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각 냉면’으로 유명한 김용은 북한 음식 유통업을 하는 탈북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귀순하기 전까지 그의 직업은 다양했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 빙상 국가대표 선수와 평양 국립교향악단의 솔로 가수로 활동했고, 탈북 직전엔 중앙당 산하 해외담당 책임지도원을 지냈다. 러시아에서 대외 업무를 수행하던 중 목표를 채우지 못해 문책을 당할 것이 두려워 그는 귀순을 결심했다. 어려움 끝에 한국 땅을 밟은 뒤에는 생계를 위해 ‘귀순 가수’로 활동했다. 방송만으로는 생계를 감당하기 어려워 ‘모란각’이라는 북한 음식 전문점을 차리기도 했다. 음식점이 잘되자 프랜차이즈 사업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그의 상승세는 여기까지였을까. 이후 벌인 여러 사업에서는 번번이 실패를 경험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귀순 후 만난 재일교포 아내와도 이혼해 혼자 남았다. 그 뒤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줄 알았던 그가 8년 만에 돌아왔다. 이제 그는 연매출 3백억에 이르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홈쇼핑 방송국의 오너다.
홈쇼핑 사업, 베트남을 거쳐 캄보디아까지
김용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자신이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 본새가 영락없는 워커홀릭 사업가다. 사무실 한쪽 벽면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홈쇼핑 회사 ‘HSV(Home Shopping Vietnam)’ 방송이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홈쇼핑은 24시간 방송되잖아요. 베트남 현지에도 인터넷망이 잘 구축돼 있어 저는 한국에 있을 때도 늘 저희 방송을 모니터링해요.”
HSV는 베트남 최초의 홈쇼핑 방송국이면서, 현재 베트남의 4대 홈쇼핑(CJ, 롯데, GS, HSV) 중 매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홈쇼핑이 시작된 것은 불과 3년밖에 안 되었다. HSV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매달 7~8%의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올해는 약 3백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베트남의 향후 성장세까지 고려하면 그의 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베트남 소비자들은 한국 제품에 대해 선호도가 매우 높습니다. 특히 주부들이 좋아하는 주방용품과 화장품, 가전제품이 저희 방송국의 효자 상품이지요. 베트남 부유층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 홈쇼핑에서 취급하는 제품보다 훨씬 비싸고 질 좋은 제품을 취급하고 있어요. 심지어 침대맡에 두는 금고까지 팔고 있습니다.”
김용은 어떻게 베트남에서 홈쇼핑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걸까? 사업 실패 후 어려움을 겪던 그는 지난 2007년 자신이 운영하는 북한 음식 전문점 ‘모란각’을 재오픈해 식품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홈쇼핑 채널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모란각 제품을 팔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당시 미국·캐나다·호주·일본 전 지역에 모란각 제품을 유통했고, 그는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홈쇼핑 사업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러다가 찾게 된 것이 베트남. 2010년부터 1년 동안 동남아를 여행하며 본 베트남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20대와 30대 인구가 50% 이상을 차지하는 젊은 나라인 것을 보고 이곳이 바로 신흥 시장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2011년 여름,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HSV를 인수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자신 있었어요. 북한에 있을 때 중앙당에서 해외무역을 담당한 경험도 있고요. 식품유통업을 통해 홈쇼핑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거든요. 제가 잘 키워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이라는 땅은 그에게 너무도 생소한 곳이었다. 북한에 있을 때 해외무역을 담당하며 동유럽 여러 국가를 상대로 일해본 적은 있지만 베트남은 그에게 미지의 땅이었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의 도움으로 HSV 홈쇼핑 본사인 ‘한아홈쇼핑주식회사’의 오너를 만날 수 있었다. 김용은 자신의 사업 전개 구상을 보여주며 HSV 인수권을 따냈고, 2011년 11월 11일 HSV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작년 10월에는 베트남의 이웃 국가인 캄보디아에 진출해 ‘HSC(Home Shopping Cambodia)’를 설립했다. 캄보디아에 생긴 최초의 홈쇼핑 방송이다. 김용은 이런 공을 인정받아 작년 11월 20일 ASEAN SUMMIT(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 캄보디아 네앙 파트 국방부장관에게서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먼저 시장을 개척해놓고, 우리 제품을 판매한다는 것은 꽤나 가슴 벅찬 일입니다. 앞으로 우리 중소기업 제품을 더 많이 가져다 판매해서 우리 기업들이 동남아 시장에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김용은 베트남 홈쇼핑 방송사(HSV)를 인수하고 동남아시아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오른쪽은 김동춘 HSV사장
파란만장한 그의 삶,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까지
김용의 이러한 성공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순탄치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당 간부’까지 지내다 1991년 귀순한 이후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가수로 왕성하게 방송 활동을 하며 사업으로 승승장구한 적도 있다. 하지만 급격한 사업 실패와 이혼을 겪으며 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10년 전 탈북자 사회에선 ‘김용의 돈은 가져간 놈이 주인’이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제가 물렀어요. 저는 낯선 땅에서 제 가족을 만들고 싶었죠. 북에서 온 동지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믿었던 거죠. 보증만 일곱 번을 서줬는데 다섯 번을 실패했습니다.”
