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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최초 여성 대통령, 셰인바움의 드라마틱한 인생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은 1824년 멕시코 연방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탄생한 여성 대통령이다. 가부장적 문화가 강해 마초(macho)의 나라로 알려진 멕시코에서 미국보다 앞서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큰 화제를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On November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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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과학자이자 정치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은 1962년 6월 24일 멕시코시티에서 유대인 아버지 카를로스 셰인바움과 유대인 어머니 애니 파르도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유대인이지만 분파는 달랐다. 유대인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주로 동유럽에 정착해 살던 유대인을 아슈케나짐(Ashkenazim)이라 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 거주하던 유대인을 세파르딤(Sephardim, 세파르드·스파라드 유대인)이라 한다. 중동과 남아시아 등에 거주하던 유대인인 미즈라힘(Mizarhim), 에티오피아에 살던 흑인 유대인인 팔라샤(Falashia) 등도 있다.

셰인바움의 조부모는 1920년대 리투아니아에서 멕시코시티로 이주한 아슈케나짐이었고, 외조부모는 1940년대 홀로코스트를 피해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이주한 세파르딤이었다. 아버지는 아슈케나짐, 어머니는 세파르딤인 셈.

셰인바움 집안은 이공계 집안이었다. 셰인바움의 아버지는 화학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UNAM) 명예교수를 역임한 생물학자이자 의사였다. 셰인바움의 오빠는 물리학을 전공했다.

셰인바움은 중남미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에서 1989년 물리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고, 1994년과 1995년에는 에너지공학으로 각각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 공학대학 교수가 됐고 에너지, 환경, 지속 가능한 개발 분야에서 100편 이상의 논문과 2권의 책을 냈다.

셰인바움의 부모는 모두 급진적인 좌파 운동가이기도 했다. 셰인바움 역시 어려서부터 부모의 영향을 받아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부모가 모두 1980년대 운동권 출신인 셈. 셰인바움은 스스로를 “68운동의 딸”이라고 말하곤 했다. 68운동은 1968년 전 세계에 몰아닥쳤던 반체제운동으로 우리나라에는 20년 뒤에 유입되면서 1980년대 학생운동의 뿌리가 됐다.

셰인바움 역시 1989년 민주혁명당 창당에 참여하고 당원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등 어려서부터 정치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첫 번째 남편인 카를로스 이마즈도 좌파 성향의 정치가였다. 둘은 1987년에 결혼했고, 1988년 딸 마리아나를 얻었지만 2016년에 이혼했다. 셰인바움은 이혼 이후 딸과 전남편 아들인 로드리고 이마즈를 함께 키웠다.

시장 당선 후 진보 정당 대선 후보로 입지 다져

셰인바움이 정계에 본격 데뷔한 것은 직전 멕시코 대통령이었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가 2000년 멕시코시티 시장에 당선하면서부터다. 오브라도르는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 수학과 교수로부터 멕시코시티의 환경부 담당자로 셰인바움을 추천받았고, 그녀를 만난 이후 멕시코시티의 환경부 담당자로 임명한다. 그녀는 2000년 12월부터 2006년 5월까지 멕시코시티의 광역버스 전용차로 및 전자 차량 등록 시스템과 멕시코시티의 최대 고속도로인 외곽 순환도로의 2층 건설을 감독했다.

2006년 오브라도르가 멕시코시티 시장 선거에서 낙선하자 셰인바움은 학계로 돌아왔고,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참여했다. 이 연구팀은 200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오브라도르와의 인연은 지속됐다. 오브라도르는 2006년과 2012년 대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는데 매번 셰인바움은 대변인을 맡았다. 오브라도르는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탈당해 국가재건운동을 창당했는데 셰인바움도 오브라도르와 함께했다.

셰인바움은 국가재건운동 소속으로 오브라도르가 2018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환경부 장관을 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2015년 방향을 선회해 멕시코시티 내 최대 자치구인 틀랄판(Tlalpan) 자치구의 지역대표(구청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8년에는 멕시코시티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멕시코시티 역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이자 최초의 유대인 시장 탄생이었다.

멕시코시티 시장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시장에 해당한다. 앞서 2000년 멕시코시티 시장에 당선되고 2018년 대통령이 된 오브라도르가 그랬던 것처럼 멕시코시티 시장 당선은 셰인바움이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올라섰다는 뜻이다.

