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밴드 유튜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STAR

STAR

2014 소치의 영웅들

김연아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아쉬운 은메달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김연아는 누구보다 환한 표정으로 17년 피겨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피겨 여왕’의 선수로서 마지막 순간을 기록했다.

On June 19, 2014

피겨 여왕의 은퇴식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아디오스(안녕)’라는 음악 제목처럼 여운이 남는 감동적인 연기가 이어졌다. 김연아(24세)는 2월 21일(한국 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피겨 여자 프리 스케이팅 경기에서 최종 2위를 기록, 은메달을 차지했다. 전날 열린 쇼트 프로그램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한 김연아는 프리 스케이팅 ‘아디오스 노니노’도 흠잡을 데 없이 연기했다. 하지만 러시아 홈 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자신감 넘치는 연기를 펼친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의 기세를 꺾진 못했다. 경기를 마친 후 김연아는 “노력한 만큼 연기를 했다. 실수도 없었다. 내가 해야 하는 걸 다했다. 좋은 결과를 기대했지만, 2등을 했다”라고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김연아는 소치 도착 이후 연습하는 동안 내내 실수 없는 클린 연기를 펼치며 좋은 컨디션을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4년 만의 올림픽 실전 무대에서도 여유롭고 안정된 모습으로 황홀한 연기를 펼쳤다. 특유의 표현력과 감정 연기는 신체적 기량을 자랑하는 운동 경기가 아닌 예술에 가까웠다. 각국의 언론 및 피겨 전문가들의 극찬도 이어졌다. 쇼트 프로그램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를 본 미국의 피겨 스타 미셸 콴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숨이 멎을 듯하다(breathtaking)”며 김연아의 연기를 호평했고, 전 세계의 언론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한 연기였다” “전율이 느껴진다”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 홈 텃세에 결국 발목…
모든 게 완벽했지만 복병이 있었다. 김연아의 소치 최대 라이벌은 아사다 마오가 아니었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개최국 러시아의 홈 텃세였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첫날 쇼트 프로그램 경기에서부터 심판진의 홀대를 받았다. 한 심판은 ‘점프의 교과서’라 불리는 김연아의 트리플 플립 점프에 0점을 줬다. 방상아 SBS 해설위원은 “심판들이 김연아에게 구성 요소의 가산점인 수행 점수 등급을 덜 줬다. 기본이 2~3점을 넘을 수 있는 점프였다”라고 판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영국 BBC 방송 중계진 역시 “김연아가 생각보다 점수를 덜 받은 것 같다. 스텝에서 레벨4를 받는 줄 알았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김연아도 점수를 확인한 뒤 혼잣말로 “아! 짜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쇼트 프로그램 직후 인터뷰에서 외신들은 “클린을 했는데 점수가 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왜 그런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이어갔다. 하지만 김연아는 담담했다. 그는 “일단 (주요 경쟁자들보다) 앞에서 프로그램을 했던 영향도 있고, 스파이럴 시퀀스도 없는 등 밴쿠버 때와는 룰이 많이 바뀌어서 다른 시즌과 비교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다”면서 “쇼트에서 클린으로 잘 마무리했으니까 내일(프리)만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은메달이 확정된 뒤에도 그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금메달은 중요하지 않았다. 올림픽에 출전한 것에 의의를 뒀다”라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이젠 뒤에서 후배들을 잘 살피겠다”고 말했다. 과연 ‘대인배 김슨생’다운 답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바람은 평범한 스물다섯 살 아가씨 ‘김연아’로 돌아가는 것일 터. ‘피겨 퀸’이라는 무거운 왕관을 내려놓고 즐길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다. 17년 동안 피나는 노력과 땀방울로 국민들에게 기쁨을 안긴 김연아. 이제는 그녀가 여유 있는 삶을 즐길 수 있도록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것이 진정한 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진짜 ‘연아 타임’은 이제부터 시작일 테니까.

