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6개월이 되었을 때 입양돼 1974년 2월 프랑스에 왔다.”
플뢰르 펠르랭 개인 블로그의 공식 자기소개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플뢰르 펠르랭의 또 다른 이름은 ‘김종숙’. 그녀는 의심할 여지없는 완벽한 프랑스인이지만, 한국인 입양아라는 독특한 이력 또한 부인할 수 없는 그녀의 근간을 이룬다. 그녀의 첫 고국 방문이 더욱 반가운 이유이기도 하다.
플뢰르 펠르랭이 지난 3월 23일, 24개 프랑스 유망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대표 수행기업단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그녀는 나흘 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총리와 장관들, 기업인을 두루 만나 양국 간 중소기업 협력 방안을 모색하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펠르랭은 생후 6개월 때 프랑스로 입양돼 원자물리학 박사인 아버지와 평범한 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행복하게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과 피아노 연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또 한 프랑스 방송에서는 노래 반주기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남편은 공무원인 로랑 올레옹이며,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딸 베레니스가 있다. 그녀는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와 한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여덟 살의 내 딸 초록잎(딸)의 내일”이라고 말할 만큼 평범한 엄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외에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눈부실 만큼 화려한 성취를 이루며 살았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현지에서도 ‘눈부신 학력의 소유자’라고 소개할 정도로 프랑스 최고의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6살 때부터는 감사원에서 교육·문화·커뮤니케이션 담당으로 일했다. 2002년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의 연설문 담당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2007년에는 올랑드의 동거인이었던 세골렌 루아얄이 사회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때 미디어 담당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2010년에는 여성 엘리트 정치인들의 모임 ‘21세기 클럽’의 회장도 지냈다. 그러다 지난해 프랑수아 올랑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드디어 정치 전면에 나선 것이다. 프랑스 현지에서도 경제 분야 수장으로서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평범한 한국계 입양인이 프랑스의 진정한 ‘플뢰르’(Fleur, 프랑스어로 ‘꽃’이란 뜻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가 된 것이다. 이런 입지전적인 인물이 40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으니 모든 관심이 쏠릴 수밖에. 그녀가 입국한다는 소식에 공항에는 일찍부터 취재진이 몰렸다.
“두 나라의 더욱 긴밀한 관계의 출발점이 되어 기쁩니다. 상당히 감동적이네요.(웃음) 무엇보다 프랑스를 대표해 한국에 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많이 놀랐습니다.”
태어나 처음 걸어보는 서울 거리
그녀는 3월 24일 저녁, 프랑스 기업인들과의 만찬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3월 25일에는 한불상공회의소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 회장을 만나 한국과 프랑스 중소기업 간 상호 교류를 협력키로 했다. 또 중소기업중앙회와 한불상공회의소 간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기도 했다. “한국 기업은 프랑스보다 독일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유럽에서 프랑스가 한국의 가장 큰 투자국이 되길 바랍니다. 그만큼 인력과 투자가 모이는 곳이고, 가장 개방적인 투자 유치국이라는 매력이 있는 곳이죠. 외국인 투자액은 이탈리아, 독일보다 두 배가 많습니다. 전체 고용의 7%를 외국 기업이 책임지고 있어요.” 펠르랭 장관은 특히 한국의 IT 기술과 인터넷 환경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인터넷 인트라는 정말 놀라운 수준”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뒤이어 1백50여 개 업체가 참석한 가운데 ‘혁신적인 성장을 위한 중소기업 협력’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듯, 펠르랭 장관이 뒤이어 소화한 일정은 SK텔레콤의 원스톱 소상공인 경영지원 서비스인 ‘마이샵’ 체험이었다. 그녀는 SK텔레콤 하성민 사장과 만나 다양한 ICT 사업과 관련해 심도 있는 논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에는 서울시청사 6층의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박원순 시장과 면담을 이어갔다. 펠르랭 장관은 파리 디지털 클리스터 조성을 앞두고 서울 상암동 DMC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방한은 중소기업 및 디지털 산업 관련 일정 수행을 위해 방한한 프랑스 관계자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펠르랭 장관과 프랑스 디지털산업계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을 마친 펠르랭 장관은 잠시 ‘서울 구경’의 재미를 만끽하기도 했다. 시청 앞 덕수궁까지 혼자 걸으며 천천히, 그녀만의 호흡으로 잠시 서울의 풍경을 둘러본 것. 한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니, 아마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에서 걸어본 것도 처음이었으리라. 뼛속까지 완벽하게 프랑스인으로 자란 그녀가 잠시 다른 감회에 젖었던 것은 아닐까? 그녀는 짧게 덕수궁을 둘러본 뒤 숙소로 향했다.
