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경영권 찬탈 시도” VS 민희진 “뉴진스 카피=아일릿”
지난 4월 22일 하이브(HYBE) 측이 민희진 대표를 비롯한 어도어(ADOR) 경영진이 하이브 레이블에서 어도어를 독립시키고 탈취하려는 정황이 드러나 내부 감사에 들어갔다고 공론화하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감사 질의서에는 어도어의 지분 20%를 보유한 민희진 대표가 또 다른 경영진 A씨와 함께 대외비인 계약서를 유출하고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 80%를 팔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과 연습생 등의 개인 정보 유출, 인사 청탁 등의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를 묻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는 어도어의 주주총회 소집과 민희진 대표의 사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어도어 측은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의 걸 그룹 아일릿이 어도어의 걸 그룹 뉴진스를 카피해 항의 차원의 서한을 하이브에 보냈는데 갑작스럽게 보복성 해임 통보를 받았다고 반박했고, 경영권 탈취 시도를 부인했다. 실제로 하이브와 민 대표의 지분 구조상 민 대표 측이 지분 싸움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
이후 하이브는 A씨가 작성한 것으로 전해진 ‘하이브의 죄악’이라는 제목의 내부 문건 일부를 공개했다. 하이브는 내부 문건에 하이브의 어도어 지분 80%을 민 대표와 손잡은 사모펀드(PEF)에 매각하도록 압박하거나 뉴진스와 함께 별도의 독립 법인을 만드는 방안이 적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궁극적으로는 하이브를 빠져나간다”, “하이브 안에서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전체적인 자율권)” 등의 내용과 민 대표가 “아일릿도 뉴진스를 베끼고, 투어스도 뉴진스를 베꼈고, 라이즈도 뉴진스를 베꼈다. 방탄소년단도 내 거 베끼다 여기까지 온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덧붙였다.
또 민 대표가 무속인에게 인사, 채용 등 주요한 회사 경영 사항을 코치받아 이행했고, 해당 무속인은 민 대표에게 “앞으로 딱 3년간 언니를 돕겠다. 3년 만에 기업 합병되듯 가져오는 거야” 등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고소·고발, 민사소송, 여론전 등의 소제목으로 민 대표의 계획이 세분화돼 있는 문건도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25일 민희진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에 나섰다. 민 대표는 120여 분간 “뉴진스의 엄마 같은 마음”이라고 호도하고, “나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고 경영권 탈취 의혹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이 개저씨들이 나 하나 죽이겠다고 온갖 카톡을 야비하게 캡처해서”, “들어올 거면 맞다이(직접 대면)로 들어와. 뒤에서 ×랄 떨지 말고” 등의 발언을 거침없이 이어갔다. 중간중간 격양된 모습과 눈물, 욕설이 더해진 기자회견은 가수 나훈아가 5분 동안 바지 벨트를 풀어 헤쳤던 세기의 기자회견을 갱신했다는 평가다. 이날 민 대표가 착용한 파란색 캡과 초록색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완판을 기록했고, 각종 어록 패러디와 밈이 탄생했다.
해당 기자회견은 하이브의 주장에 대한 반박보다 민 대표의 심경을 토로하는 자리에 가까웠으나 대중은 마음이 흔들렸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경영권 찬탈 시도다. 하이브는 ▲2025년 1월 2일 풋옵션 행사 ▲권리침해 소송 제기 ▲재무적 투자자 구함 ▲캐시아웃한 돈으로 어도어 지분 취득 등 구체적 계획이 담긴 문건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민 대표는 “사담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영권 찬탈 시도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민 대표와 어도어 측은 대화의 의미를 축소하는 대응 방안을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돈 문제’로 시작된 갈등
경영권 찬탈 사태의 시작은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구조에 있다. 애초에 방시혁 의장과 민희진 대표는 하이브의 레이블 쏘스뮤직에서 걸 그룹을 론칭할 예정이었으나 제작 과정에서 방 의장과 민 대표, 쏘스뮤직 당시 소성진 대표 사이에 이견이 생겼다. 결국 하이브는 2021년 11월 2일을 분할 기일로 쏘스뮤직 레이블사업부문을 분할했고, 자본금 161억원을 출자해 어도어를 설립했다. 민 대표는 트레이닝 비용을 지불하고 쏘스뮤직 연습생인 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을 어도어로 영입했다.
