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중 작성한 부부 계약서는 무효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기범·차지선’ 커플의 각서는 변호사의 공증을 받았지만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혼 전문 양소영 변호사는 “우리나라 법률상 결혼생활 중에 작성한 부부계약서는 실질적인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배우자의 약속 불이행으로 이혼 신청을 하게 되더라도 각서가 직접적인 이혼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드라마처럼 이혼 위기의 부부가 각서를 전제로 재결합했다면 이혼 조정 시 증거 자료로 채택되어 참고는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부부계약서가 실제로 존재할까?
할리우드 가십 기사를 읽다 보면 종종 발견하게 되는 단어 ‘프리넙(prenup : prenuptial agreements의 줄임말)’은 여러 가지 결혼 조건을 명시한 혼전 계약서를 의미한다. 외국에서는 대개 ‘이혼을 하더라도 상대방 재산을 나누지 않는다’고 적는데, 우리나라 법률에도 보장된 혼전 계약 제도인 ‘부부재산계약제도’가 있다. 결혼 시 재산 관리와 이혼 시 재산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 혼인 전에 미리 약정하는 것. 이 제도는 등기 등록을 통해 공증을 받을 수 있으며 그 후 법적 효력을 갖는다. 만약 이혼을 할 경우 재산 분할이나 자녀 양육권 분쟁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혼전 계약서는 최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적는 것이 나중에 혼선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면 ‘각자의 부모님께 매달 같은 금액의 용돈을 드린다’보다는 ‘한 분이 돌아가시더라도 양가 부모님 용돈의 액수는 언제든 같게 해야 한다’는 식.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 ‘강기범·차지선’ 커플이 재결합을 전제로 합의한 각서를 변호사인 며느리를 통해 공증 받는 장면.
무엇을 위한 혼전 계약서인가
결혼정보회사 ‘웨디안’이 결혼적령기 미혼 남녀 7백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2009년 11월 27일~12월 9일)에 따르면, 부부 재산에 대한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겠다는 응답이 53%로 나왔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결혼 전 재산 분할에 관한 사항을 계약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연예인이나 재벌 같은 유명인들이 조심스럽게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던 것이 요즘은 일반인도 심심찮게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다고. 또 재산 분할에 민감한 재혼뿐만 아니라 초혼 부부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한 법률 전문가는 이런 현상에 대해 연예인들의 이혼 후 재산권 분쟁 등을 보면서 미혼 남녀들도 결혼에 대해 불확실성을 느끼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또 결혼은 마음으로 서로 결합하는 것인데 결혼 전부터 나중에 깨질 때를 염려하고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씁쓸하다는 의견도 있다. 영국 <가디언>지에서 혼전 계약서를 기사화한 한 기자는 “만약 여자들이 처음부터 혼전 계약서를 언급하면 이미 그녀는 사랑보다 현실적인 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기사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부부 재산 계약서 작성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실적 면에서 보면 부부가 헤어졌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 또 부부 재산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이혼을 대비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목과 내용을 정할 때 이혼에 대비한 계약서로 보기보다는 부부 관계의 지향점으로 보고 작성해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