셰인바움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오브라도르 대통령과 상반된 행보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오브라도르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백신 접종에 회의적이었지만, 셰인바움은 마스크를 쓰고 대규모 백신 접종을 장려했다. 멕시코시티는 자전거도로를 대폭 늘렸고, 4.8k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도 건설했다. 이는 셰인바움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셰인바움은 차기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기 위해 2023년 6월 멕시코시티 시장에서 물러났다. 국가재건운동은 극좌 정당인 노동당, 녹색 보수주의 정당인 멕시코환경주의녹색당과 ‘우리는 함께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이다(Juntos Hacemos Historia)’라는 연합 전선을 구축했는데 셰인바움은 2023년 9월 경선에서 39.38% 득표율로 1위를 기록하면서 연합 전선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이에 맞서 기존 제도혁명당, 민주혁명당, 국민행동당 등 3당은 선거 연합 ‘멕시코를 향하여(Va por México)’를 결성하고 소치틀 갈베스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다.

2024년 6월 2일 치러진 멕시코의 대통령 선거에서 셰인바움은 61%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했다.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국가재건운동을 필두로 한 연립 여당이 하원에서 278석에서 373석으로 의석을 무려 95석을 늘리며 개헌선을 넘기는 대승을 거두었다. 상원에서도 개헌선에 단 2석 모자라는 83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뒀다.

이러한 승리 배경에는 오브라도르의 후광도 컸다. 멕시코 대통령 임기는 6년으로 연임은 불가능하다. 오브라도르는 물러나기 전까지 지지율이 70~80%를 기록할 정도로 멕시코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셰인바움은 오브라도르와 생각은 다소 다르지만 후계자로서 오브라도르가 추구하는 정책을 최대한 이어받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오브라도르가 이루지 못한 개혁은 최저임금을 인플레이션 이상으로 인상하고 판사를 투표로 선출하는 내용 등이 담긴 개헌이었다. 셰인바움은 이를 승계하기로 약속했다.

셰인바움만의 공약도 뚜렷하다. 그녀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설명하며 낙태 합법화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어서 2022년 멕시코시티의 게이 프라이드 행진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혼 3년 만인 지난해 재혼했으며 상대방은 멕시코 중앙은행에서 재무 리스크 분석가로 일하는 헤수스 마리아 타리바다. 두 사람은 학부 때 연인 관계였다가 헤어진 뒤 2016년 다시 만났다. 셰인바움은 당선인 시절 “남편과 대통령궁에서 함께 살 예정이지만 남편은 어떤 직책도 맡지 않고 멕시코 중앙은행에서 계속 근무할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글로벌 여성 정치인 누가 있나 

여성 정치인은 20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의 이사벨 페론으로 대통령인 남편 후안 페론을 보좌해 부통령을 맡다가 1974년 7월 남편이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첫 대통령은 1980년 아이슬란드 대선에서 승리한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로 이후 세 차례의 선거에서 승리해 총 16년 동안 재임했다.

여성 인권이 미약한 국가에서도 종종 여성 리더가 당선되고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1988년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가 최초의 여성 총리로 당선됐다. 이후 방글라데시의 셰이크 하시나는 1996년 6월부터 2001년 7월까지, 다시 2009년 1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총 20년 이상 총리를 지내며 여성 행정 수반으로서 최장수 재임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남미에서는 현재 페루의 대통령 디나 볼루아르테가 있다. 그녀는 부통령이었던 2022년 당시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이 탄핵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여성 정치인이 가장 보편화된 곳은 유럽이다. 2005년 11월 22일부터 2021년 12월 7일까지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가장 뚜렷한 행보를 보인 여성 지도자였다. 2022년 10월 이탈리아 총리에 오른 조르자 멜로니, 2019년 6월 덴마크 총리로 취임한 메테 프레데릭센 등 현재 유럽 핵심 국가들에서도 여성 지도자가 국정을 이끌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유럽은 북유럽과 발트해 인근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여성 정치인이 대세가 돼가고 있다. 나타샤 피르츠 무사르 슬로베니아 대통령, 에비카 실리냐 라트비아 총리,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 카테리나 사켈라로풀루 그리스 대통령 등도 여성 정치인이다. 아이슬란드도 지난 8월부터 여성 대통령 할라 토마스도티르가 국정을 수행하고 있다.

의외로 미국은 아직 여성 대통령이 나오지 않은 국가다. 올해 11월 5일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가 도널드 트럼프를 상대로 승리한다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육종심(경제 전문 프리랜서)
사진
스플래시 뉴스
2024년 11월호
2024년 11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육종심(경제 전문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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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래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