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계모의 상습적인 폭행으로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은 지난 11월 4일 울산 울주군 범서읍에 거주하는 박모(40세)씨를 아동학대치사 및 상습폭행 혐의로 구속 입건했다. 박씨가 폭행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아이는 자신의 의붓딸 이민정(가명·8세)양. 경찰은 박씨가 지난 2년간 상습적으로 이양을 폭행해온 사실을 밝혀내고 그녀에 대해 상습폭행과 아동학대 혐의도 추가했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지난 10월 24일. “아이가 홀로 반신욕을 하고 있었는데 물에 빠졌다.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는 신고를 받은 119구조대가 급히 현장에 도착했으나 아이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신고자는 계모 박씨였다. 하지만 경찰이 도착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결과 익사라고 하기엔 온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너무 많았다. 이를 수상히 여겨 박씨를 추궁하자 결국 그녀는 “이양을 홧김에 죽였다”고 자백했다. 그녀는 “2천원이 없어져 이양에게 돈의 행방을 물었고 이양이 모르겠다고 대답했으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때렸다”고 말했다. 또한 “소풍 가지 말고 방에 들어가라고 했는데, 이양이 ‘엄마, 마지막 소풍인데 보내주면 안 돼?’라고 말해 격분해서 손과 발로 폭행했다”고 덧붙였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양은 일주일 뒤 이사를 가게 되어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 소풍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경찰의 부검 결과 이양은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졌고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피하출혈과 호흡곤란으로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박씨의 폭행이 사건 당일뿐 아니라 수개월에 걸쳐 상습적으로 자행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5월 21일에는 30분가량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에서 이양의 엉덩이를 수차례 걷어차 전치 10주의 대퇴부 골절 진단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31일에는 욕실에서 훈육을 빌미로 이양의 오른손에 온수를 들이부어 2도 화상을 입혔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달려온 생모 심모(42세)씨는 오열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심모씨가 전남편 이모(46세)씨와 결혼한 것은 지난 2004년 6월. 이듬해 12월 이 양을 낳았다. 하지만 분양대행사 직원인 남편 이씨는 아파트 건설 현장을 따라 전국을 다니기에 5년 4개월 동안 가족이 함께 살았던 기간은 1년 6개월에 불과했다. 그렇게 주말 또는 월말 부부로 지내다 두 사람은 2009년 10월 이혼했다.
이양을 학대한 계모 박모(40세)씨는 심씨가 이혼한 후 전남편과 바로 동거에 들어갔다. 놀라운 사실은 동거녀인 계모는 심씨와 평소 친분이 있던 사람이라 그 충격이 더욱 컸다. 심씨는 “내 딸을 그렇게 만들다니 그 배신감에 치가 떨린다”고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동네 주민들로부터 “아이가 크게 다친 적이 여러 번 있었고, 한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입고 다녔다. 특히 아이 방에는 장난감다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고, 딸아이의 억울한 죽음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해 서명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심씨 측이 제기하는 의혹은 ‘과연 이양이 알려진 만큼만 폭행을 당했느냐’ 여부다. 실제 본지가 입수한 이양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이양은 50여 차례에 걸쳐 병원과 약국을 다녔다. 질병에 약한 어린 초등학생인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많은 수치다. 포털 사이트의 카페 ‘하늘로 소풍 간 아이를 위한 모임’의 운영자 공씨는 “상세 불명의 타박상, 두개 내 손상, 치아 맹출 장애 등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많은 부상 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했다.
한편 심씨는 아이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으나 친권자가 아닌 제3자이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녀는 이양의 사망신고가 된 이후에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을 발급받을 수 있었고, 현재 학교 생활기록부를 발급받기 위해 민정이의 담임교사 A씨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제3자라 발급할 수 없다는 문자만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심씨는 “나는 민정이의 친모다. 제3자가 아니다. 친권이 없다 보니 아이를 찾기 쉽지 않았고, 친권자인 아이 아빠는 민정이의 이름까지 바꾸며 꽁꽁 숨겼는데 어쩔 도리가 있었겠느냐”라며 탄식했다. 이어서 그녀는 “다시는 우리 딸처럼 맞아 죽는 어린이들이 나오지 않으려면 아동학대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의무 신고자에 대한 규정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죽은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생모를 경남 창원 자택에서 만났다.
지난 11월 19일, 계모 박씨의 처벌을 요구하며 울산지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민정이 생모 심모씨.
