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에이스 신세계그룹의 대응
지난 3월 8일 취임 1주년을 맞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취임 전과 후가 ‘달라졌다’는 평을 받는다. 이른바 ‘예측 불가능한 재계 오너’라는 평가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회장 취임 후에는 사뭇 달라졌다. 성과 창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불필요한 가지치기를 통한 ‘본업 집중’이 가장 눈에 띄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마트·에브리데이·이마트24 3사의 기능 통합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점포 및 비효율적 인력 배치 정리 등으로 실적 개선에 집중했다.
결과는 유의미했다. 이마트는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액은 1.5% 감소한 29조 209억원이었지만, 영업이익은 940억원 개선된 471억원을 기록했다. 대형 마트라는 업태 특성상 많은 직원 수와 높은 장기근속자 비율 때문에 통상임금 판결로 인한 영향을 감안했음에도 유의미한 성과다. 현금 유출 없이 퇴직급여충당부채와 희망퇴직 보상금 등을 더한 2,132억원의 대규모 일회성 비용이 반영됐음에도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효자 노릇을 한 것은 이마트 트레이더스였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영업이익이 2023년 대비 59% 상승한 924억원을 기록하고, 매출액도 5.2% 증가한 3조 5495억원을 기록했다. 신세계그룹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SSG닷컴도 지속적인 수익성 개선 노력을 통해 50억원의 ‘첫 흑자’를 달성했다.
“나부터 바뀔 것” 발언 지킨 정용진 회장
회장 취임 직후 “격변하는 시장에 놓인 유통 기업에게 변화는 필수 생존 전략이다. 나부터 확 바뀔 것이다”라고 밝혔던 정용진 회장. 실제로 정 회장은 SSG 랜더스 경기 관람을 끊고 회사 경영에 집중했다고 한다. 과거에 즐기던 골프를 한 번도 치지 않았고, 야구는 개막전 관람이 유일하다. 또 SNS 등에 논란이 될 만한 게시물은 일절 올리지 않으며 “바뀌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신세계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여러 회의에 들어가 보면 정용진 회장이 얼마나 회사 경영에 진심인지 알 수 있다”며 “신세계건설 위기설이 돌았을 때도 사소한 부분까지 현안을 꼼꼼하게 챙기는 것을 보면서 외부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잘하는 것과 미래 먹거리에 집중할 때”
“잘하는 것과 미래 먹거리에 집중하자”는 것이 정용진 회장의 이마트 운영 가이드라인이기도 하다. 창고형 할인점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포함한 이마트 매장 수는 2020년 160개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까지 감소해왔는데, 효율적인 점포 운영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일단락됐다고 판단하고 올해 다시 외형 성장을 재개한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올해 2월 개점한 마곡점에 이어 하반기엔 구월점을 개점하는 등 창고형 할인점의 인기를 계속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상반기엔 이마트 푸드마켓 고덕점도 오픈한다. 이마트 트레이더스, 스타필드 등을 ‘일부러 찾아올 수밖에 없는’ 매력 가득한 공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역량을 쏟아붓겠다는 것이 정용진 회장의 계획이다. 체험형 쇼핑 공간 ‘스타필드 마켓’, 신선식품 상시 저가를 지향하는 ‘이마트 푸드마켓’ 등 특화 매장을 확대해 고객들이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 사실 이는 현재 오프라인 유통업계를 바라보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매장에 가서 필요한 물품을 모두 구매하는 고객은 일부에 불과하다. 품목에 따라 온라인으로 구매하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사야 하는 것은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문화가 일반화됐다. 하지만 신세계그룹은 오프라인 매장을 고객이 ‘일부러 가고 싶은’ 접점 공간으로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
정 회장은 “32년 전 나온 이마트는 고객의 일상을 바꿨고, 이마트를 통해 새로움을 맛본 1등 고객들은 다시 이마트를 바꾸고 있다”며 “이마트는 고객들이 꼭 와야 하는 ‘물성 매력’을 갖춘 공간으로 지속 혁신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연 매출 3조원을 돌파한 스타벅스도 단순한 커피 브랜드를 넘어서는 도전에 나선다. 고객에게 차별화된 공간 경험을 제시하기 위한 전략을 강화해나가고자 한다. 특히 기존의 일반적인 매장에서 벗어나 고객이 직접 방문하고 싶도록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스페셜 스토어’를 통해 차별화한다는 계획이다.
2020년 더양평DT점 오픈 이후 현재까지 11곳의 스타벅스 스페셜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폐극장을 재해석한 경동1960점, 100년 고택을 활용한 대구종로고택점, 북한산 파노라마 뷰를 감상할 수 있는 더북한산점 등 매장마다 독특한 스토리를 활용해 인기를 끌고 있다.
미래 먹거리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CJ와 MOU(업무 협약)를 체결하며 이커머스 물류 경쟁력을 높이는 선택을 했다. 이마트의 기존 물류 역량으로는 격변하는 시장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물류 전문 기업과의 협업으로 약점을 보완하는 설루션을 선택한 것이다.
파격적인 결정도 내렸다. 지마켓은 알리바바인터내셔널과 조인트 벤처를 설립해 글로벌 플랫폼과 시너지 창출에 나선다.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알리와 손잡고 국내외 이커머스 시장에서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시장은 녹록지 않다. 올해 이마트가 매출 30조원을 돌파할 것인지도 업계의 관심사다. 이마트는 줄곧 업계 1위로 군림했지만 매출 29조원대에 머물러 있었다. 시장이 이커머스 위주로 재편되고, 쿠팡의 독주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정용진 회장의 승부수가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중국발 자금과 아이템, 플랫폼들이 대거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이커머스 아니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정용진 회장과 이마트는 ‘가장 잘하는 것으로 우위를 지키겠다’는 선택을 한 것 같다”며 “향후 소비 패턴이 이커머스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무리한 선택이 아닌 확실한 선택을 하고 있는 정용진 회장의 이마트가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지 지켜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트럼프 가문과의 인연 배경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청을 받은 것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정용진 회장은 평소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한 번 맺은 인연은 소중하게 발전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는데, 이런 신념이 만들어낸 글로벌 네트워크라는 것이 신세계그룹의 설명이다.
정용진 회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의 인연은 2010년 한 언론사 행사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트럼프 주니어는 행사에 강연자로 왔다가 정 회장과 처음 만났다. 이후 3~4년 전 미국의 한 유력 인사가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해 뉴욕에서 다시 만났는데 개신교 신자라는 공통점과 비슷한 관심사, 신념을 바탕으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정 회장은 지난해 12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를 찾아 트럼프 대통령(당시 당선인)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15분간 여러 이슈에 대해 대화를 나눴는데, 미국 대선 이후 국내 정재계 인사 중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난 첫 번째 인사가 됐다. 이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은 물론, 핵심 VIP만 참석할 수 있는 취임 축하 무도회에도 참석했다.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과 트럼프 주니어는 서로를 브로(브라더의 준말), YJ(정용진 회장 이니셜)라고 부를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고 한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정 회장이 그동안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신세계그룹의 본업 경쟁력 강화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