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를 꿈꿨던, 문학소년 김응수
김응수의 서재는 의외였다. 적어도 몇십 년은 돼 보이는 고서가 주를 이뤘는데, 문학 전집도 보이고 시집과 소설집 등 인문학 서적이 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현대문학사를 줄줄 읊는데 문학적 소양도 보통 이상이다. “의대나 공대 진학을 희망했던 부모님 때문에 이과를 전공했지만 문학은 저의 꿈이었어요. 당시 3백원 하던 삼성당문고 책을 교과서 사이에 숨기고 볼 정도로 소설을 좋아했습니다. 이상의 <날개>는 얼마나 읽었는지 지금도 책 내용을 줄줄 욀 정도인걸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한의예과를 지원했다가 떨어져 재수하면서 아버지 몰래 문과로 전과했다.
처음에는 소설가를 지망했지만 점차 연극에 매료되었고, 고향 서천에 눈이 무릎까지 쌓이던 날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원서를 아버지 앞에 내밀었다. 명문고에 진학한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아버지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터. “아버지가 인연을 끊자며 원서를 찢으셨어요. 그렇다고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울면서 집을 나와 친구 집에서 얹혀 지내다가 형의 도움으로 서울예술대학교 연극영화과에 합격할 수 있었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결국 아버지는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수업료를 주셨다. 당시 서울예술대학교 문창과에는 최인훈, 윤대성, 최창학 같은 저명한 문인들이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이었다. “교정을 걷고 있을 때 멀리서 최인훈 선생님이 걸어오시는데 가슴이 얼마나 콩닥거렸는지 몰라요. ‘셰익스피어가 온다’며 친구들과 소리치기도 했죠. 연영과 수업을 들으면서 문창과 수업을 열심히 도강했었습니다.” 그의 예술적 감성은 그렇게 단단하게 다져지고 있었다.
김응수의 개인 공간인 다락방. 접이식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어 계단을 위로 올리면 안에서 무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시나리오도 쓰고, 책도 읽고 개인 작업실로 사용할 예정이다. 통나무와 의외로 잘 어울리는 모던한 가로형 책장 두닷, 고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한실 방석 박홍근홈패션.
게스트룸은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가구를 최소화했다. 거울과 함께 매칭해 화장대로 사용할 수 있는 수납장 디쟈트.
2층 서재 전경. 통나무와 잘 어울리는 월넛 컬러를 선택해 책상과 책장을 디자인하고, 한쪽 모서리에는 파스텔 톤 북 선반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책장·책상·의자·북 선반 모두 두닷, 레더 소재 윙체어 KARE.
서른 살, 첫사랑과 결혼하다
김응수의 러브스토리도 의외였다. 전형적인 ‘나쁜 남자’ 비주얼과 달리 지금의 아내, 김한영씨를 만나기 전까지 연애 경험이 전무후무하다고 했다. 심지어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을 하겠다 안 하겠다 생각조차 없었다는 이 남자. “대학로의 카페에서 한가로이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나가는 판에 어떻게 마음 편하게 연애나 하느냐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더 연극에 매진했습니다. 연극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천운(天運)은 피할 수 없었나 보다. 당시 방송국 스크립터로 활동했던 아내는 연극을 워낙 좋아해 아주 잠깐 극단에 발을 담갔는데 그때 김응수를 만난 것이다. “아마 남편을 만나려고 그렇게 극단에 들어가고 싶었나봅니다.” 연극 끝나고 함께하는 술자리가 잦았고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당시 김응수는 대학 졸업 후 극단 ‘목화’에서 연극배우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박영규, 김학철 등이 선배로 있었고 임원희, 성지루, 유해진 등은 까마득한 후배였다. “80년대의 연극은 번역극 위주였어요. 그나마 ‘목화’가 유일하게 창작극을 올리는 극단이었죠. 연극을 오래 하니 무대가 답답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눈을 돌린 게 영화였습니다.”
영화 연출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그때 아내와의 결혼도 결심하게 되었다고. 1991년 2월, 그의 나이 서른에 6살 연하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해 4월 김응수가 먼저 일본으로 건너갔고, 3개월 뒤 김한영씨가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갔다. 세간이라곤 선풍기 1대가 전부였던 한 칸짜리 다락방에서 신혼생활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늑한 분위기의 부부 침실. 쉬러 오는 공간인 만큼 최대한 심플하게 꾸몄다. 호텔처럼 기본 화이트 베딩을 선택하고 계절에 따라 러너 또는 블랭킷으로 스타일링한다. 블랭킷·그린 컬러 스티치 쿠션·빅 사이즈 지그재그 퍼 쿠션 모두 주미네, 내추럴 스타일 우드 협탁 도모디자인, 북유럽 감성의 티테이블 ·암체어 모두 매터앤매터, 편안함을 주는 그린 컬러와 보태니컬 패턴의 커튼 올댓하우스.
