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의 등판
지난 8월 27일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는 민희진 전 대표 해임을 결정한 동시에 하이브 라인의 김주영 사내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렇게 되자 4세대 대표 걸 그룹으로 우뚝 선 뉴진스의 향후 활동에 빨간불이 켜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이브와 민희진 전 대표의 갈등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뉴진스의 등판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지난 9월 11일 뉴진스가 긴급 라이브 방송으로 대중 앞에 섰다. 팬들과의 소통 플랫폼, 소속사가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채널이 아닌 새롭게 개설한 유튜브 채널 <nwjns>를 통해서다. 그동안 공식 석상에서 뽐냈던 생기와 발랄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멤버들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무채색 계열의 의상을 입고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으로 미리 준비한 입장문을 차례대로 읽었다. 뉴진스를 가리켜 ‘콩쥐’라고 지칭했던 민희진 전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콩쥐의 반란’이 분명했다.
“방시혁 의장님, 민희진 대표님을 돌려주세요”
뉴진스의 긴급 라이브 방송에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앞서 민희진 전 대표와 뉴진스 멤버들의 부모가 폭로했던 하이브 내 뉴진스 ‘왕따설’이 그것이다. 뉴진스 멤버 하니는 “하이브 건물 내에서 다른 그룹 멤버가 지나가 인사를 나눴는데 해당 그룹 매니저가 그 멤버에게 ‘무시해’라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하니는 “김주영 어도어 신임 대표님에게 이 일을 전했지만, 증거가 없고 오래된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답하더라”며 자신의 소속사인 어도어가 뉴진스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뉴진스 맘’으로 통했던 민희진 전 대표가 갑작스럽게 어도어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된 과정을 꼬집는 발언도 이어졌다. 멤버 혜인은 “(민희진) 대표님께서 해임됐다는 소식을 당일에 기사로 알았다. (김주영 신임 대표가) 저희를 위한다고 하셨지만 일어난 상황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 뉴진스 컴백을 돕지 못할망정 외부에 뉴진스를 나쁘게 표현했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멤버 다니엘도 “인간적으로 민 대표님을 그만 괴롭히면 좋겠다. 이런 회사를 보면 저희가 뭘 배울 수 있겠나”라고 덧붙였다. 뉴진스 멤버들은 방송 말미에 민희진 전 대표의 복귀를 촉구했다. 멤버 민지는 “저희가 원하는 건 민 대표님의 경영과 프로듀싱이 결합된 원래의 어도어다. 방시혁 의장님과 하이브는 (9월) 25일까지 어도어를 원래대로 복귀시키는 현명한 결정을 내려달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뉴진스의 방송이 전속계약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고 해석한다. 통상 연예인이 소속사에 불만 및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시정 날짜를 고지한 이후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시 법적 대응을 시작하는 수순을 밟는다. 민희진 전 대표 또한 하이브를 상대로 대응에 나섰다. 민 전 대표의 법률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세종은 9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사내이사 재선임을 위한 가처분 신청서를 내고 “민 전 대표에 대한 대표이사 해임은 주주 간 계약에 위반되고, 법원의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결정에도 반한다. 민 전 대표는 주주 간 계약에 의해 어도어의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로서 5년 동안의 임기가 보장된다. 그럼에도 하이브는 일방적으로 민 전 대표를 해임했다”고 주장했다.
하이브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재상 하이브 신임 대표는 뉴진스의 방송에 대해 “원칙대로 대응하겠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하이브가 민희진 대표의 복귀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하이브가 민 전 대표와 경영, 아티스트 제작을 두고 오랜 시간 잡음을 겪었던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모자라 서로 헐뜯는 과정이 이어지고 있으니 다시금 협업 파트너로 손을 맞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뉴진스는 건재하다
봉합되기 어려운 갈등 속에도 뉴진스는 건재함을 입증하고 있다. 신곡 발매로 새로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월 하이브와 민희진 전 대표가 한창 여론전을 펼치던 시기에 발표된 뉴진스의 더블 싱글 <How Sweet>에 수록된 2곡은 국내 주요 음원 차트 상위권은 물론 미국 빌보드 주요 차트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어른들의 싸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뚝심 있게 나아가는 뉴진스의 행보에 응원이 이어지는 이유다.
