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없다’는 것만큼 혁신적인 것도 없다. 몽골에서 온 10대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은 그런 존재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SBS 에 출연한 이들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가사, 듣지 못했던 곡을 들고 대한민국의 눈과 귀를 쫑긋거리게 했다.
음악과 관련된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악보도 제대로 그릴 줄 모르면서’ 1년여 만에 54곡을 작사·작곡한 이찬혁(17세)군과 오빠가 즉흥적으로 부르는 멜로디를 모두 기억해 노래를 완성해가는 이수현(14세)양의 조화에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특히 공감을 자아내는 가사를 듣고 있자면 ‘맞아! 그거야’라고 절로 무릎을 치게 된다.
악동뮤지션은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에도 눈을 크게 떴다고 한다. 라면 한 그릇(‘라면인건가’), 다리 꼬는 모습(‘다리꼬지마’), 한국말에 서툰 외국인(‘외국인의 고백’)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상에서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다. 음표가 오선지에서 자유자재로 널뛰기하는 듯한 곡까지 더해져 악동뮤지션의 음악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해맑은 웃음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무공해 미소’도 신선했다. 이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작사·작곡한 곡을 대거 선보이며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휩쓸더니 결국엔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아이돌 스타’가 아이들의 장래 희망 1순위로 꼽힐 정도로 ‘연예인 추종자’들이 판치고, ‘연예인 양성소’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요즘, 정규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이들의 음악에 세상은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음악뿐만이 아니다. 대체 부모에게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가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몽골에서 별다른 학교에 다니지 않고 ‘홈스쿨’을 하며 배웠다는 이들의 말에 ‘부모의 교육법’이 화제 키워드로 떠올랐다.
‘대한민국 열혈 부모’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 악동뮤지션의 부모를 만나 그들의 ‘교육법’을 들었다. 지난 2008년부터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고 있는 이성근(43세)씨와 주세희(41세)씨는 “한국식 ‘간섭’을 버리니 오히려 아이들의 창의력이 폭발했다”며 “경쟁에서 자유로운 환경에서 애들을 키우다 보니 자율성과 창의력이 배가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녹록지 않던 몽골 생활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이들 가족은 찬혁군이 초등학교 6학년, 수현양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몽골에 정착했다. 아버지 이성근 선교사 때문이었다. 16세 때부터 선교사의 꿈을 지닌 그는 2003년 몽골을 처음 방문했을 때 ‘꿈을 이룰 때가 됐구나’ 하고 생각했단다. 기독선교단체에서 일했던 그는 결국 2008년 5월에 가족과 함께 몽골에 가서 살게 됐다. 처음 몽골에 가자는 그의 말에 가족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더군다나 도전 의식이 강한 찬혁군과 수현양은 “게르(몽골족이 사는 이동식 집. 천막처럼 생겼음)에서 살아야 하는 거야?”라며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몽골 생활을 시작했다.
“몽골 생활은 예상처럼 쉽진 않았어요. 정착하기 전 5년간 10여 차례 몽골을 방문하면서 어느 정도 몽골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살려고 와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위험해 보였죠. 하지만 힘들어하지 않을까 염려했던 아이들이 의외로 적응을 잘했어요.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데도 불평 한마디 없었죠. 다만 형편이 넉넉지 않아 아이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주지 못하는 게 속상했지요.”(이성근씨)
어머니 주세희씨 역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못한 게 항상 미안하다”고 말했다. “수현이가 피아노를 무척이나 배우고 싶어 했는데 학원을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아 아이에게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속상하더라고요. 한번은 찬혁이가 ‘요즘 스키니 진(몸에 꼭 붙는 청바지)이 유행인데 나도 하나 입고 싶다’고 말하기에 ‘그 옷을 꼭 입어야겠니’라며 설득하기도 했지요. 예쁜 옷도 사주고 싶었는데 항상 부족한 생활이 계속됐어요.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홈스쿨링을 하게 된 것도 이러한 부족한 형편 때문이었죠.”(주세희씨)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기에 몽골에 와서도 곧바로 학교를 보냈다. 1년간은 MK스쿨(한국인 선교사 자녀 학교)에 보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가 어려워졌다. 환율이 갑자기 오른 데다 가난한 선교사 생활로는 학비가 부담됐기 때문이다. 몽골의 학교는 대부분 사립이라서 학비가 그 당시 우리 돈으로 1인당 한 달에 30만~35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선교학교는 조금 싼 편이었지만 그마저도 보낼 만한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이들 부부는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이성근씨는 “혹시 아이들이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 공부를 시켰다”면서 “학교에서 하던 것과 똑같이 하자고 아이들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홈스쿨링 2년간은 마치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똑같이 행동하게 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오후 8시까지 국어·영어·수학·과학 공부를 시켰다. “처음엔 잘되는 듯했지만 아이들의 인내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어요. 특히 친구를 무척이나 그리워했죠. 홈스쿨링 2년째인 2010년 어느 날, 아이들이 제게 애원하다시피 ‘학교 좀 보내주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어요. 어느 부모가 아이들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지 않겠어요. 보내주고는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정말 속상했죠. 그날 밤 혼자 울었습니다.” (이성근씨)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자고 결심했다. 아버지 이성근씨는 그날로 자신이 짰던 시간표를 찢어버렸다. 그러곤 아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너희만의 시간표를 만들라”고 했다. 교재도 아이가 선택하게 하고, 학습 방법도 아이가 원하는 대로 했다. 음악과 체육 시간이 대폭 늘어나고, 국어책 대신 소설책이 ‘교과서’로 등장하고, 외국 영화를 보면서 영어를 익혔다. 아이들이 웃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그 모습에 부모도 절로 웃음이 났다. 그것이 행복이었다.
