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서진씨, 진짜일까?”
재벌 2세, 엘리트 출신, 엄친아….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서진의 수식어는 그랬다. 럭셔리한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이미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지하고, 과묵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에게 친근한 스타는 아니었다. 작품으로만 시청자를 대하는 편에 가까웠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이서진은 지난 1999년 SBS TV <파도 위의 집>으로 데뷔한 후 지난 2003년 MBC <다모> <불새> 등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SBS <연인>, MBC <이산> <혼> 등에서 묵직한 연기를 펼쳤다. 주로 맡은 배역은 왕 혹은 재벌이었다. 그 흔한 로맨틱 코미디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이랬던 이서진이 엉뚱한 곳에서 ‘포텐’을 터트렸다. 드라마도 영화도 아닌 예능에서다. 케이블 채널 tvN <꽃보다 할배>(이하 <꽃할배>)에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맛보게 됐다. ‘H4’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을 보필하면서 짐꾼, 통역사, 가이드, 요리사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꽃할배> 속 이서진은 반전 그 자체였다. 기존 이미지와 180도 다른 허술한 모습이 시청자들을 당황시켰다. 몰래 카메라에 당하고, 낯선 환경에 당황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평이다. <꽃할배>에서 드러난 이서진의 숨겨졌던 반전 매력을 살펴봤다.
<꽃할배> 속 이서진은 허술(?)했다. 나영석 PD의 몰래 카메라에 속고, 또 속았다. 1편에서는 걸그룹과 함께 유럽 여행을 간다는 말에 100% 속았다. 걸그룹 취향에 맞춰 옷까지 사는 등 기대에 차 있다가 할배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돼 충격에 빠졌다. 2편에서도 마찬가지. 1편과 달리 무방비 상태에서 ‘소녀시대’ 써니를 만나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허술한 매력은 유럽 여행 도중에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일례로 프티 프랑스로 유명한 지역 스트라스부르에서는 길을 헤맸다. 낯선 수동 운전 때문에 30m 거리를 한 시간 동안 돌아간 것. 설상가상(?) 백일섭이 옆자리에 타자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이런 그의 모습은 100% 리얼이다. 알고 보면 허당이라는 것. 자신만만해하는 겉모습과 달리 잦은 실수로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종종 겪는다는 설명이다. 소속사 식구들과 함께 미국 애리조나로 화보 촬영을 갔을 때도 숨겨왔던 허당기를 발산, 소속사 식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는 것.
“투덜이 이서진, 실제일까?”
소속사 관계자는 “이서진이 경비 절감을 이유로 직접 운전을 하겠다고 했다. 스태프들이 말려도 자진해서 운전, 가이드, 통역 등을 맡겠다고 나섰다”면서 “한데 애리조나에 가니 날씨가 너무 덥더라. 게다가 F/W 화보라 오리털 옷을 입어야 했다. 땀 흘리며 촬영하고 일정이 끝나면 바로 운전을 해야 했다. 그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한 기억이 있다”라고 말했다.
반전 태도도 새롭게 드러난 매력 중 하나다. 일단 할배들 앞에서는 순한 양 그 자체다. H4 앞에서는 늘 예의 바르고 공손하다. 그 어떤 요구에도 즉각 응해 ‘램프의 요정 서지니’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 또 여행 도중 박근형이 생일을 맞자 생일상과 선물을 직접 준비하는 등 배려심 넘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제작진 앞에서는 늑대로 변한다. 특히 나 PD와 단둘이 있을 때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속아서 유럽까지 왔다” “교통비를 지원해달라” “나만의 시간을 갖게 해달라” “대신 줄을 서달라” “그럼 제작진이 해주든가” 등 까칠한 면을 보여줬다. 극과 극의 이미지에 재미는 2배가 됐다.
소속사 측은 “두 가지 모습 모두 이서진의 성격이다. 일단 예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선생님들 앞에서는 늘 젠틀하다”라며 “하지만 비교적 편한 사람들에게는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마저도 본심이 아니라 말뿐이다. 일단 ‘싫다’고 한 뒤 못 이기는 척 해주는 것이 재미있나 보다.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라고 귀띔했다.
측근들도 놀란 매력은?
나영석 PD 역시 반전 매력을 칭찬했다. 나 PD는 “이서진이 카메라 앞에서는 힘들다고 말하지만 뒤에서는 할배들을 가장 걱정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특히 선생님들의 건강 상태를 가장 신경 썼다"며 “제작진에게는 ‘다음 여행에서는 더 잘해야 한다’는 진심 어린 충고도 해준다"라고 전했다.
