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어, 영차.” 영화 <내부자들>에서 ‘장필우’(이경영 분)가 폭탄주를 제조하는 모습은 부패 권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며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된 이 장면은 이른바 ‘이경영 밈’으로 재탄생했다. 유튜브 채널 <경영자들>의 권혁수, 황제성, 곽범이 이경영을 패러디하며 애드리브로 “영차”, “좋았어” 등의 추임새를 넣은 것이 밈 형태로 번진 것(실제 영화에서 해당 대사는 나오지 않는다).
해당 콘텐츠의 시작은 권혁수의 유튜브 채널 <권혁수 감성>이었다. 이경영 성대모사에 일가견이 있는 권혁수가 같은 성대모사를 개인기로 내세우는 황제성, 곽범과 의기투합한 것. 각자의 성을 따서 권경영, 황경영, 곽경영으로 불리는 그들은 대본 없이 애드리브로 20~30분의 콘텐츠를 완성한다. 쉼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떠드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희극인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는 이 콘텐츠의 시작엔 권혁수가 있다.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출신으로 예능 <SNL 코리아>를 통해 얼굴을 알린 그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속 배우 나문희의 ‘호박고구마’를 패러디한 장면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후 ‘더빙극장’ 코너에서 애니메이션 <카드캡터 체리> <세일러문> <빨간 머리 앤>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웃음을 선사했다. 그렇게 <SNL 코리아>의 터줏대감이 된 그는 영화나 드라마에 특별 출연으로 등장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또 유튜브 채널 <경영자들> <권혁수 감성>을 통해 기획자로서 면모를 펼치고 있다.
이경영 밈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그 시작은 <경영자들>의 패러디였죠.
<경영자들>은 본래 제 유튜브 채널 <권혁수 감성>의 대본 없는 시트콤 속의 한 콘텐츠였어요. 제작진과 식사하면서 장난삼아 이경영 선배님의 성대모사에 일가견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한번 해보자고 한 것을 성사시켰죠. 당시 황제성, 곽범과 모르는 사이였는데 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줬어요. 두 사람이 제 작전에 걸려든 거였죠.(웃음) 뛰어난 기술자들 사이에서 빛을 보는 게 제 목표였거든요.
이경영 배우가 <경영자들>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저를 비롯해 황제성, 곽범이 각각 연락을 드렸고 제작진이 찾아가 설득했어요. 촬영 땐 무서웠어요. 저희 애드리브를 듣고 화가 나서 나가버리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면 얼른 나가서 선배님을 잡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보는 입장에서도 이경영 배우가 화를 낼까 봐 조마조마했어요.(웃음)
두 사람의 장난이 심하니까 저는 오죽했겠어요.(웃음) 저희가 대본을 따로 드린 것도 아니고 애드리브로 멘트를 한 건데 다 받아주셨고, 촬영 후엔 광고도 제안하셨어요. 저희 콘텐츠를 재밌게 보고 ‘이경영 밈’을 즐기고 계신다는 게 느껴졌죠. 프로페셔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지금도 저희와 연락을 자주 하고 가끔 아이디어도 주세요.
<경영자들>에서 황제성, 곽범과 호흡은 어때요?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하는 건데 호흡이 괜찮지 않나요? 사실 공개하지 않은 장면도 많아요. 서로 개인사까지 들추면서 헐뜯을 정도로 촬영에 진심인데, 촬영이 끝나면 뒤끝 없이 쿨하게 헤어져요.
희극인 특유의 쿨함이 멋있어요.
제가 정통 희극인은 아니지만 유세윤 형, 안영미·강유미 누나와 친해요. 희극인들과 함께하면서 많이 배웠죠. 장인들이 어떻게 아이디어를 짜고 콘텐츠화하는지, 무대에서는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요. <갬성카페>도 강유미 누나랑 대화하면서 우연히 탄생했어요. 가이드라인 정도의 대본만 있었는데 웃기고 싶다는 욕심에 제가 불쑥 애드리브를 하니까 유미 누나가 ‘괘씸하게 애드리브를 해?’라는 표정으로 애드리브를 했고, 저 또한 ‘이것도 참을 수 있어?’라며 또 애드리브를 했어요. 그렇게 서로의 괘씸함을 느끼면서 콘텐츠를 만들었죠. 개인적으로 강유미 누나가 콘텐츠 오리지널 대장이라고 생각해요.
콘텐츠 오리지널 대장이라니, 장인의 기운이 느껴져요.
