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사태’의 전말 &
엇갈리는 진술, 진실은 어디에?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이 장기화될 조짐이다. 사건 당일의 행적이 속속 드러나면서 윤 전 대변인의 해명 기자회견은 오히려 사건을 더 악화시킨 꼴이 됐다. ‘문제의 그날’, 호텔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윤창중 전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동안 현지 여성 인턴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 여론의 거센 질타와 미국 현지 조사 압박까지 받고 있는 마당에, 윤 전 대변인은 지난 5월 11일 해명 기자회견 이후 계속 ‘잠적’ 중이다. 사안의 심각성과 정부의 미심쩍은 대응은 물론 상당 부분 거짓말로 드러난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내용, 알려진 것보다 성추행 강도가 더욱 심각할 것이라는 미국발 기사까지 전해지면서 사건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애초 피해 여성의 진술과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내용이 판이하게 달라 양측의 첨예한 진실 공방으로 이어지는 기미를 보였지만, 여러 증언과 정황이 속속들이 밝혀지며 사건의 윤곽이 그려지고 있다. 역대 최악의 고위층 성추문 사건으로 기록된 ‘윤창중 사태’, 그날의 사건을 시간별로 재구성해봤다.
엉덩이 만졌다(grab) vs 허리만 툭 쳤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5월 7일 밤 윤창중 전 대변인은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개최된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만찬’에 참석했다. 그 뒤 윤 전 대변인과 피해 여성(현지 인턴), 윤씨의 운전기사는 밤 9시 40분경 인근 W워싱턴DC호텔 지하 와인바에서 술을 마셨다. 이들은 자정까지 와인 두 병을 마셨다. 윤 전 대변인은 해명 기자회견에서 술자리를 갖게 된 이유에 대해 “그 전에 몇 차례 인턴을 심하게 꾸짖은 것이 마음에 걸려 위로차 가벼운 술자리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윤 전 대변인은 피해 여성에게 “오늘이 내 생일이니 내가 한잔 사겠다”고 했다는 것. 하지만 주민등록상 윤 전 대변인의 생일은 7월 17일. 애초부터 접근의 목적이었음이 의심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또 자정 직전까지 술을 마신 것이 밝혀지면서 “밤 10시 30분까지 술을 함께 마셨다”는 윤씨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와인바가 문을 닫자 윤 전 대변인과 피해 여성은 호텔 로비로 이동해 10여 분 더 술을 마셨다. 그 사이 운전기사는 차를 가지러 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때는 윤 전 대변인과 피해 여성 둘만 있었던 셈이다. 이 사이 윤 전 대변인이 피해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는 1차 성추행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은 현지 경찰에 “(윤 전 대변인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grab)”고 진술했다. 윤씨는 또 피해 여성에게 “너와 나는 잘 어울린다” “오늘이 내 생일인데 아무도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다” “외롭다”는 등의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윤 전 대변인은 “술은 10시 30분까지 마셨고, 운전기사도 동행한 자리에서 엉덩이를 만질 수가 있었겠는가? 앞으로 열심히 살라는 의미로 허리만 한 번 툭 쳤을 뿐”이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알몸으로 성관계 요구했다 vs 인턴임을 확인하고 내가 먼저 문 닫았다
다음날인 5월 8일 새벽 5시 30분, 워싱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기에 앞서 수행단의 짐을 한곳에 모아야 했지만, 윤 전 대변인만 짐을 내리지 않아 한 인턴이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씨는 “그걸 왜 이제야 알려주느냐”며 호된 질책을 했다고 한다. 이후 피해 여성이 윤 전 대변인의 호출을 받고 그의 방을 찾은 것은 새벽 6시경. 그 당시 윤 전 대변인은 알몸 상태였다. 당시 윤 전 대변인은 또 한 번 피해 여성의 엉덩이를 움켜쥐며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진술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피해 여성이 거부하자 윤 전 대변인이 ‘XX년 어제는 만져도 가만있더니 오늘 한 번 하자는데 왜 XX이야’라는 취지로 성관계를 요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민정수석실 조사의 자술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 당시 “샤워를 하고 팬티만 입고 있는데 벨을 눌러 나가보니 인턴이어서 ‘네가 여길 왜 왔느냐’고 호되게 질책한 뒤 곧바로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반면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에서는 스스로 ‘알몸’이었음을 자인해 그의 기자회견 발언은 신빙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결론이 우세하다.
