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왕의 DNA를 가졌으니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해달라.” 이 황당한 교육 지침을 교사에게 요구한 교육부 5급 사무관의 갑질이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격언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공교육과 사교육 현장에서 교사를 대상으로 아슬아슬 선을 넘는 진상 학부모가 늘고 있는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갑질을 일삼는 진상 학부모들의 민원이 공교육을 붕괴시키는 원인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서이초등학교의 초임 교사 사망 사건 등과 관련해 갑질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자신이 갑질 학부모인지 스스로 점검해보는 체크리스트와 진상 학부모들의 단골 멘트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공유됐다.
“개인 연락처를 안 알려주는 교사는 애정이 없다”, “정말 급할 때는 늦은 시각에 연락할 수도 있다”, “애 안 낳고 안 키워본 사람은 부모 심정을 모른다” 등의 내용을 포함한 체크리스트와 “애 아빠가 화나서 뛰어온다는 걸 말렸어요”, “집에서는 전혀 안 그러는데” 등 진상 학부모 단골 멘트를 통해 학부모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파워 블로거 맘, “아이 학원 수업 공짜로 받고 싶다” 당당 요구
온라인상 맘 카페의 사연을 참고해보면 교사와 학생들이 수업 중인 교실에 허락 없이 불쑥 들어오는 것은 기본, 교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교사 책상과 교탁을 뒤지는 학부모까지 있다. “아이가 급식을 먹고도 집에 와서 배가 고프다고 하는데 도대체 학교 체육 시간에 아이한테 무엇을 시켰냐”고 교사에게 항의하는 학부모, “내가 음대 교수인데 학교 행사 때 악기 연주를 하는 아이들의 자세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똑바로 서서 연주하게 지도하라”고 담당 음악 교사에게 따지는 학부모도 있다.
진상 학부모들의 활약상은 공교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교육계에서는 더하다. 자신을 파워 블로거라고 소개하며 아이 학원 수업을 공짜로 받고 싶다고 하는 경우, 학원 원장이나 강사가 어려 보이면 대뜸 “몇 년생이세요?”라고 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대놓고 “대학은 어디 나왔어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쇼핑하듯 이곳저곳 학원가 순례를 하고 나서는 몇 달 후부터 학원에 다닐 수 있는데 자리를 비워놓아 달라, 내 아이의 스케줄에 맞게 학원 수업 시간을 옮겨달라는 등 진상 학부모들의 무례함은 끝이 없다. 물론 진상 학부모는 지극히 소수다. 문제는 목소리 큰 진상 학부모들의 갑질로 대다수의 상식적이고 선량한 학생들과 학부모가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교사에게는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식의 면박을 주며 은근슬쩍 반말을 하고, 또 나이 많은 교사는 자신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으니 아이 교육에 적극적이지 않고 신체 활동을 잘 안 시킨다며 트집을 잡고 꺼린다.
자녀에 대한 지나친 불안과 예민함이 요인
결국 중요한 것은 학부모와 교사 간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서로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는 일이다. 학부모의 경우 아이와 관련된 질문은 업무 시간에만 해야 한다. 그런데 밤늦은 시간에 교사 휴대전화로 연락하는 학부모가 많다. 물론 시각을 다투는 중요한 사항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대부분 사소한 질문이나 다음 날 연락해도 무방한 내용인 경우가 많다. 다음 날 최상의 컨디션으로 수업하기 위해서는 교사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내 아이의 교육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교사의 개인 연락처로 연락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또 학기 초에는 아이의 준비물을 빠짐없이 챙겨주는 것도 필요하다. 자녀가 교사에게 지적받을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체험 학습 신청서, 각종 서류 등을 미리미리 내면 예의 있는 학부모라는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교사의 경우 실수하거나 잘못한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학부모들에게는 교사가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것에 인색하다는 인식이 있다.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교사의 태도에 학부모들은 신뢰감을 더욱 느끼게 될 것이다.
교육 현장의 교사들은 “아이들끼리 다툼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오히려 아이들은 금방 화해하고 잘 지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부모가 자신이 기분이 상했다며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지나친 불안과 예민함이 진상 학부모를 만드는 것 같다”고 말한다. 또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도 라포르(rapport, 관계 형성)를 쌓는 시간이 필요한데 학년 초에는 그런 시간이 없어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교사들 중에는 1년에 한 번씩 담임이 바뀌다 보니 아이와 학부모에 대해 파악할 시간이 부족하므로 2년 정도 한 담임이 한 학급을 맡는 연임제를 하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수의 선량한 학부모들로 이뤄진 학부모 공동체의 영향력이 커져 이들이 진상 학부모를 견제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시행 가능성이 적고 갈 길이 멀지만, 우리 아이들의 건강하고 올바른 교육을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진상 학부모는 아닐까? 진상 부모 체크리스트
□ 개인 연락처를 안 알려주는 교사는 애정이 없다.
□ 정말 급할 때는 늦은 시각에 연락할 수도 있다.
□ 젊고 예쁜 교사가 좋다.
□ 애 안 낳고 안 키워본 사람은 부모 심정을 모른다.
□ 나이 많은 교사는 엄해서 애들이 싫어한다.
□ 젊은 여교사는 애들이 만만하게 봐서 애들을 잘 못 휘어잡는다.
□ 우리 애는 예민하지만 친절하게 말하면 다 알아듣는다.
□ 우리 애는 순해서 다른 애들한테 치일까 봐 걱정이다.
□ 때린 건 잘못이지만 맞는 것보다는 낫다.
□ 우리 애가 잘못했지만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