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허리 디스크 때문에 운동을 잠시 쉬어 간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요즘 건강은 어떤가요?
지난해부터 디스크 모양이 좋지 않았어요. 허리 측만이 심해 기립근 코어를 좀 더 강화시키려고 운동을 더 열심히 했죠. 처음 아팠을 때는 5분 걷는 것도 너무 힘들었지만 요가 수련을 통해 많이 좋아졌어요. 한 자세에서 오래 머무는 하타 요가 수련을 많이 했는데, 가동 범위가 넓은 범위 내에서 머물고 근육 강화 운동과 이완을 위한 스트레칭을 하면서 약해진 근육을 충분히 강화시키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고, 관절에도 탈이 난 거죠. 디스크가 터진 건 아니고 좀 밀려나간 거라서 몸을 잘 다독이고, 충분히 쉬고 강화 운동도 슬슬 하면서 좋아지게 하고 있어요. 40대가 되어 한 번, 50대가 되어 한 번 몸이 조금씩 아픈 것 같기도 해요.
오랫동안 요가를 수련한 덕분에 자신의 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줄 알게 됐나요?
오히려 너무 집중하고 귀 기울이면서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 같기도 해요. 예전 같으면 무던하게 지나갈 증상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조바심 내기도 하면서요. 이젠 욕심내지 말고 적당히 해보려고 해요.
요가 하는 것을 두고 ‘수련한다’고 말하곤 하죠. 그런 점에서 요가는 운동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배우고 단련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성 들여 규칙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뱉어내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는 걸 느껴요. 어느 동작에 이르기 위해서는 상당한 집중을 요하죠. 잠깐 딴생각만 해도, 또는 눈동자만 돌려도 동작이 무너져요. 길게는 한 동작 안에서 45분을 버텨야 하니까 집중력도 좋아졌어요. 원래 좀 산만한 편이거든요. 버티는 시간 동안 처음엔 ‘이쯤에서 그만할까’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 고비를 지나고 나면 정말 무념무상의 상태가 돼요. 자연스레 명상에 들어가는 거죠. 그러다 다 해내고 나면 성취감도 있어요. 아쉬탕가를 하다 하타로 넘어간 이유도 오래 버티는 동작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호흡하며 고요하게 머무는 순간을 가장 사랑하죠.
수련이란 건 단시간에 목표한 바를 이뤄낼 수 없다는 의미도 담겨 있어요. 매일 더 나아지기만 할 수도 없고, 어떤 날에는 후퇴하는 날도 있을 테고요. 그럴 때면 마음을 다스리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요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내적 갈등도 있었어요.(웃음) 날씨가 별로거나 전날 피곤하면 괜히 빠지고 싶었죠. 그런데 하면 할수록 몸이 좋아지는 걸 느끼니까 자연스레 습관이 되더라고요. 습관으로 자리 잡아도 슬럼프가 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일주일씩 쉴 때도 있는데, 그렇게 쉬고 나면 동작이 또 무너져버려요. 괜한 슬럼프에 수련을 하지 않을 때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수련을 이어가야 하죠. 동작을 다 익히고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공부가 끝나고 나면 동작을 좀 더 세세하게 조작하며 또 다른 재미와 희열을 느끼게 돼요. 그 과정을 지나며 점점 성숙해져요. 어쨌거나 인내했고, 상황에 타협하기보다 혼자 해내면서 성장해가는 거죠. 수련을 이어가는 데 SNS도 많은 도움이 됐어요. 누군가와 약속한 적은 없지만 제 SNS를 보고 동기부여를 받는 사람들이 있으니 게을러지고 싶거나 슬럼프가 올 때도 계속 몸을 움직이게 돼요. 저 역시 다른 SNS를 보고 힘을 얻어 계속 수련하게 되고요.
너무 간절하면 조급해지기만 할 것 같아요.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정말 신바람 나게 연기해보자고 생각해요.
일단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며 열심히 잘 살려고 해요.