경찰 신고 확인 후 가방 놓고 도망 vs 난 떳떳하다
행사 참석을 위해 오전 6시 50분쯤 호텔을 출발한 윤 전 대변인은 경찰 신고 소식을 접하고 오전 7시 30분쯤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윤 전 대변인은 피해 여성의 방을 찾아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그사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한국문화원은 오전 9시쯤 서울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윤 전 대변인은 오전 9시 20분쯤 백악관 영빈관 앞에서 이남기 홍보수석 비서관을 만났다. 일정에 쫓긴 이 수석은 “행정관과 대책을 논의하라”며 윤 전 대변인에게 자신의 호텔방 열쇠를 줬다. 이후 윤 전 대변인은 한국문화원 측 남성 인턴이 운전하는 차량을 제공받아 덜레스공항으로 이동, 오후 1시 35분 비행기로 황급히 미국을 떠났다. 호텔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윤 전 대변인의 가방이 남아 있었다.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내가)‘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한국에 가야 하느냐?’라고 따지자, (이 수석이)‘재수 없게 됐다’며 한국에 먼저 가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윤 전 대변인과 피해 여성의 진실 공방에서, 청와대와의 진실 공방으로 사건이 번진 계기다.
워싱턴 피해 여성 집 직접 가봤다!
여성 인턴 아버지 심경 고백
1 워싱턴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거리에 있는 피해 인턴사원 A양의 집 입구. 2 윤창중 전 대변인과 여성 인턴사원이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진 워싱턴 시내의 바 내부. 3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워싱턴 메트로폴리탄 경찰청.
성추행 의혹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만난 일이 있다.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차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뉴욕을 거쳐 워싱턴에 도착한 5월 6일 밤(워싱턴 시간)이었다. 워싱턴 시내 페이팩스 호텔에서 기자실을 단장하느라 청와대 홍보수석실 직원들이 분주한 때였다. 기자실 내 연단의 청와대 문장 위치를 바꾸라고 지시한 윤 전 대변인이 다가왔다. 인사말을 건네자 그는 “어! 여기 계셨네”라며 멈칫 하더니 “그만 좀 조지세요”라고 난데없이 쏘아붙였다. ‘조진다’는 말은 기자들 사이에서 ‘비판한다’는 말과 동격이다. 박 대통령 방미 전에 쓴 특파원 칼럼에서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이 너무 짧고 성의가 없어 박근혜 정부의 불통 논란을 부추긴다고 꼬집은 걸 가리킨 말이었다. “오늘은 바쁠 테니 내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워싱턴 특파원들과 저녁이나 함께 하자”고 했더니 “다음에, 다음에”란 말을 남기고 휑하니 사라졌다. 7년 전 청와대 출입기자로 워싱턴을 방문했던 터라 청와대 방미팀이 얼마나 바쁜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청와대 수행원들은 한시름을 놓는다. 그 시간에 만나자고 한 건 그런 경험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 윤 전 대변인과의 만남은 무산됐다. 그는 그 시간에 청와대 기자들이 묵는 페어팩스 호텔도 아니고, 정부 수행원들이 묵는 윌러드 호텔도 아닌, 엉뚱한 W호텔에서 인턴 사원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정상회담을 수행한 청와대 대변인의 워싱턴 성추행 의혹 사건은 말 그대로 ‘단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승만부터 이명박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때마다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러 워싱턴을 방문했으나 이런 일은 없었다. 대통령이 해외를 순방할 때면 가장 바쁜 자리 중 하나가 청와대 대변인이다. 대통령 숙소 따로, 수행원 숙소 따로, 기자단 숙소가 따로다 보니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대통령의 메시지를 이곳저곳에 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래서 청와대 대변인에게 별도의 차를 내주고, 인턴 직원도 배정해왔다. 박근혜 정부만 예외로 청와대 대변인에게 특별대우를 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아무도 예상하거나 상상하지 못한 윤창중 사건의 비극이 제도나 관행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한 개인의 비뚤어진 일탈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식지 않는 교민들의 분노
5월 17일 오후 미국 워싱턴 근교의 버지니아 애난데일의 한인연합회관에 10여 명의 한인회 임원들이 모였다.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의혹 사건이 일어난 지 꼭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워싱턴 한인연합회(회장 린다 한) 등 30여 개 한인 단체들은 공동으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태에 대한 동포단체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발표했다. 대표로 연단에 선 이문형 한인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성명서를 발표하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고 운을 뗐다. 성명서에는 구구절절 이번 사건을 보는 교민들의 심정이 담겨 있었다.
