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남자 김원효, 살림 돕는 남자 김대희, 잘 먹는 남자 김준호, 이렇게 입담 좋은 세 남자가 부산에 모였다. 이들이 모인 곳은 한 달 전 문을 연 부산 해운대의 유러피언 샐러드바&카페 ‘치폴라’. 이곳은 김원효가 셰프 겸 매니저로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로를 향한 거칠고 적나라한 장난기가 빠지고 나니, 끼어들 틈도 없이 제법 진지한 유부남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돈 잘 버는 남편 VS 말 잘 듣는 남편
김대희 (김원효를 보더니) 차라리 본격적으로 전업 요리사로 나서보는 건 어때? 몇 달 동안 요리를 배운다고 하더니, 개그 짤 때보다 더 열심히 하더라고!
김준호 그러게 말야. 생각보다 셰프 복장이 잘 어울리는데? 사람이 훤칠해 보이네.(웃음) 원효가 처음에 요리 배운다기에 내가 “이왕 하는 거, 흉내만 내지 말고 제대로 해봐”라고 말했는데, 정말 끝까지 해낼 줄은 몰랐어.
김원효 그래도 명색이 소속사 대표님인데, 개그맨 후배한테 요리 배우는 일에 전력을 다하라고 하더라고요. 속으로 ‘어디 다른 데 써먹으려고 하는 거 아냐?’ 이랬어요. 하하. 사실 이건 농담이고, 두 분 선배님이 해준 조언이 진짜 많이 도움됐어요. 준호 선배님은 그 일이 뭐가 됐든 ‘끝까지 가봐라’라고 하는 성격이니까요. 하다 보니 이렇게 진짜 셰프에, 레스토랑 매니저까지 됐죠.
김대희 네가 요리 공부한 게 몇 달 됐지? 세 달인가, 네 달인가? 거의 매일 꼬박꼬박 요리 선생님 집에 가는데 솔직히 깜짝 놀랐어. 요리를 오랫동안 배운 분들한테야 짧은 기간일 수 있지만, 다른 본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3~4개월 동안 거의 매일 뭔가를 배우는 게 사실 쉽지 않잖아?
김원효 스케줄이 일정하지 않으니까 학원에 가는 것도 쉽지가 않아서 아예 김노다 셰프 집으로 거의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했죠. 원래 요리에 딱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많이 헤맸는데, 우리의 셰프님께서 요리에 정말 소질 있다고 저를 얼마나 칭찬했는데요! 정말이에요. 나중에는 진지하게 ‘전업해도 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내한테 농담처럼 ‘나중에 노후 걱정은 없겠다’고 했어요. 하하.
김준호 (음식을 맛보는 김대희를 보며) 일단 카메라 앞이니까 맛있는 척 좀 해봐. 대희 형이 의외로 낯을 조금 가려요. 개그맨들이 실제로 만나면 생각보다 진중하고 말수 적은 애들이 많거든요. 표정을 나처럼 크게 하라고!
김원효 형님들, 진짜 맛있어요? 그 요구르트샐러드는 레서피까지 제가 만든 거예요. ‘원효의 제안’이라고 메뉴도 출시했는데, 반응이 썰렁하면 어떡하나 정말 걱정이 많았거든요.(웃음) 요리라는 게 직접 만들어서 맛을 평가받는 거잖아요. 개그랑 똑같더라고요. 게다가 개그는 제가 좀 못해도 옆에 있는 동료나 선후배가 잘 살려주면 살짝 묻어갈 수도 있는데, 이건 그냥 제 실력을 바로 평가받는 거라 훨씬 더 긴장돼요.
김준호 아니야. 너 진짜 진로 다시 생각해볼래?(웃음) 사실 개인적으로는 요즘 원효가 방송을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았는데 정말 좋아하는 취미를 찾은 듯해서 안심했어. 게다가 취미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걸 통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 것 같아 보기 좋더라고.
김대희 그러게. 개그는 그나마 오랫동안 해온 일이라 나름대로 노하우도 있고, 자기만의 영역이 있는데 정식으로 주방에서 요리하는 것은 처음이잖아. 요즘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수준도 높지만, 입맛 까다로운 사람도 많아.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인정받아야지.
