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이 자꾸 내 시선을 붙드네. 마치 뭐랄까, 영혼까지 사로잡힌 기분이랄까.”
올해 가장 화제가 됐던 드라마가 있다. 청춘들의 타임 슬립 로맨틱 코미디, tvN <선재 업고 튀어>다.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 ‘선재’(변우석 분)의 집 안 곳곳에 걸려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림은 바로 최성희 작가의 작품들이다.
그림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메신저
예술에는 음악도 있고, 문학과 무용 등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미술은 누구나 창작과 감상의 행위를 즐길 수 있답니다. 저 역시 색채학을 전공했지만,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표현 도구로 하는 자연미술놀이학교를 운영했어요. 5~7살의 아이들이 미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단순히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가족과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까지도 긍정적으로 변하는 자극제가 됐습니다.
그러던 중 2020년부터 좀 더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위해 개인 작업에 몰두했어요. 작가 입장에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재료를 활용해 형태를 완성하는 과정은 스스로의 감정이나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수단입니다. 감정과 경험을 색에 담아 전달하는 미술이야말로 그 과정이 수고스럽더라도 작품이 끝나면 또다시 붓을 들게 하는 마력이 있죠.
2021년부터 지금까지 약 15회의 크고 작은 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소통했어요.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긍정적 에너지를 얻는다고 이야기하는 만큼 색이나 그림의 소재를 선정할 때도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우선 그림을 그리는 내가 행복해야 하고, 이 그림을 통해 누군가가 자신의 일상에 새로운 기운을 얻게 되기를요. 최근엔 생소하지만 즐거운 경험이 된 이벤트로 TV 드라마를 통해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동안 갤러리에서만 그림을 감상했다면,
이제는 여러분의 일상 곁에 두시길 권해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거실이나 침실에 걸어보거나
작은 크기의 그림으로 시작해도 좋아요.
그림을 접하고 즐기는 새로운 방법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주인공 ‘선재’의 공간에서 제법 당당한 역할이 주어진 제 작품들을 보니 새롭더라고요. 특히 여주인공이 하는 대사 덕분에 저도 제 작품을 다시 마주하게 됐죠.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이라는 건 정말 최고의 찬사와도 같으니까요. 그동안은 갤러리나 전시 공간에서 그림과 만나왔다면, 실제 작품을 어떻게 즐기면 좋을지 드라마를 통해 많은 분들이 알게 되셨기를 바랍니다. 많은 것이 제한됐던 시기, 길었던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됐죠. 그때부터 미술 장르가 사람들에게 한층 가까워진 것 같아요.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보며 위로를 얻기도 하고, 직접 미술 활동에 참여하면서 그림을 취미로 즐기는 이들도 늘었죠.
또한 드라마 속 선재처럼 집 안 곳곳에 그림을 활용해 인테리어하는 것도 예술을 즐기는 좋은 방법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림과 가까워지고 싶어도 많은 비용이 들거나 미술에 대한 제반 지식이 갖춰져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요. 최근에는 작가들의 원화 작품을 모티브로 하는 다양한 아트 상품이 출시되기도 하고, 미술과 협업한 패션이나 라이프 상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답니다. 드라마를 통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청자들도 주인공들과 한 화면에 자주 잡히던 제 작품에 많은 관심을 보내주시더라고요. 전시회 정보를 물어보시거나 관련된 아트 상품을 원해 향후 다양한 상품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자연이라는 놀이터에서 배우는 미술
‘최성희 자연미술 놀이 연구소’는 자연 소재를 가지고 미술로 표현하는 교육을 아이뿐 아니라 전 세대를 위한 교육과정으로 제안해왔습니다. 20여 년간 5~7살 아이들을 대상으로 놀이학교를 운영했어요. 숲과 가까이 있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유아교육과 미술 수업을 접목한 특화 프로그램 덕분에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깨치더라고요. 숲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에게 똑같은 소재와 재료를 건네더라도 그 결과물은 모두 달라요. 물론 속도도 다 다르죠. 그럴 땐 기다려주고, 아이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놀이하면서 행하는 과정에 집중하고, 아이마다 각기 다른 성향을 담아낸 작품을 존중해야 합니다.
