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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미, 사춘기 아들과 화해하기까지 엄마로서 겪은 남모를 고통

이성미의 교육법이 화제다. 7년 동안 캐나다에 살면서 온전히 엄마 역할에만 충실했다. 혹독한 사춘기를 보낸 큰아들 은기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면서 ‘문제 부모가 문제아를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니 모든 것이 바뀌었다.

On October 09, 2013

그녀 주변에는 늘 사람이 많다. 작은 체구와 반대인 넉넉한 마음 씀씀이 덕분이다.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그녀에게 SOS를 하는 후배들의 전화가 이어진다. 후배들과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입은 닫고, 지갑은 연다. 밥값이 제일 많이 들어간다. 후배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선배 이성미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즐겁고 재밌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람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진솔한 마음. 솔직하게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겠죠. 저는 어떤 얘기든 비밀을 보장해줘요. 결혼 초기에 기자로 일하던 남편이 특종을 제보해달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몇 번 다투기도 했죠. 아무리 남편이라고 해도 의리를 저버릴 수는 없다면서. 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비밀을 보장해주는 편이에요.

캐나다에서 7년 동안 지냈는데, 돌아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캐나다에서 지내며 제가 생각한 것은 딱 하나, 가족은 함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유학 잘 다녀와서 무슨 소리냐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아이들이 아빠에 대해 전혀 생각하질 않는 것 같았어요. 아빠라는 이름만 있지 아빠가 없어도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으니까요. 3년 정도는 찾는데 그 이후에는 한국에서 아빠가 오면 며칠 있다 갈 사람으로 취급하더군요. 특히 막내 은별이는 생후 14개월 때 캐나다로 데려왔기 때문에 아빠와 엄청 갭을 느끼더라고요. 아빠는 영어도 못 한다고 구박 아닌 구박을 하기도 하고 말이죠. 캐나다에 남편이 왔을 때 침대 한쪽에서 웅크리고 자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큰 침대인데 편안하게 사용하지 않고 한쪽 부분에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 혼자 저러고 있겠구나 싶어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아이들 반응은요? 은별이는 별 반응이 없었는데, 둘째 은비는 캐나다에 남겠다고 했어요. 캐나다에서 한국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공부하는지 귀동냥으로 많이 들었기 때문에 겁이 났던 거죠. 워낙 자기 관리가 철저한 아이라 아이 생각을 존중해주었어요. 오빠도 있으니까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면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귀국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캐나다에 남을 은비를 데리고 기도할 기회가 있었어요. 떨어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 은비를 가슴에 품고 기도했죠. 그런데 제 기도를 듣던 은비가 품속에서 흐느끼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국으로 같이 돌아가겠다고 하더군요. 엄마 마음이 전해졌나 봐요.

가끔은 캐나다가 그립기도 하죠? 그럼요. 그래도 7년을 살았으니까. 자연이 제일 그리워요. 캐나다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살았다고 하면, 한국은 워낙 빨리 빨리니까 시간도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영어 공부도 참 열심히 했는데, 실력이 늘지 않더라고요. ‘난 똑똑한 편이다’ 생각하며 살았는데 착각이었던 거죠. 영어 실력은 딱 생활 영어만 할 수 있는 정도? 나쁜 짓도 할 수 없었어요. 나쁜 짓 하면 경찰서 가야 되는데, 내 영어 실력으로 변호할 능력이 안 되니까. 그래서 엄청 착하게 살았어요.(웃음)

방송 복귀할 때 힘든 점은 없었나요? 체력적으로 힘들었어요. 녹화 시간이 4~6시간 이상 이어지다 보니 2시간 정도 지나면 힘들더군요. 토크 수위도 세졌고. 동료의 스캔들을 아무렇지 않게 토크 소재로 삼는 걸 보고 많이 변했구나 싶었어요. 처음 6개월 정도는 어색했는데, 이젠 적응이 됐어요.