김원효 안 그래도 고민이에요. 방송이나 공연은 당연히 계속해야 하지만, ‘셰프’라고 정식 매니저 이름까지 달았는데, 대충 하고 싶지는 않아 요즘 서울하고 부산을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김대희 그나저나 네가 요리를 배워서 (심)진화가 좋아하겠다. 틈날 때마다 아내한테도 요리해주고, 잘해야 돼. 지금 잘해야 늙어서 고생 안 한다.
김준호 형은 뭐, 알아주는 애처가잖아. 딸 셋에 형수님까지, 대희 형은 진짜 대단한 것 같아. 난 아직 애가 없으니까 일단 아내만 케어하면 돼. 크크.
김대희 뭐가 대단해? 요즘 남편들 다 그 정도는 하지. 너도 나중에 애 낳고 키워봐라. 저절로 그렇게 돼. 그러고 보면, 준호 얘는 은근히 보수적이야.
김준호 보수적인 게 아니라, 집에서 내가 할 일이 없어. 일단 나는 돈을 벌어다 주잖아. 그리고 아내가 시키는 건 해주기도 하고. 음식 맛있게 먹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웃음)
김원효 확실히 남자는 결혼을 기점으로 인생에 대한 태도나 마인드,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가장이 됐다는 점이 가장 크게 와 닿거든요. 결혼 전에는 나 하나만 생각하면 됐는데, 이제는 아내를 생각해야 되고, 또 아이를 낳으면 아이까지 생각해야 되잖아요.
김대희 그걸 부담이라고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어. 그냥 든든한 내 지원군이라고 생각해야지. 가족을 보고 있으면, 정말 어느 순간 나한테 위안이 되거든.
김원효 형님 말에 100% 공감해요. 생각지도 못한 이런 도전을 하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든든한 가정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뭐든 전보다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도 있고요.
김준호 싸우지는 않아? 신혼 때 서로 맞춰가다 보면 안 싸울 수가 없잖아. 나는 그때 생각하면 아주….(웃음) 괜히 눈물이 난다.
김원효 형님네는 형수님이 잘 맞춰주지 않나요? 저는 괜히 별일도 아닌 걸로 큰 싸움이 될까 봐 불만이 있어도 웬만하면 말을 안 했어요. 그런데 제가 말하는 직업이잖아요. 참기로 했으면 끝까지 참아야 되는데, 하고 싶은 말을 못하니까 너~무 답답한 거예요.(웃음) 그래서 전략을 바꿨어요. 요즘은 일단 할 말은 다 하고 그 대신 사과를 빨리 해요. 하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 뒤 서로 오해를 풀려고 대화를 많이 하죠.
김대희 빨리 사과하는 건 좋은 자세다. 버텨봤자 좋을 거 하나 없어.
김준호 아까는 농담처럼 말했는데, 나는 남자의 역할, 여자의 역할, 이런 걸 좀 구분하는 편이라….
김대희 야, 그런 얘기 하면 요즘에는 이미지만 나빠져.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김준호 아니야. 나 정말 아내한테 잘해. 돈도 열심히 벌고, 음식물 쓰레기 갖다 버리라면 버리고…. 그렇지만 나도 내 생각이 있는 사람인데 아바타처럼 움직일 순 없잖아!(일동 웃음)
김대희 그런데 사실 이런 얘기는 삼겹살에 소주 먹으면서 해야 되는데…. 솔직히 그게 우리 세대한테 더 맞는 것 같아. 딸 셋 키우고 있는데도, 이런 분위기는 적응이 안 돼. 원효는 ‘낮술 친구’였는데, 이런 데서 이렇게 보니까 약간 어색해.(웃음)
김원효 그러니까요. 레스토랑에 오는 남자들 보면 다 여자랑 같이 오거나, 아님 가족하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김준호 왜? 난 분위기로 보나 뭐로 보나 내 나이 또래에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조용하고 뭔가 여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위기. 아주 좋아.
김대희 요즘 주변에서 자꾸 “대표님, 대표님” 하니까 얘가 허세가 생겼네, 허세가 생겼어.
