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나운서보다 '시인의 아내'라는 말이 더 친숙하게 들리는 고민정 아나운서가 수줍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사랑과 인생에 대해 고백했다. 대학 시절, 열한 살 연상의 시인 조기영씨와 사랑에 빠진 뒤 7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그녀. 세상 유일한 사랑이라 믿었던 ‘그 남자’는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 난치병을 앓았고, 그녀는 그 시간을 온전히 그의 곁에서 지켰다. 아나운서 합격과 동시에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벌써 8년째 한 지붕 밑에서 함께 등을 부비며 살고 있다. 2011년, 결혼 6년 만에 얻은 아들에게 부부는 ‘조은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는 그녀가 부지런히 좇고 있는 사랑의 의미와 그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시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
#1 친하게 지내던 과 선배가 졸업한 한 선배가 많이 아프다며 내게 무심히 말을 건넸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 강직성 척추염. 그런 병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주 소수에게만 오는 희귀병이라는 것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치료법이 없다는 것도. 치료법이 혹시 있지 않을까 두 눈을 크게 뜨고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자꾸만 눈물이 차올라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지금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날이면 그날의 슬픔이 떠올라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 ‘정말 감당할 수 있겠니?’ 처음 이 사람과 연애를 시작할 때도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똑같은 질문을 했다. 정말 감당할 수 있겠니? 대학교 2학년 때 느꼈던 사랑의 감정, 아직 고백도 받지 못해 그가 날 좋아하긴 하는 건지 자신 있게 말할 순 없었지만 왠지 내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열한 살 차이의 남자,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때 내 대답은 내게 처음으로 존경이란 단어를 느끼게 해준 그를 잃지 말자는 거였다. …… 그날 이후 난 매일 생각했다. 휠체어 생활만 할 수 있어도 난 불만 없이 살 거라고, 더 강해지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오늘도 그 사람은 바쁜 아내 대신 20개월 된 아들에게 저녁밥을 먹이고 목욕까지 시키더니 곤하게 잠든 아들 옆에서 같이 곯아떨어져 있다.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지금 이 순간, 참 행복하다. 적어도 지금이 내겐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2 사람들이 ‘시인의 아내’라는 말을 떠올리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내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내가 생각해왔던 시인의 아내는 모름지기 시를 무척 사랑하던 문학소녀여야 하고 줄줄 외우는 시 몇 편쯤은 있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몇 사람의 시인만 겨우 알고 있었고 어려서부터 시를 외우는 건 딱 질색인, 한마디로 문학소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런 내게 그 사람은 시인으로서가 아닌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한 남자로 나타났고 그를 사랑한 난 저절로 시인의 아내가 되었다.
…… 예술가의 아내라는 낭만적인 단어 뒤에는 힘든 현실의 벽이 버티고 있었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진작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몸에 와 닿던 현실의 벽은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차가웠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돈으로 환산하고 있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시인인 그 사람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이 소유하는 것을 경계했다. …… 결국 난 현실이라는 땅에 두 발을 딛고, 이상이라는 하늘을 향해 가슴을 열어두어야 했다. 시인의 아내로 살아가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얼마든지 많다고 이해시켜야 했고, 그 사람에게는 매달 무섭게 찍혀 나오는 각종 보험과 공과금 고지서를 보여주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돈도 모으고 좀 더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이해시켜야 했다. 그렇게 난 수도 없이 세상과 그 사람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외로운 줄타기를 해야 했다.
#3 혼 초 우리 두 사람은 참 많이도 싸웠다. 7년을 연애했기에 싸울 일이 없을 줄 알았고, 연애하는 동안에도 거의 다툰 적이 없어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결혼하고 처음 두 달 동안은 지겹도록 싸웠다. …… 서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리 심각하게 으르렁거릴 일도 아닌데 쓸데없이 감정을 너무 허비하며 살았던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두 사람도 신혼이 지나며 순간순간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노력을 하니 전보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난 대부분의 남편들처럼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다 보니 밖에서 일하는 남편들의 마음을 저절로 공감하게 되었고, 그 사람은 글 쓰는 일을 집에서 하다 보니 종일 남편의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는 아내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해서 미안해…
#4 우리의 결혼 기사가 실리면서 그 밑에는 무수한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는 자칭 지인이란 사람들이 있지도 않은 허구를 진실이라 말하며 진짜 나와 가까운 사람들조차 헷갈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 남자 알고 보니까 강남에 빌딩이 몇 개래요. 그러면 그렇지. 쇼를 하는 거죠.”