디스크로 수련을 할 수 없었을 때 요가 대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찾아보겠다고 말했어요. 일상의 빈틈을 안 좋아하는 편인가요?
하루이틀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잘 지낼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날이 길어지면 하루하루가 그냥 흘러가버리는 것 같아 뭘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되죠. 이번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는데 실행하진 않았어요. 새로운 것을 하려면 정말 마음이 움직여야 시작하는 편인데, 그런 마음이 안 들더라고요. 그림 다음에는 목공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에 알아보다가 안 했어요. 그러다 정착한 것이 해부학에 대한 공부예요. 요가도 결국 해부학을 기초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제 관심사와도 잘 맞아떨어졌고요. 운동을 좀 쉬는 동안 해부학 공부를 시작했고 책도 많이 읽었어요. 선생님이 아플 때는 앉아 있지도 말라고 해서 누운 채로 그동안 보지 못한 드라마도 많이 봤고요. 요즘 재밌는 드라마가 정말 많아요. 다루는 소재도 엄청 다양하고요.
그런 좋은 작품을 볼 때면 작품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너무 간절하면 조급해지기만 할 것 같아요.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정말 신바람 나게 연기해보자고 생각해요. 일단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며 열심히 잘 살려고 해요.
지금까지는 자신보다 아이에게 집중한 삶이었을까요?
아이가 대학에 가기 전까지 저를 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아이가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요가를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하고, 예전 집에 있던 작은 테라스에서 식물을 돌보고. 그런 시간을 즐겼어요. 아이가 음악을 하기 때문에 뒷바라지할 것도 많았어요. 레슨이 있는 날이면 아이를 차에 태운 채 밥을 먹여야 할 때도 있고, 아이 레슨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데리러 가야 하고. 아이를 위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제가 특별히 다른 걸 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오히려 그 시간이 좋았어요. 이동 시간이 길다 보니 아이와 얘기할 시간도 굉장히 많았고, 아이가 자라며 하는 생각, 고민, 힘든 일들을 공유하며 성장해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어요. 제가 아이를 정말 좋아해요.(웃음) 아이를 키우며 보낸 시간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어요. 충만하게 행복했어요.
지난 5월에는 TV조선 <조선의 사랑꾼>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오랜만의 예능 출연인 데다 관찰형 예능이어서 부담스러운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상황만 주어지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 하는데, 카메라가 있으니까 제 모습을 오롯이 보여주기가 쉽지 않았어요. 나중에 방송을 보니 화면 속 제 모습이 뭔가 달떠 있더라고요. 그래도 오랜만에 많은 스태프와 함께 일해서 좋았어요.
그러고 보니 <우먼센스>와 함께한 촬영도 오랜만이에요.
6년 전 이맘때쯤 커버 촬영을 했으니 정말 오랜만이네요. 마침 이번 8월호가 창간 36주년 기념호라고 들었어요. 무언가를 수십 년 동안 만들어왔다는 건 클래식이 돼가는 시간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우먼센스>는 그 자체로 클래식이 된 거죠. 오늘 같은 화보 촬영도 저를 위해 스태프가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많이 애써주기에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거죠. 최고의 스태프가 나에게 어떻게 와주었는지 정말 감사해요. 그 덕에 화면 속 제가 마치 30대처럼 느껴졌어요.(웃음)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잘해낼 수 있을지 많이 걱정했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잘 집중할 수 있었고 즐겁게 끝났어요. 그래서 감사하고요. 나이가 들수록 감사한 일이 많아요.
나이가 들수록 좋은 점이 있다면 뭘까요?