생모 심씨의 집에 들어서자 왠지 모를 ‘서늘함’이 느껴졌다. 집 안에 별다른 가재도구가 없었고, 화장실에는 휴지도 없었다. 오랜 기간 집을 비운 듯한 허전한 느낌. 그때 4단 서랍장 가장자리에서 그녀에게 소중해 보이는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죽기 전 아이의 모습보다 훨씬 더 어려 보이는 꼬마 숙녀의 사진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초코 과자들이었다.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마음 아파할 여유 따위는 없어 보였다. 그녀가 강해져야만 하는 이유였다.
사고 이후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그렇게 떠난 아이가 너무 불쌍하고 가여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동분서주 뛰어다녔어요. 경찰서에서 밤샘 조사를 자주 받았고, 최근에는 검사님을 뵈러 다니고 있어요. 어제도(취재는 11월 13일에 진행되었다.) 민정이가 살았던 동네의 주민들이 추모회를 해주겠다고 해서 다녀왔어요. 저는 자꾸만 딸이 눈에 밟혀 하지 말자고 했는데….
그런데 아이의 이름이 혜정(가명)이 아니었나요?
지금 이름은 혜정이가 맞아요. 저도 2년 전 다니던 직장에 의료보험 가입서를 제출하기 위해 뗀 가족관계증명서를 보고서야 제 딸의 이름이 바뀐 것을 알았죠. (잠시 침묵하다가) 저는 혜정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제 딸은 ‘혜정’이일 때는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못했어요. ‘민정’이었을 때가 훨씬 행복했을 겁니다. 하늘에서라도 다시 밝은 모습을 찾으라고 ‘민정’이라고 불러주고 싶습니다.
몇몇 기사에는 민정이 어머니께서 ‘아이 행방을 알고 있었다’든지 ‘계모 박씨와 이씨가 동거하는지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정말 억울해요. 2009년 10월 이혼 후 아이를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저는 장례식장에서 거의 4년 만에 우리 아이를 처음 봤어요.(한숨) 그때 그들도 이혼 후 처음 봤는데, 그 여자가 우리 딸의 친모 행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느낌마저 들었어요. 아이가 둘이나 있는 박씨와 같이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배신감에 몸서리쳤습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계모’라는 말을 되도록 쓰지 않으셨으면 해요. 계모도 엄마는 엄마니까요.
그럼 박씨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실을 전혀 몰랐나요?
전혀 몰랐습니다. 처음 대구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전남편이 소개해준 사람이 박씨였어요. 제가 서울에서만 살다 내려와 친구가 없었는데, 남편과 알고지내던 박씨는 말주변도 좋고 다른 사람 마음을 잘 헤아리던 사람이었죠. 그래서 많이 의지했었습니다. 두 가족이 함께 놀러 간 적도 있었고. 물론 그녀의 애들도 자주 봤었죠. 그런데, 제 남편과 살고 있을 줄은….
이혼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주말부부였어요. 전남편은 업무상 대구에 내려가 있었죠. 그러다 2007년쯤 대구로 다 같이 이사를 갔는데, 애 아빠가 애는 친할머니에게 맡기고 창원에 내려가서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라더군요. 함께 버는 게 낫지 않겠느냐면서 말이죠. 그게 화근이었어요. 점차 발길이 뜸하더니… 한 달에 한 번 집에 올까 말까 했던 것 같아요. 그 무렵 저를 냉대하기 시작했어요. “네가 능력이 없어 이 모양 이 꼴이다.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 하면서 저를 무시했어요. 생활비도 더 이상 보내주지 않았고, 결국 이혼하자고 하더군요.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혼하기까지는 신중했어요. 둘 다 늦은 나이에 결혼했기 때문에 이렇게 헤어지지 말자고 설득했어요. 그래도 남편의 반응은 냉담했어요. 시어머니께서도 원래 전남편이 어릴 때부터 성정이 세고 자기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은 절대 꺾지 않았다고 하셨죠. 다른 형제들 옷은 신경 쓰지 않아도 애 아빠 옷은 항상 좋은 것으로 사줬다고 하고요. 그때 박씨는 그런 남자랑 살지 말라며 저에게 헤어질 것을 종용하더군요.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아이 양육권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그저 우리 아이가 잘되길 바랐어요. 당시에 전남편의 일이 잘 안 풀렸고 생활 형편도 너무 어려웠죠. 그 와중에도 애 아빠는 “민정이가 너랑 살면 바보가 된다”며 자신이 맡겠다고 했죠. 저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라 뭐라 반박도 못 했어요. 그리고 저한테는 못했지만 민정이는 끔찍이 아꼈거든요. 애 아빠가 끌어다 쓴 제 돈도 받지 않고 나왔어요. 한 푼이라도 더 애를 위해 써달라는 바람으로 그랬던 건데…. 다 제가 죽일 년입니다.서명 운동 카페에 올라온 진료 기록을 보니 민정이가 병원을 참 많이 다녔습니다. 고작 8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가 말이죠.