그사이 방 의장이 총괄 프로듀싱한 쏘스뮤직의 걸 그룹 르세라핌이 데뷔했다. 이로써 민 대표는 ‘하이브 첫 걸 그룹’이란 타이틀을 빼고 두 달 뒤 뉴진스를 데뷔시키게 됐다. 같은 회사에서 2개월 차이를 두고 신인 그룹이 데뷔한 것. 이후 자연스레 르세라핌과 뉴진스는 실적·성과 경쟁을 했고, 이 과정에서 하이브의 지원사격 여부를 놓고 갈등이 생겼다.
또 다른 원인은 스톡옵션이다. 민 대표는 2021년 어도어 설립 이후부터 주식 기준으로는 회사 전체 지분의 15%에 해당하는 스톡옵션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 대표는 뉴진스를 성공시킨 공에 비해 지분율이 지나치게 낮다고 주장했고, 하이브는 2022년 스톡옵션을 추가로 부여했다. 주식으로 전환 시 20%에 육박하는 규모로 전해진다. 그러나 민 대표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스톡옵션 행사에 따른 이익에는 종합소득세가 과세되는데 누진세율이 최고 45%에 육박하기 때문. 민 대표 입장에선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셈이다.
이에 하이브는 지난해 초 스톡옵션 부여를 취소하고 이사회 결의를 통해 민 대표에게 주식을 저가로 매도했고, 그 결과 민 대표는 지분 18%를 보유한 어도어 2대 주주가 됐다. 또 주식의 환매청구권(풋백옵션)을 갖고 있어 향후 하이브에 보유 지분을 되팔 권리가 있는데 만약 어도어의 기업가치가 1조원이 되면 민 대표는 주식을 되팔아 2,000억원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후 양측이 주주 간 재계약 및 지분가치 산정 논의를 하다 갈등이 불거지면서 이번 사태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 간 계약엔 민 대표 등이 계약을 위반할 경우 하이브가 민 대표 등이 보유한 주식 전부를 매수할 권리(콜옵션)를 가졌고, 민 대표는 지분 18% 중 13%를 올해 말부터 정해진 가격(최근 2개년 영업이익 평균치의 13배)에 팔 권리(풋옵션)를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하이브 측은 민 대표가 풋옵션 배수를 13배에서 30배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고, 민 대표 측은 “추후 제작할 보이 그룹의 가치가 반영된 것이고 여러 제안 중 하나일 뿐”이었다고 반박했다. 민 대표는 하이브의 동의를 얻어 모든 주식을 처분하기 전까지 경업금지의무가 있는데 자신의 지분 중 5%는 하이브 동의 없이 매각할 수 없어 주주 간 재계약에서 조정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이 협상이 결렬되면서 하이브는 어도어의 경영권 찬탈 의혹을, 민 대표는 하이브의 어도어 베끼기와 차별을 제기했다. 즉 돈 문제에서 시작된 갈등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재판
지난 5월 17일 민희진 대표의 대표직 유지 또는 해임 여부를 두고 재판이 시작됐다. 민 대표 측이 어도어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임시주주총회 안건인 대표 해임안에 대해 분쟁 상대인 하이브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 법원이 민 대표의 손을 들어줄 경우 하이브는 민 대표를 해임할 수 없고, 반대의 경우 민 대표는 즉시 경영권을 내려놔야 한다.
