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가슴을 송두리째 앗아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졌다. 예기치 않은 사고라기보다 피할 수 있는 인재였기에 우리는 그날의 일을 비극이라 부른다. 많은 언론사가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모여들었고 일부 언론 매체는 ‘기레기(기자와 쓰레기를 더해 만든 조어)스러운’ 무리한 취재로 국민의 원성을 샀다. 그 속에서 단연 빛나는 인물이 있었다면 바로 손석희다. JTBC <뉴스 9>의 앵커이기도 한 그는 세월호 침몰 사고 첫날부터 사실에 기반을 두어 보도하고 실종자 및 희생자 가족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녀를 둔 아버지의 마음으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도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지난 4월 21일 방송된 <뉴스 9>에서는 실종자 가족 대표 김중렬씨와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사전에 약속된 인터뷰였으나 생방송 직전 김씨의 딸이 시신으로 발견됐고, 김씨는 불가피하게 방송에 참여할 수 없었다. 손석희는 김씨의 사정에 대해 설명하던 도중 목이 메어 얼마 동안 카메라를 응시하지 못했고 고개 숙인 채 애꿎은 펜만 바쁘게 굴렸다.
‘손석희표 뉴스’는 기존의 것과 다르다. 외워서 하는 멘트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즉흥 멘트로 대중과 뉴스를 공유한다. 정확한 사실과 정보만을 전달해야 하는 뉴스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낸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으나, 신뢰감을 느낄 수 있다는 여론이 우세다.
그는 세월호 침몰 나흘 후, 직접 팽목항으로 내려가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그리고 5일 내내 검은색 셔츠에 연한 회색 V넥 니트, 짙은 회색 재킷 등 같은 옷을 입고서 항구 한가운데 서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뉴스를 진행했다. ‘겉모습에 치중하는 방송인이기보다 진정한 언론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자녀를 애타게 기다리며 옷조차 신경 쓸 수 없는 실종자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아 더욱 와 닿았다’는 것이 대중의 반응이다. 왜곡된 보도로 인터뷰를 꺼리던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이 손석희와의 인터뷰는 자진해서 응했다. 현장 진행 마지막 날, 손석희의 클로징 멘트도 화제였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현장 진행은 마무리하지만 이곳을 향한 시선을 멈추거나 돌리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캔 음식처럼 일률적으로
포장되어 던져지는
종합뉴스는 지양하며, 우리
뉴스가 몸에 더 좋은 음식이라고
믿고 끝까지 해보겠다
진심은 통했다. 1%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뉴스 9>은 손석희표 ‘팽목항 생중계’ 이후 3%대에 이어 5%대를 기록했다. 실력이 출중하고 앵커로서 자질이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전달하는 뉴스는 신뢰감이 간다는 평이 많았다.
손석희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언론인을 꿈꾸며 교내 방송반에서 활동했다. 이후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잠시 일하다가 1984년 MBC 아나운서 입사 시험에 응시했는데, 수석 입사를 할 정도로 준비된 인재였다. 입사 후 보도국 기자로 발령받아 기자 생활을 하다가 다시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했다. 기자와 아나운서를 모두 섭렵한 사람은 대한민국 방송 사상 손석희가 최초였다.
손석희 하면 군더더기 없는 멘트와 차분한 진행이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2007년 MBC 표준FM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7주년을 기념하는 팬미팅 자리에서 “내가 한창 뉴스를 진행하던 1990년대에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나 대구 지하철 폭파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전직 대통령 구속 등 대형 사건이 줄줄이 터져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후배 김주하 기자는 “손석희 선배의 순발력과 판단력은 배워서 체득한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급한 순간이라도 단어 몇 개만 주어지면 앵커 멘트를 단숨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손 선배다”라며 존경심을 표했다.
손석희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보도의 정직성과 중립성이다. 그는 지난해 5월 JTBC 보도부문 사장에 취임하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인데 공정하고 균형 잡힌 언론사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도 “삼성에 대해 제대로 다룰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팩트를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보도하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칼럼니스트 허지웅은 손석희를 세계적인 언론인인 월터 크롱카이트에 비유하며 극찬했다. 월터 크롱카이트는 미국에서 지난 1962년부터 1981년까지 무려 19년간 CBS <저녁뉴스>를 진행한 전설적인 앵커로 바른 언론을 위해 앞장선 저널리스트다.
손석희를 표현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건 승부사라는 것. JTBC로 이직할 때만 해도 마이크를 잡는 일에서 떠나겠다고 했지만, JTBC의 시청률이 지지부진하자 “내가 책임을 져야 후배 기자들도 동의할 것이다”라며 전격 앵커 복귀를 선언했다. 좀처럼 말을 바꾸지 않는 그이기에 손석희가 던질 수 있는 ‘마지막 승부수’였다. 그는 JTBC 직원들에게 메일을 통해 ‘나 혼자 (그 길을) 가지 않게 해달라’며 소통했다.
“치맥 즐기는 손 선배”
손석희는 “옷 사는 데 돈 쓰는 것이 가장 아깝다”고 할 정도로 검소한 사람이다. 그의 고등학교 친구인 디자이너 장광효는 한 방송에서 “손석희는 외모가 워낙 출중해 인기가 많았지만 대학교 4년 내내 똑같은 패션을 입을 만큼 검소함이 몸에 밴 친구였다”고 말했다. “손석희가 1984년 MBC에 입사한 이후에도 4벌의 슈트로 1년 넘게 돌려 입는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디자인한 옷을 선물하려 했지만 한사코 거절해 보내줄 수 없었다는 것.