미술교육을 통해 결국 나를 표현하고, 상대방과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을 다양한 교육기관에 맡기면서 아이들의 세계가 확장되길 원하지만, 실은 기관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 교육이 이어져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합니다. 자연미술의 목적은 미술 기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소통의 과정이고, 그로 인해 치유의 경험까지 얻게 됩니다. 그것이 최근 자연미술이 아이는 물론 청소년과 어르신들에게도 유용한 교육법으로 주목받는 이유죠. 교육 효과뿐 아니라 현장에서 유아교육에 힘쓰고 있는 교사, 재취업을 준비하는 경력 단절 여성, 숲해설가에게도 자연미술교육은 특화된 분야로 경쟁력을 갖게 됩니다.
블루, 골드, 체리핑크, 옐로는
모두 희망과 강한 에너지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림 한 점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제게 있어 색은 곧 경험이자 언어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 희망을 위한 그림
누구나 인생에 굴곡은 있고, 오늘은 좋았더라도 내일 급작스러운 사건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기도 하죠. 저 또한 그런 시기가 있었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어요. 오랜 미술교육 사업을 통해 기반을 다지고, <아이들의 어울림>이라는 자연미술놀이 워크북을 출간하며 중국 진출을 눈앞에 둔 시점에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했습니다.
그동안 계획했던 많은 일에 제약이 생기고, 그로 인해 제 마음도 힘든 시기였어요. 그때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자연 속에서 모든 걸 즐겁게 받아들이던 긍정의 힘을요. 오랫동안 교육자로, 사업가로 바빴던 제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감사한 마음이 채워졌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둘 그림이 완성되더라고요. 저는 작품을 시작할 때 색을 먼저 떠올려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색은 블루, 골드, 체리핑크, 옐로인데 이는 모두 희망과 강한 에너지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림 한 점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제게 있어 색은 곧 경험이자 언어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드라마 속 핵심 작품으로 선보였던 2022년 작 ‘무한함을 표현하고 열정에 이른다’는 강렬하고 과감한 파란색의 붓 터치에 에너지가 느껴지는 노란색 선이 더해져 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상과 그림에서 저달받는 희망의 메시지가 서로 다르더라고요. 저도 개인적으로 해당 작품을 그리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답니다.
또한 선재의 침실에 크게 자리 잡았던 부엉이 그림은 ‘기다림 속의 비행 전야_시리즈_레몬옐로우’입니다. 2023년부터 집중해 작업하고 있는 시리즈로 이 작품 속의 부엉이는 단순한 자연의 존재를 넘어 영적 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적 존재,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제가 표현하는 부엉이 시리즈를 사랑해주시는 덕분에 최근에는 아이콘화된 부엉이 시리즈로 도자기 작업도 하고, 다양한 아트 상품도 선보이고 있어요. 그림과 예술을 가까이하는 방법으로 부담 없도록 꾸준히 작업하려 합니다.
화가이자 미술교육자, 끝없는 도전
철없던 딸이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수많은 어린이의 미술교육에 집중하는 동안 어쩌면 점점 나 최성희는 잊고 지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많은 독자가 공감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죠. 다행스럽게도 본업인 자연미술놀이를 통해 아이들뿐만 아니라 저도 많은 위로와 응원을 받았던 것 같아요. 제 아이들에게도 멋진 엄마로 인정받았고요. 저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미술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음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경험을 하고 나면 대부분 그림의 매력에 풍덩 빠지더라고요.
요즘은 성인 미술교육도 다양해지고 있고, 저도 전시를 통해 많은 워크숍의 기회를 열 계획입니다. 또한 누구나 미술을 쉽게 접하고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현대인의 미술 사랑방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커다란 붓으로 자신이 직접 조색한 색을 칠하는 것, 계절이 담긴 자연 소재로 기분을 표현하는 것 모두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큰 즐거움이니까요. 어찌 보면 저도 바쁜 30~40대를 보내고 이제야 비로소 나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수단이 바로 그림인 거죠.
제가 그림을 통해 위로받았듯이 위로가 필요한 많은 이들을 위해 문턱이 낮은 작업실 겸 갤러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잘하고 못하는 기준이 없어요. 실수했다면 그 위에 덧칠하면 되고요. 정답이 없기 때문에 강박관념도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 그림을 감상하는 것, 그림을 소비하는 것 모두 누구나 할 수 있죠. 많은 이들의 그 첫걸음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