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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맛있는 이야기

On December 06, 2013

그리운 가을, 푸드 에세이 세 권 속에서 꺼낸 맛있는 이야기.

요리 선생 라자냐

STORY 1 요리 선생 라자냐가 글로 차려낸 식탁 <추억은, 별미>

오늘 밤도 난 빵을 구울 거야. 마음이 하는 얘기들을 선명하게 듣고 싶은 날이거든. 당장 들리지 않아도 괜찮아. 그날 밤처럼 문득,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내 마음이 가장 절실한 대답을 가져다줄 테니까.

마음이 번잡해 잠 못 이루는 밤이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요리 선생 라자냐는 ‘빵’을 굽는다. 마치 108배를 올리는 것처럼 경건하게. 발효 빵을 만들면 계량하고, 밀가루를 반죽해 발효시키고, 다시 모양을 빚어 오븐에 굽는 긴 시간 동안 온전히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수 있다. 그녀는 반죽이 발효해 보드랍고 토실토실한 아기 엉덩이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마치 창조자라도 된 기분이 든다.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을 먹을 땐 또 어떤가.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뜨거운 빵을 호호 불어가며 결을 따라 뜯어서 폭신하고 촉촉한 빵을 입안에 넣으면 녹지 않는 솜사탕 같다. 가끔 소금이 들어간 버터를 올려 사르르 녹기를 기다렸다가 한 입 베어 물면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일이 의외로 참 쉽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은, 별미>는 요리 선생 라자냐의 이야기다. 푸드스타일리스트와 요리 관련 콘텐츠 개발자로 활동하다 6년 전 일산에 작지만 햇살이 잘 드는 ‘라자냐의 키친’을 마련해 요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바람으로, 살면서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맛있는 추억들을 글로 남기게 되었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뭔가 아주 맛있는 것이 먹고 싶어진다. 남다른 감성과 은근한 유머로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녹이는 묘한 흡입력이 있다.

달콤한 맛에 근심 걱정이 사르르 몽키브레드
몽키브레드는 반죽에 버터와 설탕을 발라 오븐에 굽는데, 설탕이 반쯤 녹아 캐러멜 느낌이 나기 때문에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바로 먹어야 맛있다. 달콤한 빵이니 커피나 달지 않은 차와 함께 먹으면 좋다.

이유석 셰프

STORY 2 이유석 셰프가 들려주는 누구도 무엇도 아닌 <맛있는 위로>

쫀득하고 고소한 치즈를 먹고 나면 뒤이어 걸쭉한 양파가 혀에 닿는 어니언수프. 양파 특유의 달달한 맛이 뾰족해진 신경을 가만히 다독여주는 느낌이다. 마치 쓴 약을 먹고 난 뒤 엄마가 입에 넣어주던 사탕의 달콤함이 주던 위안처럼, 괜찮다고,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고 마음을 달래준다. 토닥토닥.

레스토랑에서는 매일 다른 드라마가 펼쳐진다. 등장인물은 바뀌지만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는 주인공이다. 40대의 나이에 대기업 부장으로 성공했지만, 돌연 사표를 낸 L은 셰프와 함께 ‘프렌치어니언수프’를 만든다. 그 과정을 통해 셰프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L의 불안과 두려움을 따뜻하게 다독여주려 했다. 열정 어린 땀으로 만든 한 그릇의 수프로 L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다. 그가 요리하며 흘린 땀은 ‘용기’로 치환된다. 결국 L은 요리학교 입학을 위해 프랑스로 날아간다. 프렌치어니언수프 맛의 비결은 시간과 정성에 있다. 최대한 가늘게 썬 양파를 퓌레에 가까울 정도로 오래 볶는데 한 시간이나 걸린다. 양파의 단맛을 높이고 깊은 맛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육수를 넣은 뒤에도 약한 불에 뭉근히 오래 끓인다. 물그릇을 떠놓고 끓이면서 올라오는 불순물과 거품을 건지는 스키밍은 맛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인 셈이다.
<맛있는 위로>는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과 그들에게 위로가 된 음식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맛있는 음식이 일상에서 위안이 되길 바란다. 압구정 심야 식당 ‘루이쌍끄’의 이유석 오너 셰프가 칼이 아닌 펜을 든 이유다. 하지만 그는 L처럼 셰프를 꿈꾸는 이들에게 마냥 희망적인 말만 꺼내지는 않는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조언하고 싶어 한다. 먹는 데 고작 10분도 안 걸리는 수프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10배에 가까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셰프의 필연에 대해서.

