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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사랑한 위스키

왕이 사랑하는 술에서 세계가 사랑하는 술이 된 영국 스코틀랜드 스카치위스키 더 글렌리벳은 오늘도 위스키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가는 중이다.

UpdatedOn June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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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 8월,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영국 왕 조지 4세는 만찬에 올라온 술을 마시곤 명령했다. “대단하구나. 앞으로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자리에서는 반드시 이 위스키로 건배하라.” 뭔가 이상하다. 왕명이 지엄한 시절이라지만 건배주를 콕 집어 지정하는 일이 예사로울까. 게다가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스키 주조가 불법이어서 그 술은 무허가 밀주였다. 국왕이 국가가 금한 밀주를 마시고 너무 좋아 “너희도 마셔라” 선언한 사건은 분명 범상치 않다. 하나, 이건 그다음 펼쳐진 놀라운 이야기의 시작에 불과했다. 암암리에 주조하던 스코틀랜드 지역 위스키가 그날을 계기로 제도권에 들어가 세계로 뻗어 나갔다. 위스키 역사를 뒤흔든 결정적 순간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위스키가 그럴 수 있다는 거지?’ 한 모금으로 충분하다. 더 글렌리벳을 머금은 바로 그 순간, 모든 의문이 사라질 테니.

오늘날 대다수가 위스키 하면 떠올리는 스코틀랜드 스카치위스키의 역사는 한때 피와 눈물로 쓰였다. 스코틀랜드를 지배한 잉글랜드가 17세기부터 이런저런 명목을 갖다 대면서 위스키 주조를 규제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스카치위스키의 명성은 이미 굉장했다. 주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물이 풍부하고, 원료인 보리의 품질이 빼어날뿐더러, 맥아를 건조할 때 쓰는 이탄(피트)이 널렸다시피 한 자연환경 덕분이었다. 이에 잉글랜드는 17세기 들어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더니 18세기 후반엔 기근을 이유로 허가받지 않은 증류를 전면 금지했다. 얼핏 스코틀랜드 증류업자들이 허가를 받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의 자존심이고, 위스키에 대한 규제는 곧 민족 탄압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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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북동쪽 스페이사이드 지역엔 스페이강의 지류 리벳강이 흐른다. 더 글렌리벳은 리벳강 근처 비밀스러운 우물에서 광천수를 퍼 올려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깊은 맛을 낸다.

스코틀랜드 북동쪽 스페이사이드 지역엔 스페이강의 지류 리벳강이 흐른다. 더 글렌리벳은 리벳강 근처 비밀스러운 우물에서 광천수를 퍼 올려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깊은 맛을 낸다.

스카치위스키의 진정한 시작

몰래 만드는 증류업자와 찾아내서 몰수하는 단속원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분쟁이 벌어졌다. 증류기는 물론, 마차까지 압수하는 법안에 쫓긴 수많은 증류소가 스코틀랜드 북쪽 하일랜드와 스페이사이드의 계곡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에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밀주로 불릴지언정 최고의 위스키를 주조한다는 자부심을 놓아 버리지 않고 명맥을 이었다. 조지 4세가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게 그즈음이었다. 왕에게 밀주를 대접한 것은 두 나라의 복잡한 관계에서 나온 상징적 사건인 셈이다. 그리고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왕에게 바친 밀주가 더 글렌리벳이었다는 사실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국왕이 건배주로 지정할 만큼 대단한 맛이었기에, 2년 뒤인 1824년 더 글렌리벳은 스코틀랜드에서 최초로 증류 면허를 취득했다. 스코틀랜드 의회 의원이 창업자 조지 스미스를 간곡하게 설득한 결과였는데, 배신감을 느낀 다른 증류업자들의 협박으로 조지 스미스는 한동안 호신용 권총을 차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시대의 조류를 협박 정도로 막을 수는 없었다. 더 글렌리벳이 물꼬를 튼 이후 하일랜드와 스페이사이드 지역 위스키 증류소가 잇따라 면허를 받았다. 그러던 중에 더 글렌리벳이 위치한 스페이사이드의 증류소 거의 전부가 왕이 사랑하는 위스키의 명망을 탐내 브랜드에 ‘글렌리벳’을 붙여 홍보했다. 계곡을 뜻하는 게일어 ‘글렌’과 스페이사이드를 흐르는 ‘리벳’강의 합성어이니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1884년, 법원은 판결을 내린다. “다른 증류소가 ‘글렌리벳’ 을 쓰는 걸 허용한다. 하지만 ‘오직 하나’를 지칭하는 정관사 ‘더(The)’는 진짜 글렌리벳 증류소만 붙일 수 있다.” ‘더 글렌리벳’은 이렇게 탄생했다. 비밀스러운 우물에서 퍼 올리는 광천수, 하일랜드와 스페이사이드를 통틀어 가장 서늘한 기후, 몸통이 넓고 목은 긴 독특한 호롱 모양 증류기가 빚어낸 더 글렌리벳은 어느덧 왕을 넘어 인류가 사랑하는 위스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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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를 나누고 싶은 감미로운 향

21세기엔 미국 샌프란시스코 월드 스피릿 컴피티션을 비롯한 숱한 대회를 휩쓸면서 가장 많이 팔린 싱글 몰트위스키의 명성을 더했다. 왕이 극찬했으며, 다른 증류소가 굳이 같은 이름을 쓰려 했고, 이제는 전 세계가 찾고 즐기는 독보적 지위를 누리는 위스키. ‘도대체 어떤 맛이 그럴 수 있다는 거지?’ 코르크 마개를 열자 꽃향기에 이어 번지는 감미로운 과일 향. 목으로 넘긴 뒤에는 캐러멜과 바닐라 향이 은은한 여운을 선물한다. 한 모금만으로 충분하다. 더 글렌리벳을 머금은 바로 이 순간, 당신과 건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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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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