윤창중 사건을 대하는 재미교포들의 마음은 ‘멘붕’ 그 자체다.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 사는 제이슨 박은 “어느 한 개인이 한 국가를 모국으로 삼고 있는 이들을 이토록 창피하게 만든 사례가 있나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TV의 시사토크쇼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 또는 ‘해외토픽’감으로 다루고, 가까운 외국인 이웃들이 어색한 발음으로 ‘엉창즈응(윤창중)’에 대해 묻는다”며 개탄했다. <뉴욕타임스>가 “윤창중 대변인은 발탁 당시부터 가장 논란이 많았던 인물 중 하나였다”며 아예 문제아 취급을 한 게 오히려 다행일 정도다. 교민사회가 이번 상처를 씻어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김창준 전 연방하원의원은 “이런 사건을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며 “미국 경찰의 수사를 믿고 기다리자”고 말했다.
가슴으로 우는 피해 여성 아버지
교통사고의 경우 ‘가해자는 칼잠을 자고 피해자는 발 뻗고 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성추행 사건은 정반대다. 피해자의 가슴에 남는 모멸감과 상처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5월 16일 밤 워싱턴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을 달려 찾아간 피해 인턴사원 A양의 집은 외진 곳에 있었다. 도로에서 ‘사유지’라는 팻말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작은 숲 속으로 200m쯤 걸어 들어가야 집이 보였다. 희미한 미등 하나만 켜져 있을 뿐 적막이 흘렀다.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하는 이는 없었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미국은 사유지를 침범할 경우 곧바로 경찰을 부를 수 있어 맘대로 집 안을 둘러볼 수도 없었다. 하루 전 A양의 아버지는 잠시 산책을 나왔다가 <세계일보> 특파원을 만나 짧은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엉덩이만 만졌다고 경찰에 신고했겠어요? 그 사건 이후 딸이 5파운드(2.3kg)나 빠졌어요. 경찰이 조사 중이니 다 끝나고 얘기합시다. 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나중에 하라’고 했어요.”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피해자인 “인턴직원이 일을 잘 못하고 실수가 잦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의 무능을 부각하기 위해 계산된 발언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A양은 기자도 잘 아는 인물이다. 주미대사관의 인턴직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 성격도 명랑해 주미대사관과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주최하는 한식 세계화 행사나 한국 전통문화 행사의 사회를 보기도 했다. 그를 가르쳤던 대학의 교수, 친구들은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라며 “특히 모국인 한국에 대한 관심이 유난히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A양의 꿈은 외교관이었다. 평소 친구들에게 “한국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 꿈을 ‘윤창중’이라는 훼방꾼이 짓밟은 셈이다. A양의 아버지는 “이번 일로 (딸의) 꿈이 바뀔 것 같다. 친구들도 이제 다 알 텐데…. 꿈이라는 건 늘 바뀌지 않느냐”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아버지는 딸의 장래가 걱정되는 만큼 윤 전 대변인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커지고 있었다.
“기자회견하는 거 보고 안심했어요. ‘저 사람은 저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했죠. 제가 상대해도 될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A양의 아버지는 미국으로 이민 와 정착에 성공한 사업가다. 이번 사건이 터진 뒤에도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해를 입히고 싶지는 않다”고 주변에 말할 만큼 이성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경찰 수사, 최소 1~2개월 걸릴 듯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건의 수사는 워싱턴 메트로폴리탄 경찰청에서 맡고 있다. 최초로 신고를 접수한 곳은 워싱턴 제2지구 경찰서였으나, 지금은 본청 격인 워싱턴 메트로폴리탄 경찰청 CID(범죄수사반 소속 ‘성범죄 전담 수사국)에서 맡고 있다. 한국 특파원들의 전화를 받는 폴 매캐프 경찰청 대변인은 “성추행 혐의로 수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워싱턴 경찰청 강력 파트에서 근무하는 한국계 형사인 조셉 오는 “미국 경찰의 업무수칙 중 첫째는 수사 중 기밀 유지”라며 “대변인의 경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사 상황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는 위치”라고 말했다. 수사 상황의 기밀을 누설할 경우 감봉 등의 처분을 받는다. 이 수칙을 세 번 어기면 파면도 당할 수 있다. 특히 워싱턴 경찰은 중간 수사발표를 하지 않는다. 수사 상황을 정리해 검찰에 기소장을 제출할 때까지도 결과를 알 수 없다. 검찰 기소로 재판이 시작될 때 피해자와 가해자 측 변호인이 요구할 때만 비로소 수사기록이 공개된다. 이런 절차를 거치려면 적어도 1~2개월은 걸린다.
