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을 것인가. 최근 MZ세대가 저속(低速) 노화에 푹 빠졌다. 이는 세계적 트렌드기도 하다. 젠지(Gen Z)라고 불리는 20대가 이제 30대로 접어들면서 자신들이 이전 세대보다 빠르게 늙는 가속 노화 위험에 놓여 있는 게 아닌지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크다. 2030세대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저속 노화 영양제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그중 대표적 몇 가지를 살펴보자.
NMN, NR이 무슨 약어인지는 몰라도 한번 먹어봤다는 사람이 주변에 은근히 많다. NMN, NR은 간단히 말해 NAD의 체내 수치를 높이는 보충제다. NAD는 손상된 DNA를 복구해 건강하게 유지하고, 음식을 사용 가능한 에너지로 대사하며, 수면·각성 주기를 조절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포 기능을 지원하는 분자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 몸의 NAD 생산량은 줄어들고 소비량은 늘어난다. NAD 수치가 낮으면 심장병, 2형 당뇨병,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증가한다. 피부에 주름이 늘어날 수도 있다. 노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동물실험에서 긍정 효과 나타나
NMN이나 NR 같은 보충제를 섭취하면 체내 NAD 수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는 다양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노화로 인한 체중 증가를 줄이고 에너지대사를 증강하며 인슐린 민감도를 향상시켰다. 하지만 사람에게서도 이러한 수치 증가가 효과를 내거나 건강 수명을 연장해주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이론상으로는 뇌, 혈관, 간, 근육, 췌장의 기능에 도움을 줄 수 있어 보이지만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는 대부분 실망스럽다.
NMN 및 NR 보충제가 기대보다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세포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즉 혈액에 흡수되더라도 근육과 장기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아직까지 인체 내 NAD 수치를 높이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는 근거는 없다. 가격도 상당히 비싼 편이다. 그럼에도 NR·NMN 보충제를 직구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이들 보충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감독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제조업체는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자기 소비를 위한 소량 직구가 허용되기는 하지만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NMR·NR 보충제를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처럼 관리하는 것도 아니다. NAD 증진 보충제로 NMN이나 NR을 먹는다고 해서 크게 위험할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직구로 먹으려면 제조업체가 어느 정도로 신뢰할 만한 곳인지 확인해보는 게 좋다.
플라세보효과인지 명확지 않아
베르베린도 ‘자연의 오젬픽’이라 불리며 소셜 미디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베르베린은 유럽매자나무의 뿌리, 가지, 껍질에서 추출하는 노란색을 띠는 쓴맛의 알칼로이드 물질이다. 황련, 황백나무 같은 다른 여러 식물에도 베르베린이 들어 있다. 베르베린은 민간에서 당뇨, 고혈압 등에 효과를 기대하며 오랫동안 사용돼왔으며 혈당 조절, 콜레스테롤 강하, 항균 작용 등의 용도로 연구가 진행 중인 물질이다. 독특한 냄새가 나는 지사제 정로환에도 베르베린이 소량 들어 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 건강 정보의 대부분이 그렇듯 베르베린도 자연의 오젬픽이라고 보기에는 효과가 부족하다. 체중 감량은 3개월에 1~2kg인데, 이 정도면 거의 효과가 없다고 봐야 한다. 베르베린은 소식의 효과를 흉내 내어 AMPK 효소를 활성화해 노화를 늦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물질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복통, 설사, 변비, 가스 생성 등의 증상이 나타나거나 사람에 따라서는 과민 반응이 생길 수도 있다. 복용 중인 약과 상호작용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베르베린 역시 해외 직구로 구입해서 먹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미국에서는 이들 제품이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으므로 품질 편차가 크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NMN, NR 같은 NAD 증진 보충제를 먹고 나서 컨디션이 확실히 좋아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효과가 정말 보충제에 의한 것인지, 플라세보효과인지는 아직 모른다. 플라세보효과는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값비싼 보충제일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만약 이런 보충제를 먹고 나서 실제로 일상에서 운동량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야 나쁠 게 없다. 하지만 기분상 좀 나은 거 같다는 정도로 비싼 값을 치러가면서 먹기에는 시기상조로 보인다. 객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피부 개선이나 혈중 지표의 변화가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개인이 이런 변화를 모니터링하기란 아직 어려운 실정이지만 혈당 변화와 같은 지표는 연속 당 수치 측정기를 착용하면 지금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노화 방지 지름길은 운동과 소식
항노화 연구자이자 <노화의 종말>이란 저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데이비드 A. 싱클레어는 원래 레스베라트롤에 대한 연구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싱클레어는 2006년 생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고지방식과 함께 레스베라트롤을 투여받은 생쥐가 그렇지 않은 생쥐보다 수명이 연장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지금도 매일 아침 1g씩 레스베라트롤을 섭취한다고 한다. NMN, 케르세틴, 피세틴도 싱클레어가 먹는 건강 보조제이다. 이들 물질은 모두 소식의 효과를 부분적으로 흉내 낸 것으로 서투인이라는 효소를 활성화한다. 55세인 싱클레어가 또래보다 젊어 보이긴 하지만 이들 항노화 보충제에 그가 기대하는 만큼의 효능이 있는지 아직 불확실하다. 2024년 4월 27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싱클레어에 대해 비판적 기사가 실렸다. 그가 주장하는 ‘역노화’라는 말 자체가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충제로 노화를 거스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동료 과학자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싱클레어는 자신이 세운 건강과 수명 연구 학회 회장직을 사임했다.
노화를 막기 위해 반드시 NAD 증진 보충제를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운동, 소식, 균형 잡힌 식단, 규칙적 생활이 모두 체내 NAD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이에 더해 내게 효과적인 보충제를 찾을 수 있다면 그 또한 노화를 늦추고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을 살아하는 데 도움이 될 거다. 나 역시 이 글을 쓰기 전에 NMN, 베르베린을 각각 6개월 동안 시험 삼아 먹어본 적이 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콕 집어서 효과가 있다고 추천할 만한 보충제는 찾지 못했다. 관심을 가지고 후속 연구를 지켜봐야겠다. 하지만 효과가 입증된 뭔가가 나올 때까지는 더 많이 운동하고 과식을 피하는 게 답이다.
정재훈 약사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출신의 약사이며 푸드라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 팟캐스트 <매불쇼>와 여러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약, 음식, 건강에 대한 과학적 지식 전파에 앞장서왔다. 신문·잡지 칼럼을 통해 약과 음식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하고 있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소식의 과학> <음식에 그런 정답은 없다> 등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