그는 어렵게 귀순한 만큼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다. 당 간부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이 정도밖에 못 됐다는 소리는 죽을 만큼 듣기 싫었다. “한국에 와서 가수로 활동하면서 사실 수입이 모자랐어요. 밤업소에서 일할 수도 있었지만 제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남조선으로 간 김용, 먹고살기 위해서 밤업소나 뛰나?’ 하는 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사업에 발을 들이게 된 겁니다.”
북한 음식 전문점인 ‘모란각’을 만들면서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의 인생 최대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나중에 통일이 돼 북쪽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과정에서 품질 관리에 문제가 생겼다. 불안을 느낀 그는 다른 사업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다단계 사업이었다. 당시에는 그 위험성을 모른 채 아내까지 사업에 동참시켰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거기다 중국에서 시작한 호텔 신축 사업의 결과도 참담했다. 넓은 중국 시장을 보고 큰 꿈을 품었지만, 2003년 초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는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다 보니 아내와의 관계도 악화됐다. 그는 성공하고 싶었고, 그래서 가정은 늘 뒷전이었다. 결국 결혼 7년 만인 지난 2003년 이혼했다. 당시 힘들었던 시절 자살까지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고 한다. 그는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처분해 빚을 청산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됐다. 항간에는 김용은 더 이상 ‘재기 불능’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고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일산에 모란각을 재오픈해 직접 면발을 뽑고, 육수를 우려냈다.
“사기도 참 많이 당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래, 이게 다 내 수업료다. 내가 더 철들고 자라기 위한 성장통일 뿐이다’라고요.”
처음부터 맨손으로 시작한 사업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일어섰다.
사기도 참 많이 당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래, 이게 다 내 수업료다. 내가 더 철들고 자라기 위한 성장통일 뿐이다’라고요
돈을 좇지 말고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성공
돈을 벌어 성공하고 싶었던 김용. 그는 여러 번 실패를 겪으며 ‘돈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돈은 결국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은 아니죠.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돈을 벌기 전에 먼저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 믿고 갈 때만이 사람이 모이는 거고, 사람이 모여야 창조적인 에너지가 나오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돈은 따라오게 돼 있어요.”
그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도 바로 이 ‘돈 위주의 사고방식’이라고 꼬집는다. 정작 중요한 건 사람인데 우리는 그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용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그중에서 ‘좋은’ 사람들을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믿고 존중하고 의지할 사람만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집을 지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집에 기둥 하나만 덜렁 있다고 집이 됩니까? 적어도 네 개의 기둥은 있어야 안정적으로 지붕을 앉힐 수 있죠. 하물며 기업은 어떻겠습니까? 서로를 믿고 함께 지붕을 떠받칠 수 있는 다른 기둥들, 사람들이 필요한 거예요. 공을 차려면 축구장에 가야 하듯이 돈을 벌려면 터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무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김용은 베트남에 진출하면서부터 한결같이 자신의 곁을 지키며 도와준 이들을 매우 각별하게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사기를 당해본 경험도 많기에 아무에게나 덥석 일을 맡기기도 어려웠다. 그런 때 지인을 통해 김동춘씨를 만난 것은 그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됐다. 김씨는 베트남에서만 18년을 살아 현지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김용이 HSV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모든 제반 사항을 꼼꼼히 점검해준 사람이며, 현재는 HSV의 사장직을 맡고 있다. 김용은 김동춘씨가 아니었다면 HSV를 꾸려나갈 수 없었을 거라 말한다. “제가 좋은 종자를 가져왔다면 그는 좋은 농부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가져온 종자는 베트남 땅에서 싹이 날지 안 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그걸 가장 적재적소에 심어서 물과 비료를 주고 바람도 막아가며 잘 길러주는 사람이 바로 김 사장입니다.”
사람 사이의 신뢰를 중시하는 김용 회장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물었다. 그가 꼽은 두 가지는 ‘남의 얘기 하지 않기’와 ‘과거 얘기 하지 않기’.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말고 자신의 과거를 자랑하지 말란 얘기다. 그는 이 두 가지만 지키면 충분히 상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저는 오늘도, 내일도 항상 사람 중심으로 갈 겁니다. 가족 사업을 벌였다면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었겠죠. 가족한테 맡겼을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그렇기에 더 사람을 고르는 일에 신중을 기하고, 믿고, 맡길 겁니다.”
예전엔 외로워서 견디기 힘들었던 명절이나 주말도 이젠 기다려진단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한국을 오가며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어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곁에서 든든하게 힘이 돼주는 그의 사람들이 있어 그는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오늘도 그는 ‘성공한 탈북 사업가 1호’로 세계무대를 누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