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책상 위를 쳐다보다가 컴퓨터를 한 번 더 쳐다보고 머릿속에 여행 계획을 세운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왠지 기분 좋은 기대감과 묘한 긴장감이 나를 감싼다. 그리고 이미 머릿속에서 태평양 어딘가를 건너고 있다. 사실 머릿속에서 떠나는 여행으로 아프리카 오지의 어느 작은 마을도 다녀오고 아마존강도 건너봤지만,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일들은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되곤 한다. 결국 비행시간이 짧고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곳, 시차가 없는 곳으로 좁히다 보면 일본 어딘가를 찾게 된다. 이제 휴가철도 지나 사람이 많지 않을 때니 다 늦은 휴양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여행은 도시에서 즐기는 도시 휴양과 시골에서 즐기는 시골 휴양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한 번의 여행으로 도시와 시골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2곳의 숙소를 예약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도시 휴양
일본에서 도시 휴양을 한다면 쇼핑을 빼놓을 수 없다. 오모테산도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비가 조금 내리고 있어 사람이 많지 않아 오히려 쇼핑하기에 좋았다. 쇼핑을 마치고 미리 예약해둔 더 아오야마 그랜드 호텔(The Aoyama Grand Hotel·2 Chome-14-4 Kita-Aoyama, Minato City, Tokyo 107-0061)에 들어갔는데 이 호텔을 강력 추천한다. 더 아오야마 그랜드 호텔은 오모테산도, 하라주쿠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에 위치하기 때문에 다니기도 편하고, 일본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넓은 공간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시티 뷰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호텔이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공간과 다양한 다이닝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로비 라운지가 위치한 4층에는 ‘벨코모(Belcomo)’라는 레스토랑이 고객을 맞이한다. 캘리포니아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로 연출한 레스토랑과 호텔 실내는 편안하면서 따뜻한 분위기를 풍긴다. 우리에게 아직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강남역 지오다노와 맥도날드가 약속 장소로 많이 이용됐던 것처럼 1970~1990년대 이 자리에 있었던 쇼핑센터 벨 커먼스(Bell Commons)는 랜드마크와 같은 장소였는데, 벨 커먼스의 애칭인 벨코모를 레스토랑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42개의 객실을 갖춘 이 호텔은 우리가 머물렀던 객실 공간을 채운 가구들도 4층에서 만난 인테리어와 같은 느낌이었다. 객실은 전면이 통유리창으로 돼 있는데, 창밖으로 높은 건물이 아닌 조경이 잘된 공원 뷰가 펼쳐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원이 아니라 공동묘지였는데, 일본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주는 조상들이 머무르는 곳이 묘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위트룸이었음에도 묘지 뷰를 배정해주었다. 혹시 일본 호텔에서 묘지가 보이는 객실을 주더라도 나쁜 객실이 아니니까 놀라거나 당황할 필요는 없다. 진한 그린 카펫과 트로피컬 패턴이 있는 소파는 빈티지한 느낌으로 잘 정돈된 가정집에 방문한 느낌을 받게 한다. 아마도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현관, 슬라이딩 도어로 구분된 침실과 거실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더 아오야마 그랜드 호텔의 가장 좋았던 점은 호텔 룸 안에 있는 미니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맥주, 와인, 위스키 등 다양한 술을 밖에 나가지 않고 객실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둘째 날 아침은 더 아오야마 그랜드 호텔 20층에 있는 ‘트라토리아 앤드리아 로스(Trattoria Andrea Ross)’에서 먹었다. 원래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인데 아침에는 호텔 조식당으로 이용된다. 조식으로 메인 음식을 한 가지 선택하면 뷔페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알찬 메뉴로 구성돼 만족도가 매우 높다. 게다가 샴페인이 제공되기 때문에 샴페인으로 아침을 열 수 있다. 아침 식사 후 호텔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체크아웃한 다음, 긴자에 있는 스파티움긴자 포니(Spatiumginza Pony·6 Chome-6-11 Tsukiji, Chuo City, Tokyo 104-0045)로 숙소를 옮겼다. 적당한 가격대라서 혼자 여행을 다니거나 합리적인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좋은 숙소라고 할 수 있다. 일본 호텔치고 방이 컸고,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세탁기도 있어서 장기간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도 적합한 호텔이다. 객실 내외부가 인더스트리얼 스타일로 꾸며졌고, 츠키지역(5분), 긴자역(19분), 핫초보리역(14분), 신바시역(28분)까지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저녁은 ‘카키이레도키(Kakiiredoki·3 Chome-6-5 Tsukishima, Chuo City, Tokyo 104-0052)’라는 굴 전문점에서 먹었다. 다양한 산지의 굴을 먹을 수 있어 굴 마니아에게 추천하는 곳이다. 생굴 6가지 정도와 다양한 굴 요리를 선보인다. 훈연굴, 굴찜, 굴구이, 굴튀김까지 다양하게 맛보고 바로 건너편에 있는 몬자야키집과 양고깃집을 거쳐 저녁 투어를 마쳤다.
다음 날 아침은 츠키지 어시장 안쪽에 있는 ‘UTB(6 Chome-27-1 Tsukiji, Chuo City, Tokyo 104-0045)’에서 우동을 먹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운영하는데 차가운 야마카케 우동, 뜨거운 유부우동과 니꾸 두부 우동이 맛있다. 먹지는 않았지만 덮밥 메뉴와 족발이 올라간 우동도 있어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다. 면발이 탱글탱글해 입맛을 당기니 아침 겸 점심으로 꼭 방문하길 추천한다.
첫날 저녁은 더 아오야마 그랜드 호텔 4층에 위치한 일식 요리집 ‘시카쿠(Shikaku)’에서 먹었다. 갓포 요리 전문점인데, 자리 앞에 작은 데판이 있고 귀여운 오코노미야키를 먹는 손님이 많았다. 2명이 방문했는데도 8가지 요리를 시켜 먹을 만큼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었다. 모둠 생선회는 1인분만 주문하는 것이 가능해 각자 먹고 싶은 종류를 편하게 맛볼 수 있었다. 마지막에 나온 장어솥밥은 배가 불러 다 먹지 못하고 오니기리(주먹밥)로 포장해 객실로 돌아왔다.아침 식사 이후에 ‘터렛 커피(Turret Coffee·2 Chome-12-6 Tsukiji, Chuo City, Tokyo 104-0045)’에서 커피를 마셨다. 긴자에 간다면 들르길 추천하지만 가게가 작고 주인 혼자서 모든 걸 하다 보니 시간이 걸려 대기가 생길 수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 도쿄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라테가 인기가 많고 개인적으로도 더 맛있지만, 일행이 여럿이라면 다양한 커피를 맛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테다. 커피 러버라면 원두를 꼭 살 것. 지인들 선물로도 좋을 듯하다. 긴자에서 약간의 쇼핑까지 끝내고 나면 도시에서의 휴양을 마무리 짓고 이제 시골로 여행지를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