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외선과 피부암
지난해 봄 할리우드 영화배우 휴 잭맨은 자신의 SNS를 통해 피부암 재발이 의심돼 조직 검사를 받은 사실을 밝히며 팬들에게 피부암 예방을 위해 자외선 차단제를 꼭 바르라고 당부했다. 과거 휴 잭맨이 앓은 기저세포암은 피부암 중에서도 재발 우려가 높은 질환으로 기저세포암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바로 오랜 기간의 자외선 노출이다. 종양을 억제하는 유전자의 변이를 일으킨 자외선 B(UVB)와 연관이 있는 것. “제발 나를 믿어라. 25년 전 자외선 차단제를 잘 바르지 않았던 결과가 지금 나타났다.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것을 잊지 말라”는 그의 메시지는 많은 이들에게 자외선 차단제 사용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자외선에 의한 피부암을 겪은 것은 휴 잭맨만이 아니다. 미국 유명 방송인 클로이 카다시안 또한 이미 19살 때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을 제거했으나, 이후 얼굴에 작은 혹이 생겨 두 번의 생체검사 결과 희귀 종양 진단을 받고 즉각 종양 제거 수술을 했다고 전했다. “전 매일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있어요.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하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길 바랍니다”라는 그녀의 메시지 역시 그동안 자외선 차단에 소홀했던 우리 모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한 사람의 얼굴인데도 자외선을 받은 쪽과 아닌 쪽이 극명하게 다른 사진도 우리로 하여금 자외선 차단의 중요성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25년 동안 트럭 운전을 한 미국 노인의 얼굴 사진이 바로 그것. 자외선을 많이 쬔 왼쪽 얼굴의 주름이 그렇지 않은 오른쪽 얼굴보다 훨씬 많은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또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활 습관으로 살았느냐에 따라 피부 노화 정도가 확연한 차이를 보인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유전자가 100% 동일한 일란성쌍둥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입증된 사실이다. 즉 같은 나이와 성별임에도 자외선 차단을 포함한 피부 노화 예방 유무에 따라 피부 노화의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외선은 무조건 해롭기만 할까
피부 홍반, 일광화상, 색소침착, 피부 노화, 심지어 피부암을 유발하는 자외선의 위험성에 대해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외선은 우리 피부의 살균 작용은 물론 비타민 D를 합성하는 데 꼭 필요한 긍정적인 측면도 갖고 있다. 특히 체내에 부족해서는 안 되는 영양소인 비타민 D는 뼈를 강하게 해주고 면역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인간에게 행복감과 안정감을 주는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우울증 치료에도 필수적이다. 비타민 D는 달걀노른자, 생선, 간 등에 들어 있지만 대부분 햇볕을 통해 얻는다. 인체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D로는 식물에서 추출한 비타민 D2, 어류나 동물의 간에서 추출하는 비타민 D3가 있다. UVB는 콜레스테롤에서 생성되는 물질과 만나 비타민 D3로 전환되는데, 이렇게 생성되는 비타민 D를 콜레칼시페롤이라 하며, 칼슘을 골수로 운반해 뼈대가 온전하게 생육하고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유앤미클리닉 청담점 위찬우 원장은 이러한 비타민 D의 합성을 위해서는 적절한 자외선 노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타민 D는 피부에 햇볕이 일정 시간 닿아야 합성되므로 적절한 자외선 노출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권장 일광 노출 시간을 넘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특히 중장년 이상은 피부암에 걸릴 확률이 높기 때문에 과다한 자외선 노출은 피해야 합니다. 건강한 비타민 D 생성을 위해서는 오전 10시~오후 2시의 강렬한 자외선은 피하고, 일주일에 2~3회 10~20분씩 팔다리를 내놓고 햇빛을 쬐는 것이 좋습니다.”
“비타민 D는 여름에 반팔, 반바지를 입고 피부 일부를 몇십 분 노출하는 것만으로 합성되므로 일광화상이나 광노화, 피부암을 줄이기 위해 햇볕 차단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김수영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피부과 교수
자외선, 흡수와 차단을 동시에!
우리 피부에 득과 실을 동시에 선사하는 자외선을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자외선 차단과 동시에 비타민 D 합성을 위한 흡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결론. 즉 자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는 피부 부위는 자외선 차단제 등을 사용해 차단하되 비타민 D 합성을 위해 적정 시간, 적정 부위의 노출은 필요로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외선 차단제가 비타민 D의 흡수를 방해한다는 데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한국 여성의 혈중 비타민 D 대사물 농도가 기준치보다 현저히 낮다”, “한국인의 85%가 비타민 D 부족이다” 등 비타민 부족 현상에 관한 뉴스를 접한 적이 있을 터. 동시에 이러한 이유에서 자외선 차단제 사용이 비타민 D의 흡수를 방해한다는 논란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사실로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과 비타민 D 농도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2019년 <영국피부과학회지(British Journal of Dermatology)>에 발표된 연구 논문이 주목할 만한데, 연구자들은 유럽의 유명 휴양지인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에서 여러 대조군을 만들어 실험했다. UVA 차단 지수가 높은 선크림을 바른 A라는 집단과 권장량만큼은 아니더라도 평소대로 바른 대조군 B를 비교한 것. 당연히 A 집단은 비타민 D 합성이 매우 잘되는 것으로 나왔고, 주목할 점은 B 집단 역시 이에 못지않은 결과를 보인 것이다.
김수영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피부과 교수의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미국 존스 홉킨스 병원 피부과와 공동 연구를 했는데, 조사 대상은 2011~2014년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20~59세 미국 백인 2,390명이다. 이들 중 광민감성 피부로 인해 햇볕 노출을 꺼리고 평소에도 긴소매 옷을 입고 자외선 차단제를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그룹에 대한 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이 그룹은 다른 그룹에 비해 그늘을 찾는 확률이 3배 높고, 자외선 차단제도 2배 정도 많이 사용했지만 일광 노출 시간이 유의미하게 다르지 않은 것. 평소 적극적으로 햇볕을 차단하며 생활하고 있음에도 비타민 D 결핍증은 늘지 않은 것. 즉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해도 비타민 D 흡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Q&A
Q 어느 정도 햇볕을 쬐어야 적절한 비타민 D를 얻을 수 있을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주일에 한 번 20~30분 정도 자외선을 쪼이면 하루 권장량을 얻을 수 있다. 창문 앞에서 일광욕하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UVB는 창문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Q 비타민 D 부족 현상을 겪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일주일에 한 번 20~30분 정도 햇볕을 쪼이도록 한다. 그러나 이때 얼굴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것. 햇볕 노출이 쉽지 않다면 적정량의 경구용 비타민 D를 꾸준히 복용하거나 3개월마다 비타민 D 주사를 맞는 방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