“물려받을 재산이 꽤 많을 거예요. 제가 그 남자 집을 잘 알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부자로 봐주는 거니까 나쁠 건 없잖아”라고 얘기했지만 난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그에게 욕을 보이는 것 같았고, 땅과 함께 정직하게 살아오신 시부모님을 비아냥거리며 졸부 취급하는 것 같아 무척 불쾌했다. …… 결혼한 지 8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부부를 둘러싼 흥정 놀이는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처럼 분노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계산기를 두드리는 습관은 지금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결혼한 아나운서에 대한 그들의 시선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분노하지 않는 것은 그때 내게 응원의 말을 전했던 사람들처럼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람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5 “손가락, 발가락 5개씩 다 있어요. 모두 정상입니다.”
간호사의 말과 함께 아기는 내 가슴 위에 올려졌고 따뜻한 양수 속에서 자유로이 헤엄쳤을 아기는 처음 접한 세상의 공기에 두려움을 느꼈는지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아기는 열 달 동안 들어왔던 내 숨소리와 목소리를 듣고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내 가슴에 와 닿던 작은 입술의 온기, 내 살에 느껴지던 부드럽고 촉촉한 살갗, 세상을 깨우는 듯한 울음소리가 지금도 내 몸의 기억들을 불러내는 듯하다. 3.2킬로그램의 작은 몸이 으스러질까 난 살며시 껴안았고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 이름을 ‘은산’으로 지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동물과 나무, 햇볕과 바람 등 모두에게 쉬어 갈 자리를 마련해주면서 언제나 늘 한자리에 있는 산처럼 컸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게다가 성이 ‘조’씨여서 ‘좋은’ 이란 의미도 추가하여 ‘조은산’.
#6 세상이 아기들의 똥만큼만 정직하다면 어떨까. 설령 소화가 안 된 당근처럼 그대로 나온다 해도, 몇 날 며칠 변비나 설사에 걸려도 걱정할 건 없다. …… 책을 뒤지든 선배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하든 상태가 호전될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쓰다 보면 씻은 듯이 낫게 된다. 누구든 실패가 두렵지 않은 이유다. 오늘도 은산이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주며 세상으로부터 섭취한 음식물을 정직하게 내놓는다. 그리고 난 적당한 묽기와 색깔로 나온 아기 똥을 보며 한시름 놓는다. 이런 생각들을 그저 머릿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두 소매를 걷어붙일 수 있길, 적어도 은산이가 커 아기를 낳았을 때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지는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모든 엄마들이 그런 고민을 한다면 이제 막 태어난 아기들만큼은 조금 더 정직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7 엄마와의 데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가슴은 뿌듯함에 한껏 부풀기도 했지만 왜 여태까지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난 집에 들어오자마자 옛날 사진들을 뒤적였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찍은 엄마 사진에 눈길이 멈춰 한참을 들여다봤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그날 엄마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적어 내려갔다.
세월이 흐를수록 엄.마.라는 두 글자가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일찍 시집가서 미안하고
맛있는 거 많이 못 사 드려 미안하고
같이 많이 여행 못 해서 미안하고
예쁜 옷 사러 같이 못 다녀 미안하고
엄마보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꽃보다 시보다 아름답게
#8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믿고 있을까. 나 혹은 내 아이가 스스로 꿈을 실현할 수 있을지 믿을 수 없기에 보험에 들기라도 하듯 좋은 학벌만을 향해 쫓아간다. 그리고 내 마음을 다 주고 싶은 사람, 내가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보다는 나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 그래서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란다. ……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믿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내 아이를 믿지 못하고, 나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상대방의 숨은 능력을 믿지 못하고 …… 어둠은 두려움이 아니라 그저 나를 둘러싼 하나의 환경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저 내 안의 나를 믿으면 된다. 그 안에서 날 아끼는 누군가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손을 잡아준다면 그 손길을 믿고 따라가면 된다.
#9 두 살배기 은산이는 밤새도록 온 방 안을 휘젓고 다니더니 결국 옷장 구석에 머리를 박고 쌔근쌔근 잠들어 있다. 평소에는 잘해주지도 않다가 자기 기분 내키면 그 앙증맞은 입술을 쭉 내밀어 뽀뽀를 해주는, 엄마 아빠 중 누구를 더 따르는 것도 없이 똑같이 사랑을 나눠주고 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들. 이렇게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두 사람의 얼굴에 햇빛이 살포시 내려앉을 때 내 마음은 평온한 행복으로 넘쳐난다. 앞으로도 슬퍼하고 괴로워할 일들이 많이 있겠지만 지금까지처럼 서로가 서로의 보호막이 되어주며 살면 된다. 우린 가족이니까.
누군가는 고민정 아나운서에게 비현실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고, 그 삶 속에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얘기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너무도 쉽게 잊고 지내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있다면 어느 한 순간 시가 아닌 순간이 없다”는 그녀의 말이 더욱 가슴 깊이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