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미술을 알기 쉬운 용어로 설명한 저서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미술계에서 대중과 단연 친근한 얼굴이 된 아트디렉터 한젬마씨. 이후 빼어난 미모와 말솜씨로 각종 방송과 라디오에서 진행자로 활동하며 ‘국내 최초 미술 전문 MC’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최근에는 대학교수, 코트라(KOTRA)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 간혹 쉬는 날이 생기면 딸 혜연이의 손을 잡고 근교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놀러 간다.
우리나라의 미술관과 박물관도 점차 다양하고 재밌어지고 있어요. 예전 엄마들이 공부하듯 미술관과 박물관에 아이를 데려갔다면, 요즘은 놀이공원에 가듯 즐기러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죠. 그곳에서 놀다 보면 아이의 생각이 넓어지기 마련이에요. 작품을 볼 때도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같이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유럽 아이들은 친구 집에 놀러 가듯 스케치북 하나 달랑 들고 미술관에 찾아가 몇 시간이고 작품 앞에 앉아 따라 그리며 놀곤 한다. 어릴 때부터 미술관에 놀러 가 예술을 자연스레 습득하는 분위기인 것. 엄마 한젬마도 딸 혜연이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한다. 관람을 하다가 무작정 바닥에 앉아 작품을 그려보자 하고, 그림 속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이나 꽃을 찾아보는 재밌는 미션을 같이 한다. 정말로 같이 즐기는 게 전부다. 단,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할 때’라는 전제가 붙는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어려서부터 뭐든 엄마가 하자고 하면 혜연이는 ‘재밌을 것 같다’며 곧잘 따랐다. 오늘도 크레파스 하나 들고 근교 예술 나들이에 나섰다.
딸 혜연이랑 가는 4월의 예술 나들이 스폿
배울 것도, 볼 것도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 나들이. 자주 가는 건 좋지만 아이 성향에 맞는 전시장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아트 디렉터 한젬마. 호기심 많고 감수성 풍부한 혜연이는 스토리가 있고 체험 가능한 전시장이 제격이다.
1. 산책하기 좋은, 사간동 갤러리 거리
경복궁 우측에 갤러리 집합촌이 조성되고 있다. 사간동에서 삼청동, 통의동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갤러리 벨트는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매력이다. 전시 감상 후 삼청동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기도 좋다.
한국의 근현대 미술을 전시하는 갤러리 현대, 한옥을 개조한 아담한 갤러리 류가헌, 신진 작가들의 전시를 볼 수 있는 금호갤러리는 엄마에게도 어려운 작품이 있을 수 있으니 큐레이터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위치_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2.국내부터 해외 미술이 한자리에,
리움미술관
국보급 전통 미술과 해외의 근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백남준은 물론 요셉 보이스, 매슈 바니, 데 미안 허스트 등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니, 사전에 아이에게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같이 인터넷을 검색해보는 등 정보를 공유하면 더 재밌게 관람할 수 있다.
위치_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47-18 문의_02-2014-6901, www.leeum.org
3.역사를 만나다, 국립중앙박물관
세계 6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제일의 박물관으로 고고관, 역사관, 미술관을 비롯한 45개의 상설 전시실이 있다. 이런 거대 박물관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오랜 역사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혜연이에게 딱이다. 현재 전시 중인 <미국 미술 300년>전은 신대륙 발견부터 오늘날의 미국에 이르기까지 미국 역사의 300년 과정을 볼 수 있는 전시회로 오는 5월 19일까지 열린다.
위치_서울시 용산구 용산동6가 168-6 문의_02-2077-9000, www.museum.go.kr
4.트렌디한 작품 세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시대 흐름에 따라 시기적절한 트렌디한 문화를 선보인다. 그만큼 매번 이슈가 되고, 찾는 이가 많은 인기 전시장 중 하나다. 3월 31일부터 전시 예정인 <세계 팝업 아트>전은 건축, 인테리어, 비주얼 머천다이징, 광고 등 다양한 산업과 접목한 팝업 아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마법학교와 지팡이, 빗자루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아티스트 브르스 포스터의 작품 ‘해리포터’는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 잡기에 충분하다. 5월 19일까지.
위치_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700 문의_02-580-1300, www.sac.or.kr
5.일상 속 재밌는 발상, 코트라 오픈 갤러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본관 1층에 문을 연 갤러리로 아트 디렉터 한젬마씨의 일터이기도 하다. 현재 전시 중인 <중소기업 라이프展-폰폰양의 상큼한 하루>는 ‘폰폰’이라는 가상 캐릭터의 일상을 그렸다. 블랙 라인 테이프로 드로잉한 거실·주방·파우더 룸 안의 광주요 도자식기, 대웅제약의 의약품, 자인글로벌의 귀마개 등 중소기업 제품이 리듬감 있게 자리 잡고 있어 아이의 흥미를 유발한다. 4월 30일까지.
위치_서울시 서초구 염곡동 300-9 코트라 본관 1층 문의_1600-7119
상황별 ‘한젬마표’ 예술 놀이법
한젬마씨는 굳이 ‘어린이용’ 미술관이나 박물관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평소 자신이 보고 싶었던 일반 전시회를 아이와 동행하는 식. 엄마의 그림 보는 취향을 아이와 나누고 서로의 관점을 공유하다 보면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체험 공간도 너무 복잡한 곳보다는 엄마와 아이가 소통하며 즐길 수 있는 전시장을 선호한다.