따뜻한 위로 프렌치어니언수프
녹아내린 고릿한 치즈의 향과 달큼한 양파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뜨거운 프렌치어니언수프는 추운 계절에 더 잘 어울린다. 프랑스 음식이라고 해서 와인과 함께 먹는 것은 금물. 뜨거운 수프는 혀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데 특히 차가운 와인을 먹으면 와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푸드 콘텐츠 제작자·식문화 컨설턴트 이윤화

STORY 3 푸드 콘텐츠 제작자·식문화 컨설턴트 이윤화의 지리산 자락 맛집 순례 <지리산은 맛있다>

나물들이 아주 야들야들한 것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어린잎을 말렸기에 건채소로 만든 나물도, 제철 나물도 모두 연한 맛을 냈다. (중략) 보졸레 누보를 가져가고 싶은 식당 하나가 없어져 버렸다. 아쉽지만 내 혀가 그 맛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를 바랄 뿐이다.

산채비빔밥은 전국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지리산 정령치 가는 길의 에덴식당은 좀 특별했다. 뽕잎나물, 참비듬나물, 방풍나물, 비비초 등 나물 종류도 다양했는데 그것이 모두 생나물이 아니고 묵은 나물이었던 것.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물의 촉감이었다. 나물을 입에 넣고 씹을 때 머릿속에 연상된 것은 휴일에 폭신한 소파에 앉아 쉬는 모습이었다. 어린 나물을 주인장 부부가 손수 따서 말린다고 하니 재료가 처음부터 달라도 매우 달랐는데 채식주의자로 살 수도 있겠다는 유혹에 빠져들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어린 묵나물비빔밥을 만들어 대접하기엔 예순이 넘은 주인장 부부의 힘이 부쳤는지 최근 식당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보졸레 누보 나올 때가 되니 그 와인과 함께 먹고 싶었던 야들야들한 에덴식당 비빔밥이 간절히 떠오른다.
식문화 컨설팅과 더불어 레스토랑 가이드 <다이어리알>을 발행하고 있으며, 푸드 전문 사이트 ‘쿠켄네트(www.cookand.net)’를 운영하는 이윤화 대표. 그녀는 미식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의 향토 음식에 눈을 돌리게 됐다. 그곳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과 그곳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걸러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지리산 자락에서 만난 수많은 맛집 중 보졸레 누보를 들고 찾아가고 싶었던 에덴식당은 이제 다시 갈 수 없지만, 가정에서 만들 수 있는 산채비빔밥 레서피를 소개한다. 집에서라도 그 맛을 음미해보길 바라며.

보졸레 누보와 한식의 마리아주 가정에서 만드는 산채비빔밥
11월에 나오는 보졸레 누보는 영글지 않은 햇와인이라 깊은 맛은 없다. 하지만 다양한 종류 중 잘만 고른다면 데이트하러 나가는 20대 아가씨의 청순함과 같은 상큼한 맛을 볼 수 있다. 산채비빔밥을 먹으면서 보졸레 누보를 마시면 서로 튀지 않으면서 맛을 보완해준다.

그리운 가을, 푸드 에세이 세 권 속에서 꺼낸 맛있는 이야기.

Credit Info

포토그래퍼
정문기,김나윤
에디터
박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