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정몽헌 회장이 사망하고 그해 10월 가정주부였던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현대가에서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현대그룹 회장이 정씨가 아니라 현씨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시숙부인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 측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사들이면서 현대그룹 인수를 시도했다. 이때 현 회장 앞에 나타난 백기사가 쉰들러홀딩AG(이하 쉰들러)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노리고 있었지만, 이때는 발톱을 숨기고 있었다.
경영권 분쟁은 현 회장 측의 승리로 끝났지만 2006년 쉰들러는 KCC로부터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5.5%를 전격 매입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섰다. 현 회장 측으로서는 백기사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쉰들러는 이후 현 회장에게 현대엘리베이터 매각을 종용했다. 현 회장은 매번 거절했다. 이러한 관계가 반복되면서 현 회장과 쉰들러의 감정적 골은 갈수록 깊어졌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을 구하기 위해 막대한 지출을 감당하면서 쉰들러와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현대상선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현 회장은 2014년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를 동원해 재무적 투자자(FI)들과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체결했다. 재무적 투자자들을 동원해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대신 지분 인수 가격보다 주가가 하락하면 손실을 보전해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현대상선 주가가 급락하면서 현대엘리베이터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재무적 투자자들의 손실을 계약에 따라 보상해야 했다.
쉰들러는 2014년 현정은 회장을 상대로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9년간의 공방 끝에 대법원은 지난해 3월 말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연이자까지 합치면 2,7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노렸던 쉰들러는 곧바로 강제집행을 신청했다. 하지만 현 회장이 M캐피탈로부터 받은 대출금으로 강제집행문 발부 전 손해배상금을 모두 납부하면서 쉰들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현 회장은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를 백기사로 동원했다. H&Q코리아가 3,100억원을 투자한 돈으로 M캐피탈 대출금을 상환하면서 결국 쉰들러는 더 이상 손쓸 수 있는 방도가 없어졌다.
이후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계속 팔면서 현금화하고 있다. 사실상 철수 수순이다. 지난해 8월에는 갑자기 행동주의펀드 KCGI자산운용이 나타나 쉰들러와 연합을 꾀했지만, 쉰들러는 응하지 않았다. 쉰들러가 지분을 계속 줄여나가면서 KCGI자산운용 역시 별다른 힘을 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