윤창중 평소 술버릇은?
젊은 여기자 편애, “한번 안아보자” 말하기도
윤창중 전 대변인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 3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한 언론인 출신이다. 1981년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십수 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술 접대 자리가 많았지만, 연차가 쌓이고 지위가 높아지면서부터 술자리를 조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여러 번 술자리를 가졌다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정치부 기자 시절의 그를 회상하며 “본인의 취재에 해가 될까 싶어 술자리에서도 각별히 조심하는 경향을 보였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마셔봐야 막걸리 한두 잔”이라고 전했다. 그랬던 그는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의 수석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하면서 달라졌다. ‘권력의 늪’에 빠진 것이다. 한 언론에 따르면, 그가 인수위·청와대 시절 기자들과의 식사 모임에서 “아무리 조져봐라. 나는 절대 안 날아간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파격적인 언행은 박근혜 대통령의 든든한 후광을 믿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내에서는 “그가 ‘불통 대변인’이라는 꼬리표가 있지만, 대변인으로서 사실만 전달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일에 있어서는 확실한 사람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기자들과의 식사나 술자리를 거의 갖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젊은 여기자들은 예외’인 것으로 보인다. 한 언론에서는 그가 일부 정치부 젊은 여기자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을 만한 전화를 했다고 전했다. 윤창중 전 대변인이 자꾸 밥 먹자고 전화를 한다는 것. 평소 기자들과 동석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기로 유명한 그였기에 젊은 여기자들만 콕 찍어 밥을 먹자고 한 것은 의심받기에 충분한 행동이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술자리 언행에 대한 증언도 나왔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는 한 여성 당직자는 “당시 함께 일하던 사람들끼리 기분 좋게 술을 한잔 했는데, 2차로 노래방을 가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동석한 20대 여자 직원에게 ‘한번 안아보자’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숨겨왔던 술버릇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인턴사원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W워싱턴DC 호텔 전경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아내 이모씨의 처절한 심경
인턴사원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윤창중 전 대변인. 기자회견에서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그가 장기간 칩거 중인 가운데, 미국 경찰의 체포영장이 곧 발부될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의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태 이후 밤잠을 못 이루고 한때 실신까지 했다는 윤창중 전 대변인의 아내 이모씨의 심경을 취재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5일 만에 수석 대변인으로 임명된 ‘1호 인사’였다. 하지만 밀봉 자작극에 윤봉길 후손 논란, 칼럼 막말 파문까지 자질 논란이 끊이지 않다가 청와대 대변인 생활 78일 만에 전대미문의 성추행 사건을 일으켜 결국 경질되고 말았다. 미국에서 돌연 귀국해 기자회견을 열어 성추행 혐의를 부인한 그는 이후 자택에서 수일째 칩거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 누구보다 힘든 건 당사자다. 하지만 당사자 못지않게 힘든 건 그의 가족일 터다. 관계자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의 아내 이모씨는 이번 사건이 불거지면서 제대로 잠 한숨 못 자고 식음을 전폐했으며, 나날이 커지는 의혹에 최근엔 실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를 만나기 위해 김포 자택을 찾았다.
집 앞에 열띤 취재진, 안에서 1시간 째 통곡소리
윤 전 대변인의 집 주변은 온통 취재진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기자들은 간이의자, 목베개 등 다양한 용품을 챙겨와 며칠째 ‘대기’ 중이었고, 아파트 계단부터 입구, 현관 앞까지 줄줄이 앉아 사발면을 먹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만큼 윤 전 대변인 사태가 심각하다는 증거지만, 이는 집 안에 있는 당사자와 가족들의 숨통을 조일 만큼 과해 보이기도 했다.