유미 누나는 말 그대로 장인 정신으로 콘텐츠를 만들어요. 직접 기획하고 대본을 쓰고 연기를 해요. 거기다 촬영과 편집까지 홀로 다 하죠. 유미 누나를 일부러 찾아가 대화하면서 누나가 뜨문뜨문 던진 아이디어를 주워 먹어요. 유미 누나는 제 롤 모델이자 뮤즈예요.
유튜브 채널을 살펴보면 한 콘텐츠를 꾸준히 밀고 나가는 힘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될 때까지 해보자는 마인드가 있어요. 재미있는 포인트를 꾸준히 밀고 나가다 보면 터질 때가 있거든요. 소위 말하는 알고리즘을 타는 거죠. 콘텐츠 홍수 속에서 나의 콘텐츠를 많은 이들이 볼 때까지 기다려야죠.
콘텐츠가 인기를 얻었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이 있나요?
저를 본 사람들이 제 유행어로 인사를 건넬 때요. 저를 보고 “호박고구마”라고 인사할 때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재밌어하는구나’라고 느끼죠. 제가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갔을 때, 양손을 합장하고 “나가주세요”라고 하면 <갬성카페>가 재미있다는 걸 느낄 것 같아요. 그렇게 될 때까지 계속해야죠.
배우 권혁수의 매력은 캐릭터의 한 특징을 찰떡같이 표현한다는 점이에요. 수많은 캐릭터 중 최애는 누구예요?
깨물면 모든 손가락이 아프듯 모든 캐릭터가 소중해요. 앞으로 더 많은 캐릭터를 소화해나가야죠. 코로나19 때 하고 싶은데 못 한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처럼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지금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지나면 기회가 사라지거나 제가 흥미를 잃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거나 여러 이유로 못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하고 싶은 일은 바로 하려고 노력해요. 날씨를 즐긴다거나 산책을 하는 것처럼 작은 일일지라도 바로 하면서 저를 채워가고 싶어요. 허벅지가 땅기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살아가니까 오히려 삶이 더 풍족해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제게 ‘호박고구마’라고 인사할 때 제대로 웃겼다는 걸 느꼈어요.
사람들이 또 다른 유행어로 제게 인사하는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정진합니다!
동엽신의 조언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하다가 유튜브로 눈을 돌린 계기가 있나요?
유튜브를 시작한 2019년은 유튜브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어요. 당시 제가 트렌드를 이끄는 사람이라고 여겼나 봐요.(웃음) 트렌디해 보이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이 생각을 정리하려고 일기를 쓰고 메모하는 것처럼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죠. 초기엔 휴대전화로 직접 촬영하고 편집했어요. 그런데 기술적인 재능은 없다는 걸 깨닫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됐고, 이제는 기획에 집중하고 있죠.
그래서일까요? 최근 행보는 배우보다 기획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가요? 저는 너무 고민하지 말고 한번 해보자며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에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도저랄까? 드라마나 토크쇼, 음원까지 가리지 않고 해보자는 뚝심이 있죠. 방귀는 뀌어야 하더라고요. 참는다고 사라지지 않아요. 최근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의견을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과거엔 ‘내 말이 최고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다 보니 나와 다른 생각을 아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서로 양보하면서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 즐거워요.
<SNL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배운 것일까요? 아이디어를 코너로 만드는 코미디 쇼니까요.
<SNL 코리아>는 공연 당일 배열을 정하는데 그 과정에서 대본의 느낌이나 대사가 바뀌기도 해요. 아침부터 회의하면서 어떤 것이 재미있을지 고민하고,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하죠. 그 과정을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동엽신에게 많이 배웠어요. 크루 중 신인 배우도 많아 회의 시간에 쉽게 의견을 내지 못할 수 있거든요. 저 역시 초반엔 대선배들 사이에서 내가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죠. 그런데 동엽신은 늘 “모두가 이야기하고 서로 대화해야 베스트가 나온다. 세대가 섞여야 많은 사람이 보는 프로그램이 된다”고 말씀하시며 누구나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요. 그래서인지 서로 서슴없이 장난치면서 회의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돼요. 만약 급하게 준비하고 회의에 온 크루가 있다면 “오늘 얼굴을 놓고 왔네?”라고 말할 정도로 격의 없는 분위기죠.
누가 가장 놀림을 받나요?
동엽신이에요. 수평적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그런 역할을 자처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효과 있는 게 가끔은 ‘이런 아이디어를 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해요. 아이디어가 별로면 “별로”라고 솔직하게 말하고요. 우리끼리 서로 상처받지 않기로 했거든요. 반대로 재미있으면 열과 성의를 다해 응원하죠.
동엽신에게 배운 회의 방식을 유튜브 콘텐츠 기획에서 활용하나요?