가처분 심문 법정에선 하이브와 민 대표가 맺은 주주 간 계약 내용을 토대로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하이브는 “의결권 행사가 계약 내용에 반하지 않는다”고, 민 대표 측은 “해임안에 대한 찬성 의결권 행사는 계약에 반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주주 간 계약상 근속 기간 부분도 쟁점이다. 민 대표 측은 근속 기간 5년간 대표로서 책무를 다하도록 한 만큼 대표에서 물러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브는 법정에서 민 대표의 배임 정황도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2일 중요 자료를 유출하거나 어도어의 경영권을 가져가려는 정황이 의심된다며 민 대표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기 때문. 이에 민 대표 측은 터무니없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만약 법원이 민 대표의 손을 든다면 하이브는 당장 민 대표를 해임할 수 없다. 대신 항고심을 받거나 새로운 증거로 임시주주총회를 다시 소집할 수 있다. 반대로 가처분이 기각되면 하이브는 경영권 다툼에서 승기를 잡게 된다. 민 대표가 기각에 불복하거나 대표로서 직무가 유지될 수 있게 인정해달라 등의 가처분을 새로 낼 수 있지만 결정이 나올 때까진 임시주주총회의 결론인 해임의 효력이 유지된다. 통상적으로 가처분 결론은 심문 이후 2주면 나오지만 수천억원이 달린 싸움인 만큼 가처분 결론이 나온 뒤에도 양측의 법적 분쟁은 오래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경영권 찬탈 분쟁의 핵심은 뉴진스를 누가 성공시켰는지에 있다. 그동안 민희진 대표는 뉴진스의 성공이 하이브의 자본 덕분이라는 데 동의하지 못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투자금이 결정돼 투자가 성사된 이후의 실제 세부 레이블 경영 전략은 하이브와 무관한 레이블의 독자 재량이기도 하거니와 난 당시 하이브 외에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 제안을 받았었다”고 말했다. 특히 “투자처가 어디든 창작의 독립, 무간섭의 조항은 1순위였을 것이라 사실 꼭 하이브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민 대표는 음악 제작에 하이브 인력이 아닌 이오공(250), 프랭크 등의 프로듀서가 속한 비스츠앤네이티브스(BANA)와 손잡고 이지 리스닝 음악과 Y2K 분위기를 접목한 콘셉트로 K팝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끄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만약 뉴진스가 실패했다면 그 책임은 하이브가 온전히 지는 형태의 구조다. 민 대표가 하이브의 배경 없이 뉴진스를 독자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이브의 자본과 민 대표의 기회력 등 프로듀싱이 맞물려 최선의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 민 대표는 “꼭 하이브가 투자처일 필요는 없다”고 했으나 반대로 “왜 굳이 하이브였느냐”는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하이브는 짧은 기간에 수많은 레이블을 사들이고 설립했다. BTS가 소속된 빅히트뮤직을 비롯해 어도어, 빌리프랩, 쏘스뮤직,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KOZ엔터테인먼트, 하이브 유니버셜&재팬&아메리카&라틴아메리카까지 10개의 레이블로 구성됐다. 그러나 이 레이블을 관통하는 하이브의 문화는 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각 레이블은 각자의 길을 갔고, 그중 하나가 성공을 거두면서 하이브와 충돌했다는 것. 많은 인수 합병이 문화 충돌로 실패한다는 것을 간과한 결과다.
뉴진스와 멤버들 부모는 민 대표를 적극 지지하고 의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도어는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를 주장하는 입장문을 내면서 “뉴진스 멤버 및 법정대리인들과 충분히 논의한 끝에 공식 입장을 발표하게 됐다”고 강조하기도. 민 대표가 어도어, 뉴진스를 둘러싼 상표권 등 법적 분쟁을 벌일 경우 멤버들이 민 대표를 지지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하지만 하이브와 계약된 뉴진스 멤버들은 계약 파기를 이유로 상당한 위약금을 물 수 있기에 이들의 선택을 함부로 예측하기는 어렵다.
만약 뉴진스가 실패했다면 그 책임은 하이브가 온전히 지는 형태의 구조다.
민 대표가 하이브의 배경 없이 뉴진스를 독자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뉴진스 엄마’ 민희진, 누구인가?
1979년생으로 서울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민희진 대표는 2002년 SM엔터테인먼트에 공채 직원으로 입사해 소녀시대, 샤이니, f(x), EXO, 레드벨벳, NCT의 실험적 콘셉트를 주도했다. K팝 업계에서는 입지전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소녀시대의 그룹명이 정해지자 이미지 맵을 만들어 어떤 소녀여야 하는지 이수만 전 대표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이를 계기로 비주얼 디렉터의 길을 걷게 됐다. 공채 신입 사원으로 시작해 승진으로만 임원 자리에 오른 커리어를 쌓아 ‘엔터계의 이명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퇴사한 뒤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의 브랜드 총괄 임원으로 합류해 새로운 CI 개발과 신사옥 공간 인테리어를 주도하며 브랜드 구축을 이끌었다. 2021년 하이브 레이블 어도어를 설립한 뒤 2022년 뉴진스를 데뷔시켜 ‘Hype Boy’, ‘Attention’, ‘Ditto’ 등을 히트시켰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인 패스트컴퍼니는 ‘2024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50대 기업’에 하이브를 포함하면서 민희진 대표의 전략과 뉴진스의 활약을 선정 배경으로 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