이른바 ‘윤창중 사태’가 일어난 지 열흘째. 윤 전 대변인의 집 우편함에는 각종 청구서 등 우편물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취재진을 의식한 듯 거실 창문 등에는 신문지를 붙여놓았다. 기자가 찾아간 세 차례 동안 이씨는 집 안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상태였다. 벨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깜깜한 밤 거실에 사람의 그림자가 확인돼, 한때 윤 전 대변인이 자살했다는 내용의 괴소문을 일축했다.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건’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던 미국 변호사는 5월 12일 밤 윤 전 대변인의 자택을 방문한 뒤 “사모님은 울고 계시죠, 울기밖에 더 하겠습니까”라고 가족들의 상태를 전했다. 이어 “공직자로 들어온 사람인데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신문에 나온 기사들을 보고 (윤 전 대변인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 언론매체는 13일 오전 7시쯤 “윤 전 대변인의 자택 현관문 안에서 아내의 통곡소리가 들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매체는 “아내의 통곡소리는 한 시간 넘게 계속됐고, 엄마를 위로하는 아들의 목소리도 간간히 들렸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로 가족들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집 안에서 며칠째 나오지 않고 있는 이씨. 직업이 교사인 그녀는 학교에도 며칠째 못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씨가 재직 중인 서울의 한 중학교를 찾았다.
“이 선생님은 몸이 많이 안 좋으세요. 지난 주 목요일(5월 9일)부터 안 좋아지기 시작해 다음 날 아예 목소리가 안 나오시더라고요. 그래서 도저히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 오후에 바로 조퇴하셨어요. 당시엔 그저 환절기 감기라고 생각해서 약 먹고 푹 쉬면 좋아지겠지 싶었는데, 그때부터 쭉 병가를 내시더라고요. 마침 석가탄신일 전날이 개교기념일이라 그 주를 이용해 병가를 내신 것 같아요.”
1 윤창중 전 대변인의 아파트 입구. 2 윤 전 대변인의 아내가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학교 전경.
목소리 안 나올 정도로 건강 악화, 일주일 병가 내기도
학교 측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씨는 이번 사건이 일어난 지 4~5일째 만 해도 통화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런데 언론의 부담스러운 접촉 때문인지 갑자기 전화를 안 받기 시작하고, 이후부터는 아예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고 전했다.
3학년 담임인 그녀의 수업은 시간강사가 대신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 선생님은 평소 성실하고 올곧은 성품으로 신망을 얻고 있는 분”이라며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어 있어 학생들에게 늘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 내에서 그녀의 부군이 윤창중 전 대변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그만큼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내세우거나 과시하는 분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과 군대에서 제대한 아들, 이렇게 아들만 둘 있다고 들었어요. 대학원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쉰여섯 나이에도) 교직을 떠나지 못한다며 우리끼리 ‘자식농사 짓기 힘들다’는 식으로 우스갯말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학교가 (언론에) 노출되면 불명예스럽게 교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건 아닌지 우려되네요.”
이 관계자는 “사건이 장기화될수록 핵심만 짚어야 하지 않느냐”면서 “아무 죄 없는 가족들을 두 번 죽이지 말라”며 동료로서 진심 어린 걱정을 내비쳤다.
그렇게 며칠 뒤 김포 자택을 다시 찾았다. 이날 기자는 지인의 부축을 받으며 집을 나서는 이씨를 만날 수 있었다. 학교 관계자의 말대로 여전히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상태였고, 한눈에 봐도 수척해진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얼굴빛은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려 있어, 그녀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친 모습으로 이웃의 지인과 함께 힘들게 발걸음을 옮긴 그녀는 끝내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가기 위해 나서는 것으로 알려진 이씨는 눈물범벅이 된 채 어렵게 말을 이었다.
“제발… 그만하세요……(동행한 지인)”
그렇게 집을 나선 이씨는 이후 자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취재 결과, 이씨는 그날 이후 지인의 집에서 칩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윤창중 전 대변인은 머지않아 미국 연방법원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DC 경찰청 관계자가 언론에 밝힌 내용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수사가 끝나는 대로 연방법원에 체포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며 “경범죄가 되든 중범죄가 되든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과 증거자료를 토대로 혐의자 체포를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경찰이 수사를 끝낸 후 경범죄의 경우는 1개월 이내, 살인은 9개월 이내, 나머지 범죄는 1백 일 이내에 재판이 진행된다”며 “이번 사건은 수사 종료 후 1백 일 이내에 재판이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경찰이 윤 전 대변인을 둘러싼 수사 상황을 언론에 공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윤 전 대변인 측에서 어떤 대응을 할지, 순순히 미국경찰의 수사에 응할지 향후 결과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