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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기자’ 유인경의 중년 예찬 ‘50대가 진정한 주인공이다’

“50대는 노화의 공포에 스스로를 가둘 때가 아니라 진정한 나이 듦의 황홀함과 아름다움을 즐길 때”라며 50대 예찬론을 펼치는 유인경씨. 폐경기와 갱년기를 겪은 한 여성으로서, 50대가 넘어야만 깨닫고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에 대해 공유하고자 한 것이다. 모자라는 것도 넘치는 것도 없는 나이, 유쾌한 중년을 위한 지침서.

On October 07, 2013

자신에게 시간을 선물하자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간힘 쓰느라 정작 나와 만나는 시간이 참 적지 않은가
성공한 사람들은 말한다. 명상이나 수련 등의 어려운 방법이 아니더라도 하루에 한 시간만이라도 자신과 대화하고 자신만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라고. 말이 쉽지 참 힘들다. 밥 먹고, 샤워하고, 운동하는 것도 결국 다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닌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혼자서, 나를 친구 삼아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머, 눈 밑에 잔주름이 늘었네. 그래도 괜찮아. 이건 내가 매일 많이 웃어서 생긴 거야. 화내고 짜증 내서 미간에 생긴 주름이 아니잖아. 자꾸 눈가를 비벼대는 나쁜 습관은 좀 고쳐볼게” 하는 식으로 자신과 대화하고 다독이는 것이다. 내게 주는 시간이 특별한 건 아니다. 그저 하루에 한 번 고개를 들어 맑고 푸른 하늘을 보게 해주는 것, 꽃 몇 송이라도 사서 꽃향기를 흠뻑 만끽하게 해주는 것,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 귀를 호강시키는 것 등 자신에게 감탄사를 선물하면 된다.

젊어 보이려고 하지 마라

20대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 할 수 없는 연륜의 멋과 우아함이 있으니 말이다
예전엔 엄마가 입던 옷을 딸이 물려받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요즘은 엄마가 딸의 옷을 입고 다니는 추세다. 물론 패션은 자유지만 그저 젊어 보이고 싶은 중년 여성들의 도전에 마냥 박수를 보낼 수는 없다. 젊은이의 옷차림을 흉내 낼 것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온 연륜과 멋을 그들이 도저히 흉내 내지 못할 우아함으로 보여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밍크나 여우 털 같은 모피 의류는 40대 이상의 여성이 입어야 고혹적인 느낌이 제대로 표현되고, 트렌치코트 역시 중후한 중년층이 입을 때 제멋이 살아난다. 영캐주얼은 잠시 젊은 기분을 맛보게 할지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자칫 천박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해맑은 마음과 뜨거운 가슴만으로도 우리는 영원한 청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나이 탓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라

‘언젠가는 꼭 할 거야’라고 다짐한 일, 바로 지금이다
주변을 보면 50대에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하는 여성이 많다. 그동안은 아이들 뒷바라지에 남편 눈치 보느라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어 미뤄오다가 5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림 그리기나 악기 연주를 시작하고, 어떤 이는 소설 습작에 도전하고, 또 어떤 이는 자격증을 따고, 누구는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사업을 하기도 한다. 도전과 모험은 젊은이나 청춘의 전유물이 아니다. 반드시 목적을 갖고, 치밀한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수십 년 동안 몸과 마음에 비축된 열정이 어느 날 문을 두드릴 때, 기꺼이 뛰어나오면 된다.

