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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모녀의 평범한 이야기 일곱 번째

반짝반짝 빛나는 열아홉의 졸업

돌을 막 넘기고 갓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다닌 어린이집 졸업식 날. 이제 겨우 6~7년을 산 어리디어린 아이들의 졸업식을 보기 위해 몰려온 가족들로 어린이집은 마치 90% 세일을 하는 백화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복작거렸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심지어 이모와 고모까지 참석한 가족도 있을 정도였으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On October 09, 2013

돌을 막 넘기고 갓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다닌 어린이집 졸업식 날. 이제 겨우 6~7년을 산 어리디어린 아이들의 졸업식을 보기 위해 몰려온 가족들로 어린이집은 마치 90% 세일을 하는 백화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복작거렸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심지어 이모와 고모까지 참석한 가족도 있을 정도였으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사돈의 팔촌까지 대동해가면서 유난을 떨어야 할 정도로 ‘어린이집 졸업식이 대단한 행사란 말인가’ 싶었다.
아무튼 대한민국 부모들의 유난이라니. 그렇게 나는 아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가족애에 비난을 보내고 있었지만, 솔직한 내 마음의 고백은 ‘워매 기죽어’ 였다. 그랬다. 겨우 일곱 살짜리들의 졸업식을 통해 세 식구 이상의 가족이 보여주는 뭔가 있어 보이고, 번듯해 보이는 가족애에 그만 기가 죽어버린 것이다. 겨우 1~2년을 다닌 아이들도 저렇게 온 가족에게 둘러싸여 근사하면서도 시끌벅적한 축하를 받는데, 5년이나 다닌 서인이를 축하해주는 가족은 엄마가 전부라는 사실에 속이 상해버린 나는, 그저 그들의 유난한 아이 사랑에 눈을 흘기는 것으로 무너져버릴 것 같은 나의 마음을 지켜야 했다.
서인이의 엄마가 되기로 한 순간부터 매일매일이 마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연속이었지만, 이놈의 맷집은 여간해서 길러지지 않는 게 짜증이 났다. ‘편견, 외로움 따위는 괜찮아. 서인이는 그런 대가를 지불할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아이야’ 하면서도 가끔 안 괜찮을 때가 있어 괜찮다고 하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허둥거린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을 비롯해 앞으로 수없이 만나게 될, 가족이 필요한 행사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 여덟 살 아이의 유일한 가족인 엄마인 나는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 엄마인 내가 이런데 어린 서인이의 마음은 어떨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차라리 서인이가 “엄마, 난 왜 졸업식 날 엄마만 와? 나는 왜 아빠가 없어?”라고 물어주기라도 했다면, 자신의 결핍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울기라도 했다면 가슴이 아프지 않았을 텐데. 아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생긋 웃어주는 게 다였다. 그날 나는 서인이의 아픈 미소를 보면서 눈물을 참으려고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가족이 필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라도 오겠다’는 호기를 부렸다.

그런데 그런 치기 어린 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가족이 필요한 행사에 가족 같은 이웃들이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벗어난 분교 수준의 초등학교가 있는 시골로 이사 온 뒤, 운이 좋게도 좋은 이웃들과 친구들을 만나 학교 행사에는 뒷집 애, 앞집 애 할 것 없이 모두 우리 아이가 되어 함께 즐겼다. 가족이 가장 필요했던 운동회는 그야말로 마을 축제였다. 졸업식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서인이 졸업식이지? 구경 가야지” 하면서 동네 어르신 환갑 때 초청된 연예인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처럼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서인이를 구경하러 왔으니. 아이의 졸업식 날, 입술을 깨물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6년 전의 일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잊어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를 비롯해 졸업식 구경하러 온 어른들 중 아무도 꽃다발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 말 그대로 축하가 아닌 구경만 하러 온 셈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른들의 잘못이 아닌, 서인이가 “제발 국도 끓여먹지 못할 꽃다발 따위 사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막상 서른 명도 안 되는 졸업생 중에서 꽃다발을 받지 못한 졸업생은 서인이 하나라는 사실에 이건 아니지 싶어 부랴부랴 꽃다발을 준비했지만, 이미 서인이의 품 안에는 (많은 꽃다발을 받은) 친구들이 준 꽃다발이 안겨진 뒤였다. 그날 우리는 집에서 짜장면을 함께 나눠 먹으면서 빛나는 졸업장과 같은 졸업생 친구가 선물한 꽃다발을 품에 안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서인이의 앞길을 축하해주었다.

