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노래죠”
가수 김재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부활의 3집 타이틀 곡 ‘사랑할수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천재적인 보컬리스트 고 김재기의 동생이자 부활의 4대 보컬(1994~1995년 활동)인 김재희.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형을 대신해 부활의 보컬이 되어 불렀던 ‘사랑할수록’을 다시금 대중 앞에서 부르게 될 줄은 그도 예상치 못했다.
“사람들이 말하더군요.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요. 우리 형제만의 감성은 어느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요.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요. 형이 잊히지 않도록, 전설로 남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죠.”
형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무대에 선 그는 담백하고 덤덤하게 멜로디를 이어갔다. 떨리고 긴장됐지만 형을 위한 진혼곡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방송 이후 김재희는 앞으로 계속 ‘사랑할수록’을 불러야겠다고 다짐했다.
“형을 대신해 부활의 보컬이 되어 ‘사랑할수록’을 부르게 됐을 때 정말 얼떨떨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팬들이 보내주신 사랑은 감사했지만, 전 제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더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부활의 4대 보컬(1994~1995년 활동)인 김재희.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형을 대신해 부활의 보컬이 되어 불렀던 ‘사랑할수록’을 다시금 대중 앞에서 부르게 될 줄은 그도 예상치 못했다.
절망 속에서 발견한 희망
형의 빈자리로 인한 공허함과 자신의 위치에 대한 끝없는 의문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고심 끝에 그는 결론을 내린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다고. 마침내 1995년, 부활의 보컬 자리를 내려놓고 음악을 멀리하게 되면서 그를 오랜 방황으로 이끈 슬럼프로 들어서게 된다. 포장마차도 운영해보고, 식당 서빙에, 길거리에서 옷도 팔아봤지만 생활은 여의치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음반 활동을 재개해 가수로서 다시 한 번 나서기도 했지만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연이은 실패와 부상으로 의도치 않은 공백기를 갖게 됐고, 한때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산이었다. ‘이제 다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김재희는 산을 오르며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산은 머릿속에 맴도는 많은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진정한 쉼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그저 산이 주는 것을 보고 느끼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산이 뿜어내는 역동적인 기운이 제 삶을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됐죠.”
그는 산을 만나고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하늘 아래 모두가 똑같은 사람임을 깨닫고 자신을 낮추자 그는 자신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니 후회가 되더라고요. 왜 내가 그렇게 욕심을 부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을 좀 더 내려놓고 세상에 한 발씩 다가섰죠. 그러고 나니 오히려 사람들이 제게 더 다가서더라고요. 이런 감사의 순간이 긍정의 힘으로 바뀌었고, 이제 삶에 여유도 생겼어요.”
오직 무대를 꿈꾸다
초심으로 돌아간 그는 무대에 서는 자세를 다시 배우기 위해 뮤지컬을 선택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시작으로 <요셉 어메이징> <롤리폴리> <남자가 사랑할 때> 등 다수의 뮤지컬에 도전하며 뮤지컬 배우로서의 입지도 굳혀나갔다. 특히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는 파격적인 여장과 코믹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도전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제가 로커라는 이유로 음악적인 고집만 부렸다면 그런 역할을 맡지 못했겠죠. 숱한 시련을 겪고 난 후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제가 맡은 작은 역할 하나하나도 다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를 보고 즐거워하는 분이 계시다면 전 기꺼이 어떤 역할도 해 보일 작정이에요.”
김재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긴 공백기 동안에도 가수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자신이 돌아갈 곳은 결국 무대임을 늘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틈틈이 앨범을 내며 재기를 꿈꿨다.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노래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노래하고 싶었다. 대중에게 어필하는 데에 치중하는 것보다 생명력을 지닌 가수가 되고 싶었다. 음악에 대한 애정과 꿈을 향한 열정은 가수 김재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전 대중을 외면한 록은 없다고 생각해요. 록을 기본으로 하되 대중화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음악은 삶이고, 삶도 곧 음악이니까요. 삶이 녹아든 록을 대중에게 보여드릴 거예요.”
지난 6월과 10월, 신곡 앨범 <된장>과 형 김재기를 생각하며 만든 추모 앨범 <레퀴엠>을 연달아 발표하며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재개한 그는 현재 아웃도어 사업을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 제가 좋아하는 일로 인생을 개척해왔어요. 그중 하나가 아웃도어 사업이죠. 산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웃도어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국내 토종 브랜드인 낫소(NASSAU)의 아웃도어 론칭에 뛰어들게 됐죠. 제 인생을 걸고 이뤄갈 꿈 중 하나입니다.”
자신을 ‘꿈을 좇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가수 김재희의 최종 목표는 오래도록 노래하는 가수가 되는 것이다. 그는 가수 조용필처럼 60, 70대에도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 때로는 방황하기도 하고, 꿈을 잊기도 했지만 자신을 응원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가수가 되고 싶다. 그는 오늘도 마이크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