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장동건 노화’라는 검색어가 화제가 됐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그의 제작 발표회 사진이 업데이트되자 대중은 “장동건도 늙는다”며 외모에 대한 소회로 반가움을 대신했던 것. 결론부터 말하면 장동건도 늙는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의 실물은 여전히 ‘미남 배우’ 장동건이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피지컬 역시 명실상부 ‘장동건’이었다.
“오히려 배우로서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어쭙잖게 외모가 저의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는데, 나이 오십이 넘은 지금은 무기도 족쇄도 아닙니다. 오히려 편합니다.”
오랜만의 인터뷰가 꽤 긴장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20년 동료 배우 주진모와 나눈 사적 대화 내용이 범죄로 인해 유출되면서 사생활 논란에 휩싸인 바 있기 때문이다. 꽤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 그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번 작품에서 파격 변신을 했다. 화면 속에서조차 늘 ‘저세상 초미남’ 역할을 맡았던 그가 영화 <보통의 가족>에서는 발이 땅에 닿아 있는 소시민 역할을 소화한 것이다. 그에게는 도전이었다. 그가 6년 만에 선택한 작품 <보통의 가족>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은 웰메이드 서스펜스로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다. 장동건을 비롯해 설경구, 김희애, 수현이 출연하며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허진호 감독과는 두 번째 호흡을 맞춘다. 극 중 장동건은 신념을 지키려는 ‘재규’로 등장한다. 원리 원칙을 중시하는 자상한 소아과 의사 역할이다. 극 중 배우 설경구와는 형제 관계다.
장동건은 데뷔와 동시에 드라마 <마지막 승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친구> <태극기 휘날리며> 등 연이어 히트작에 출연하고 청룡영화상에서 신인상, 조연상, 주연상을 모두 석권하면서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후에도 굵직한 역할을 맡으면서 대중의 신뢰가 두터웠던 배우다.
<창궐>(2018) 이후 6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장동건을 만나 영화 비하인드 스토리와 그의 근황을 들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얘기하는 모습에서 내공이 느껴졌다.
지금의 나에게 외모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예전에는 어쭙잖게 외모가 나의 큰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기도 족쇄도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다.
“얼굴이 무기인 나이는 지났다”
오랜만의 인터뷰다.
오늘 나오면서 걱정이 많이 되더라. 영화가 궁금한 것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얘기가 궁금하기도 할 것 같아서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혹시라도 나로 인해 영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크다.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과는 다르게 소시민적인 역할이다.
주변에 흔히 있을 것 같은 인물을 맡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촬영하는 날 모니터 속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특별한 분장을 안 해서인지 ‘이게 나라고?’ 싶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더라. 한편으로는 그게 신선했다. 현장에서 김희애 선배님에게 농담으로 “제가 (설)경구 형보다 더 형처럼 보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연기하면서는 신경이 안 써지더라. 그게 또 맞다고 생각한다. 얼굴이 무기인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웃음)
현실에 발이 붙어 있는 캐릭터다. 어떤 점이 어려웠나?
어려운 점도 있었고, 편한 점도 있었다. 대본을 보고 매력적인 점이 바로 그 부분이기도 했다. 재규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캐릭터라는 것이 바로 그려졌다. 할 수 있는 게 많겠다 싶은 반면에 해보지 않은 역할이라 힘든 작업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이 하는 작업이라 믿고 갈 수 있었다.
컴백 소감이 궁금하다.
영화는 6년 만이다. 이전에도 다작을 하는 배우가 아니어서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오랜만인가’ 하는 느낌이 있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공백 기간이 꽤 길게 느껴지기도 할 것 같다. 영화는 관객과 직접 대면하는 일정도 많고, 관객의 얼굴을 보고 얘기해야 하기도 한다. 많이 떨렸다.
허진호 감독과는 2012년 영화 <위험한 관계>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장동건 배우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
처음 허 감독님과 작업을 해보는 분들은 허 감독님 스타일에 당황할 수 있다. 감독님은 처음 촬영할 때 대화를 많이 나눈다. 현장에서도 대화를 많이 나누는데, 배우 입장에서는 빨리 촬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반나절 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웃음) 그래서 초반엔 느리게 진행되지만 뒤로 갈수록 빨라진다. 대화를 많이 나누다 보니 배우가 뭘 불편해하는지 내밀하게 알고 계셔서 후반부엔 조율할 게 없다. 배우 입장에서 참 좋은 감독이다. 다만 내가 힘들었던 건 중국어 대사 때문이다. <위험한 관계>는 한중 합작 프로젝트 영화인데 중국어 대사가 많았다. 다 외워 가면 다음 날 대사가 바뀌는 거다. 군소리 없이 하긴 했는데 그게 잦더라. 중국어가 툭 치면 나오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어느 날 정중히 항의하기도 했다.(웃음) 감독님과는 그런 추억이 있다.
그때의 허 감독과 지금의 허 감독이 달라진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예전보다 많이 빨라지셨다. 시스템에 맞추는 것도 감독의 미덕 중 하나이지 않나. 그런 점이 달라지셨다. 진화하셨다.(웃음) 그리고 이번 영화를 두고 기존의 ‘허진호표’ 영화와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특유의 결은 그대로다. 나는 그런 게 좋다. 보면 알게 될 거다.