엄마를 벗고 여자로 거듭나라

이제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키워야 할 때다
50대는 엄마로서만이 아니라 여성성을 되찾아야 할 나이다. 꽃무늬 팬티를 입거나 빨간 립스틱을 바르거나 이성에게 연정을 느끼라는 게 아니다. 인생이라는 전쟁터의 전사로만 살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잘 다독이고 자존감을 키우라는 얘기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내 몸과 마음에 신경 써주고, 나이 의식하지 않고 연애소설도 읽고, 꽃을 한 아름 사서 방에 꽂아두자. 무엇보다 마치 엄청나게 알뜰살뜰한 현모양처인 양 딸이나 남편에겐 유명 브랜드 옷을 사주면서 정작 자신은 딸이 버린 추리닝을 잠옷으로 입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나이 먹는 게 즐겁진 않지만 슬퍼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다
누구나 나이 들고 늙는다. 가까운 곳의 글씨가 잘 안 보이고, 곁에서 하는 이야기가 잘 안 들리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얼굴만이 아니라 손과 발까지 다 주름으로 덮이는 것이 행복하고 즐거운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그걸 불행과 슬픔으로만 여긴다고 뭐가 달라질까. 처음엔 노안이 왔다는 게 서글프기도 하고 돋보기를 쓰는 게 불편할 수도 있지만 생각을 바꾸면 사실 편한 것도 많다.
사물이 뚜렷하게 안 보이니 더러운 것도 잘 안 보이고, 누가 떠들어도 잘 안 들리니 거슬리는 이야기에 신경 안 써도 된다. 또 혹시 누가 뒤에서 내 흉을 봐도 맘 상하거나 싸울 일이 없고, 위 기능이 약화돼 소화가 잘 안 되니 소식하게 되며, 허리며 무릎 여기저기가 결리니 무리한 일도 하지 않게 된다. 조금씩 조심하고 절제하고 세월을 수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이를 받아들이자. 앞으로 다가올 노년기는 육체적으로 쇠락하는 시기일지 몰라도 정신적인 모험의 기회가 펼쳐지는 시기이니 말이다.

나이 오십은 콩떡이다

손 내밀지 않는 화려한 뷔페상 위의 콩떡, 그래도 나는 콩떡이 좋다
50대가 참 평화롭다. 공평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40대 때는 공평하지 않았다. 동창이라도 어떤 친구는 부장이고, 다른 친구는 고속 승진해 사장 명함을 내밀었다. 한 친구는 일찍 결혼해 아이를 대학에 입학시켰지만, 늦둥이를 낳은 친구는 유치원의 재롱잔치에 참석했다. 강남에 있는 1백 평 규모의 저택에 외제 승용차를 가진 친구도 있고, 여전히 변두리에서 전세를 면치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막상 50대가 되고 보니 그 격차가 참 많이 평준화됐다.
초고속으로 승진한 친구도 회사에서 물러나 오히려 ‘길고 가늘게’ ‘회사 생명’을 이어가는 만년 부장인 친구를 부러워하고, 융자 안고 큰 집 산 친구는 부담을 느끼지만 전세 사는 친구는 세금 걱정은 없다며 편해 보인다. 부자건 가난하건, 뚱뚱하건 날씬하건, 폐경기와 흰머리를 걱정하고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 정보를 나눈다. 문정희 시인의 ‘오십 세’라는 시에 비유된 ‘콩떡’처럼, 그녀에게 나이 오십은 그야말로 콩떡이다. 말랑하고 구수하고 정겹지만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 화려한 뷔페상 위의 콩떡 말이다. 그녀는 환갑에도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고, 노안이 오더라도 더 많은 책을 보고, 유니세프건 구세군 자선냄비건 흔쾌히 돈을 기부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유인경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잡지사 기자로 활동했으며, 결혼 후 3년 동안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1990년 <경향신문>에 입사,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다. 경향신문사가 펴내는 시사주간지와 여성지의 편집장을 지냈고, MBC TV <생방송 오늘아침> 등의 방송 활동과 곳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고교생부터 팔순 어르신까지 다양한 이들과 교류하며 누구와도 수다를 떨 수 있는 것이 특기. ‘유인경 기자의 아줌마 예찬론’이란 부제의 <내 인생 내가 연출하며 산다>(시공사)를 펴낸 후 ‘아줌마 기자’란 별칭을 얻었고, 최근에는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만>(위즈덤경향)이란 책을 내며 ‘중년 예찬’에 나섰다.

CREDIT INFO
취재
정은혜
사진
박원민
장소협조
산다미아노
2013년 01월호
2013년 01월호
취재
정은혜
사진
박원민
장소협조
산다미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