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장미나(44세)
서울대에서 가족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고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엄마로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가족학자다. 저서로는 <서울대 엄마들>이 있고, ‘가족세대통합연구소-서로이음’의 공동 소장이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성적이 뚝 떨어진 큰 아이와 갈등을 겪고 있다.
최소현(38세)
서울대에서 디자인을, 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으며, 디자인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3학년, 15개월 된 세 아이의 엄마이자 대학에서도 제자들의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 자녀들이 당당한 일을 하고 살기를 독려하며, 근성과 열정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지현(38세)
서울대에서 가족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키우고 있다. ‘가족세대통합연구서-서로이음’의 공동 소장으로, ‘생명의 숲’ 전문위원이다. 서울대 제3기인생대학과 생활과학대학의 최고위 과정 강사로 활동하며, <서울대 엄마들>의 공동 저자다.
‘자녀의 명문대 진학’. 이제는 지겨울 법도 한 이 영원한 숙제는 ‘줄 세우기’에 익숙해진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화두 중 하나다. 대치동 엄마(정보력을 필두로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상징적인 강남 엄마), 타이거맘(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키는 호랑이 엄마), 에듀푸어(자녀의 사교육비에 많은 돈을 지출하는 가정), 엄마 사정관제(엄마의 재력과 정보력에 따라 자녀의 스펙이 좌우된다), 하키맘(아이스하키 경기장까지 따라다니며 기사 노릇 하는 엄마) 등 자녀 교육과 관련한 신조어는 더 이상 생소한 언어가 아니다. 또 청소년 자살, 기러기 가족, 강남 과열 주의 등 교육의 과열 경쟁 속에서 파생된 수많은 사회적 현상은 더 이상 한 가족 또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책임이나 대가로 치부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렇다면 똑똑한 엄마들은 이 상황을 현명하게 잘 대처하고 있을까. <서울대 엄마들>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대학인 서울대를 졸업한 엄마들의 이야기다. 똑똑한 그녀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이 작은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 책은 단순히 학벌 좋은 엄마들의 푸념이나 교육 이상을 담은 책이 아니다. 모든 부모와 아이가 당면한 문제와 고민에 대해 적나라하고 진솔하게 풀어낸 책이다. 장미나, 주지현, 최소현. 세 명의 ‘서울대 엄마들’에게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직접 물어봤다.
topic 1 서울대 출신 엄마, 이래서 좋다
주지현 사실 이렇게 ‘서울대 엄마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인터뷰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요. 출신 학교와 상관없이 그들도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똑같은 엄마일 뿐이거든요. 소신껏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있고, 강남이나 대치동에서 열심히 아이 뒷바라지하는 엄마들도 있고, 교육적 이상을 꿈꾸는 엄마, 또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하고 불안해하는 엄마들도 있죠. 엄마마다 가지고 있는 고민은 비슷하고, 교육법은 각양각색이에요. 굳이 ‘서울대’라는 범주로 나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장미나 서울대 출신 엄마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교육 방법을 기대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일단 저희도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네요.(웃음)
최소현 서점에 출시된 교육 관련 서적이나 학원 광고 문구를 보면 씁쓸하기도 해요. ‘중학교 때 시작하면 늦습니다’ 같은 자극적인 문구로 선동하는 책은 더 이상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런 책을 굳이 사서 보고 싶지도 않지만, 사실 내심 불안하기도 하거든요.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주지현 대부분의 서울대 출신 엄마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해요. 굳이 자신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을 알릴 일도 없거니와, 알려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죠.