동료 연예인들도 나서서 뉴진스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1세대 아이돌 그룹 S.E.S. 멤버 바다와 유진은 뉴진스의 일본 데뷔곡 ‘Supernatural’ 댄스 챌린지에 참여하며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유진은 해당 영상을 자신의 SNS에 게재하며 “뉴진스의 발전적이고 행복한 미래를 응원한다. 사랑하는 후배들, 부디 힘내줘”라고 뉴진스를 응원했다. 바다는 자신의 SNS 계정에 ‘Supernatural’ 커버 영상을 업로드하며 “뉴진스 팬분들 힘내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룹 우주소녀 멤버 다원은 뉴진스 앨범 커버 사진을 공유하며 “Forever”라는 문구를 썼다.
이어지는 동료들의 응원 가운데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이 하이브 사태를 언급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방탄소년단은 뉴진스와 마찬가지로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빅히트 소속 그룹이다. 정국은 자신의 반려동물 사진을 올리는 SNS 계정에 “아티스트는 죄가 없다”는 의미심장한 문구를 업로드했다. 이후에도 정국은 “그들을 이용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두 차례에 걸친 정국의 게시 글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자 소속사 빅히트가 나섰다. 빅히트 측은 “어떤 경우에도 어린 아티스트를 분쟁에 끌어들이고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는 의미다”라고 전하며,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정국의 뜻깊은 시선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하이브 사태’ 갈등 타임라인
4.22.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경영권 탈취 의혹 제기
하이브가 산하 레이블 어도어 민희진 전 대표의 경영권 탈취 의혹을 제기하면서 내부 감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이브는 민 전 대표가 부대표 A씨와 함께 어도어 경영권을 침탈하고, 부당 이득을 취하려고 한 정황을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하이브는 민 전 대표가 무속인을 동원해 어도어 경영에 관여하게 만들었다고 폭로해 파장이 일었다.
4.25.
민희진, 긴급 기자회견 진행
민희진 전 대표가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이브와의 갈등이 드러난 지 3일 만이다. 135분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민 전 대표는 하이브가 제기한 경영권 탈취 의혹을 정면 반박했다. 민 전 대표는 “경영권을 찬탈할 계획도, 실행한 적도 없다”고 단호하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하이브는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 직후 공식 입장을 통해 성토했다. 하이브는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내용 가운데 사실이 아닌 내용이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다”고 불쾌감을 토로했다.
7.24.
민희진, 박지원 하이브 전 대표 고소
민희진 전 대표가 박지원 하이브 전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어도어 측은 하이브 인사들이 민 전 대표를 해임할 목적으로 어도어 소유의 업무용 노트북과 PC를 강압적으로 취득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하이브는 “당사는 강압적으로 정보 자산을 취득한 바 없다. 심지어 민 전 대표는 지금까지 어떠한 정보 자산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즉각 반발했다.
8.27.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 사임
어도어가 이사회를 열고 김주영 어도어 사내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어도어에 따르면 당초 대표이사직을 맡았던 민희진 전 대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뉴진스의 프로듀싱은 그대로 맡는다. 어도어는 “김주영 신임 대표이사는 다양한 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인사관리(HR) 전문가로서 어도어의 조직 안정화와 내부 정비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이번 인사와 조직 정비를 계기로 어도어는 뉴진스의 성장과 더 큰 성공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는 뜻을 밝혔다.
9.11.
뉴진스, 긴급 라이브 방송 진행
뉴진스 멤버 5명이 유튜브 채널을 통해 긴급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멤버들은 하이브의 뉴진스 ‘홀대설’에 힘을 실을 부당한 처우를 폭로하고, 민희진 전 대표가 떠난 어도어가 뉴진스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다. 멤버 민지는 “저희가 원하는 건 민 대표님의 경영과 프로듀싱이 결합된 원래의 어도어다. 방시혁 의장님과 하이브는 (9월) 25일까지 어도어를 원래대로 복귀시키는 현명한 결정을 내려달라”고 강조했다.
9.13.
민희진, 어도어 대표이사 재선임 가처분 신청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 측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어도어 임시주주총회 소집 및 어도어 사내이사 재선임을 위한 가처분 신청’을 했다. 법무법인 세종은 “민 전 대표는 주주 간 계약에 의해 어도어의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로서 5년 동안의 임기가 보장된다”며 “(하이브는) 여전히 유효한 주주 간 계약과 대표이사 임기를 보장하라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