아마 우리 둘이서만 짜장면을 먹었더라도, 우리 모녀는 더 이상 입술을 깨물고 슬픔을 참지 않아도 될 만큼 아빠의 부재가 가족의 부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게 편견이나 관습보다 강한 생활의 힘이었다. 부족함이 없었다. 불만도 없었고, 욕심도 없었다. 서인이와 함께 보낸 14년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지만 나름대로 만족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서인이는 공부도 잘하고, 엄마 말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할 만큼 잘 들을 것이고, 제 할 일 똑 부러지게 하는, 누구나 다 부러워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빛나는, 어디 하나 손댈 데가 없는 착한 딸이 되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과 희망은 내 삶의 버팀목이었다.
그런데 내가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춘기였다. 물론 모든 아이가 사춘기를 겪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 서인이만큼은 예외일 거라고 믿은 것이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었다면, 아이의 사춘기를 엄마와 딸이 좀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로 인정했더라면 우리의 3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싸우지 않고도. 바닥으로 떨어지는 성적은 애교에 가까웠다.

한 달에 몇 번씩 학교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것도 참을 만했다. 전학을 보내라는 교사들의 항의 역시 견딜 만했다. 문제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친구들과의 싸움에 휘말리는 서인이를 보면서 나는 속수무책이었고, 나만 모르고 있었지, 서인이는 학교에서 꽤 알아주는 무서운 일진 언니가 되어 있었다. 그런 질풍노도와 같은 중학교 3년을 보낸 탓에 나는 서인이가 중학교 졸업식장에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사춘기는 미처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서인이의 졸업식은 ‘쿨’ 그 자체였다.
‘이놈의 학교 마침내 떠나는군. 지긋지긋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중학교 졸업생 서인이를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나 역시도 빨리 졸업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 역시도 온몸으로 사춘기 딸을 키우는 엄마 노릇 졸업하고 싶다고 외치고 싶었다. 겨우겨우 꼬여서 칼국수 한 그릇으로 졸업식 날의 점심을 대신했다. 짜장면을 먹고 싶었지만, “엄마가 짜장면 먹고 싶어 하니까 난 칼국수가 먹고 싶다”는 서인이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나를 향한 서인이의 반항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학교 앞 칼국수집 창가에 앉아 폭설이 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나는 빨리빨리 아이가 자랐으면 싶었다. ‘3년 후 고등학교 졸업식, 스무 살이 된 서인이에게 사춘기는 이미 지나가 있겠지. 그렇다면 예전의 착한 딸로 돌아와 있겠지’라며 속절없는 주문을 외워보기도 했다. 그 바람이 너무 간절해서 눈물이 나왔지만, 역시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면서 참았다. 나에게 지독히도 반항하는 딸에게 눈물 따위는 보이고 싶지 않은 오기 때문이었다. 어린이집 졸업식장에서 느꼈던 외로움과 서글픔과는 참으로 대조되는 감정이었지만, 이 또한 외로움의 다른 얼굴이었는지도.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서인이는 “알았어. 고등학교 졸업식 날 짜장면 먹어줄게”라며 적선하듯 위로라고 했는데, 그만 고등학교마저 석 달 만에 자퇴를 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자퇴와 함께 서인이의 오랜 사춘기의 반항은 종지부를 찍었다.
또다시 졸업 시즌이다. 아직도 나에게 “따님 올해 졸업하죠?” “딸내미 졸업식 언제야?” “딸이 올해 고등학교 졸업반 아닌가?”라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처음에는 일일이 “검정고시 쳤어요. 학교 안 다녀요”라고 대꾸를 했는데, 그러다 보니 3년 전의 중학교 졸업식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사랑니의 통증이 올라오는 것처럼 마음이 욱신거릴 때가 있다. 남들이 십 대 때 치르는 세 번의 졸업 과정을 두 번밖에 치르지 못한 딸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울 때도 있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예고 졸업식 날에 맞춰서 서인이와 함께 짜장면이나 먹으러 가야 되겠다. 빛나는 것은 졸업장뿐만 아니다. 졸업장이 있든 없든 인생은 빛나는 그 무엇이다. 특히 열아홉의 청춘은. 그런 빛나는 생의 과정을 지나고 있는 열아홉이 졸업해야 할 곳이 어디 고등학교뿐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이제 앞으로 서인이가 무엇을 졸업하든 간에 우리 둘만이라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겨우 1~2년을 다닌 아이들도 저렇게 온 가족에게 둘러싸여 근사하면서도 시끌벅적하게 축하를 받는데, 5년이나 다닌 서인이를 축하해주는 가족은 엄마가 전부라는 사실에 속이 상해버린 나는 그저 그들의 유난한 아이 사랑에 눈을 흘기는 것으로 무너져버릴 것 같은 나의 마음을 지켜야 했다

봄의환 작가는…
2003년 KBS <드라마시티> 극본 공모전에 <귀휴>가 당선되면서 등단, 영화 <마지막 선물>, 뮤지컬 <황진이>, MBC 드라마넷 <별순검 시즌3>을 집필한 작가이자 싱글맘. 본지를 통해 예술적 재능과 성향이 엄마를 꼭 닮은 딸 김서인양과 투닥거리며, 이해하며, 사랑하며 사는 정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이윤정
봄의환
사진
이호영
촬영협조
목란
2013년 02월호
2013년 02월호
기획
이윤정
봄의환
사진
이호영
촬영협조
목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