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人和)의 LG가 흔들리고 있다
LG그룹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인화(人和)’다. 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한다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LG는 초대 구인회 창업회장 때부터 2대 구자경 회장, 3대 구본무 회장에 이르기까지 가족을 시작으로 직원 모두의 단합, 화목한 분위기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회사 경영은 남자, 아들의 일”이라는 장자 승계 원칙을 이어오면서 잡음이 없는 것은 물론 가족들 간 사이가 화목했던 것도 인화를 최우선으로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LG그룹 3세 경영주인 구본무 회장이 별세하면서부터 인화의 LG가 흔들리고 있다. 불의의 사고로 친아들을 잃은 구본무 회장이 조카인 구광모 현 LG그룹 회장을 양자로 들여 경영권을 승계했는데, 이에 대해 구본무 회장의 아내와 두 딸이 상속회복청구소송을 제기하며 ‘LG그룹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
특히 이 과정에서 뒤늦게 구본무 선대회장의 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의 남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에 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여러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논란과 함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로 ‘거액’을 벌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구연경 대표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만큼 윤관 대표가 최근 불거진 상속회복청구소송의 배후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적 위조·탈세 논란’ LG 맏사위 윤관은 누구?
윤관 대표는 고 윤태수 대영알프스리조트 회장의 차남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심리학을 복수 전공하고 경영공학 석사를 마쳤다. 2000년 블루런벤처스(BRV)의 전신인 노키아벤처파트너스에 입사해 역량을 인정받아 2005년부터 공동 파트너 지위를 달았고, LG가(家) 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와 미국 유학 시절 만나 2006년 5월 결혼했다.
현재는 국내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빌딩에 자신이 이끄는 BRV코리아 사무실을 두고 있고, BRV펀드의 국내 투자 운용을 담당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투자 성공 사례는 르네상스호텔(현 센터필드) 매각,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지분 처분 등이 있다.
하지만 잡음도 상당하다. 윤 대표가 지난해 3월 강남세무서를 상대로 제기한 ‘종합소득세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이 대표적이다. 세무 당국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은 2016~2020년 윤 대표가 국내에서 벌어들인 배당소득 221억원에 대해 종합소득세 신고를 누락했다고 봤고, 이에 강남세무서는 종합소득세 123억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윤 대표는 자신이 미국인이고, 국내 거주자도 아니라 세금을 낼 수 없다며 소를 제기했다.
이 소송의 쟁점은 ‘미국 국적’인 윤 대표가 국내에서 종합소득세를 내야 하는 ‘국내 거주자’에 해당하는지다. 강남세무서는 윤 대표를 “한국에서 활동하지만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국적을 세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세무 당국은 “과세 기간 윤 대표의 투자 자금은 100% 한국에서 나왔고, 투자 대상은 80%가 한국 기업이며, 투자를 위해 활동한 시간 또한 95% 정도 한국이었다”며 적절한 과세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윤 대표는 “한국 국적이 아니기에 과세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2005년 미국 영주권을 획득하고,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한 후 2011년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 국내 거주자는 한국에 주소를 두거나 183일 이상 거주하면 종합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윤 대표는 △국내 체류 일수가 183일 미만이라는 점 △국내에 보유한 부동산이 없다는 점 △국내 거주 목적의 직업과 국내에서 발생한 소득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세금을 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1심 역할을 하는 조세심판원은 윤 대표가 어머니와 형제들을 위해 2008년부터 전세금 20억원에 이르는 전세 계약을 유지하고 있으며, 가족들의 주거 장소뿐만 아니라 생활 자금도 지원한 것으로 판단한 바 있다.
심지어 재판에서는 국적 위조 의혹도 거론된다. 윤 대표가 과거 병역의무를 면탈하기 위해 여권과 과테말라 거주 신분증을 위조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열린 재판에서는 윤 대표가 미국에서 세무 신고를 할 때 주거지를 ‘일본’으로 기입한 사실이 알려져 납세의무를 지지 않으려고 한국에서는 ‘미국’, 미국에서는 ‘일본’ 거주자 행세를 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사위의 개인적인 의혹 자체만으로도
LG 가문의 점잖은 가풍과 인화 이미지에 흠집이 생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LG家 상속 소송 배후로 지목되기도
이런 이야기들이 언론에 나오기 시작한 것도 LG그룹 지분을 놓고 구본무 선대회장의 아내 김영식 씨와 두 딸이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낸 후부터다. 그 배후로 구본무 선대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대표를 의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윤 대표가 투자 및 기업인수 합병의 전문가인 데다 2022년 김영식 씨 등 세 모녀가 구광모 회장에게 상속 분할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리에 윤 대표도 함께 있었던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장모와 배우자(구연경 대표), 처제 등에게 소송을 제기하도록 배후에서 설득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지점이다.
상속회복청구소송은 세 모녀가 소를 제기한 지 1년이 넘도록 진척이 없지만, 그사이 윤관 대표의 부적절한 의혹들은 계속 불거지고 있다. 윤 대표는 검찰 수사도 앞두고 있다. 현재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이 구연경 대표와 윤관 대표의 ‘자본시장법 위반 행위’ 사건을 만지작거리고 있기 때문. 구연경 대표는 남편의 판단에 따라 투자 결정이 이뤄진 신약 개발 상장사 A기업의 주식을 정보 공개 전에 매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자본시장법 제174조는 상장법인의 업무 등과 관련된 미공개 중요 정보를 특정 증권 등의 매매·거래에 이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윤관 대표가 알게 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구연경 대표가 주식을 매수했다면 명백한 불법이다.
구연경 대표는 이후 A기업의 주식 3만 주가량을 LG복지재단 측에 기부한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아직 이사회 승인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LG복지재단 이사회는 구 대표가 해당 주식을 취득한 과정에 불법적 정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기부 여부를 잠정 보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상속회복청구소송이 시작된 뒤 윤 대표와 관련한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관련 의혹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LG그룹 안팎에서는 ‘인화의 LG’ 이미지에 금이 간 것만 해도 큰 타격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에서 여러 대기업을 수사했지만 LG 오너들만큼 검찰 수사를 받지 않은 대기업이 드물 정도로 경영에 있어 정도를 걷고 선을 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며 “사위의 개인적인 의혹과 별개로 가족들 간 재산을 놓고 싸우는 모습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 자체가 LG그룹 이미지에 타격을 입힌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재계 관계자는 “사위의 개인적인 의혹 자체만으로도 LG 가문의 점잖은 가풍과 인화 이미지에 흠집이 생긴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