그동안 아들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를 많이 했는데, 아들이 아니라 제 마음을 바꾸고 나니 아들이 변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문제였던 거죠. 아이들은 부모의 뒤통수를 보고 배운다는 말의 뜻을 깨우치게 됐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오랜만에 신랑을 만나서 신혼 같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7년을 떨어져 있다 함께 지내려니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이 생겼다. 혼자 자유롭게 지내던 남편은 구속당하는 느낌이 들어 힘들어 했고,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편과의 대화법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툼을 피하기 위해 간격을 유지하려 했다. 먼저 손을 잡아준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7년 전과는 많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식사 후에는 설거지도 해주고, 집안일도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벌써 50대 중반이네요. 꺾어졌죠.(웃음) 여자 나이는 40대까지는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런데 40대일 때는 좀 드셌어요. 50대가 되고 보니 뭐랄까, 남편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옆에 없으면 너무 허전할 것 같거든요. 친구와는 비밀 없이 다 얘기할 수 있어야 하기에 남편과 친구는 될 수 없어요. 내 비밀을 다 말하면 싸울 수 있으니까.(웃음) 그런 이유로 친구는 아니지만 지팡이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이 바로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저는 나이 드는 게 좋아요. 제 나이에 맞는 얼굴로 살고 싶어요. 세월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이들의 아빠라는 이름으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생각이 바뀌었나보네요. 그거 알아요? 퍼즐 조각 중에 똑바른 정사각형 모양이 하나도 없대요. 퍼즐 조각을 보면 모양이 다 제각각이잖아요. 제각각의 모양을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추고 하다가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나랑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아요. 예전에는 ‘왜 저러고 살지’라고 생각하며 미워하는 대상도 많았는데, 이젠 그런 거 없어요. 사람마다 갖고 있는 퍼즐 모양이 다 다르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자기 방식대로 고민하고 갈등하며 사는데, 내가 뭐라고 간섭하나 싶은 거죠. 나 또한 똑바른 정사각형 퍼즐이 아닌데 누굴 탓하고 맘에 안 든다고 할 수 있나 싶어요.

그런 변화가 아들 은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나요? 그렇죠. 은기가 저를 많이 변화시켰어요. 은기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캐나다로 갔거든요. 외국 가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은기 말에 속아 캐나다 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한국에서 안 하는 애들은 어딜 가도 안 한다는 것을 배웠죠. 그래도 운동에 소질이 있어 아이들에게는 인기가 좋았어요.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면서 저와 많이 부딪쳤죠.

사춘기를 제대로 경험했나보네요. 일단 저는 공부하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공부보다 중요한 게 인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욕먹는 게 싫어 아이에게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성격이 저랑 반대라 하나부터 열까지 제 마음에 들지 않았죠. 일단 게으른 성격이 싫었어요. 학교도 등교 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가곤 했으니까. 매일 큰소리가 오갔어요. 제가 욕을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날은 학교도 안 가고 밥을 먹는 아들 뒤통수에 “한심하고 쓰레기 같은 놈! 너는 나가 죽어야 해, 이 버러지 같은 놈아!”라는 욕설을 퍼부었죠.
그런데 그 순간. ‘네 아들, 네가 말한 대로 만들어줄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너무 무섭더군요.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울면서 기도했어요. 잘못했다고, 다시는 아이에게 욕을 하지 않을 테니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요. 그 이후로는 욕을 하지 않았어요. 욕이 나오지 않았죠. 3일 정도 지나니 아들이 제 눈치를 살살 보더군요. 엄마가 욕을 하지 않으니 이상했던 거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니까 “엄마, 왜 욕하지 않으세요?”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아들에게 용서를 구했어요. 그동안 너무 미안하다고. 엄마가 엄마 욕심에 너에게 잔소리를 한 게 많다고. 아들이 “엄마, 나에게 한 번이라도 칭찬을 해준 적 있어요?”라고 울기 시작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 후 변화가 찾아왔나요? 어느 날 은비가 “엄마, 오빠가 이상해요”라면서 제 방에 들어왔어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오빠가 공부를 한다는 거예요. 그 이후 아들이 눈에 띄게 변해갔어요. 저에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말도 하고, 엄마 아들로 태어나서 참 좋다는 편지도 보내줬어요. 그런 변화를 겪으면서 알게 됐죠. 그동안 아들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를 많이 했는데, 아들이 아니라 제 마음을 바꾸고 나니 아들이 변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문제였던 거죠. 아이들은 부모의 뒤통수를 보고 배운다는 말의 뜻을 깨우치게 됐어요.

지금은 아들과 어떤가요? 너무 좋아요. 대학 3학년이 되는데 목회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학비가 없어 한 학기 정도 쉬었다고 하더라고요.