언론에서 밝혔듯이 아이는 한 번의 큰 화상, 두 번의 대퇴부 골절, 그리고 이번 사건까지 겪었죠. 하지만 저는 이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정이 학대 관련 최초 신고 기록은 2011년 9월이었습니다. 그 뒤로 지난 26개월 동안 상세 불명의 타박상, 두개 내 손상, 치아 맹출의 장애 등이 있었어요.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상세히 조사해달라고 요청할 생각입니다. 최초 신고가 들어왔을 때 친모인 저한테라도 알려줬다면…. 그 여자는 단순 아동학대범이 아니에요. 계획적으로 범행하고 죄를 은폐하려 하는 살인범이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너무도 많이 다쳤었다.
그동안 아이와는 교류가 전혀 없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아이의 행방을 쉽게 알 수가 없었어요. 그 어느 곳에서도 민정이에 대한 학대 신고를 받은 경우 저에게 알려주질 않았어요. 알려줄 의무가 없다는 거예요. 저는 민정이의 가족이 아닌 제3자였기 때문이죠.
지금 아이아빠는 어떤 입장입니까?
아이의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쯤 지나 찾아와서는 저를 회유하려고 들더군요. 그리고 우리 딸에 관한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협조하겠다더니 박씨의 119 녹취록과 아이의 화상에 대한 병원 기록을 준 것 외에는 없었어요. 아이의 비통한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는 있는데 제3자가 된 저로서는 어려운 일이 많네요. 아이의 관련 기록들을 보려면 친권자인 그 사람의 위임장이 필요한데 이제는 연락도 닿지 않아 답답한 상황입니다.
생모인데 아이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그렇게 없었나요?
처음엔 아이의 병원 진료 기록도 뗄 수 없었어요. 아이의 병원 기록을 열람하려면 친부의 동의가 있거나 또는 아이가 사망했을 경우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아이의 사망신고가 완료되고 나서야 겨우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을 얻을 수 있었죠. 그 뒤에는 병원 진료 기록과 아이의 출결 상황 등을 대조해보면 뭔가 더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민정이가 다니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어요. 친엄마로서 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다고 했더니 ‘제3자에게는 개인 정보를 줄 수 없다’고 문자가 왔죠. “제가 제3자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관련 규정을 문자로 보내주고는 그 뒤로 답장이 없었습니다. 그분의 사정도 이해는 되지만 너무 야속했어요.
저세상으로 떠난 민정이를 위해 꼭 해주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아이가 그렇게 되기까지 친엄마는 어디서 뭐 했느냐”며 저를 비난하는 분들도 있다는 걸 압니다. 저는 친권이 없어 아이가 어디에 사는지 알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유치원은 의무교육기관이 아니다 보니 아이가 다른 유치원으로 옮긴다고 해도 주소를 공유할 의무는 없습니다. 친권자가 아이를 꽁꽁 숨긴다면, 저같이 이혼한 여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가 없어요. 정말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은 만들지 말았으면 해요. 지난 4년간 정말 민정이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미리 생각해놓은 듯 자신의 의견을 덤덤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시는 민정이 같은 아이나 저 같은 엄마가 나와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이혼한다 해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유지를 위해 비상 연락 체계 같은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해요. 친권자의 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권자가 아이에게 폭력을 쓴다거나 또는 아이가 학대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방관한다면 친권자가 권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민정이처럼 얻어맞아 죽는 아이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동학대범죄에 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합니다.”
민정이는 친구들과 소풍을 가고 싶어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봉변을 당했다. 관계 당국은 또 다른 아이들이 ‘하늘로 소풍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씨는 11월 19일, 울산지검 정문에서 친부와 계모의 처벌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더 이상 제2, 제3의 민정이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우먼센스>가 입수한 이양의 ‘건강보험 요양급여내역’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이양은 50여 차례에 걸쳐 병원과 약국을 다녔다. 질병에 약한 어린 초등학생인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많은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