최소현 물론 나름대로 서울대 동문이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부분도 분명 있어요. 이득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고요. 하지만 ‘엄마’로서는… 글쎄요.(웃음) ‘부모가 서울대 나오면 자녀도 공부를 잘할 것이다’ ‘엄마가 서울대 나왔으니 아이를 똑 부러지게 키울 것이다’ ‘공부를 안 시키면 뭔가 다른 궁리가 있을 것이다’ 등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시선이나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장미나 저희 부부랑 친한 한 부부가 있는데, 그들도 둘 다 서울대 출신이거든요. 애들이 어릴 때였는데, 부부끼리 모여서 얘기하다가 “(부모가 서울대 나왔으니) 애들은 하버드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농담처럼 나왔죠. 그러다가 “하버드 가기가 쉽냐?”는 말에 누군가 “그럼 그냥 서울대 가면 되지 뭐” 하는 거예요. 요즘 서울대 가기가 쉽나요, 어디.(웃음)
최소현 맞아요. 저희 때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갈 수 있었는데, 요즘은 엄두가 안 나요. 가끔 동문들끼리 모여서 애들 교육 얘기하면 꼭 나오는 말이 “나는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면 절대 서울대 못 갔을 것 같다”는 말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저희가 서울대 들어갈 때랑 요즘 서울대 가는 건 진짜 달라요.
장미나 명문대 진학 통계로만 따지면 ‘강남 엄마’가 최고죠.(웃음) 심지어 서울대 신입생 40%가 서울 강남 지역에 몰려 있다고 하잖아요. 입시 제도나 전형이 다양화되면서 정보력이나 스펙 등을 요구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이런 서포트를 받는 아이들이 유리한 거죠. 저는 80년대 학번인데 과외 금지 세대였어요. 그건 ‘출발선’이 똑같다는 의미잖아요. 부모의 학벌이 어떻든,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자기가 공부 잘하면 무조건 갈 수 있는 시대였죠. 제 큰아이가 고1이라 학교에 진학 상담을 갔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이제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님도 뛰셔야 됩니다.” 대학 입학 전형이 3천 개가 넘고, 선생님도 그걸 다 모른다는 거예요. 어떻게 그걸 다 외우겠어요. 그러니 부모들이 발로 뛰어서 자식한테 맞는 전형을 찾아야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인 거예요.
주지현 최근에 서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는 지인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교수님이 “나 얼마 전에 애 때문에 학교에서 호출당했어.” 이러시는 거예요.(웃음) 아무리 서울대 나오고, 교수라고 해도 똑같이 학교에 애 맡겨놓은 엄마일 뿐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어요.
"서울대 나와서 우울한 사람이 많아요. 또 집에서는 인정받나요? 서울대 나와 봤자 시댁에 가면 며느리 노릇 해야 되고, 애들 선생님 만나면 똑같은 학부형일 뿐이죠. 서울대 출신이라고 내조나 집안일을 덜 하는 것도 아니고, 자녀 키워놓으니 내 뜻대로 안 돼서 우울하고…"
topic 2 자녀 교육에 ‘쿨’하고 싶은 그녀들의 고민
장미나 특히 학년이 올라가면서 애 입시가 다가오면 아이나 부모에게도 부담이에요. 부모는 공부를 잘했는데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약간 민망하달까. 아이가 받는 스트레스도 크고요. 제 큰아들이 부모가 서울대 나온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요. 특히 사춘기를 거치면서 성적이 확 떨어졌어요. 그 상황이 닥치니까 저도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아이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쿨하다고 생각했는데…. 잘할 수 있다고, 통제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엄청 힘들더라고요.
주지현 그래서 외국으로 많이 나가기도 하죠.
장미나 맞아요. 이것저것 신경 쓰려니까 머리 아프고, 차라리 유학을 보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최소현 서울대 출신이라 아이를 더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도 있지 않아요? 아이와 소통하는 데는 학력이 전혀 도움이 되는것 같지 않아요(웃음). 특히 우리 남편은 혼자 공부해서 서울대에 간 남자들 특유의 고집이랄까, 자기 주관이 굉장히 뚜렷한 편이에요. 서울대 나온 부모는 학창 시절에 대부분 모범생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니까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상적인 교육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되도록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는 대로 지켜보자는 쪽이지만 남편은 답답함을 못 참을 때가 많죠. 저는 최대한 중재하는 입장이고요.
장미나 학벌 좋은 부모 때문에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어마어마하게 커요. 저는 아들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랑 아빠는 너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중에 네가 어떤 꿈을 꾸든 아주 열심히 노력해서 부모를 설득해야 할 수도 있다”고요.