배우의 아내로 산다는 것
김응수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일본 영화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연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뒷바라지했다. 연극하는 것을 반대했던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없었기에 서로를 의지하며 오른 유학길이었다. 신혼 초에야 얼굴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지만 타국에서 남편 뒷바라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남편은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해 학비 벌고, 저는 저대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죠. 생활고 때문에 말도 못 하게 힘들었어요.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많은 부분에서 부딪쳤죠.” 그러던 중 결혼 5년 만에 첫째 딸 은아가 태어났고, 아내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2년을 더 공부하고 7년 만에 귀국해보니 김응수 앞에 놓인 것은 현실 그 자체였다. 밥보다 철학이나 사상, 예술이 더 중요한 남자였지만 그를 바라보는 아내와 딸을 외면할 수 없었다.
유학 시절 일본 로케이션 촬영을 한 영화 <깡패수업>에서 단역을 맡았던 것을 계기로 <투캅스 3> <주유소 습격 사건> 등의 영화에 연달아 출연하게 됐다. 그렇다고 금세 상황이 호전되지는 않았다.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지만 카메오나 우정 출연이 대부분이라 당시 수입이 1년에 1백만원 정도였어요. 친정아버지가 약국을 운영하고 있어서 일 도와드리고 생활비 받아 근근이 살아가는 정도였죠.” ‘스타’가 아닌 ‘배우’ 남편과 사는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후회하고 말 것도 없어요. 내가 선택한 사람이니까 끝까지 믿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아내는 여태껏 고향에 홀로 계신 팔순 노모의 목욕 수발을 기꺼이 든다.
일본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법한 편안한 내추럴 컬러의 식탁과 체어가 통나무와 꼭 맞춘 듯 잘 어울린다. 세컨드 하우스라 살림살이가 단출해 북 선반을 장식장처럼 활용했다. 부엌 가구 모두 매터앤매터, 석류·자몽 모두 만나몰.
가족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배우 김응수가 자리한 것은 2006년에 개봉한 영화 <타짜>를 통해서다. 군산 조폭 ‘곽철용’을 연기해 많은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혔고, 이후 <오래된 정원> <이장과 군수> <그림자 살인> 등에 잇따라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여갔다. 그렇게 공을 들였던 연출 공부를 뒤로하고 배우로 활동한 지 어느덧 16년째,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만 60여 편에 달한다. 영화에서 빛을 발하니 방송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2010년 KBS2 <추노>의 섬뜩한 좌의정 ‘이경식’과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영의정 ‘윤대형’은 그렇게 탄생했다. ‘명품 조연’ ‘명품 악역’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도 이때쯤이다. 아내 김한영씨는 지금이 가장 살 만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말도 못 하는 ‘짠돌이’였어요. 같이 슈퍼마켓에 가면 저와 아이들이 바구니에 담은 것을 남편은 빼기 바빴으니까요. 요즘은요? 좀 툴툴거리긴 하지만 웬만한 거는 다 들어줘요.”
방송에 나오는 말투와 실제 말투가 같은 무뚝뚝한 남편은 처음에는 연극에 빠져, 그리고 연출 공부에 빠져, 또 배역에 빠져 아내의 이야기를 제대로 귀담아 들어준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잖아요.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돼 있고. 그래서 제 말에도 가끔 귀 기울여줘요. 옛날에는 외식 한 번을 안 했는데, 요즘은 집에 있는 날이면 세끼 중 한끼는 나가서 먹자고 먼저 얘기해요. 엄청나게 발전한 거죠.” 그전에는 어디를 가든 자유롭게 살았는데 지금은 남편과 같이 나가면 사람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외출할 때는 더 신경 써야 한다. 조금 피곤한 일이지만 반가운 관심이라 표현했다.
시즈너블하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한 3층 리빙 룸. 모던한 블랙 소파 디쟈트, 블랙 컬러와 잘 어울리는 파이톤 패턴의 빅 쿠션· 블랭킷·별 쿠션 모두 주미네, 브라운 컬러 카펫 한일카페트, 기하학적 패턴에 절제된 모노톤 컬러 매칭이 세련된 커튼 올댓하우스.