IOC 선수위원이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총 15명. 하계 종목 8명, 동계 종목 4명, IOC 위원장이 선임한 3명으로 이뤄진다. 선수위원에 선발되면 선수 권익 창출과 스포츠 종목 개선을 위해 8년간 일하게 된다. 후보 자격은 ▲직전 또는 당해 올림픽에 참가했고 ▲폐막일 기준으로 만 18세 이상이며 ▲도핑 위반 제재 경력이 없고 ▲영어 또는 프랑스어에 능통하며 ▲각 나라별 올림픽위원회(NOC)의 추천을 받은 선수다. 김연아는 4년 뒤인 2018년 선수위원에 도전할 자격이 생기며,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알려져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아사다 마오, 눈물의 의미는?
아사다 마오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 평생의 라이벌인 김연아와 마지막 대결에서 또 한 번 패배를 맛봤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에서 아사다 마오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16위에 그치는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1990년생 동갑내기인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주니어 시절부터 ‘맞수’로 꼽히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치열한 경쟁을 펼쳐왔다. 시니어에 올라와선 12번 맞붙었고 김연아가 8번, 아사다가 4번 이겼다.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도 두 사람은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점쳐지며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김연아는 ‘교과서 점프’와 표현력을, 아사다 마오는 특기인 트리플 악셀을 전면에 내세우며 금메달을 노렸다. 하지만 결과는 김연아의 승리. 지금의 김연아가 있을 수 있도록 좋은 자극제가 되어준 아사다 마오에게도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노력한 만큼 연기했다. 실수도 없었다. 내가 해야 하는 걸 다했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에 의의를 뒀기에 금메달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남은 일은 후배들을 잘 살피는 것이다”

팬들이 뽑은 김연아 역대 의상 베스트 3

종달새의 비상
시니어 데뷔 시즌이자 연아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06-07 시즌 프리 스케이팅 ‘종달새의 비상’ 의상이다. 은은한 하늘색 컬러는 당시 열일곱 살이던 김연아의 순수한 매력을 배가시켜줘 많은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당시 모델로 활동했던 금융회사 광고에서도 그대로 입고 나올 만큼 주목을 받았다. 아름다운 등 디테일과 종달새의 꼬리를 표현한 치마 뒷부분 장식이 의상 포인트다.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바장조
09-10 시즌 프리 스케이팅 프로그램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의상은 김연아를 떠올릴 때 가장 익숙한 모습이다. ‘피겨 여왕’ 자리에 등극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입은 의상이기 때문. 선명한 블루 컬러에 반짝이는 비즈가 흩뿌려진 의상은 웅장한 분위기의 거슈윈, 그 속에서 우아한 연기를 펼치는 김연아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파란색 의상을 입으면 올림픽에서 우승한다는 속설과도 맞아들어 화제를 모았다.

죽음의 무도
김연아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08-09 시즌 쇼트 프로그램 의상이다. 흑조를 연상시키는 올 블랙 의상은 카리스마 넘치는 ‘죽음의 무도’ 콘셉트와 완벽한 조합을 이뤘다. 거미줄을 연상키는 비즈 장식은 블랙 의상과 대비를 이루며 화려한 분위기를 더했다. 여기에 김연아의 강렬한 스모키 메이크업, 날카로운 표정 연기가 더해져 프로그램의 예술성을 살렸다.

소치 이색 이력 스타 누구?

유치원 교사에서 컬링 선수 된 이슬비
귀여운 외모로 이번 올림픽 최고의 깜짝 스타로 떠오른 이슬비. 하지만 올림픽에 나가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88년생인 이슬비는 고교 시절 컬링선수로 활동했으나 팀이 해체되면서 운동을 그만두고 외숙모가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이후 정영섭 여자컬링대표팀 감독의 노력으로 창단된 경기도체육회에 합류하면서 다시 컬링을 시작, 올림픽에 출전했다.

국적까지 바꾼 공상정
대만 국적의 소녀가 운동을 위해 귀화를 결심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공상정은 2011년 11월 체육우수인재 특별 귀화 케이스로 가족 중 홀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스피드 스케이트를 타다 추운 야외 링크가 싫어 스케이팅을 포기할 뻔했지만 스케이트가 좋아 쇼트트랙으로 종목을 바꾸기도 했다.

스켈레톤 천재 윤성빈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평범한 고3 수험생이었던 윤성빈. 특별한 꿈이 없던 그는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뭔지도 모르던 스켈레톤을 시작했다. 운동 경력은 체육시간에 공 차는 것을 좋아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윤성빈은 3개월 만에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1년 반 만에 인터컨티넨탈컵 금메달,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한국 역사상 가장 높은 성적인 16위를 기록했다.

CREDIT INFO
취재
이현경
사진제공
로만손
2014년 03월호
2014년 03월호
취재
이현경
사진제공
로만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