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동거인 상대로 1심에서
20억원 위자료 지급 승소
1 심 판결 직후 입금에 양 측 감정싸 움도 지속
지난 8월 22일 서울가정법원 가사4부(이광우 부장판사)는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 소송 선고에서 “피고(김희영)는 최태원과 공동으로 원고에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노소영 관장이 최태원 회장과 벌이고 있는 이혼소송과는 별개로 노 관장이 지난해 3월 김희영 이사장을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이었다. 20억원이라는 금액은 지난 5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2심 판결에서 책정된 위자료와 같은 금액이었다.
노 관장과 최 회장의 이혼소송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 3,8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분할하고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최 회장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일방적 송금” vs “판결대로 신속 지급”
위자료 청구 소송 1심 선고 직후 김희영 이사장은 입장문을 내고 “법원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항소하지 않겠다”면서 “법원에서 정한 의무를 최선을 다해 신속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나흘 만인 8월 26일 노소영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을 송금했다. 그리고 김 이사장 측은 “판결 원리금을 직접 노 관장 계좌로 이체하고 곧바로 대리인을 통해 노 관장 측에 그 사실을 알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놓고 양측은 다시 한번 붙었다. 노 관장 측은 아무런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입금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노 관장 측 법률 대리인은 같은 날 입장문을 통해 “상간녀 측에서 아무런 사전 협의나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입금했다”며 “돈의 성격이 채무변제금인지 가지급금인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일방적인 송금 행위는 돈만 주면 그만 아니냐는 인식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 관장의 개인 정보인 계좌번호 정보를 어떤 경위로 알게 됐는지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 이사장 측은 “송금액은 항소를 전제로 한 가지급금이 아니라 판결에 따르겠다는 입장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확정적인 채무변제금”이라며 “노 관장이 소송에서 낸 증거에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매월 생활비를 보내던 계좌번호가 포함됐고, 이를 통해 노 관장의 계좌번호를 알게 된 것으로 판결금 이행에는 관련 법령상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의 20억원 송금을 놓고 사회적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자금 출처에 대한 의문과 함께 “결국 가정을 파괴하고 돈 주면 끝이라는 것이냐”는 비난도 여전하다.
법조계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는 아니지만 적절한 태도는 아니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통상 소송이 끝나면 상대방 변호사 측에 항소 포기 의사를 밝히고 수령 의사를 묻고 계좌번호를 받아서 송금한다. 소송 과정에서 드러났던 본인 명의 계좌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지 여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김 이사장 입장에서는 신속히 위자료를 지급함으로써 이자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보통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문에는 지연손해금이 책정되는데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상 판결 선고일부터 실제 그 금액을 지급하기까지 연 12%의 이자가 붙는다.
노 관장 측에서 위자료 가집행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속칭 ‘빨간딱지’를 붙여 대외적으로 망신을 줄 수 있었는데 김 이사장 측이 신속하게 입금하면서 이 같은 가집행은 불가능해졌다.
“재벌은 정신적 고통이 다른가” vs “기존 위자료가 비현실”
‘20억’에 대한 반응도 엇갈린다. 우리나라 법률에는 불륜에 대한 위자료 산정 기준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배우자의 나이와 재산 상태, 불륜 행위의 경위와 횟수, 부부 관계 파탄의 책임 등을 고려해 3,000만~5,000만원 선의 위자료가 일반적이었다.
이는 서울가정법원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가정법원의 이혼 판결 사례를 분석해 2007년 마련한 이혼 위자료 산정표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었다.
해당 산정표는 청구인의 나이, 혼인 기간, 자녀 수, 이혼 원인, 기타 요인 등을 점수화한 다음 합산한 총점을 기준으로 위자료를 책정한다. 예를 들어 청구인의 나이가 30세 미만이면 6~8점, 30~39세면 8~10점, 40~49세면 9~11점, 60세 이상이면 16~20점으로 분류하고 혼인 기간이 5년 미만이면 6~8점, 5~14년이면 8~10점, 25~29년이면 12~14점이다. 여기에 자녀 수가 0명이면 7~9점, 1명이면 8~10점, 2명이면 10~12점, 3명 이상이면 13~15점이다. 이혼 원인도 불륜 등이 있으면 점수가 높게 책정된다. 이렇게 해서 총점이 26~35점이면 1,000만~2,000만원, 36~45점이면 2,000만~3,000만원, 46~55점이면 3,000만~4,000만원으로 책정되는 방식이다.