“방송 출연 이후 가장 달라진 점요? 안경을 쓰게 된 것이요.(웃음) 지금도 누군가 ‘1등하셨어요?’ 하고 물으면 그제야 ‘아, 우리가 어떻게 1등을 했지?’ 하곤 해요. 믿기지가 않아요”
“음식점에 가면 가격도 깎아주세요. 상금요? 우승을 하면 상금으로 신발을 사고 싶다는 얘길 했는데 신발은 이미 선물 받아서 다른 걸 생각 중이에요. 옷을 사고 싶어요”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의 대립 ‘최대한 솔직해져라’
“찬혁이가 중2 때였을 거예요. ‘사춘기 외계인’이라고 하잖아요. 그때가 가장 심했어요. 의사소통하는 방식이 정말 딴 세계에 접어든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대놓고 반항하거나 다툰 건 아니지만 생각과 표현 방식이 저희와 너무 달라 서로 이해를 못했죠. 아이가 한동안 대화를 안 하려 들더군요.”(이성근씨)
아버지 이성근씨는 “남들 겪는 만큼 똑같은 성장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찬혁이 어린 모습이 저 어렸을 때와 비슷해 날 쏙 빼닮았구나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사춘기 때 모습을 보니 전혀 절 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화를 도통 이어갈 수가 없으니 답답했어요.”
그때 아빠가 택한 건 ‘솔직하게 다가가기’였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아빠가 미안하다”며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아이들과 의견 대립이 있을 땐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기보다 “아빠를 설득시켜라” 하며 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처음엔 “아빠는 말을 잘해 우리와 상대가 안 된다”고 했던 아이들이 어느새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이야기를 했다. 어느새 쌓였던 마음의 벽도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이들 부부는 “대학도 굳이 갈 필요 없다” “학원도 갈 필요 없다”고 아이들에게 강조했다. “대학을 가야만 성공하는 게 아니다”라는 게 이들 부부의 신조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 경쟁이 없는 몽골의 환경은 어쩌면 그들에게 최적의 혜택이 됐을지도 모른다.
“저 역시 힘들고 가난하게 자랐어요. 찬혁이와 수현이의 지금 나이 때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고 한국에서의 정상적인 교육 혜택도 받지 못했죠. 한국의 제도권 교육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나 역시 그 틀에서 조금 벗어난 사고방식과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무엇이 돼라’고 강요하지 않았던 게 아이들이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틀이 된 것이죠.”(이성근씨)
오히려 ‘분발’한 것은 아이 쪽이었다. 찬혁이는 지난 2011년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먼저 아버지를 설득했다. 부모는 “굳이 안 봐도 된다. 천천히 생각하라”고 말렸지만 찬혁이의 뜻은 확고했다. 이성근씨는 “준비한 지 몇 달이 되지 않아 ‘잘될까’라며 걱정했지만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며 “일단 아이가 마음을 먹으니 시간 같은 건 문제가 안 됐다”고 말했다. “부모가 짜준 틀 안에서 주입하거나 강요하는 것만이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건 아니란 걸 그때 배웠습니다. 결국은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알아야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죠. 아이 스스로 동기부여가 돼 스스로 해내는 것이 ‘자기주도적 학습’의 바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자주 말했다”며 “교육의 중심이 교사나 부모가 아닌 학생 자신이라는 것을 찬혁이를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아이의 재능을 계발하는 데 ‘간섭’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도 그때 깨달았다고 한다. 어머니 주세희씨는 “아이들을 어른의 잣대로 재단하는 순간 아이들의 창의력은 무너진다”며 “‘못나니’라는 곡이 바로 그렇게 탄생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못나니’를 찬혁이가 처음 들려줬을 때 아빠가 맞춤법에 맞게 고쳐주려고 했어요. 아빠가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오래 했거든요. ‘못난이’라고 써야지 왜 글자 파괴를 하느냐고 했죠. 그런데 찬혁이가 ‘못난이’는 부정적인 의미로 느껴지는데 ‘못나니’로 바꾸면 귀엽고 앙증맞은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것이 자기 철학이라고요. 한때 아빠와 찬혁이 사이에 치열한 대립도 있었지만 곧 아빠가 수긍하고 찬혁이를 적극 지원하게 됐습니다.”
