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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황태자 김용빈의 6문 6답

TV조선 <미스터트롯>의 세 번째 ‘진(眞)’이 탄생했다.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김용빈은 이견이 없는 우승자였다.

On April 23, 2025

공황장애 이겨낸 값진 우승

“20여 년 동안 노래를 했지만, 1등은 처음 해봅니다.” 뭉클한 소감과 함께 ‘진(眞)’의 왕관을 쓴 TV조선 <미스터트롯> 3대 우승자 김용빈. 돌아가신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드리기 위해 방송 출연을 결심했다는 그는 최종 결승 무대에서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낸 노래로 심사위원과 트로트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김용빈은 우승자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눈물을 쏟았다. 그는 “할머니가 이 모습을 보셨더라면 너무 행복해하셨을 거 같다”고 말해 먹먹함을 자아냈다. TOP7이 결정된 해당 방송분은 시청률 19.1%(닐슨코리아 기준)로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용빈의 등장은 트로트계에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간 제2의 송가인·임영웅 찾기에 나섰지만, 적임자를 발굴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용빈은 트로트 신동 출신다운 보장된 실력으로 마스터들의 극찬 세례를 받는가 하면, 아이돌 같은 비주얼로 경연 기간 내내 대국민 응원 투표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영예의 ‘진’을 가려내기 전부터 “어차피 진은 김용빈”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경연이 끝난 직후 열린 <미스터트롯3> TOP7 기자 간담회 현장과 방송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TV조선 <미스터트롯3 TOP7 비긴즈>에서 다룬 김용빈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했다.


Q 3개월의 경연 과정을 거쳐 최종 ‘진’으로 발탁됐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가?
이전에는 경연 프로그램 자체를 굉장히 두려워했다. 고백하자면 오랜 시간 공황장애를 앓아 경연 프로그램은 출연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내가 <미스터트롯>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염원을 들어드리기 위해 도전을 결심했다.

Q 대국민 응원 투표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했는데, 인기를 실감하나?
밖에 나갈 일이 없어 잘 모르겠다.(웃음) 평소에는 주로 노래 연습을 하고, 늘 해야 할 일이 많아 (인기를) 체감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우승 공약으로 진행했던 일일찻집에 많은 팬이 나를 만나러 와서 놀랍고 고마웠다. 식당이나 마트에서도 나를 알아보는 분들이 있더라.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도 걷는 모습이나 헤어스타일을 보고 “김용빈 아니야?” 하신다. 그런 순간에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Q 3억원의 우승 상금은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지 궁금하다.
일단 상금은 받았다.(웃음) 우선 고모를 챙겨드리고 싶다. 그동안 내 뒷바라지를 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그리고 멤버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고, ‘사랑빈’(김용빈의 팬카페) 팬들이 보내주신 큰 사랑에 보답하고 싶기도 하다. 또 나 자신에게 잘해냈다는 기념으로 선물을 주고 싶다. 한동안 잠을 설쳤다. 밀린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곳으로 놀러 갈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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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할머니 덕분이다. 할머니는 엄마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만큼 내게 모든 걸 쏟아부었다. 할머니의 인생전체가 나였다는 사실을 돌아가신 뒤에 알았다. <미스터트롯3>에서 내가 1등 하는 모습을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싶다. 할머니가 바라던 게 다 이뤄지고 있다. (1등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할머니 덕이다. 무대에 설 때마다 할머니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Q 트로트 신동에서 <미스터트롯3> 우승자로 우뚝 서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혼자 (마음을) 삭이는 편이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을 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백기가 길어졌다. 무대에 다시서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Q 김용빈에게 <미스터트롯3>가 남긴 것은?
‘이별’이라는 곡을 불렀을 때 주저앉아 울었다. 그때 장윤정 마스터께서 “무대는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말씀이 큰 위안이 됐다. 그동안 늘 혼자 활동했는데, <미스터트롯3>를 통해 같이 활동하는 멤버들이 생겨 든든하다. TOP7 멤버들과 함께할 시간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 트로트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내가 생각했을 때 우리 멤버들만큼 돈독한 사이가 없다. 케미를 기대해주셔도 좋을 거같다.


노래부터 비주얼까지, 육각형 트로트 스타 탄생

1992년생인 김용빈은 올해 데뷔 22년 차로 <미스터트롯3>에 출연한 현역 참가자 가운데 최고참이다. 그가 트로트의 맛에 눈을 뜨게 된 나이는 5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즐겨 듣던 성인 가요를 따라 부르면서 트로트에 입문했다. 7살이 되던 해에 고향인 대구의 백화점 노래자랑에서 상을 받았고, 이후 인근 지역에서 ‘트로트 신동’으로 불리며 각종행사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김용빈은 13살에 ‘선아야’로 공식 데뷔한다. 떡잎부터 달랐던 재능과 스타성, 미소년의 비주얼은 김용빈이 가진 장기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용빈은 SM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이었던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로부터 아이돌 연습생 제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트로트가 아니면 안 된다는 확고한 생각으로 거듭되는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걸어온 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김용빈은 트로트 신동으로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이른 데뷔만큼 일찍 찾아온 공백기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특히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인해 7년간 무대를 떠난 적도 있다. 그런 그를 일으킨 것은 트로트를 처음 알려준 할머니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와 고모의 손길에서 자란 김용빈은 “언제 다시 노래할거냐”는 할머니의 물음으로 내려놓았던 마이크를 다시 잡게 된다. 그리고 할머니의 생전 마지막 소원이었던 <미스터트롯3>에 출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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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취재
이보미(프리랜서)
사진
TV조선 제공, 김용빈 인스타그램
2025년 05월호
2025년 05월호
취재
이보미(프리랜서)
사진
TV조선 제공, 김용빈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