관람한다면│흥미로운 주제 설정과 스토리텔링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거대한 전시장에서는 유명 작가들의 일대기적 작품과 스토리가 있는 예술품을 만나게 된다. 책이나 TV, 거리 등에서 자주 접하는 명작인 만큼 학습 효과도 더할 수 있다. 하지만 ‘만지지 마시오’ ‘촬영 금지’ 등 하지 말라는 것투성이라 자칫 아이가 지루해할 수 있다. 그래서 한젬마씨는 관람 전, 공공장소에서의 매너를 숙지시킨 뒤 모녀만의 주제를 정해 전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전시장 나들이 갈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은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면 위험하다는 거예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딱딱하고 지루한 곳이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주제 선정과 스토리텔링을 유도해보세요.” 오늘 찾은 국립중앙박물관 <미국 미술 300년>전에서는 전시 리플릿을 들고 입장했다. 1부의 미국 개척기부터 6부의 1945년 이후 미국 미술까지 총 여섯 카테고리의 전시관을 돌며 작품을 전부 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래서 리플릿에 프린트된 카테고리별 대표 작품을 중심으로 관람하도록 유도했다. 숨은 그림을 찾듯, 작품을 하나씩 찾아서는 “왜 머리가 하늘 높이 섰을까?” “그림 속에서 말을 찾아봐” 등으로 작품을 관찰하게 했다. 이렇듯, 사진 속 작품을 찾아보는 미션은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 아이들의 집중도를 높이는 관람 방법이다.
- 1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발전사를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보여주는 도시 역사 박물관. 다채로운 체험교실과 문화 행사 등 전시 이외의 볼거리도 풍성하다.
위치_서울시 종로구 새문안길 문의_02-724-0114
2 장흥아트파크 앤디 워홀, 백남준 등 국내외 거장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전시품을 아이들도 공감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선별했다. 어린이를 위한 도슨트가 있고, 조경이 멋진 조각공원도 볼거리다.
위치_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문의_031-877-0500
“저 안에 동그라미가 몇 개 그려져 있게?” “파란색을 띠는 저건 뭘까?” 등 한젬마씨는 아이가 작품을 관찰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진다.
<제4부-세계로 향한 미국> 전시관에서 발견한 1905년 제작된 연꽃 문양 탁자를 혜연이 식으로 그렸다. 알록달록한 탁자라면 더 예쁘겠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직접 관찰하고 경험해보는 방식의 전시장에서 엄마 역할은 아이의 행동을 곁에서 지켜보고 호응해주는 것이다.
오늘 전시장에서 혜연이가 꽂힌 프리즈 매직 로즈. 매직로즈 영농조합
(www.magicrose.kr)에서 한 송이당 2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말 그대로 참여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해보면 알게 되고 해낼 수 있으면 그만큼 발달하고 있는 것이다.
체험한다면│그저 지켜보고 호응하기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 전시장이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한젬마씨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대형 전시장은 오히려 안 가게 된단다.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몸만 피곤했던 경험이 많았기 때문. 요즘은 건물의 구석 공간을 활용한 갤러리나 작은 미술관 등 문턱 낮은 ‘한 뼘 미술관’을 찾아 나선다. 새로운 시도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가득해 아트 디렉터로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오늘 찾아간 곳은 코트라 오픈 갤러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오픈 갤러리로 현재는 중소기업과 예술 간의 ‘소통’을 말하는 <중소기업 라이프展- 폰폰양의 상큼한 하루>가 전시 중이다. 블랙 라인 테이프로 그린 일상 풍경 속에 광주요 도자식기, 삼광글라스 밀폐용기, 자인글로벌의 귀마개 등 중소기업 제품이 벽면에 붙어 있는데, 직접 만지면서 관찰할 수 있으니 물 만난 고기마냥 혜연이는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 그런데 이상하다. 박물관 관람 때 적극적으로 ‘그림 읽어주는’ 엄마가 ‘방목형’으로 바뀐 거다.
“오히려 미술을 전공한 엄마가 아이의 창의력을 키우는 데 불리하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그림을 그리는 걸 지켜보다가 저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라며 손이 나간 적이 있어요. 아는 게 병인 거죠. 그래서 가급적 체험 전시장에서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따라주는 편이에요.” 딸 혜연이가 오늘 전시장에서 꽂힌 건 입김을 불면 색이 변하는 마법 장미꽃, 프리즈 매직 로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신기해했다. 이렇듯 체험을 하다 보면 아이가 꽂히는 게 한 가지씩 생긴다. ‘이영란 작가 감성놀이터’에서 한 모래 놀이도, ‘헤이리 딸기가 좋아’에서 만난 볼풀 놀이도 그랬다. 이럴 때 엄마는 기억해두었다 집에서도 놀 수 있도록 만들어주거나 아이가 신기해하는 현상에 대해 같이 찾아보는 역할을 하면 된다. 오늘은 프리즈 매직 로즈를 구입하자는 약속으로 마무리했다.
- 1 수원시 어린이 미술 체험관 수원미술관의 어린이 박물관으로 아이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전시회가 주로 열린다.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으며 현재 <성장 동화전>이 열리고 있다. 어릴 적 목욕탕의 기억, 지나간 추억을 예술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위치_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471 문의_031-211-0343
2 두산아트센터 내 두산갤러리 새로운 시도와 젊은 감각이 느껴지는 이색 갤러리. 현재는 일상 공간 속에서 파편화된 기억의 연상 작용으로 떠오르는 연속적 이미지를 그물, 벌집, 모래사장의 발자국 등으로 패턴화한 이지현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위치_서울시 종로구 연지동 270 문의_02-708-5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