최소현 왠지 그 얘기가 슬프게 들리네요.
주지현 약간 세대적인 차이도 있어요. 요즘은 교육에서 아빠가 담당하는 정서적인 측면이나 역할이 많이 강조되잖아요. 그럼에도 제 경험으로는 서울대 나온 남자들이 고집이 센 것 같아요.(웃음) 아무래도 실패한 경험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자기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아닐까요?
최소현 한번은 딸이 숙제를 안 하고 그냥 자는 거예요. 애를 깨워서 혼내지도 못하고 남편하고 둘이 안방에서 패닉에 빠진 적이 있어요.(웃음) “어떻게 숙제를 안 하고 잘 수가 있지?” “당신, 그런 적 있어? 말이 돼?” 시험 전날인데도 공부 안 하고, 벼락치기하고 이런 것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교육 이상주의를 꿈꾸지만, 이럴 때마다 아이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보장해줘야 하는지 사실 혼란스럽기는 해요. 아직 아이에게 전적으로 맡기고는 있지만, 제 선택이 맞는 건지 불안하기는 하죠.
장미나 그 ‘멘붕 상태’가 고등학교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온다니까요.(웃음) 예전에 저는 ‘난 나중에 입시 설명회 같은 데는 절대 안 갈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웬걸, 아이 성적이 바닥을 치고 나니까 안 갈 수가 없는 거예요. 입시 설명회에 가서 제일 먼저 들은 말이 “부모 학벌 좋다고 방심했다간 큰일 납니다”였어요.
topic 3 서울대 엄마 vs 강남 엄마
주지현 부모들은 지금 당장 아이들의 행복을 운운하지만, 사실 제 자식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류대 나와서 좋은 직장에 다니고 결혼도 잘하길 누구나 꿈꾸잖아요. 그러니 공부를 안 시킬수가 없는 거죠. 차라리 대놓고 그런 속마음을 드러내는 엄마들은 솔직한 거예요.
최소현 제가 갈등하는 것도 비슷해요. 쿨한 척, 멋있는 척하고 싶은데 이런 평정심이 어디까지 유지될 것이냐는 거죠.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우리의 이상은 저기 북유럽에 있는데, 현실은 잠원동에 발붙이고 살고 있다”고요. 굉장히 공감했어요.
주지현 당장 학부모 카톡 단체방만 봐도 하루에 수십, 수백 건씩 대화가 오고가요. 안 섞일 수가 없어요. 부모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바로 영향을 끼치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장미나 맞아요. 작은아이 반 단체 카톡방이 있는데, 못 따라가겠어요. “??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으면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러고 말죠….
최소현 (웃음) 저도 제일 자주 하는 말이 “저는 잘 몰라요”예요. 장단점이 있어요. 특히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절대 집에 있는 엄마들 커뮤니티에 낄 수가 없거든요. 시간적인 여유도 없고 분위기도 그렇고. 그나마 온라인이 열려 있으니 얘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별의별 얘기를 다 해요. “역사 체험 학습 돌려야 하는데 참가할 분”부터 시작해서 학급 봉사 일정이나 학원 정보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고요. 저희 때는 역사는 책으로 배웠지 체험 학습 안 갔잖아요. 애들이 다 기억이나 할까 싶은데, 그럼 엄마들이 “다 잠재 기억 속에 있을 거예요” 하더라고요.(웃음)
그런데도 늘 불안해하죠. 왜냐하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제대로 된 방법’이라는 확신이 없으니까요. 확신을 가지기에는 자꾸 상황이 변하고, 끊임없이 제도가 바뀌는 거예요. 보트에 앉아 있으면 아무리 닻을 내려도 파도에 따라 흔들리는 것처럼요.
