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거 르쿨트르 마스터 울트라 씬 데이트
7.8mm
케이스 소재 스테인리스스틸
지름 39mm
기능 시, 분, 초, 날짜
방수 성능 50m
가격 1380만원
얇은 시계가 고급 시계라는 문법은 전통적인 기계식 시계의 발달과 상관이 있다. 모든 기계의 발전에는 연속하는 흐름이 있는데, 기계식 시계의 발전 방향은 정확도 향상과 크기 소형화였다. 더 작으면서도 정확한 기계식 시계는 서양 문명이 4세기 동안 이룩해온 기계적 성취다. 시계의 정확도와 크기 경쟁은 쿼츠와 디지털 시계가 보급되며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나 F1 시대에도 육상경기가 계속되듯 고가 시계 브랜드는 얇은 시계라는 종목에서 발전적 경쟁을 멈추지 않는다.
예거 르쿨트르는 기계식 시계의 역사 중 무브먼트 분야에 노하우가 있다. 이 전통 역시 현행 예거 르쿨트르 마스터 울트라 씬으로 이어진다. 무브먼트인 칼리버 899는 시, 분, 초, 날짜 표시창을 설치하고 뒷면에 오토매틱 로터를 얹고도 두께가 3.3mm다. 케이스는 보통의 드레스 워치보다 방수 성능이 더 뛰어난데도 두께는 7.8mm다. 시계 측면만 늘씬하게 디자인해 한층 얇아 보인다. 이 모든 디테일이 조금씩 모여서 다이어트를 하듯 시계의 두께가 얇아진다.
블랑팡 울트라플레이트
8.7mm
케이스 소재 스테인리스스틸
지름 40mm
기능 시, 분, 초, 날짜
방수 성능 30m
가격 1510만원
시계가 얇아야 좋은 이유는 한때의 역사적인 사연을 넘어선다. 얇은 시계는 실질적으로도 편리하다. 정장 셔츠를 입고 시계를 차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시계가 손목에 밀착되어 셔츠 소매 끝단 사이로 자유롭게 오가야 편하게 시계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드레스 셔츠로 대변되는 서양식 남성 정장에 차는 시계를 ‘드레스 워치’라 부르고, 고급 드레스 워치의 조건에는 얇은 두께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시계들을 모두 분류상 드레스 워치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블랑팡의 얇은 시계인 울트라플레이트에는 검증된 무브먼트 1151이 들어간다. 특히 눈에 띄는 게 동력 잔량을 뜻하는 파워 리저브다. 파워 리저브가 지금처럼 중요하지 않은 시대에 나온 무브먼트인데도 이 시계의 파워 리저브는 100시간에 달한다. 무브먼트를 담은 케이스도 멋지다. 후면은 조금 얇아 보이게 디자인했고, 러그는 둥근 케이스와 달리 직각으로 마무리해 한층 장식성이 높다. 크게 주장하지는 않아도 들여다볼수록 여러 부분을 신경 쓴 시계다.
바쉐론 콘스탄틴 트래디셔널 매뉴얼 와인딩
7.77mm
케이스 소재 핑크 골드
지름 38mm
기능 시, 분, 초
방수 성능 30m
가격 3520만원
얇은 시계를 잘 만들기 어려운 이유는 재주를 부리거나 숨을 부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은 디저트에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시계는 작고 단순할수록 더 우아한 비례와 확실한 세공이, 탄탄한 구조와 고급 소재가 필요하다. 아울러 정통 드레스 워치는 비합리적일 만큼 사치스러운 물건이다. 고전적 드레스 워치 소재로 인정받는 건 골드나 플래티넘 같은 금 종류다. 이런 조건을 맞추려니 스위스 시계 중에서도 고가 브랜드가 얇은 시계를 만든다.
바쉐론 콘스탄틴처럼 값비싼 시계 제조사라면 얇은 정통파 드레스 워치를 생산할 수 있다. 사진 속 트래디셔널 스몰의 두께는 7.77mm. 앞서 본 예거 르쿨트르와 블랑팡보다 얇은데도 시각적으로는 두꺼워 보인다. 가장자리만 얇게 빼는 등의 디자인을 하지 않아서다. 전통 시계 명가 특유의 당당함이랄까. 전통적 드레스 워치의 문법과 다른 핑크 골드와 초록색 다이얼 역시 ‘우리는 뭘 해도 고전이다’라는 듯한 명가의 자존감이 느껴지는 포인트다.
불가리 옥토 피니시모
5.5mm
케이스 소재 세라믹
지름 40mm
기능 시, 분, 초
방수 성능 30m
가격 2480만원
불가리 옥토 피니시모를 여러 번 2010년대 최고의 고급 시계라 표현했다. 그럴 만해서다. 시대적인 고급품의 요건은 용기와 독창성이다. 불가리는 고급 시계의 조건 중 하나인 얇은 두께에 집중했고, 그 결과 기존의 누구도 하지 않던 디자인과 개념의 옥토 피니시모를 선보였다. 요즘처럼 고가품이 보수화되는 시대에 불가리처럼 과감하면서도 논리적인 신규 라인업을 낸 곳은 거의 없다. 불가리 옥토 피니시모는 오히려 훗날 더 진지한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
옥토 피니시모 세라믹은 그중에서도 특징적이다. 고전적인 고급 시계의 특징인 드레스 워치를 오늘날 공학 기술로 얇게 구현하고 세라믹으로 케이스와 브레이슬릿까지 만들었다. 세라믹을 광택 처리해 멀리서 보면 뱀을 감은 듯 반짝이지만 이 시계의 진짜 매력은 착용감이다. 세라믹 특유의 적당히 서늘한 착용감 덕에 여름에 끈적거리지 않고 겨울에도 금속만큼 차갑지 않다. 생김새가 과감하면서도 밸런스가 좋아 어떤 차림이든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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