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업실은 이태원에 있다. 뒤지고 뒤지다 ‘특판가’에 나온 이곳을 운 좋게 계약했다며 행복해하는 그다.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그는 담배를 물었다. 손목에 새겨진 타투도 눈에 띈다. 시련의 아픔을 겪을 때마다 ‘시절의 기억’을 몸 이곳저곳에 새긴 증표 중 하나다. 그렇게 촬영이 시작됐고 그렇게 인터뷰도 시작됐다.
그는 말이 빠르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듯 보인다. 무언가를 보면 오만 가지 잔상이 스쳐 지나가지만 말로 표현하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가슴속엔 그 찰나의 여운이 오롯이 남아 있다. 그 정서를 ‘작업’에 집약시킨다.
그간 작업했던 <짝패> <추격자> <공모자들> 등 대부분의 작품이 수컷 냄새가 진하다.
1년에 10개 정도의 영화 작업을 해요. 그 외 영화제 포스터, 엔터테인먼트 회사와의 프로젝트 등 다양한 일을 하죠. 이 업계에서는 가장 핫한, 막내뻘입니다. 첫 작업이 <짝패>였어요. 이후 액션·스릴러 장르를 위주로 작업했어요. 제 안에 그 부류의 피가 흐르나 봐요. 상남자의 피. 대신 섬세함은 조금 덜한 것 같아요.
포스터 디자이너에게 섬세함이 필수 조건인 줄 알았다.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죠. 디자이너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감정적인 측면, 즉 정서와 스토리를 중시해요. 포스터가 영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한 장면을 극대화한 찰나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이죠. 한 컷 안에 2시간의 감성과 스토리가 동시에 떠오르게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업입니다.
어떤 계기로 포스터 작업을 시작하게 됐나?
경북 구미 출신이에요. 지방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는 대학을 서울로 가는 일뿐이죠. 미대로 진학했고,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놀았어요. 노는 게 지겨울 때쯤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갔어요. 제대 후 삼수 끝에 사회학과에 진학했어요. 똑똑해 보이는 것에 대한 갈망이 짙었을 때였거든요. 학비를 벌어야 해서 일을 시작했어요. 홍대 앞, 영화, 미술, 음악. 당시 제가 빠져 있던 것들인데 그 속에서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화 쪽 일을 하게 됐어요.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문화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였던 것 같아요. TV에선 랩을 하는 서태지가 등장했고, 홍대 거리에서는 크라잉넛이 자유를 외쳤죠. 골목골목 클럽이 생겨나고 영화제를 비롯해 크고 작은 예술 축제가 나날이 열렸죠. 낯선 문화가 물밀 듯이 들어왔고 기회도 많았어요. 뭐랄까, 새롭게 두각을 나타내면 거리낌 없이 받아주고 인정해주는 시대였죠. 그렇게 무임승차로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아트 디렉터까지 맡게 됐는데, 그곳에서 류승완 감독을 만났어요. 그의 영화 <짝패>의 영화 포스터를 맡게 되었죠. 운명이 바뀐 겁니다.
아니, 류 감독이 도대체 왜?(웃음)
1997년인가, 포토샵이 뭔지도 모르던 제가 장난처럼 ‘한글 97’ 프로그램으로 영화제 포스터를 뚝딱 만든 적이 있어요. 이미지 크기가 작아 픽셀이 깨지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냈지만 인위적인 가공을 의식적으로 배제했다고 평가받으면서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었어요.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뭐 밟은 격이랄까요. 하하. 이후 대책 없는 자신감으로 영화제의 포스터 작업을 해치웠는데, 다행히 반응이 괜찮았어요. 사회학을 공부해서인지 어울리는 이미지를 뽑아내고 이를 해체, 변형하는 감각은 남들보다 조금 나은 것 같아요. 60~70년대 영 아메리카 등 고전적 스타일을 좋아해서 한마디로 문화적 밑천이 두둑했던 것도 도움이 됐어요. <짝패>의 작업을 맡으면서 그 길로 학교를 그만두고 대출을 받아 디자인사 ‘빛나는’을 차렸어요. 당시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영화 <빛나는 거짓>의 포스터를 제작했거든요. 그 ‘빛나는’.
사회학과에 가서 정말 똑똑해졌나?
주워들은 건 많아요. 어디 가서 잘난 척하기에 딱 좋은 정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가 있나?
예전에는 영화를 많이 봤는데요, 이제는 보기 싫어요.(웃음) 그럼에도 개인적인 취향은 영화 <파이란> <세 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예요. 영혼을 적시는 서정적이고 끈적끈적한 영화가 좋아요.
진행한 작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포스터는 무엇인가?