‘손석희 시계’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저가 시계 브랜드 A사의 구형 모델로 오프라인가 2만4천5백원이다. 그는 요즘도 20년 된 옷을 입고 다닌다고 한다. 한동안은 JTBC 노동조합 조끼와 JTBC 로고가 새겨진 후드 카디건을 즐겨 입었다.
손석희는 냉철하고 강직하며 원리원칙만 따지는 사람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은 보도국 밖에서 그의 모습은 180도 다르다고 말한다. 실제로 손석희가 사장으로 부임하기 전 JTBC 사장실은 3층 임원실에 있었지만, 손석희는 기자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이유로 부임과 동시에 사장실을 1층 보도본부로 옮겼다. 그의 널찍한 집무실 내부엔 부모님 흑백 사진과 가족사진, MBC 라디오 프로그램 <시선집중>을 끝냈을 때 팬들에게 받은 감사패가 있다고 한다.
그는 JTBC의 모든 기자에게 ‘사장’이라는 호칭 대신 ‘손 선배’로 불러달라고 했다. 후배들에게 격의 없는 선배가 되기 위해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자들과 미팅을 갖는데 낮에 하면 샌드위치, 밤에 하면 ‘치맥(치킨과 맥주)’을 함께해 기자들도 은근히 미팅 시간을 기다린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마냥 즐기는 회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보통 편집회의 시간은 다른 언론사보다 두세 배쯤 긴데 모두 치열하게 싸우고 토론한다. 후배인 보도총괄 겸 국장에게 회의 진행을 맡기고 기자들에게 배운다는 자세로 회의에 참석한다고 한다.
그는 올 초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얼마나 이 일에 몰두해야 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가족들은 이해해준다. 늘 고맙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하는 일이라 칭찬도 받지만 욕먹을 때도 있고 터무니없는 얘기를 들을 때도 있다. 나나 가족들이나 팔자려니 하고 넘어간다.”
손석희는 사진 찍는 것을 무척 곤혹스러워한다. 사진 촬영 장소에 함께 온 직원들에게 “쑥스럽다, 쳐다보지 마라”라고 할 정도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직업이라고 해서 사진 촬영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오해”라고 말했다.
학창 시절 보물 1호가 ‘전축’이라고 할만큼 음악도 좋아한다. <뉴스 9>의 클로징 곡도 그가 직접 선정한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뉴스가 끝난 후에 시청자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어 가능하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곡을 고른다는 것. 편안하면서도 가끔은 의미를 새겨볼 만한 곡들도 포함된다.
지금 한국인이 사랑하는 진짜 방송인, 손석희의 이야기다.
손석희의 촌철살인
던지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힘이 실렸고 유머가 깃들어 있다. 손석희표 멘트를 모았다.
“여기서 자(者)는 ‘놈 자 자’입니다.”
2005년 5월 13일 MBC 표준FM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일본의 아소 다로 전 총무성 장관의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희망했다”는 망언을 소개한 후 손석희는 “도대체 우리들은 언제까지 이런 자의 헛소리를 들어야 할까요? 여기서 자(者)는 ‘놈 자 자’입니다”라고 얘기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순간이었다.
“어휴, 참. 할 말이 없네요. 마치죠.”
2007년 9월 25일 MBC 표준FM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조간 브리핑 시간에 전직 대통령들의 차가 지나갈 때 교통신호를 조작해준다는 말을 듣고 손석희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마치죠”로 마무리. 짧은 말 한 마디에서 그의 시크함을 엿볼 수 있었다.
“다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겠습니까?”
2011년 9월 5일 MBC 표준FM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당시 안철수의 시장 출마설이 돌자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철수가 나오면 영희도 나오겠다”고 비꼰 적이 있다. 이후 홍 전 대표가 <시선집중>에 출연해 손석희에게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손석희는 “저는 영희가 아니라서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홍 전 대표가 “영희나 석희나 비슷한데요?”라고 너스레를 떨자, 손석희는 “다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겠습니까?”라며 당시 KBS2 예능 <개그콘서트>의 유행어를 빗댄 재치 있는 발언으로 한동안 화제가 됐다.
“저는 친구 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2012년 5월 5일 MBC 표준FM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산울림’의 멤버 김창완이 “요즘에 두 살 차이 정도는 친구 먹어요”라고 말하니, 손석희가 재미있는 농담으로 화답한 말. 당시 ‘토요일에 만난 사람’이란 코너는 비교적 가벼운 형식의 토크를 하곤 했는데, 출연진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손석희가 때로는 개구쟁이(?)로 변신하기도 했다.
“연락해서 꼭 한 번 봅시다.”
2014년 4월 29일 JTBC <뉴스 9>
실종자 가족인 단원고 이동현군의 아버지가 “사진 한 장 찍고 싶은데, 아들이 마음에 걸린다. 아들을 찾으면 함께 꼭 사진 찍자”고 부탁하자 손석희가 한 말. 이후 5월 14일 그는 이군의 아버지와 누이를 초대해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이 트위터 이용자 @hwa2605를 통해 온라인에 올라오자 누리꾼들은 “손석희가 진짜 약속을 지켰네”라며 입을 모았다.
“아닙니다. 안 드리겠습니다.”
2014년 5월 12일 JTBC <뉴스 9>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에게 “개인적인 발언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그 질문은 드리지 않겠다”고 하니 정 후보가 “그렇게 하면 질문한 거나 다름없지 않느냐”고 하자 손석희는 시크하게 “아니다. 다른 질문 드리겠다”고 한 뒤 “부인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며 말한 사연.
“정몽준 후보의 팽목항 방문 때문에 팽목항을 간 겁니까?”
2014년 5월 15일 JTBC <뉴스 9>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던진 손석희표 돌직구. 박 후보도 역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