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나 온 집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마친 뒤 전문직 여성으로서 조건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 후 낯선 여인이 등장하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운 여인이 벽 사이에 갇혀 있고, 어린아이가 악을 쓰며 우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면 꿈속에서 악을 쓰며 울던 어린아이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와 생이별한 것 같은 처절한 서러움에 온몸이 아려오곤 했다.
되풀이되는 꿈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A씨는 자신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 모두 몇 년 전에 이미 돌아가신지라, 어릴 적에 자신을 키워주며 평생 한집에서 살았던 유모를 수소문했다. 연로한 유모마저 돌아가신다면 출생의 비밀이 영원히 묻혀버린다는 생각에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결국 유모를 만날 수 있었다.
칠순을 훌쩍 넘긴 유모에게 “모든 사실을 알고 왔으니 솔직히 말해달라”고 하자, 처음에는 외면했지만 A씨는 직감할 수 있었다. 유모의 목소리는 떨렸고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실을 눈치챈 것이다. A씨는 결국 유모로부터 자신은 아버지가 외도하여 낳은 혼인외자이며, 자신을 키운 어머니는 법적인 어머니일 뿐 생모는 아직 생존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다.
A씨는 몇 달간 고민에 빠졌다. 생모를 찾을 것인가, 이대로 세월에 묻혀 조용히 지낼 것인가. A씨는 막연히 진짜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용기를 내어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놀랍게도 A씨 앞에 나타난 생모는 A씨가 수없이 되풀이해 꿈속에서 본 그 여인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생모와 아버지 사이에 여동생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이었다. A씨는 한평생 남부럽지 않은 명문가 집안의 무남독녀로서 상당한 부와 명예를 누리고 살아왔건만, 뒤늦게 만난 자신의 생모와 여동생은 열악한 환경에 찌들려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상태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여동생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최근에는 남편에게 이혼당한 뒤 돌아와 생모와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큰딸인 자신은 아버지의 외도가 들통 나 친딸로 출생신고한 뒤 부유한 집안에서 양육되었지만, 자신이 태어난 뒤에도 아버지와 생모가 몰래 만나 태어난 작은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어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자신과 여동생의 처지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컸던 것이다. A씨는 이후 생모와 여동생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며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후 A씨는 인생이 바뀌었다. 매순간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며 샴페인을 즐겨 마시게 되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자신의 인생, 선택된 자신의 삶과 버림받은 여동생의 삶이 너무나 대조적인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A씨는 요즘 자신이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언제 어떤 시련과 감동이 당신 앞에 나타날지 모르니, 매일매일 주어진 일상과 현재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샴페인을 터뜨리세요!’라고.
- 이 변호사의 어드바이스
법률상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외도하여 출산한 아이를 법률상의 처가 출산한 것처럼 출생신고한 뒤 양육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법률상 아이의 부모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입양된 것이어서 법률상의 처는 양어머니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부모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생모와 친자 관계가 있음을 확인하는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을 받은 뒤 가족 관계를 바로잡으면 된다. A씨의 경우 생모와 여동생이 한가족임을 밝힐 수 있으며, 여동생은 시효 등을 잘 따져본다면 생부인 A씨 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상속을 주장할 수도 있다.
이명숙 변호사의 법률 상담 스물세 번째
글쓴이 이명숙 변호사는…
23년 경력의 이혼·가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현재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2>의 자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