김준호 아, 정말 어려워. 말이 좋아서 대표지,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 얼마 전에는 (김)준현이가 TV에 나와서 나한테 계약금 1천만원 사기 당했다고 폭로한 거야. 입을 제대로 막았어야 했는데 애들 관리하는 게 역시 쉽지 않더라고. 하하. 농담이고, 사실 난 개그에 대한 욕심이 있는데, 개그에 집중하면 소속사 대표로서의 역할이 무너지니까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 둘 사이에 중심을 잘 잡는 것이 내 일인 것 같아. 대희 형도 이사니까, 좀 그런 것 같지 않아?
김대희 난 회의가 너무 많은 것 같아. 그게 제일 힘들어.
김원효 저는 뭐, 형님들하고 조금 다르긴 하지만 후배일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참 다른 것 같아요. 후배였을 때는 멋모르고 무대에 올라가서 솔직히 힘들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때는 올라갈 자리가 많아서 뭐든 신나게 했죠. 그런데 지금은 나를 바라보는 후배도 제법 많아졌고, 지켜보는 시청자도 있잖아요. 운 좋게 제가 맡은 코너가 잘되면서 얼굴은 알렸는데, 반면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조금 부담되기도 하고요. 오랫동안 히트하는 코너가 안 나오면 “요즘 김원효 뭐 해? 한물갔나?”이런 말이 금방 나오잖아요.
김준호 이 형님이 인생에 굴곡이 좀 있잖니.(웃음) 내가 다 경험해봐서 아는데,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부담스러울 때는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어. 초조해하고 고민한다고 일이 풀리는 게 아니거든. 좋은 관심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노력해야지. 이런 얘기를 후배들하고 많이 하면 좋은데, 요즘은 회식도 잘 안 하잖아. 예전에는 <개그콘서트> 선후배끼리 회식도 많이 했는데….
김대희 난 일 끝나고 집에 와서 아내가 해주는 저녁밥에 반주 한 잔 하는 게 요즘 그렇게 좋더라. 역시 술, 그중에서도 저녁 반주가 낙이야. 소주는 반병이 최고인 것 같아.
김준호 근데 요즘 대기실에 가보면 후배들이 죄다 스마트폰만 보고 있어서 대화할 기회가 없어. 아쉬운 대로 소속사 후배들 데리고 ‘코코 체육대회’ 같은 걸 하는 거야.(웃음) 회식 같은 걸 살려도 좋을 것 같은데. 아니면 엠티를 갈까? <인간의 조건>하는데, 준현이가 자기 음식 잘한다고 자랑하더라. 원효랑 같이 데리고 가면 요리는 둘이 책임지고 하겠지.
김원효 (이)희경이랑 (유)민상이 형도 요리 잘해요. 희경이는 살 빼고 미모가 완전 달라졌는데, 민상이 형은 자기가 만들어서 다 자기가 먹나 봐.(웃음)
김대희 이제 우리 몸 챙길 나이야. ‘술발’ 좋은 후배들하고 대책 없이 마셨다가는 훅 갈 수도 있어. 난 요즘 와이프가 블루베리주스 해주더라.
김원효 다음 단계는 장어즙이나 마늘즙, 이런 순서대로 가는 거예요?(웃음)
김대희 나도 몰라. 그건 와이프가 판단하겠지.(웃음) 내 건강도 중요하지만 세 딸을 먼저 챙기게 돼. 애들 때문에 남양주로 이사 갔는데, 아무래도 자연환경에서 지내다 보니까 나까지 건강해진 느낌이야.
김원효 저도 아내가 챙겨주는 보양음식 먹으니까 기분은 좋더라고요. 내 건강은 와이프한테 맡겨놨어요. 아침마다 과일 주스와 녹즙을 해줘요. 그러다 행사 하나 뛰면 특별한 보양식을 해줘요. 대접이 확실히 달라져요. 하하.
김준호 나는 운동이 최고더라고. 수영이나 골프. 스트레스 받을 때 골프를 치면 기분 전환이 돼.
치열하게 살아온 30~40대 남자들의 이야기
김준호 원효는 당분간 많이 바쁘겠네?
