상 나와 내 가족이 아프면 누구를 찾아가야 할지 막막한 게 현실입니다. <우먼센스>는 매달 ‘명의가 추천하는 명의’를 릴레이로 만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