빼어난 글솜씨는 ‘적는 습관’ 때문
악동뮤지션이 특히 인기를 끄는 건 세대를 넘나들며 모든 이의 공감을 일으키는 가사도 있다. 악동뮤지션의 가사가 특히 인기를 끄는 건 재미있는 묘사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을 묘하게 버무렸기 때문이다. ‘라면인건가’엔 청년 실업에 허덕이는 요즘 젊은이의 모습이 녹아 있고, ‘다리꼬지마’엔 일종의 ‘허세병’ ‘욱하는 사회’를 담아냈다. 실제로 찬혁군이 가장 애착을 갖는 노래이기도 하다. 장난처럼 만든 곡이라 사람들이 좋아해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릴 꼬았지 배배 꼬였지/발가락부터 시작된 성장판 닫히는 이 기분”(‘다리꼬지마’), “매력학과를 나왔나/다이어트 중 마주친 치킨보다 매력 있어”(‘매력있어’), “걷는 게 귀찮아서, 배로 누운 그대로 여기저기 닦다 보니 안 해도 돼. 청소/ TV에 비치는 내 모습은 점점 비만이 돼 가. 나의 미래가 띵띵 불어버린 라면인 건가”(‘라면인건가’) ‘글 쓰는 데’ 취미를 들이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른 데는 아버지 이성근 선교사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선교사 이전 10년간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했던 그는 어릴 적부터 아이들에게 일기를 쓰게 하고 책을 많이 접하게 했다.
“어릴 적 찬혁이가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 쓰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제가 출판사를 다녔기에 그러한 아이의 재능을 주의 깊게 봤죠. 보통의 부모라면 미술 학원을 보냈을 텐데 저희 부부는 전지(全紙)를 사다 놓고 마음껏 그리고 쓰도록 했어요. 어떤 특정한 틀과 정해진 교육 방식에 아이들을 가둬놓고 싶지 않아서죠.”
어머니 주세희씨는 “어릴 때부터 책에 푹 빠져 살았던 것이 아이의 생각의 폭을 넓혔다”고 말했다. 찬혁군은 4세 때부터 동화책에 파묻혀 살았다. 당시 아버지가 출판사 일을 했기 때문에 집엔 항상 책이 많았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다섯 권씩 책을 빌려주는 배달 시스템이 있었는데 찬혁이가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말했다. 찬혁이는 이렇게 동화책을 보다가 한글을 깨쳤다.
“찬혁이는 ‘글자’가 탄생하는 걸 무척 신기해했어요. 절 볼 때마다 ‘엄마 이 글자는 어떻게 읽는 거야?’ ‘이 글자는 어떻게 만들어진 거야?’라며 매일 붙잡고 물었어요. 글자 자체가 아이에겐 ‘놀잇감’이 된 거예요. 글자를 이어 말이 탄생하는 과정이 신기하다며 저한테 매일 이 말 저 말 늘어놨어요. 저도 그런 모습이 재밌고 대견했죠.”(주세희씨) 하지만 몽골에선 아이들의 ‘학습욕’을 제대로 충족시킬 만한 환경이 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교재나 책을 사줄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교재가 턱없이 부족했다. 주위의 형·누나들에게 물려받은 참고서 몇 권이 전부였다. 가장 많이 도움을 받은 것이 인터넷 강의였단다. 주세희씨는 “무료 강의를 거의 다 다운받아서 봤다”며 “아이들은 EBSE 사이트를 통해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했고, ‘CO-OP’이라는 홈스쿨 그룹에서 영어권 친구들과 사귀면서 영어가 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고 남다른 이야기를 뽑아내는 데 대해 아버지는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것이 한국과 다른 특별한 것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선교학교인 MK스쿨에서 만난 친구들, 영어 홈스쿨 그룹인 CO-OP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 그리고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10세 미만의 아이부터 20세 이하의 형·누나들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과 어울리고 생각을 교환하다 보니 생각의 폭도 훨씬 넓어졌다는 것이다. 찬혁이가 써 내려가는 독특한 가사는 상당수가 몽골에서 사귄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얻어낸 것이라고 했다.