학비가 없어서요? 스무 살 되면서부터 독립시켰어요. 캐나다에 작은 집이 있어 그곳에서 생활하고, 학비와 생활비는 과일가게와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해서 스스로 벌어요. 일 년에 설날하고 추석 때 1천 달러 정도 보태주는 것 외에는 신경 쓰지 않아요. 얼마 전에는 자기가 이성미 아들로 살 때는 왕자였는데, 지금은 거지라고 해서 웃었어요. 엄마 덕 보고 살았던 것 같다는 말에 열심히 일하다 보면 너도 너 자신의 이름으로 덕 보며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해줬죠.

그럼 은비와 은별이도 스무 살이면 독립을 시킬 생각이세요? 그럼요. 은비와 은별이도 스무 살이 되면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용돈을 모두 저축해요. 나중에 독립하면 생활 자금으로 써야 한다면서. 그런데 저는 독립시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요즘 부모들은 너무 다 해주려고 하다 보니 아이들이 자립심이 부족하죠.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정해주는 학원 다니고 하니까 혼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은비는 고등학생인데, 대학은 디자인 쪽으로 공부하고 싶다며 유학도 스스로 준비하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를 주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부분은 아이들이 잘 받아들여줘서 고맙게 생각해요.

자녀 교육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은기의 경우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성경 공부를 시켰어요. 전도사님과 일주일에 한 번 공부했는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엄마에게는 하지 않는 말을 전도사님에게는 털어놓더라고요. 아이에게 탈출구를 마련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죠. 올바른 인성을 길러줘야 하니까 어린 나이의 자녀들에게는 성경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요. 학교 공부는 복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시험 점수 나쁘게 나와도 일단 나온 점수니 어쩔 수 없고,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두 번 실수하지 않도록 복습을 철저하게 시켰어요.

자신이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나요? 은비와 은별이는 저에게 좋은 엄마래요. 이유가 좀 그렇긴 한데, 공부하라는 말 안 한다고요. 은기에게는 좀 엄하게 대했던 것 같아요. 약속 시간 같은 걸 어기면 현관문도 열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중학생 때 집에 들어오지 못해 친구네 집에서 잔 적도 있고, 차에서 잔 적도 있죠. 한번은 은기에게 혼난 적이 있어요. 교회에서는 친절하면서 왜 집에선 욕하고 사느냐고. 안과 밖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그렇게 살면 되겠느냐는 말을 듣고 정말 창피했어요. 마음을 들킨 기분이랄까? 아이들은 사랑으로 키워야 되는데 잘 몰랐던 거죠.

요즘 엄마들의 자녀 교육에 대해 조언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너무 공부에만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일류 학교 졸업해도 노력하지 않고 살면 삼류 되는 거고, 삼류 대학 나와도 노력해서 잘 살면 일류 인생 사는 건데, 무조건 일류 대학을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이를 일류로 만들 생각은 안 하고 말이죠. 제가 보기에는 엄마 스스로 우리 애가 어느 대학 다닌다는 자랑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엄마들끼리 만나면 서로의 남편을 비교하고 아이들도 하나부터 열까지 비교하곤 하잖아요. 아이마다 재능이 다른데 똑같아져라 하는 것은 문제예요.
아이들 인생은 아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었으면 좋겠어요. 학부모 모임에 갔다 와서 괜히 애들을 괴롭히지 말고, 우리 아이가 무엇을 잘하고 관심 있어 하는지 살펴보세요. 공부는 자기 주도적으로 하길 바라면서 생각은 자기 주도적으로 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넌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하니?”라고 물어보세요. 아이들이 엄마에게 원하는 것은 정성껏 차려주는 따뜻한 한 끼의 식사가 아닐까요? 학원에 늦는다고 라면 사 먹게 하지 말고 맛있는 밥을 아이들에게 차려주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를 보면 엄마의 말투, 아빠의 행동이 보인다. 아이를 탓하기 전에 엄마와 아빠로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것이 먼저인 이유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공부 잘한다고 인생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은 자식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공부를 강요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어떤 것을 하면서 행복해하는지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녀의 경험담이 주는 교훈이다.

CREDIT INFO
기획
장은성
취재
조정현
사진
안호성
장소협찬
밤삼킨별
2013년 02월호
2013년 02월호
기획
장은성
취재
조정현
사진
안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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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삼킨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