측근들조차 놀랄 만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유럽 여행 도중 요리를 한 것이다. 할배들의 요구에 술안주용 부대찌개를 만든 것. 손도 씻지 않은 채 양파를 벗겨내고 육수를 만드는 등 서툰 모습을 보이다 결국에는 라면 스프로 맛을 내는 모습이 웃음을 줬다.
그를 잘 아는 지인은 “이서진이 유럽 여행에서 직접 요리를 했다고 해 깜짝 놀랐다. 평소 요리의 요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며 “실제로 이서진은 집에서 음식을 해 먹지 않는다. 집 냉장고에는 생수와 맥주만 있을 정도다. 우리도 못 봤던 새로운 면이라 이색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제작진이 의아해했던 것 중 하나는 다소 무미건조한 그의 태도였다. 선생님들과 함께 가는 여행, 게다가 방송인데도 표현에 인색했다는 것.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아부(?)를 떠는 일은 없었다. 그저 묵묵하게 제 몫을 다하는 식이었다.
“왜 그동안 몰랐을까?”
나영석 PD는 “여행 내내 단 한 번도 선생님과 제작진 앞에서 ‘○○ 선생님이 좋습니다’ ‘△△ 선생님 존경합니다’ 등의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선생님 칭찬을 해봐라. 그래야 이미지가 좋아진다’고 회유해도 절대 하지 않았다”며 “할배들에 대한 존경심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줬다. 이 점 때문에 이서진이라는 사람을 높이 사게 됐다”라고 칭찬했다.
다시 말해,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이서진은 선입견에 가까웠다. <꽃할배>에서는 기존의 차갑고 냉정한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방송에서 드러난 이서진의 본모습은 허술하고 투덜거리지만 속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동안 철저히 숨겨졌던 것은 다소 제한적인 활동 때문이었다. 이서진은 예능과는 거리가 먼 스타였다. 연기 활동으로만 대중과 소통해왔다. 게다가 비슷한 성향의 캐릭터가 많았다. 주로 진지하고 우직한 스타일로 남성미를 어필하는 식이었다. 대중이 작품 속 캐릭터와 이서진을 동일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서진 측은 “다작 배우도 아닌 데다 연기할 때만 카메라 앞에 서다 보니 고정된 이미지가 있었다”면서 “소속사에서는 이서진의 매력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팬들이 알면 좋아할 모습이 많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행보는?
그런 면에서 <꽃할배> 출연은 신의 한 수였다는 평이다. 소속사는 “이서진에게 <꽃할배>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팬들에게 이서진의 매력을 알릴 기회라고 판단했다”며 “예상대로 방송에서 이서진의 매력이 그대로 나온 것 같다.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만족스럽다”라고 덧붙였다.
이제 이서진은 예능 블루칩이 됐다. 고정된 이미지는 깼고,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됐다. 앞으로의 행보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꽃할배>처럼 이서진의 색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가 점점 늘고 있다.
이는 본업인 연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작품 러브콜도 쏟아지고 있는 상태다. 과거에 비해 장르 면에서 다채로워졌다. <꽃할배> 전에는 사극과 정통 멜로 등 다소 무거운 작품들의 섭외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로맨틱 코미디 섭외도 받고 있다. 허술한 매력이 ‘로코’에서도 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 것이다.
소속사도 이 같은 변화에 놀라워하긴 마찬가지. 소속사 관계자는 “출연 제의가 들어오는 작품의 장르가 다양해졌다. 확연하게 달라진 부분”이라며 “이서진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변화로 받아들인다. 전과 달라진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라며 흥미로워했다.
하지만 섣불리 차기작을 결정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작품 선택은 오롯이 이서진에게 맡긴 상태. 이서진 측은 “이서진만의 작품 고르는 룰이 있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소속사와 다른 편이다. 소속사에서 <다모> 분위기가 좋다고 하면 본인은 <혼>을 좋아하는 식”이라며 “늦어도 내년 2~3월 안에는 작품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일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서진의 반전 태도도 새롭게 드러난 매력 중 하나다. 일단 할배들 앞에서는 순한 양 그 자체다. 하지만 제작진 앞에서는 늑대로 변한다. 특히 나 PD와 단둘이 있을 때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속아서 유럽까지 왔다” “나만의 시간을 갖게 해달라” “대신 줄을 서달라” 등 까칠한 면을 보여줬다. 극과 극의 이미지에 재미는 2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