장미나 그 말에 정말 공감해요. 엄마들이 기를 쓰고 케어하면 어느 정도 선까지는 아이를 끌고 갈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이상은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고 해도 마음대로 안 돼요. 이걸 깨닫기 시작하면서 마음을 비웠어요.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애들한테 집착 안 하려고 남편과 노후 대책에 대해 얘기해요.(웃음)
주지현 그게 훨씬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죠. 서울대 엄마들이, 자녀가 마음대로 안 됐을 때 느끼는 좌절감과 절망감은 훨씬 큰 것 같아요. 인생에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거의 없는데, 자식 일만큼은 예외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자녀를 다 키우고 나서 우울감을 훨씬 크게 느끼기도 한대요.
장미나 어찌 됐든,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는 부모의 학벌보다 강남에서 스펙 쌓으면서 따라가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거예요.
최소현 웃기기도 하면서 안타까운 것이 요즘 대치동 분위기는 전과는 또 다르대요. ‘대치동 교육’이 뜨면서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니까 아이들의 학력 편차가 들쑥날쑥해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잘나가는 강사들이 다른 강남 지역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라는 거예요. 부모들에게 강남 교육의 효력은 한동안 지속될 거라고 봐요.
장미나 예전에는 아이 교육에 맹목적인 엄마들을 보면서 “자신의 꿈을 아이를 통해 이루려고 한다”고 했잖아요. 물론 모든 부모는 그런 마음이 밑바탕에 어느 정도 있겠죠. 하지만 요즘은 정말 잘나가고 똑똑한 엄마들도 모두 아이 교육에 뛰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매일 아침 일간지 스크랩하고, 그날의 격언 프린트해서 책상 앞에 붙여두고, 각종 대회 스케줄 정리는 물론 애들 오답노트 정리하는 것까지 엄마들이 한다잖아요. 특히나 똑똑한 서울대 엄마들이 본격적으로 아이교육에 전념하기 시작하면 더 맹렬히 하는거예요. 그렇게 아이의 스펙이 채워지고, 결국 명문대에 입학하는 걸 보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거죠.
주지현 실제로 주변에 대치동에서 아이 교육에 올인하면서 사는 친구도 적지 않아요.
최소현 그런 걸 보면 서울대 엄마들 모아놓고 교육 얘기할 게 아니라 강남 엄마들 모아놓고 애들 어떻게 키우나, 이런 얘기하는 게 훨씬 흥미롭겠죠.(웃음)
topic 4 자녀에게 가장 강조하는 교육 포인트
장미나 그래서 요즘 고민하는 것이 바로 아이의 자존감 문제예요.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해서 다 자존감이 높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강의를 하면서 만나는 학생들을 비교해봐도, 서울대생이 자존심은 높은 것 같은데 자존감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더군요. B학점만 받아도 덜덜 떨고, 늘 자신이 부족하다 생각하면서 결핍을 느끼죠. 오히려 다른 학교 학생들은 훨씬 자신감이 넘치고 자기 목표가 뚜렷해요. 원하는 만큼의 결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하지도 않고요. 그게 학벌이든, 스펙이든 뭐가 됐든지 스스로 극복하고 넘어야 하는 산이라는 건 그 친구들이 훨씬 더 잘 알고 대처하는 것 같아요. 서울대 학생은 실패에 대한 내성이 없어요.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그것만큼 큰 문제가 어디 있나요?
주지현 살다 보면 인생에 정말 많은 좌절과 실패가 도사리고 있잖아요.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도 너무 많고요. 공부가 됐든, 뭐가 됐든, 아이 스스로 혼자 서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엄마가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최소현 저도 이상적인 교육을 꿈꾸게 된 결정적 이유가 바로 자존감 때문이에요. <서울대 엄마들>에서 가장 공감했던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엄마는 단지 아이의 20년을 케어할 뿐이다”라는 말이었어요.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나머지 80년을 아이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엄마의 역량으로 채우느냐는 거예요. 평생 하는 것이 공부인데, 이제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인 딸한테 ‘공부해라’ 시키고 싶지 않아요. 남이 시켜서 하는 공부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엄마에 의해 만들어진 서울대생보다 자기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아이가 나중에 훨씬 만족스러운 삶을 살 것이라는 확신은 있어요.