모든 작업이 다 아쉽고 부끄럽지만 최근에 작업한 <관상>이 기억에 남아요. 다른 시도를 해봤어요. 터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그 심리가 반영된 첫 작품이랄까요. 회화적인 느낌을 심플하게 살린 작업이었죠. 한 컷 한 컷 엄청난 공을 들여 찍었어요.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
첫 작품 <짝패>요. 아무것도 모를 때 진행한 작업이라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감독이나 영화사에 큰소리를 뻥뻥 쳐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황, 아시죠? 하하. 숱한 실수가 마치 의도된 계산처럼 보이게끔 쇼를 했지요. 한데 반응이 좋았어요. 우연으로 걸린 것이죠. <마더> 때도 기억에 남아요. 엄마(김혜자) 뒤에 숨은 아들(원빈)의 이미지였는데, 아들의 아이 같은 느낌을 극대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손을 촬영해서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원빈의 손으로 둔갑시켰죠. <늑대소년>을 작업할 땐 송중기의 눈에 박보영의 실루엣을 심어 넣는 재미있는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고지전> 은 며칠 밤 합성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열 손가락 안 아픈 손가락이 없어요.
질투 나는 포스터 작품이 있나?
<후궁> 그리고 <범죄와의 전쟁> <친절한 금자씨> <죽거나 나쁘거나> 등등, 많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스터를 볼 때 전반적인 느낌을 보지만 저는 직업적으로 뜯어보게 돼요. 보면서 ‘아 좋다’ ‘부럽다’ 했던 작품들이에요. 특히 <후궁>은 사진의 골드빛과 독특한 질감, 글씨체까지 아주 멋졌어요. <범죄와의 전쟁>은 너무나 절묘했던 한 컷이었어요. 영화 속 장면인데 마치 이 컷을 위해 포즈를 취한 것 같은. 의도해서 만들었을까 혹은 얻어 걸린 것일까 무척 궁금했어요. 의도했다면 너무 잘 만든 컷이고 얻어 걸렸다면 천운이고요. 일을 하면 할수록 얻어 걸리는 게 드물더라고요. 대부분 세팅된 컷에 후반 작업을 얹히는 식이죠.
아쉬움이 남는 작업이 있다면?
<광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데, 할 만큼은 했어요. 이병헌이라는 배우에게 기대하는 부분이 컸고, 그 자체로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가는 작업이었죠. 사극인데 상업영화이고 대중성과 보편성을 두루 갖추면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한 컷이 필요했어요. 평범하게 나왔죠.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어땠나?
최고(그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멋지고 대단한 배우예요. 최고의 배우임에도 스태프의 의견은 100% 존중해주고 불평 한마디 없어요. 게다가 얼굴 선 자체가 매력적이고, 표정은 천 가지죠. 이병헌씨뿐만 아니라 전도연씨도 기억에 남아요. <하녀>의 포스터를 보세요.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표정 하나로 완성된 작품이에요. 그 오묘한 표정, 오르가슴인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컷이에요.
의외의 배우도 있었을 것 같다.
원빈씨요. <아저씨> 때 작업을 함께 했는데요, 잘생긴 배우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어요. 그 외모를 놓기 싫어할 줄 알았어요. 한데 원빈씨는 그렇지 않았어요. 오래가는 배우들에게는 특별한 게 있다는 걸 새삼 알았죠. 게다가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타이트하게 촬영이 진행됐는데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영화 찍듯 사진 촬영에 임해줬어요. 감동 받았어요. 박해일씨도 비슷한 경우고요, 최근 <더 파이브>에 출연한 김선아씨도 의외였어요. 완전히 망가질 줄 알고, 컷도 아주 잘 나왔죠. 내공이 엄청났어요.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가 있나?
제 성향 때문인지 멜로 영화 주인공들과는 작업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못 만나는 배우가 있죠. 차태현씨, 공효진씨가 그런 케이스죠. 사실 공효진씨에게는 지은 죄가 있어요. 영화<미스 홍당무>를 함께 작업했는데, ‘화장기 없는 못생긴 얼굴에 살짝 귀여운 컷’을 선택하라는 미션이 떨어졌죠. 공효진씨가 그 역할로 영화제에서 수상했는데 소감으로 “여배우로서 많은 걸 놓았던 작품이라 상을 못 탔으면 억울할 뻔했다”며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기억에 많이 남아요. 미안했어요. 그래서 작정하고 그녀를 예쁘게 찍어주고 싶어요. 배우들에게 영화 포스터는 특별함 그 이상이에요.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이죠. 배우들에게 포스터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을 정도예요.
배우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니셜 토크 한번 해보자. 최악의 배우는?
하하. 남자 배우 A씨. 의상 때문에 난리를 쳐서 아주 진땀을 뺐어요. 현장이 꽁꽁 얼어붙었죠. 배우와 제작사 사이에 매니지먼트가 껴 있기에 오히려 문제가 극대화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이해는 해요. 게다가 배우는 2~3개월 푹 빠져서 지내잖아요. 주연 배우는 그 몰입도가 상상 이상이에요. 빠져나오기 힘들죠. 신경이 예민해졌을지도 모르죠. 어쨌든 힘든 작업이었어요.
친한 배우들은 누군가?
