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울산과 칠곡에서 발생한 친부와 계모에 의한 아동 학대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이 뜨겁다. 어려서부터 <콩쥐팥쥐> <장화홍련전> 등의 동화책으로 배워온 ‘계모’는 한결같이 어린 자녀들을 학대하고 괴롭히고 미워하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었던지라, 요즘도 ‘새어머니=나쁜 계모’라는 편견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A씨는 ‘골드미스’였다. 잘나가는 대기업에서 임원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워커홀릭인 그녀는 변변한 데이트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아내와 사별한 뒤 아이 셋을 혼자 키우고 있는 사업가였다. 그는 A씨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인 구애를 했고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으면서 “아이들에게 당신처럼 헌신적인 어머니가 필요하다”며 진심을 다했다. 주변의 반대에도 결국 A씨는 결혼을 결심했다.
A씨는 남편의 세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겠다는 생각에 불임수술까지 받았다. 몇 년간 어머니 없이 지낸 아이들은 반항심이 심했고 학교 성적도 바닥이었다. 그녀는 세 아이를 돌보느라 임원 승진을 코앞에 둔 직장까지 그만두었다. 워낙이 황폐화되고 거칠어진 아이들을 위해 결혼 5년째 되던 해에는 세 아이와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대학에 보낼 수 없다는 판단에 남편이 간곡히 부탁했기 때문이다.
A씨는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이들을 돌보았다. 방학이 되어도 항공료가 없어 미국에 머물며 아이들을 돌보았고 남편도 회사일이 어렵다는 이유로 거의 미국에 오지 못했다. 서로를 믿으며 사랑했기에 전화 통화만으로 위로하고 격려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기러기 가족으로 지냈다. 그사이 아이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귀국을 앞둔 어느 날 느닷없이 남편에게서 이혼 소장이 날아왔다.
소장에는 A씨가 ‘자녀 교육을 빌미로 미국으로 도망간 나쁜 아내’로 묘사되어 있었고, 남편은 이미 오래전에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것도 알게 됐다. 너무도 참담한 현실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세 아이는 각자의 인생을 찾아 떠났고, 남편에게도 버림을 받은 것이다. 환갑을 앞둔 그녀 앞에 남은 건 허탈함과 배신감뿐이었다.
통계적으로 보면 친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가 83% 이상을 차지하고, 계모에 의한 학대는 2.1% 정도에 불과하다. 부부 관계나 부모 자식 관계는 개개인의 인간성이나 가치관, 됨됨이의 문제이지 초혼, 재혼 여부나 친자 여부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새어머니=나쁜 계모’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편견에 불과한 것이다.
- ※이혼·가사 법률 어드바이스
재혼을 한다고 해도 배우자의 전혼 소생 자녀와 법적인 부모 자식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인척(혼인으로 인한 친척)일 뿐이다. 따라서 계모, 계부로 지칭되는 새어머니나 새아버지는 법적 부모도 아니고 친권이나 양육권이 있는 것도 아니며, 상속 관계가 발생하지도 않는다. 결국 남과 같은 관계이다. 만약 배우자의 자녀와 친자 관계를 형성하고 싶다면 입양을 하거나 ‘친양자제도’를 통해 친자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글쓴이 이명숙 변호사는…
24년 경력의 이혼·가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현재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2>의 자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