20억원이라는 위자료는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전례 없는 액수다. 기존 최고액 위자료는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2심을 판결한 김시철 판사가 지난해 10월 다른 재판에서 결정한 2억원이었다. 이마저도 다른 판사들이 선고했던 위자료와 비교해 극히 이례적인 금액이었다. 이 때문에 법조계 내에서는 이번 위자료 청구 소송 1심 선고를 앞두고 20억원 미만의 위자료가 선고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다.
일단 반응은 2가지로 엇갈린다. 환영하는 측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향후 법원의 위자료 금액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법원의 위자료 산정 기준을 놓고 지난 20년간 3배로 늘어난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외국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그치질 않았다. 외도, 폭행에 혼외자까지 있어도 위자료 5,000만원만 받고 사실상 이혼당하는 아내도 적지 않았다.
반면 똑같은 불륜인데 노소영 관장의 아픔이 마찬가지로 불륜으로 고통받았던 다른 사람들보다 수십 배 더 많은 것이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법원이 재벌이냐 서민이냐에 따라 정신적 고통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공식화한 판결이라는 비판이다.
다만 마지막 변수는 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을 최종 판단하는 대법원에서 20억원이라는 위자료 금액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릴 경우다. 이번 소송은 일반적인 가사사건과 달리 복잡한 쟁점이 많아 대법관 전원이 토론 후 의견을 도출하는 전원합의체로 판결할 가능성도 있다.
“위자료 청구 소송은 이혼소송과 별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이혼소송과 별개로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내는 것을 보고 이혼소송과 위자료 청구 소송이 별개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사람도 많다.
위자료 청구 소송은 크게 배우자에 대한 소송과 상간녀 또는 상간남에 대한 소송으로 나뉘는데 둘 중 한 명만 택해 소송할 수도 있고, 둘 모두를 피고로 해서 한꺼번에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다. 배우자와 불륜 상대방 모두에게 위자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르더라도 이혼 대신 결혼 유지를 결정하고 상간녀나 상간남만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낼 수도 있다. 위자료 청구 소송 판결 이후에도 배우자가 다시 그 상간녀나 상간남과 불륜을 저지를 경우 위자료 청구 소송을 또 낼 수도 있다.
불륜이 아니더라도 혼인 파탄의 원인이 시부모, 시누이, 장인, 장모 등 배우자가 아닌 제3자에게 있다면 제3자를 대상으로도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다만 위자료 청구 소송은 원인 발생일로부터 3년 내에 해야 한다. 또한 결혼 관계가 사실상 파탄 난 상황에서 불륜이 발생했다면 상간녀나 상간남에게 결혼 파탄의 책임이 없기 때문에 위자료를 청구할 수 없다.
배우자의 부정행위에 따른 위자료는 ‘부진정연대채무’다. 부진정연대채무란 채무자 중 한 사람이 채무를 변제한 만큼 나머지 채무자의 지급 의무가 없어지는 것이다. 노소영 관장은 최태원 회장과 김희영 이사장 중 누구에게나 위자료 20억원을 청구할 수 있지만 받을 수 있는 총금액은 20억원으로 한정되는 것이다.
대법원이 내린 이혼소송 판결에서 20억원 이상의 위자료가 재산정된다면 최 회장은 2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노 관장에게 지급하면 된다. 20억원보다 적게 책정된 판결이 나오더라도 노 관장은 김 이사장을 상대로 낸 별개의 위자료 청구 소송을 통해 받은 위자료 20억원을 반환할 의무는 없다.
위자료는 금액과 상관없이 전액 비과세다. 다만 위자료를 현금이 아닌 부동산 등 자산으로 지급하는 경우 유상 양도로 간주해 양도소득세가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