어렵긴 하지만 저 또한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의를 지향해요. 마음먹고 회의하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거죠. 얼마 전엔 대화 중에 마음이 맞는 멤버끼리 불쑥 강릉에 휴가처럼 갔다가 호텔에서, 즉석에서 회의하고 콘텐츠를 촬영했어요. 예전에 가수 씨엘이 했던 원테이크 인터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아무 말 대잔치 인터뷰를 했는데 재미있었어요. 즉흥적으로 촬영한 거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추억을 남기자는 생각으로 콘텐츠를 만들었죠.
방송과 유튜브, 제작 방식이 같은 듯 다를 것 같아요.
제가 그동안 방송을 편하게 했어요.(웃음) <SNL 코리아>가 공개 코미디 쇼지만 사실 돌발 상황이 아니라면 미세한 애드리브까지 계산된 연기를 해요. 저와 호흡이 잘 맞는 김민교 형한테도 “이따가 애드리브를 한 번 할게요”라고 미리 말하고 PD님과 카메라 감독님한테도 알려요. 그래야 카메라에 제가 잡히니까요. 제 역할은 감독님과 작가님, 제작진이 짠 판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노출하는 게 전부예요. 그런데 유튜브는 함께 기획하고 대본을 구성하고 게스트를 직접 섭외해야 해요. 이런 단계들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동안 PD님과 작가님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는 걸 깨달았죠.
어떤 걸 할 때 더 재미있어요?
각각 다른 재미가 있어요. 어떤 것이든 끝나면 알게 모르게 가슴속에 눈이 쌓이는 것처럼 무언가 쌓여요. 유튜브 촬영을 끝내곤 내가 생각한 걸 구현했다는, <SNL 코리아>를 마치곤 콩트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전달했다는 뿌듯함이 있죠. 제작진이나 크루들과 한 가족이 돼요. 내가 넘어지더라도 그들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되진 않아요. 우리의 끈끈함이 있어요.
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불도저 스타일이에요.
될 때까지 밀어붙이죠.
지나고 보니 방귀는 참는다고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뀌어야 사라집니다.
맛있는 중국집이 될 것
최근 유튜브 콘텐츠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요. 예능계 양대 산맥으로 통하는 유재석과 신동엽이 유튜브에 진입했죠.
TV를 켜지 않아도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됐어요. 앞으로 콘텐츠가 더 다양해질 테니 더더욱 저만의 비법 소스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국집이 아무리 많아도 맛있는 식당은 장사가 잘되잖아요. 권혁수만의 맛을 만들어야죠.
부담감이 커질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부담을 느끼진 않아요. 한 가지에 매진한다고 다 되지 않고, 회의를 오래 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진 않더라고요. 편하게 마음먹고 쉴 땐 쉬면서 새로운 경험을 좇으려고 해요. 그래야 또 일할 맛이 생겨요. 예전에 <SNL 코리아>의 한 PD랑 휴가가 겹쳐 일본 오사카로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제가 하루 먼저 가고, 다음 날 PD가 따라왔죠. 여행을 가기 전엔 ‘일로 만난 사이니까 여행 가서 일 얘기를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일 얘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맛집을 찾고 편의점 털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리프레시되더라고요. 그때 틈나는 대로 즐겨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넋 놓고 살면 추억이 없어요. 새로운 도파민이 분비될 만한 자극을 찾아야죠.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친한 친구인 가수 강남이 저보다 유튜브를 늦게 시작했는데 굉장히 잘됐어요. 제가 강남에게 “어떻게 하면 유튜브가 잘되냐?”고 물었더니, 강남이 “권혁수라는 사람이 궁금하게 해보라”고 조언했어요. 제가 늘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며 대중에게 다가가니까 제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딱히 신비주의는 아니었는데 콩트를 자주 하다 보니 저에 대해 알려진 게 없어요. 어떻게 보면 역행일 수도 있는데 브이로그를 만들어 내추럴한 권혁수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요. 또 차일피일 미뤄왔던 드라마 오디션을 보면서 드라마에서도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권혁수는 어떤 사람인가요?
장독대에서 잘 익고 있는 사람이요. 언제 먹어도 맛깔나는 양념으로 숙성되고 있어요. 권혁수 하면 떠오르는 소스를 개발할 테니 기대해주세요.
What’s in my ‘YouTube’ (왓츠 인 마이 유튜브)
바야흐로 콘텐츠 범람의 시대. 웹예능, 토크쇼, 뮤직 플레이어, 정보까지 유튜브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콘텐츠가 있습니다. <우먼센스>가 독자의 휴대전화 속에 있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