어릴 때는 뭔가 해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조급함과 불안감이 많았어요. 살아온 시간과 경험에 비해 어쭙잖게 자아가 너무 강해 많이 부딪치기도 했어요. 세상에 대해 저만의 선입견이 강했고, 자존심도 너무 셌어요.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선입견은 그냥 제 안에서만 존재할 뿐 아무런 쓸모가 없더라고요. 항상 옳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항상 틀린 것도 없어요. 아이를 키우며 그런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절대’라는 건 결코 없어요. 그런 걸 깨달으며 저 자신도 많이 말랑말랑해졌어요. 젊었을 때 김지호는 색깔이 너무 선명했다면 지금의 저는 훨씬 옅어졌죠. 그리고 예전에는 너무 잘하려고만 했어요.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하지도 않았죠. 자존심이 강해서 실패를 두려워했어요. 그런데 요가를 하며 달라졌어요.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고, 누구나 모르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요가의 한 동작을 조금씩 꾸준히 수련하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어느새 숙련자가 돼 있는 것처럼 삶의 모든 것이 그래요. 서툰 시간을 지나 계속 배우고 공부하고 연습하다 보면 잘해내는 시간이 와요. 설령 잘 못해도 괜찮아요.
요가가 삶의 많은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맞아요.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늘 “요가는 운동이 아니라 너를 많이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해요. 요가를 시작한 지 8년이 다 돼가는데, 처음 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어요.
SNS에 유독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이 보였어요. 특히 독서를 위해 창가에 둔 테이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고요.
테이블을 일부러 창가에 뒀어요. 벚꽃이 필 무렵에 창가 풍경이 유독 아름답더라고요. 원래는 소파가 있던 자리인데 소파 위치를 바꾸고 안방에 있던 책상을 끌고 나왔죠. 책상을 옮기고 나니 TV를 보다가도 테이블에 쓱 앉아 책을 읽게 되고, 밥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먹을 수 있어 좋았어요. 벚꽃 구경도 실컷 했고요. 봄의 연둣빛이 짙은 초록으로 가는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어요. 지금은 남편이 자꾸 지저분하다고 해서 다시 안방 창가로 테이블을 옮겨놨어요.(웃음) 가을이 시작되면 다시 옮기려고요. 집 앞에 은행나무가 있어 가을 풍경이 너무 기대돼요. 2층 집의 즐거움이기도 해요. 창마다 나무가 보이거든요. 창밖으로 나무를 비롯한 자연을 바라볼 때 정말 좋아요. 특히 해가 지면서 석양으로 물들어가는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해요. 완전한 어둠이 되기 전 진한 청색의 느낌. 그럴 때 보면 건물이 선명하게 보이잖아요. 석양이 시작되며 밤으로 넘어가는 풍경을 사랑해요.
창가를 바라보며 테이블에 앉아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최근에 에세이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디자이너 박지원 씨가 쓴 에세이 <애플 타르트를 구워 갈까 해>도 재밌었고요. 이혼 후 유럽에 살면서 한국에 두고 온 아이들과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요리하며 기록한 에세이예요. 요리에 담긴 엄마로서의 마음에 공감이 갔고, 박지원 씨가 사는 유럽의 공간을 상상해보며 재미있게 읽었어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즐겁게 읽었어요. 아,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도요!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어요. 여름휴가지는 정했나요?
저희 부부는 무언가를 계획하고 여행을 떠난 적이 거의 없어요. 늘 즉흥적이죠. 보통은 여행이 가고 싶어지면 3일 만에 준비하고 떠나요. 숙소도 전날 예약할 때가 많아요. 여행하며 숙소를 정해 옮기기도 하고요. 이틀 전에 로마행 티켓이 정말 저렴해졌더라고요. 그래서 로마로 갈까 생각 중이에요. 물론 정해진 건 없어요.(웃음)
남편만큼 자주 함께하는 여행 메이트도 없죠. 어느덧 결혼 24년 차가 됐는데, 살면서 서로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는지 궁금해요.
말하지 않아도 무엇이든지 아는 사이가 됐음을 확인할 때가 그래요. 같은 상황에서 저와 같은 생각이라는 걸 알았을 때 새삼 결혼한 지 오래됐다는 게 실감 나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남편과 보내는 시간 중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요. 제가 요리하는 걸 남편이 옆에서 거들고 함께 상을 차리고, 맛있게 식사할 때. 그때가 가장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