현장에서 코드가 잘 맞는 배우는 송강호씨와 이종석씨예요. 송강호씨는 워낙 베테랑 배우인지라 제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고요, 이종석씨는 무척 귀여워요. 모델 출신이라 감도 좋고요. 참, 최근에 흥미로운 여배우를 만났어요. <관상>에 출연한 김혜수씨예요. 전도연씨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전도연씨가 프로페셔널하고 영리한 배우라면 김혜수씨는 여배우 아우라가 풍기는, 마치 할리우드의 클래식한 여배우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영화’라는 장르의 판타지와 잘 어울리는 배우였어요. 이정재씨와 정우성씨도 비슷한 경우죠.
실제로 보고 의외로 예뻤던 여배우는?
신인 배우 한예리씨요. 영화 <코리아>에 출연한 배우인데 실물이 너무 예뻐 깜짝 놀랐어요. <건축학개론>의 수지는 그 친구만이 가지고 있는 여대생스러운 풋풋함이 있어요. 그걸 노린 포스터이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저는 김혜수씨가 최고예요. 실물이 예술!
최근 흥미를 가지거나 관심을 두는 분야가 있나?
현찰. 하하. 지방 출신들이 서울로 올라올 때 비장한 각오를 하죠. 막연히 성공의 기준을 돈으로 환산하죠. 저 역시 올라올 때 ‘얼마를 벌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는데, 그런 의미예요. 그리고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그간 화려한 말과 화려한 색감으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한 죄를 아는지라 기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돌아가서 공부하자는 생각. 그래서 클래식한 사진, 그림, 소설 등 원론적인 문화 장르에 관심이 커졌어요.
작업을 할 때 듣는 음악이 있나?
장르 구별 없이 영화에 따라 나만의 트랙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밥 딜런의 노래를 좋아해요. 아무렇게나 내뱉는 듯한 창법, 정리하지 않은 책상 같은 호흡 그리고 정서. 듣고 있으면 피가 들끓으면서도 마음이 차분해지죠. 저는 전시회나 잡지 화보를 보지 않아요. 부지불식간에 인식하지 못하고 비슷하게 만들어낸 경험이 있거든요. 트라우마가 있어서 의식적으로 피해요. 대신 오래된 책이나 영화를 보죠. 스릴러 장르, 히치콕의 작품을 좋아해요. 진리는 모두 그 안에 있죠.
싫어하는 말이 있나?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 속에 있는 사람은 그 고민을 온몸으로 뚫고 지나가는 중이거든요. 물론 정말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별거 아니라고 치부해버리는 건 별로예요. 인생은 죽을 때까지 그런 고민이 모여 만들어지는 한 편의 드라마거든요. 그리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그 말도 싫어요. 왜 조용히 떠나요? 떠날 때 떠나더라도 똥바가지를 던지고 떠나야지. 이 일을 10년 간 했는데, 아직도 환경이 열악해요. 그 열악한 환경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싸우고 있어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젊은 영혼들의 등골을 빼먹는 능구렁이는 있지요.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만의 직업관 중 하나는, 주말엔 곧 죽어도 쉬자! 내일이 마감이어도 회사는 문을 닫습니다. 그래도 다 되더라고요.
요즘 어떤 고민을 하나?
그동안 잔재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 현혹하면서 즉흥적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는 생각. 인생은 장기전이잖아요. 이제 신선하고 재기발랄한 것으로는 안 돼요. 그래서 요즘 고민은, 변화예요. 그 시점이 지금인 것 같아요. 영화판은 수백억의 판돈이 돌아가는 엄청난 마켓 플레이스예요. 분명 게임의 법칙은 있고, 포스터 디자이너는 그 게임의 법칙을 알고 정해진 룰을 따라야겠지만 자신만의 패는 마지막까지 쥐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궁극적인 꿈은?
꿈이라기보다는 다짐이 있어요. 저도 한때는 사람에 치이고 삶이 힘들어 제주도에서의 삶을 생각했지요. 한데 지금은 ‘귀농은 하지 말자’라는 다짐을 해요. 패배하는 느낌이에요. 지친다고 도망가지 말자는 생각이 들어요. 나중엔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수성가 혹은 ‘독고다이’로 여기까지 왔어요. 교육권 밖에 있는 친구들에게 저의 경험치를 알려주고 싶어요. 열정과 끼만 있다면 홍대를 나오지 않아도, 유학을 다녀오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그가 담배를 물었다. 담배를 물고 있어야 머리가 돌아간다. 겉멋이 아니라 습관이다. 3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여담으로, 연애 얘기를 곁들였다. “아직은 아쉬운 게 없어요. 친구도 있고 술도 있고 클럽도 있으니까요. 하하. 연애도 끊임없이 하지만 이성 친구가 없는 지금의 편안함도 매력적이에요. 여자들의 착각 혹은 환상 중 하나가 ‘내가 이 남자를 바꿀 수 있다’라는 생각이에요. 남자는 바뀌는 척하는 거지 바뀌지 않아요. 흥을 맞춰주기 위해 피드백을 주는 것이죠. 물론 집 밥이 그리울 때 결혼에 대한 생각을 간혹 해요. 내공이 있는 여자와 연애하고 싶네요. 소통이 중요한 덕목이죠.”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결코 자유롭지 않은 남자다. 그의 작품에 반전이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