주지현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은 특히나 ‘만들어진 서울대생’이 너무 많아요. 일단 서울대에 들어가면 남들보다 주어지는 기회가 더 많을 수도 있고, 좀 더 인정받을 수는 있지만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살아보니 알겠더라고요.
최소현 서울대 나와서 우울한 사람이 많아요. 특히 여자는 사회적 제약이 더 많죠. 저는 그나마 제가 사업체를 운영하기 때문에 직장에서 남녀 차별을 겪는 일도 덜하지만,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남자한테 치이고, 독신한테 밀린대요. 또 집에서는 인정받나요? 서울대 나와 봤자 시댁에 가면 며느리 노릇 해야 되고, 애들 선생님 만나면 똑같은 학부형일 뿐이죠. 서울대 출신이라고 내조나 집안일을 덜 하는 것도 아니고, 자녀 키워놓으니 내 뜻대로 안 돼서 우울하고….(웃음) 학교 다닐 때야 내심 ‘잘나간다’ 하는 우쭐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10년 지나보니 남들과 똑같더라고요. 게다가 이상은 저 높이 있으니 우울감이 더 클 수밖에 없죠. 친구들끼리 만나면 하는 말이 결국 “서울대 나와 보니 별거 없더라”예요.(웃음)
주지현 그래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마 ‘학위’인 것 같아요. 대부분의 서울대 여자들에게 ‘전업주부’의 삶은 인생 플랜에 없었을 거예요. 각자 나름의 꿈이 있었을 텐데 현실에서 발목을 잡죠. 직장 계속 다니면서 애 키우는 것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도피처럼 찾는 것이 바로 공부예요. 자기가 제일 잘하는 분야잖아요. ‘육아 고민도 해결하고, 스펙도 높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셈이죠. 재취업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승진할 때 유리할 수도 있고요. 운 좋게 강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으니, ‘학위라도 따자’ 이렇게 되는 거죠.
장미나 저도 애들 둘 옆에 재워놓고 박사 논문 썼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잘했다 싶어요. 그때 공부 안 하고 애들한테만 올인했다면 지금 얼마나 허무할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더 아이와 나를 일부러 분리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최소현 제가 늘 아이한테 하는 말이 있어요. “사기 치지 말라”고요. 사실 공부하는 거 좋아하는 애들이 어디 있어요.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하면 물어봐요. “공부 정말 하기 싫어? 그럼 지금 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을 때 해. 대신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건 사기야. 그러지 않는다면 엄마는 네 선택을 존중할게.” 이렇게 말하는 거죠. 남이 시켜서 하는 공부는 애 인생에 하나도 도움 될 것이 없거든요.
topic 5 내 아이 ‘명품’으로 키우기 위한 노하우
주지현 저는 흔한 말이지만, ‘행복한 엄마가 좋은 엄마’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 인생을 사랑하고 즐기는 부모의 마인드가 중요해요. 저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요.
최소현 너무 중요한 말이에요. 아이들한테 허구한 날 “네가 좋은 일 해야 된다”라고 말하면서, 정작 부모는 자식한테 목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생각해봐요. 부모의 희생을 발판 삼아 명문대에 간 아이가 과연 홀가분하게 자기 인생을 마음껏 즐기고 펼칠 수 있을까요? 부모, 아이 모두에게 뭐가 최선인지 생각해볼 때인 것 같아요.
장미나 부모는 아이가 크게 엇나가지 않도록 울타리만 쳐주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교육일 것 같아요. 실제로 서울대 엄마들을 만나보니, 아이를 키우는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독서’를 강조하는 건 공통점이더라고요. 대신 나름 꼭 강조하는 교육관도 필요해요.
엄마들에게도 인생을 길게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자녀들 인생만큼이나 우리 인생도 중요한 시대예요. 옛날처럼 애들 다 키우고 나면 어느덧 노년에 접어들어 10~20년 살던 시대는 끝났다는 거죠. 아이 교육에 올인하더라도, 나머지 40~50년을 더 살아야 돼요. 그 시간에 뭘 하면서 인생을 보낼 것인지 진지한 자기 고민이 필요한 시대라고 봐요.