한국인들이 해외 입양아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감과 죄책감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죄책감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국계 입양아들은 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들과 좋은 발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근혜 대통령과의 특별한 만남
다음 날 오후에는 삼성 서초사옥 본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 향후 협력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파리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유독 반가운 것이 있다면, 바로 곳곳에서 발견하는 삼성의 광고 전광판일 것이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리는 파리는 기업들에게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홍보 시장’이고, 그래서 수많은 프랑스인에게도 삼성은 오히려 한국보다 더 친숙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친밀감을 표시하듯, 삼성은 펠르랭 장관 방문을 기념해 삼성전자 홍보관 딜라이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펠르랭 장관의 얼굴을 영상으로 띄워 환영했다.
펠르랭 장관은 곧바로 청와대로 장소를 옮겨 청와대 인왕실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하기도 했다. 방한 중인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전 대통령 등 5개국 전직 수반과 펠르랭 장관이 함께 모인 자리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40년 만의 방한을 축하한다”며 각별한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이어 5개국 전직 정부 수반들에게 영어와 프랑스어로 인사한 뒤 “각국에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지도자 여러분을 한자리에서 뵙게 돼 기쁘다. 할로넨 전 대통령과 펠르랭 장관은 처음 뵙는다. 다른 분들은 다시 뵙게 돼 반갑다”며 인사를 건넸다.
“대통령과 한국 측의 환대에 끊임없이 감탄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 정·재계 인사들을 만나 중소기업 분야는 물론 교육과 혁신, IT 분야에서 구체적인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겠습니다.”
펠르랭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한국인 부모 찾고 싶지 않다
방한 마지막 날인 27일에는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송도국제도시를 방문했다. 그녀는 짧은 기간에 대규모 도시가 개발된 것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바다를 매립한 곳에 이처럼 대규모의 도시를 단시일에 건설한 것이 매우 놀랍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펠르랭은 뒤이어 김포공항행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김포공항에서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프랑스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장관으로서 다양한 일정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 지하철로 이동하는 도중에는 최재숙 지하철 9호선 운영(주) 사장과 동석해 휴대폰으로 지하철 무선 인터넷을 체험했다.
“지하철은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인들도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죠.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데도 깨끗하고 안전한 대중교통 환경이 유지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지하철 안에서도 와이파이와 4G LTE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무척이나 놀란 눈치다. 휴대폰으로 직접 본인 기사를 검색하는 등 장난기 어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와, 인터넷이 정말 빠르네요. 한국인들의 디지털 문화는 정말 놀라워요!”
그녀의 첫 한국 방문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태어나 처음 본 고국은 그녀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펠르랭 장관의 눈부신 성공을 보면서, 한때나마 그녀를 보듬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미안함은 이제 거둬도 되는 것일까?
한국인들이 해외 입양아에 대해 갖는 책임감과 죄책감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생각을 분명히 말했다. 또 한국인 부모를 찾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국인들이 해외 입양아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감과 죄책감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죄책감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한국계 입양아들은 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그들과 좋은 발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프랑스에서 좋은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서 부족함 없이 성장했습니다. 특별히 차별받는다고 느낀 적도 없고요.”
그녀는 “한국인 부모를 찾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없다”고 말한다. “내 가족은 프랑스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움이나 결핍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아가 꽉 찬 그녀가 오히려 더 멋있게 보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