김원효 네. 틈나는 대로 ‘치폴라’에 와서 요리하고, <개그콘서트> 새 코너도 짜고 있어요. 케이블 방송 <어럽쇼>랑 <가족의 품격-풀하우스> 촬영도 재미있어요. 참, 6월 중순부터는 <아 유 크레이지>라는 코믹 연극을 제가 공동 연출해요. 대표님, 저 이렇게 바쁜 거 알고 계시는 거죠?(웃음)
김준호 당연히 알지. 그런데 내가 더 바빠! 콘텐츠 부문 대표라서 일단은 개그맨으로서 내 본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해. 그래서 <개그콘서트>랑 그 외 예능 프로그램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확실히 개그하고 예능이 분위기가 달라서 나름 부담이 되더라고. 그래도 이렇게 여기저기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고, 대중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가 아무리 잘나도 누가 찾아주지 않으면 소용없는 게 또 우리 일이잖아.
김대희 그러니까. 우리가 대표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개그콘서트> 무대라서 그렇지, 그 외에 하는 공연이나 활동이 정말 많은 것 같아. <개그콘서트> 회의는 일주일 내내 있지, 난 얼마 전에 SBS 드라마 <못난이 주의보>에서 차 수사관 역할을 맡아 연기까지 시작했거든. <나인 투 식스> ‘직장인 애환 공감 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도 하고 있고, 준호랑 같이 <퀴즈쇼 삼총사> MC도 맡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그게 행복한 거지.
김원효 형님들 앞에서 이런 말 하기 민망하지만, 제가 경험해보니까 너무 큰 목표만 보면 지치기 쉬운 것 같아요. 큰 산만 보면 포기하기 쉬운 것처럼요. 요리도 그랬어요. 처음엔 화려하고 멋진 것만 보니까, 당연히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눈앞에 한없이 벽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파스타처럼 간단하고 맛있는 요리를 하면서 조금씩 흥미를 느끼니까, 그다음 도전을 하게 되더라고요. 모든 일이 그런 것 같아요. 저 요리 배우면서 인생에 대해 큰 깨우침을 얻은 것 같아요.(웃음)
김준호 <도전하지 않으려면 일하지 마라>라는 책 읽어본 적 있어? 일과 도전, 성공에 대해 굉장히 실질적인 조언이 들어 있어 꽤 인상 깊게 읽은 책인데, 후배들한테 추천해주고 싶어. 도전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생뚱맞은 일에 무턱대고 도전하기보다는 그전에 적성에 맞는 걸 찾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김대희 그리고 시작하면 일단 전문가가 돼야지. 정 아니다 싶으면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고.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냐? 대신 어느 한 분야에서만큼은 언젠가 꼭 인정받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하는 건 중요한 것 같아.
김원효 가정을 꾸리니까, 요즘 이런 조언이 정말 가슴에 팍팍 와 닿아요. 요즘은 요리에 푹 빠져 있지만, 그래도 원래 고향인 개그도 정말 잘하고 싶어요. 가족한테 인정받는 개그맨이 되고 싶거든요.
김대희 맞아. 가족이 가장 냉정하지. 얼마 전에 폐지한 <개그콘서트> 코너 중에 ‘나는 아빠다’가 있었는데, 사실 와이프가 보고선 “재미없다”고 냉정하게 평가하더라고. 그리고 한 2주 지났나? 와이프 말대로 코너가 폐지돼서 한참을 웃었어.(웃음)
김준호 형! 어깨 펴! 대희 형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했으면 좋겠어. ‘제2의 전성기’를 꾸준히 이어가서 <개콘> 1천 회 때도 우리 함께 하자. 못할 것도 없잖아?
김원효 형님, 저는요?
김준호 넌 진정성 있는 셰프가 되면 좋겠다. 언제나 응원한다!
김원효 진짜 저를 기어코 요리사로 전업시킬 생각은 아닌 거죠?(웃음) 형님들도 후배들에게 지금처럼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대희 형님은 남들이 2인자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형이 있어서 준호 형이 있는 것 같아요. 두 분 지금처럼만 파이팅하세요!
김대희 우리답지 않게 너무 마무리가 훈훈한 것 같은데? 아까 보니까,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 내려주던데. 오글거리는 대화는 그만하고 원효야, 가서 커피 좀 가져와 봐. 맛있는지 없는지 평가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