주지현 외국의 부유층 노년과 우리나라 부유층 노년은 생활수준이 거의 비슷한데, 결정적으로 가장 큰 차이가 바로 ‘봉사 지수’예요. 돈도 쓸 만큼 쓰고, 여행도 다니고,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외국의 돈 많은 노년층은 또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쉽게 허무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엄마로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의 삶도 찾아야 돼요. 그럼 덩달아 아이 교육 문제도 절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최소현 결국은 엄마가 자기 인생을 즐기고 사랑할 줄 알아야 아이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된다는 것이 오늘의 결론인가요?(웃음).
장미나 아이는 우리나라의 너무도 소중한 자산인데, 엄마로서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아이를 키워 세상에 내보낸다는 것은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잖아요. 저는 엄마로서 즐거움을 포기하기보다, 그 방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최소현 맞아요.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결국 누군가 하나는 희생하거나 상실감을 느끼겠죠. 너무 빠져서 허우적거리지만 않는다면,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아이가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어쩌면 엄마로서 누리는 즐거움일 수도 있고요. 현실은 당장 크게 바뀌지 않겠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이 중심’에서 ‘나 중심’으로 조금씩 옮겨간다면 엄마나 아이에게 모두 만족스러운 삶이 되지 않을까요?(웃음)
서울대 엄마들의 자녀 교육 고민 & 솔루션
자녀의 소질을 파악해 키워준다
“자기 자식을 객관적으로 딱 보고, 포기할 때를 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쉽진 않겠죠? 대체로 그게 안 되다 보니까 아이와도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오히려 자신이 공부해봤기 때문에 애를 보고, 될지 안 될지 알아서 빨리 포기해 주면 더 좋은 게 아닐까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공부를 잘할 수는 없으니까. 안 되는 애를 붙잡고 공부시키는 건 서로 힘든 거잖아요. 사회적으로도 낭비고. 나도 그렇게 하려고 맘먹고 있지만 좀 쿨해야 될 것 같아요, 공부에 대해서는. 다른 부분은 자식에 대해 쿨하기 쉽진 않겠지만 어느 순간에 애에 대한 파악이 되면 걔가 좋아하는, 잘할 수 있는 것 쪽으로 지원해주는 게 좋겠죠. 뭐, 애가 단순히 나태해서 공부를 안 해서 못하는 거다, 하면 그건 포기하면 안 되겠지만 말 그대로 어떤 한계가 있다면 포기해야죠.” -서울대 공과대학 졸업, 양미진(가명), 36세
▶▶무조건 공부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엄마. 되도록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 수 있다. 하지만 엄마 혼자서 너무 높은 목표를 설정해두고 아이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소질이 없는 아이’라고 낙인찍을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자녀에 대한 기대 높아 갈등
“확연하게 드러나요. 다른 부분은 괜찮은데 수리 부분에서, 나와는 정말로 다르다는 것을 느끼죠. 그렇다고 아예 수학을 못한다거나 그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이더라고요. 다른 영역에 비해 받아들이는 속도가…. 그래도 저는 항상 칭찬을 해줘요. 네가 원래 요만큼 못하는데 이만큼 따라간 게 어디냐. 그러니깐 저도 굉장히 냉철하게 보게 돼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애가 어느 부분에서는 하는구나, 어느 부분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겠구나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약간 애를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선생님들하고 얘기해보면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요즘은 애를 높이 보려고 노력하기는 해요. 그래, 너 참 잘하는 부분이 많기도 하다, 이렇게 보려고 하는데 사실 잘 안 돼요. 노력해도 어렵네요.” -서울대 약학대학 졸업, 김지영(가명), 40세
▶▶어릴 때부터 1등만 한 ‘서울대 엄마’들은 자신처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때로는 힘든 상황을 겪기도 한다. 아이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뭔지 모르게 부족해 보이는 것이다. 오로지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아이를 무작정 맞추다 보니, 아이가 잘 하는 것을 오히려 보지 못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아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 교육 핵심 포인트는 독서