통나무집과 함께 다시 세운, 젊은 날의 꿈
20대의 모든 시간을 연극 공부에 바쳤고, 30대가 되어서는 7년을 영화 연출을 공부하는 데 쏟아 부었다.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기에 딱히 무명이랄 시절도 없었다. 그렇게 공을 들이던 공부를 뒤로하고 배우로 활동한 지 벌써 16년째다. 배우이기 이전에 한 집안의 가장으로 세상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세월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내적인 성장을 했다고 생각해요. 영화 현장에 있으면서 인맥을 쌓고 동지들도 만들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는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감독’이란 꿈을 가슴속에 담고 있었다.
“영화연출을 7년이나 공부했으니까 한 번은 감독을 해봐야죠. <미녀 농장>이라는 시나리오를 작업 중인데 내년에는 크랭크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각기 다른 7명의 여자가 산골에서 재미있게 살아가는 휴먼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막연하게 꿈꾸었던 통나무집 짓기를 실현했으니 감독 데뷔도 ‘뜬구름’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통나무가 소개됐을 때 친구 녀석 하나가 평창에 있는 통나무 학교를 다녔어요. 한번은 자기가 지은 통나무집에 놀러 오라고 해서 갔더니 나무만 쌓아 집을 만들었는데 엄청 신기한 거예요. 기회만 엿보고 있다 고향 친구가 도와줘서 도전하게 되었죠. 신경 쓸 일이 어찌나 많던지, 모르긴 해도 수명이 3년은 단축됐을 거예요.”
99㎡(30평)대의 1층 창고 공간을 연극 연출하는 작업실로 쓸 생각이라고 했다. “마음 맞는 배우들 모아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이곳에서 숙식하며 연습할 생각이에요. 도시와 달리 연극 외에 달리 할 것이 없어 집중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메이드 인 대천’ 연극을 만들어 서울을 다 불 질러 볼랍니다.”
문 앞 데크에 비비드 컬러 메탈 테이블과 체어를 두니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컬러풀한 프랑스 아웃도어 가구 페르몹 에이후스 판매.
아빠가 매달아준 카쿤 안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은서. 더블 사이즈 카쿤 그린신드롬, 오버사이즈 퍼 쿠션 주미네.
출입문에 걸린 웰컴 리스. 메탈 소재의 눈사람 리스 모던하우스.
아빠를 닮고 싶은 은아·은서 자매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에 아빠와 함께 출연하면서 얼굴이 꽤 알려진 막내딸 은서는 표정과 애티튜드에서 연예인의 끼가 다분히 비친다. 또래답지 않게 인사도 먼저 건넬 줄 알고 말도 조곤조곤 예쁘게 잘한다. “전에는 아빠가 하는 일이 수많은 직업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이 세상의 모든 남자를 통틀어 아빠가 최고죠.” 두 딸은 망설임 없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그런 아빠를 닮고 싶어 연예인이 되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일단 김응수는 반대표를 던졌다. “배우가 아니더라도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어요. 아빠가 한번 해봤으니까 다른 거 한번 해보라는 거죠. 이건 어디까지나 제 마음이 그런 거고 결국 아이 스스로 선택할 문제지요.” 그는 ‘요즘’ 부모답지 않게 ‘방목형’ 아빠다. “은서가 가야금 배우고 싶다 해서 가르치는 것 말고는 학업 성적 향상을 위해 특별하게 하는 것은 없어요. 학교 성적 가지고 아이의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부녀 사이가 가까워져서 가장 반가운 사람은 엄마 김한영씨다. “은서는 아빠와 성격이 비슷해서인지 부녀지간인데도 엄청 싸웠어요. <붕어빵>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속 이야기도 하면서 많이 친해진 거예요. 은아랑도 대화가 적었는데 방송 녹화 같이 하더니 칭찬을 많이 하더라고요. 조용한 아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표현할 줄 안다면서요.” 김응수에게 물었다. 여자 셋에 남자 한 명, 가끔은 좀 외롭지 않느냐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런 거 전혀 없다’는 답변이 이어졌다. “외로울 틈이 없어요. 집에서 가족과 있는 날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지러지게 웃어요. 은서도 가끔 웃기긴 하지만 내가 원래 한 유머 해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랑스러운 은아·은서 자매를 위한 핑크빛 아이 방. 우드 컬러와 핑크가 적절하게 믹스돼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원목으로 만든 2층 침대·서랍장·책장·테이블·화이트 체어 모두 에보니아,
암체어 위 블랭킷·그린 슬리퍼·서랍장 위 부엉이 오브제·스노우볼·크리스마스 모형 모두 모던하우스, 핑크 러그 에잇컬러스, 버터플라이 프린트 커튼 올댓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