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럭셔리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
올드머니(Old Money)는 상속받은 재산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부를 유지하는 사회계층을 뜻하는 말로 자수성가한 사람인 뉴머니(New Money)와 반대되는 단어다. 여기서 유래한 올드머니 룩은 집안 대대로 부유한 삶을 사는 상류층의 패션을 말하며, 전통적인 귀족 패션에서 영감받아 절제된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풍기는 스타일이 특징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시대를 초월한 세련됨’을 기본으로 하며, ‘조용한 럭셔리’라는 뜻에서 스텔스 럭셔리(Stealth Luxury)라고도 부른다. 올드머니 계층은 주로 승마나 요트, 테니스 같은 고급 취미를 향유하거나 그러한 스타일의 패션을 추구한다. 노골적인 로고나 화려한 디테일로 부를 과시하기보다 옷의 품질이 은은히 드러나는 룩을 선호하며, 소재도 색도 단순해 보이지만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패션이다.
이는 미국 힙합의 ‘플렉스(Flex)’ 문화로 대표되는 뉴머니 룩과 대치된다. 이들은 커다란 로고가 박힌 명품들과 많은 액세서리를 활용해 자신의 부를 뽐내는데, 화려한 로고 플레이가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주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빠르게 바뀌는 패션 트렌드에 지친 사람들이 올드머니 룩에 열광한다. 거기에 최근 물가와 금리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젊은 층이 늘어났고, 이들이 사치스러운 소비를 줄인 것도 올드머니 룩이 유행한 원인으로 꼽힌다. 이것저것 쇼핑하는 대신 제대로 된 아이템을 사서 더 오래 사용하려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화려하고 멋있지만 유행을 타는 스타일보다는 단순하고 무난하지만 오랫동안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졌다.
걸어 다니는 올드머니 룩, 귀네스 팰트로
귀네스 팰트로는 패션 행보가 올드머니 룩 그 자체다. <슬라이딩 도어즈>에서는 미니멀하면서도 우아한 캘빈클라인 패션을, <위대한 유산>에서는 도나 카란 그린 투피스를, <퍼펙트 머더>에서는 어느 룩에나 잘 어울리는 에르메스 켈리 백을 세련되게 잘 소화했기 때문이다. 모두 세기말인 1998년에 개봉한 영화다. 그녀는 지난해 봄 ‘스키장 뺑소니 사고’ 민사소송으로 법정에 섰을 당시 세련된 패션으로 또 한 번 화제에 올랐다.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모두 그야말로 ‘인간 올드머니 룩’이라고 할 수 있다.
캘빈클라인 홍보 담당자 출신이자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아내인 캐럴린 베셋 케네디는 1990년대 뉴욕의 우아한 미니멀리즘을 반영한 패션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패셔니스타 귀네스 팰트로가 그녀를 동경해 패션 스타일을 자주 차용했을 정도로 화이트, 블랙 등 뉴트럴 톤의 절제된 컬러와 우아한 실루엣이 돋보이는 올드머니 패션의 선두 주자라 할 수 있다.
영화 <아이 엠 러브>에서의 틸다 스윈턴 패션과 말을 탄 폴로 선수 형상이 브랜드 심벌인 랄프 로렌 광고 비주얼 속 패션도 올드머니 룩으로 꼽힌다. 이 밖에도 올드머니 룩에 잘 어울리는 브랜드로는 에르메스, 로로피아나, 브루넬로 쿠치넬리, 더 로우 등이 있다. 이 브랜드들이 아니더라도 세월로부터 자유로운 타임리스 룩을 구현하기 좋은 브랜드는 모두 올드머니 룩의 대상이다.