“저는 갈수록 성적이 쭉 올라갔던 편이에요. 고3에 올라가면서 전교 1등을 했죠. 제가 승부욕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그건 제가 어릴 때부터 책을 정말 많이 읽었는데, 거기서 나온 것은 아닐까 싶어요. 어릴 때 집에 동생과 단둘이 있으면 별로 할 게 없잖아요. 부모님이 바쁜 대신에 책을 엄청 많이 사주셨어요.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학원도 안 다녀서 매일 책만 읽었죠. 그냥 푹 빠져서 살았던 것 같아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친구들이 제게 ‘넌 도대체 왜 모르는 게 없냐’고 하더라고요. 척척박사, 만물박사가 제 별명이었죠. 학업과 상관없는 소설책도 많이 읽었거든요. 어릴 때 책을 통해 얻는 것, 예를 들면 인간관계나 상황을 이해하고 문화를 알게 되는 것이 지금 제가 하는 일에도 도움이 되고 있어요. 외국의 문화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데도 독서가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도 문제집 한두 권 풀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책을 읽도록 하는 것이 훨씬 낫죠.”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졸업, 이보애(가명), 41세
▶▶서울대 엄마들 대부분은 ‘책에 빠진 경험’을 가지고 있다. 독서의 힘을 스스로 입증한 그녀들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자녀 교육도 바로 ‘독서’다. 서울대 엄마들이 보여준 가장 확실한 필살기 중 하나는 바로 ‘책에 빠질 수 있는 힘’, 책 읽는 즐거움을 아는 능력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대 출신 엄마도 강남 콤플렉스가 있다
“여러 개의 가능성을 생각해요. 계속 서울 외곽에 살면서 대신 ‘타운하우스’ 같은 곳에 들어가서 애들을 좀 풀어놓고, 나도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과, 안 그러면 분당 정도도 고려해볼 만하고요. 정자동이나 판교에 있는 학교가 좋다던데 이 정도에서 애들을 학교에 보내면 어떨까 하는 선택지도 있죠. 안 그러면 강남을 가긴 가야 되겠으나 집값이 그나마 좀 더 싼 서초동에 가는 것이 어떨까 이런 생각도 하고요. 남편은 서초가 강남보다는 싸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항상 그의 우선순위는 청담동이니까요.” -서울대 미술대학 졸업, 정지수(가명), 38세
▶▶‘서울대 엄마’들도 강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교육 특구에서 경쟁하기란 제아무리 서울대 출신 엄마들도 쉽지 않다는 것. ‘강남 입성’이 명문대 합격 확률을 높일 수는 있지만,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소신껏 교육하기란 더욱 쉽지 않다.
융통성 없는 원칙이 자녀에겐 오히려 독
“학업 성취에 있어서 공부하는 습관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칙과 책임이 깨질 때는 주로 혼내는 편이었죠.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와 수학을 매일 한 쪽씩 공부하는 원칙을 정해서 꼭 지키도록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아이가 대학갈 때쯤 제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엄마는 내가 아파도, 다쳐도, 힘들어 쓰러져도 서울대에만 가면 되지? 난 그게 싫어서 카이스트에 갈래. 엄마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학교를 다녀보고 싶어.’ 충격이 굉장히 컸어요. 그리고 아이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까 고민했어요. 아마 저의 각박한 ‘원칙주의’가 원인이 아닐까 싶었죠. 아이가 어릴 때, 열이 굉장히 많이 나고 아파서 저도 내심 푹 쉬길 바랐는데 혹시 그렇게 하면 습관이 망쳐질까 봐 아이에게 ‘원칙은 지키라’고 요구했거든요. 아마 그게 아이에게 큰 상처였던 것 같아요.”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김윤주(가명), 49세
▶▶자녀를 위해 세운 원칙이 엄마에게도, 자녀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가끔 자신이 세운 기준이 최선이라 믿는 부모들의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가 아이에게는 멍에가 되는 것이다. 때로는 ‘자녀를 잘 키운 엄마’보다는 ‘그냥 엄마’가 필요할 때도 있다.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옳은 것이라면, ‘원칙은 때로는 깨질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옳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