영화에 대한 평이 좋다.
안심이 된다. 그래서 자신 있게 관객들에게 권할 수 있다. 배우도 사람인지라 영화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홍보하거나 인터뷰하는 자리가 불편하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하니 말도 꼬이고 부자연스럽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 있어서 편하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한국 영화가 다양성이 떨어지는데 이런 서스펜스 장르가 흥행하면 영화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 주연배우가 아닌 영화인으로서 내 마음이다.
<보통의 가족>이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다. 그런 뜻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시간을 들여서라도 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극 중에서 캐릭터들이 극한 상황에 몰리고 그것을 숨기려 한다. 실제로 나 역시 사람인지라 운전할 때 간혹 욕이 나오기도 하는데, 해보니까 나만 손해더라. 누군가는 욕을 하다가 시비가 붙어 싸우기도 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화가 나면 욕하고 싶은 본성이 있는데, 결국 하느냐 안 하느냐는 사회적인 얼굴, 인성으로 결정된다. 그럴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번 작품을 하면서 옳은 선택을 하고 나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영화를 끌고 나간다. 특히 식사 자리에서 신경전 장면이 압권이었다. 베테랑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식사 장면은 4명의 배우가 다 얽혀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상대 배우가 연기할 때나 내가 잡히지 않는 장면에서는 감정을 덜 소모하거나 쉬는 게 일반적인데 김희애 선배가 그걸 깼다. 모든 장면이 내 장면인 듯 열정적으로 연기해주셔서 자극이 많이 됐다. 덕분에 모든 배우가 서로를 배려하며 연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연기는 상대 배우의 에너지를 받아서 하는 부분이 크지 않나. 식사 장면이 특히 그랬다. 그리고 경구 형에게 배운 것도 많다.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했던 게, 나와 형제 관계로 나오는 만큼 현실 형제 같은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말 한마디 없이 그저 형을 따라가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티키타카가 나오게끔 끌고 가는 힘이 있더라. 설경규라는 배우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고 딸이 초등학교 3학년이다.
나는 그때의 추억이 다 떠오른다.
그 시절 내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했던 건 부모님의 직접적인 디렉션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환경에 의해 스스로 변화했고, 타고난 성향도 중요했던 것 같다.
불안해하기보다는 아이의 타고난 성향 안에서 아이를 믿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지금 내겐 무탈한 것이 큰 행복”
<보통의 가족>을 보고 있으면 보통이 가장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장동건 배우가 지향하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무탈한 게 가장 큰 행복이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크면서 바라는 게 생긴다. 주변에서 ‘장동건 아들’이라고 외모도 많이 궁금해하는 걸 보고 외모도 키도 바라는 게 생기더라. 그게 사람인 것 같다. 지금은 그저 무탈한 게 큰 행복이라는 걸 안다.
아이 공부에 대한 욕심은 없나?(웃음)
아내도 나도 공부에 대해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다. 나중에 밥벌이는 해야 하니까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편이다.
말이 나온 김에 ‘장동건 아들’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외모인지 궁금하다.(웃음)
(비주얼이) 괜찮다. 나쁘지 않다.(웃음) 최근 1년 만에 키가 10cm나 컸다.
부모로서 아이를 키울 때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은 무엇인가?
아이가 어렸을 때 ‘친구 같은 아빠’가 유행했다. 그런데 나는 아빠가 친구 같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빠는 아이를 이끌고, 어느 부분에선 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완전히 무너졌다. 둘째가 딸인데 특히 딸에게는 아빠의 권위, 그런 거 없다. 그런데 지금 아이와 나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 좋다. 아이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정말 잘못된 길로 가면 바른길로 가도록 이끌어주는 게 아빠의 역할이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고 딸이 초등학교 3학년인데 나는 그 나이 때 추억이 다 떠오른다. 그 시절 내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했던 건 부모님의 직접적인 디렉션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환경에 의해 스스로 변화했고, 타고난 성향도 중요했던 것 같다. 물론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필수 전제 조건이다. 부모가 불안해하기보다는 아이의 타고난 성향 안에서 아이를 믿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아이가 아빠의 작품을 보기도 하나?
아이가 <태극기 휘날리며>를 본 뒤에 일주일 정도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더라.(웃음) 20년 전 영화지만 아이가 좋아하니까 뿌듯했다. 개인적인 욕심이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작품을 또 한 번 필모그래피에 넣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선택할 때도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물론 아이 때문에 선택의 기로에 섰던 작품은 없었지만, 작품을 볼 때 의식은 된다. 덧붙이자면 간혹 같이 밥을 먹으러 나가면 주변 사람들이 알아봐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은근히 좋아한다. 책임감이 느껴진다.
‘장동건’ 하면 ‘미남’의 계보를 잇는 고유명사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이 오십이 넘어 얼굴 얘기를 하자니 민망하지만….(웃음) 이왕이면 외모가 잘 유지되면 좋겠지만 나이가 들면 쉽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배우로서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중요한 건 지금은 나에게 외모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는 어쭙잖게 외모가 나의 큰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무기도 족쇄도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편하다.
마지막 질문이다. 오랜만에 인터뷰를 한 소감이 어떤가?
감사한 마음이 제일 크다.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온전히 작품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도 했다. 어쨌든 후련한 느낌이 든다. 이번 작품도 많이 봐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