“친구들한테 아무 단어나 던져달라고 하곤 자기가 스토리를 만들어갔어요. 친구들이 얼토당토않은 단어를 이야기하는데, 찬혁이는 그걸 비틀어 이야기를 풀어갔어요. 찬혁이가 조금씩 비트는 걸 좋아하거든요. ‘다리꼬지마’ 같은 경우도 그렇게 탄생한 노래죠. 친구가 다리 꼬는 모습에 단박에 써 내려갔다고 하더군요. 친구들의 ‘재밌다’는 말에 더 으쓱해지곤 했죠.(하하) 찬혁이가 승부욕도 강하고 지는 것도 싫어해서 한번 마음먹은 일은 굉장히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죠. 친구들과의 ‘낱말 만들기’ 놀이 역시 그저 노는 것이 아닌 ‘학습’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 같아요.”(주세희씨)
아이들 재능을 키운 건 ‘칭찬’
아이들은 ‘음악’에 자연스레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선교사 생활을 하는 아버지는 찬양을 통해 이웃과 접했고, 집 안에는 찬송가가 항상 흘렀다.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음악을 가르쳐본 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음악을 자기의 몸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악동뮤지션이 ‘정해진 틀’대로 코드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 음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바로 이러한 ‘내재된’ 감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처음엔 아이들이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부모 된 마음으로 아이들이 예뻐 보였을 뿐인데, 주변에서도 다 좋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능력이 있나 보다’라고 뒤늦게 깨달았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서 서로 자연스럽게 화음을 만들어 부르는데, 정말 조화롭고 멋져 매일 두세 차례씩 아이들에게 콘서트를 요청해 노래를 부르게 했죠.”
그때마다 부모는 남매에게 칭찬을 노래 부르듯 했다. 박수 치고 웃고 호응하고 칭찬해주었다. 어머니 주세희씨는 “아이들에게 계속 칭찬해주었던 것이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수현이가 어느 날 노래를 부르는데 좀 독특하게 들렸어요. 주변에서 개성 있다고, 매력 있다고들 하더군요. 교회에서 마음껏 노래 부르며 즐거워했어요. ‘잘한다’는 소리에 본인이 신나서 더 열심히 하더군요. 찬혁이의 경우도 비슷해요. 찬혁이는 무언가 떠오를 때마다 달력이며 공책이며 눈에 보이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처마 밑 고드름이 녹아내리는 걸 보면서 ‘슬픔이 가득한 고드름이, 내리는 빗줄기에 눈물을 흘리는구나’라고 적은 거예요. 아이가 사물을 독특하게 바라보는 게 재밌고 신기해서 ‘너 정말 글 잘 쓴다’고 칭찬해줬죠. 그랬더니 자기가 신나서 계속 쓰는 거예요.”(주세희씨)
부모의 칭찬이 늘어갈수록 찬혁이의 글 솜씨도 늘어갔다. 어머니는 “우리 부부가 평소에도 잘 웃는 편인데 찬혁이가 쓴 글을 보고 크게 웃으면 아이가 굉장히 좋아했다”며 “아이가 으쓱해하고 좋아하는 모습에 일부러 오버해서 크게 웃어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저희는 아이들이 최소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가족이 함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을 품에서 떠나보낸 후 매우 후회하고 슬퍼하게 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실제로 악동뮤지션이 소속사를 어떻게 결정할지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만큼 남매는 이미 스타성을 인정받은 유명 인사다.
“주위 분들 조언을 많이 들으려고 해요. 부모님과 함께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 음악을 같이 고민하고 사랑해주시는 곳,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가르쳐주실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SM은 깔끔하고 세련됐고, YG는 딱 봐도 그냥 멋있어요. JYP는 직접 멘토링을 해주는 등 굉장히 가족적이에요.” (이찬혁군)
우승은 이들의 한계를 시험하고 남매의 우애를 다지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명성이 부담스럽기도 한 것. 인터뷰 말미에 ‘악동패밀리’는 상금 3억원을 이웃을 위해 좋은 일에 쓰겠다고 밝혔다. 진짜 교육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